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95) (95/124)

강대국의 증명3

*

“역시 예상한 그대로 움직이는가.”

제드는 오멜 공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절을 통해 받은 소식은 오멜 공국을 흔들어놓았고, 그 결과 공국의 핵심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각지의 길드 마스터를 불러 대의회를 열었다.

오멜 공국은 각 길드에 의해서 돌아가는 상인 중심의 나라인 만큼, 그들의 결정이 곧 나라의 앞일을 결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드는 앞에 놓인 동부 대륙의 지도를 눈에 담았다.

새로운 말을 북쪽의 지도 위에 탁 얹었다.

하얀 말이었다. 그것은 오멜 공국의 군대다. 그 아래로 대수림이라는 광활한 완충지대의 너머에 두 개의 검은색 말이 있었다. 라이곤 왕국의 기갑중대를 의미한다.

제드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작금의 라이곤 왕국의 전력은 전에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전쟁을 바란다면 받아주마.”

제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멜 공국의 대의회가 어느 쪽이든 결론이 날 때까지는 시간이 있었고, 그동안 제드는 밀렸던 레지앙의 일을 처리할 참이었다.

그날 오후 무렵, 제드는 마차에 올랐다.

“레지앙으로 가지.”

“옛.”

마부는 검은 근위대 소속의 메르센이라는 기사였다. 평민 출신의 인물이었으나,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고 젊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 자크 역시 그의 재능과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덜컹대는 마차에서 제드는 도심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라이곤은 번영을 거듭하고 있었다. 발전된 마도공학의 기술은 지금은 골렘에만 사용되고 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나기 전에 생활의 영역에까지 스며들 것이고, 많은 것들이 변화할 것이다.

‘다음 시대가 오고 있다.’

제드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라이곤이라는 강대국이 주도하는 질서. 그 힘의 논리가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된다면 곧 평화는 자연스럽게 시대에 녹아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대를 어떻게 유지해나갈 것인가.’

제드는 전쟁이 계속되는 세상만을 봐왔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전쟁의 정치를 이용해왔다. 적들을 억누르기 위한 계책과 방도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 명확한 적이 사라진 후에 염원하였던 평화의 시기가 찾아온다면 