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99) (99/124)

강대국의 증명7

*

벌써 널브러진 길드연합의 골렘만 10기가 넘었다.

“저, 저건 골렘인가? 정체가 대체 뭐냔 말이다.”

박살이 난 마차에서 끙끙대며 나온 하이만이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 거대한 존재가 골렘인지 아닌지 이곳에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다. 저 그레지안 산맥 깊숙한 곳에 산왕이라느니 하는 거대한 나무가 움직인다는 얘기를 말이야. 하지만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

저 존재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트라키아 길드연합의 골렘을 잡아서 들어 올리는 말도 안 되는 파워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단순하게는 어른과 아이, 그 이상의 차이라고 해도 좋다.

콰아앙!

또다시 땅이 진동하였다. 또 한 기의 골렘이 짓뭉개졌다. 탑승부가 완전히 찌그러진 채로 말이다.

“마스터! 위험합니다! 서둘러 이곳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주변의 호위들이 그를 말렸지만, 하이만은 듣지 않고 다가가서 널브러진 골렘들을 살폈다.

‘탑승부가 전부 다 박살이 났다. 저놈······ 틀림없이 탑승자를 노리고 있다.’

하이만의 얼굴이 일그러졌을 때였다.

콰콰콰!

땅이 갈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하이만을 덮쳤다.

아우로렐이 동시에 세 기의 골렘을 밀어내면서 그 여파가 이곳까지 미친 것이다.

“마,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크윽! 이런······ 이런 식으로는 안 돼! 숲을, 숲을 태워라!”

하이만이 다급히 외쳤다.

저 존재가 대수림이 만들어낸 분노의 화신 같은 것이라면 화염은 분명히 약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곧 뒤에서 재집결한 마법사들이 하이만의 명령에 따라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이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한번에 화염 마법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숲이 불꽃에 휩싸이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다 태워버려! 저놈이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거다. 그 틈을 만들어내야 한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쐐애액!

별안간 파공성이 그들의 귓전을 때렸고.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땅이 가라앉을 것처럼 진동하였다.

“무슨······ 무슨 일이냐!”

하이만이 당황하여 어둠의 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의 굉음이 저 앞쪽이 아니라, 후방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자욱하게 치솟는 먼지 너머에서 횃불이 어지럽게 뒤섞이는 광경이 보였다. 그곳은 조금 전까지 마법사들이 집결해있던 후방이었다.

“무슨 일이냔 말이다!”

“콜록. 콜록! 뭐, 뭔가가······ 숲에서 날아 콜록! 왔습니다!”

흙먼지 속에서 튀어나온 병사들이 말했다.

뭔가가 날아왔다고?

하이만이 그곳을 노려보았다.

곧 구름 속에 감춰졌던 환한 달빛이 세상을 비추었다. 자욱한 흙먼지 너머로 땅에 꽂힌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그것은 투창이었다. 골렘이 아니면 던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 투창!

“······.”

하이만이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돌렸을 때.

쿠웅.

숲 안쪽에서 땅이 진동했고, 녹색의 안광이 번뜩이며 두 기의 나무가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더······ 더 있다고······.”

하이만은 신음을 내뱉듯 중얼거렸다.

*

제드는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확신했다.

‘이곳 전장의 상황에 일어날 변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우로렐의 전투능력은 압도적이었다.

숲을 지켜야 한다는 제드의 의지가 아우로렐의 분노를 일깨운 것 같았다.

‘필요 이상으로 출력을 끌어올리는 바람에 마나가 불필요하게 더 많이 소모되고 있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다. 이 압도적인 힘의 격차에 적들의 사기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을 터.’

도중 적 마법사들이 숲을 불태우려는 노골적인 움직임을 보이기에 두 기의 그레지안 급 우드 골렘을 더 공간의 저편에서 불러서 마법사들까지 침묵시켰다.

그렇잖아도 바닥을 치던 적들의 사기는 이제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질 터였다.

‘골렘 전력까지 분산해야 상황이 되었으니 머리가 아플 테지.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다. 더 무엇을 고민하는가? 이미 이 싸움엔 그대들에게 승산이 없음을 알 터.’

도망치지 않는다면 최후의 한 명까지 쳐부술 뿐이다.

제드는 이내 눈을 감았다.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오르노벨 방면의 상공을 날고 있는 블라르와 동기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곳의 상황도 계획대로인가.’

꽝! 콰콰콰쾅!

대수림과 인접한 고지대에 자리를 잡고 불을 뿜어대는 포병대. 그리고 그들과 맞물려 유기적으로 산개대형을 짜고 적들을 저지하는 기갑중대의 모습까지.

‘제5 기갑중대인가. 하나하나가 훌륭한 조종 솜씨로군.’

기갑중대의 앞에 붙는 숫자는 중대의 창설시기와 맞물린다. 그리고 그 말인즉 해당 중대의 골렘 마법사들은 훈련과 경험의 양이 많다는 얘기였다.

물론, 적의 실력도 처지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선봉대를 맡은 적 골렘 하나하나의 전투능력은 제5 기갑중대의 골렘보다 빼어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력이 압도적인 게 아니라면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좁은 길목을 틀어막고 유기적으로 대응하며 저지하는 기갑중대. 그리고 그런 기갑중대를 믿고 자리를 잡고 고지대에서 포격을 이어나가는 포병대.

화포가 다시 이 시대의 전면에 등장한 이후로 전쟁은 완전히 골렘을 중심으로 흘러가게 됐다.

그러나 제드는 포병대를 그냥 내버려둔 적이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계산식을 이용해서 화포의 개량을 거듭하였다.

그 결과, 작금에 이르러 포병대의 화포는 골렘의 장갑과 함께 스톤 골렘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물론, 그만큼 더 좋은 마석을 소모하고 있었지만, 라이곤 육군이 타국과 차별되는 점은 바로 압도적으로 풍부한 마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콰콰콰쾅!

연이어 포격이 이어졌고, 포구에서 터져나온 불꽃은 어둠을 찢고서 병목된 적 골렘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방패를 들어서 그 공격을 받아내는 적들이었지만, 방패가 아무리 두껍다고 해도 그 공격을 계속 받아낼 수는 없었다. 방패는 찌그러지고 깨졌으며 녹고 있었다.

“크으으윽! 아, 앞으로 방패를 전달하란 말이다! 저 불꽃을 견뎌내야 할 거 아니냐고!”

휘몰아치는 화염의 열기에 탑승석에서 땀을 뻘뻘 흘려대는 기사들이 고함을 질러댔다. 숨이 턱 막히는 열기와 연이은 폭발로 이미 중간에 껴 있는 퀘베스의 골렘 선봉부대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왜 뚫지를 못하는 거야!”

“빌어먹을. 저놈들이 길을 틀어막고 있단 말이다! 적 골렘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후퇴해! 일단 물러나라고!”

“으아아악! 뜨겁단 말이다!”

아비규환.

라이곤의 기갑중대는 파상공세를 펼치며 적이 넓게 포진할 수 없도록 밀도를 조였고, 잠깐씩 산개할 때면 그 자리로 포격이 꽂혔다.

그렇게 스타피르 방면에서 온 적의 증원군은 금방 전장에 당도했으면서도 그 힘을 펼치지 못하고서 조금씩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그 사이, 오르노벨의 군대는 거의 다 끝이 났군.’

처음에는 제법 팽팽하게 버텼던 오르노벨의 마르쿠스 길드연합군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전력의 차이가 너무 크게 났기 때문이다.

적의 좌익이 가장 먼저 무너졌고, 이내 우익이. 마침내는 중앙이 고립되어서 무너지는 게 현 상황이었다.

‘분단과 고립. 증원의 차단이라는 것까지 모두 작전대로 수행되었다.’

다만, 남은 골렘 전력의 저항이 거칠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으면 사기가 꺾일 법도 한데, 오히려 더 거칠어 졌군. 위기에 몰릴수록 더 발악하는가?’

블라르가 조금 더 아래로 날았다. 불똥이 튀는 전장이 가까워지면서 적 중앙 골렘부대의 주축이 되는 골렘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골렘의 견갑에 새겨진 붉은색 문양까지 말이다.

‘붉은 송곳니? 과연, 그 명망 높은 용병단이었나.’

전생에도 그 이름은 꽤 유명했다. 오멜 공국에는 내로라할 근위대급 기사는 없었지만, 그 대신에 붉은 송곳니라고 불리는 정예 용병단이 있다고 말이다.

‘마르쿠스 길드연합이 그들을 흡수한 모양이군. 그리고 골렘에 태웠다는 것인가.’

실제로 몸을 써서 병장기를 휘두르는 것과 골렘에 올라서 골렘을 조종하는 것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붉은 송곳니 용병단은 아주 잘 싸웠다.

‘분명히 골렘의 출력은 같은데도 움직임이 제각기 다르다. 특히 저 선봉의 골렘. 더 기민하고 힘과 동선을 활용할 줄 알아. 그가 대장이겠어. 실력이 다르다.’

한 번에 라인 급 스톤 골렘 세 기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크게 밀리지 않다가 전열을 빠져나오는 날렵한 기동성을 보여준다.

‘능숙하군. 과연, 싸움에 익숙해.’

붉은 송곳니 용병단의 골렘들을 상대하는 건 한 자리 숫자의 기갑중대들. 그들 중에는 루카스의 제1 기갑중대도 있었다.

‘반면에 아군의 기갑중대는 전술의 유연성이 다소 떨어지는군. 집단전술에 너무 얽매여있어. 붉은 송곳니는 다수전에 익숙하다. 힘을 분산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 왜 싸움이 길어지는지 알만하군.’

만약 중앙전력에 포병대 지원이 있었더라면 상황은 지금과는 또 달랐을 것이다. 적이 전열에서 벗어나는 순간, 쏟아지는 불꽃에 휩쓸려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현재 라이곤 육군의 포병전력은 모두 우측의 길목인 스타피르 방면의 군대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전열을 무너뜨리고 포위했음에도 중앙의 접전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력은 인정할만하다. 라이곤의 근위대급 이상이야. 다만, 그걸로는 이 불리한 전황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적의 측후위를 점한 아군의 골렘 부대가 붉은 송곳니를 제외한 나머지 골렘들을 적극 몰아붙이면서 압박을 하였다.

‘그래, 그거다.’

로톤이 명령을 내린 것이리라.

붉은 송곳니 용병단을 쉬이 제압하기 어렵다면 반대로 취약한 부분부터 차근차근 압박해나간다면 결국 그들은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질 수가 없는 전술이었다. 붉은 송곳니가 살아남으려면 이제 방법은 하나다. 포위망을 구축하는 라이곤의 골렘을 한 번에 대여섯 기를 부수면서 돌파하는 것.

그게 안 된다면 그들이 쓰러지는 건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쿠웅!

머잖아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골렘들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하였다. 팔이 떨어지거나 몸이 꿰뚫려 기동을 정지하는 골렘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런 골렘들이 붉은 송곳니 부대의 발목을 잡으면서 골렘이 쓰러지거나 휘청대는 모습이 나왔다.

“지금이다!”

라이곤의 베테랑 기갑중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콰아앙!

콰가가가각!

철판이 갈리고, 불똥이 튀다가 이내 몸이 깎여나가는 마르쿠스 길드연합의 골렘들.

붉은 송곳니의 쟁쟁하였던 위명이 마침내 이 땅에서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

우우우우.

별안간 울려 퍼지는 아우로렐의 울음에 제드는 눈을 떴다.

“끝났는가.”

어느새 주변이 조용했다.

제드는 나무 사이로 걸어나와 고지대에 올라서 조금 전까지 수십 기의 골렘들이 뒤얽혀 전투를 벌였던 현장을 눈에 담았다.

“절경이로군.”

널브러진 골렘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근 20기에 육박하였다. 그리고 아우로렐은 멀쩡한 모습으로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작은 생채기 따위만이 이곳에서 접전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우우우우우.

아우로렐이 다시금 울었다. 강렬한 전의가 느껴졌다.

“그만. 충분해, 아우로렐. 잘해줬다.”

제드가 아우로렐을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상위 정령급으로 거듭난 아우로렐은 전처럼 제드의 말에 곧장 반응하지 않았다.

‘전투에 대한 집중도가 높다는 건 좋은 일이다만, 지나치게 전투에 몰입하면 통제가 어렵겠군.’

고삐를 완전히 늦춰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제드였다. 전에 대수림의 요정족 인도자가 했던 말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스타벳의 전투는 끝났다.

한동안 흉흉하게 주변을 훑던 아우로렐의 녹색 안광은 새벽이 거의 다 지나가서야 다시 온순하게 돌아왔다.

“수고했다, 아우로렐. 이제 돌아가도록 해.”

우우우.

제드는 아우로렐을 마지막으로 세 기의 골렘을 모두 공간의 저편으로 돌려보냈다.

전투로 엉망이 되어버린 대지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제드는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싸움은 끝났다.

동녘에서부터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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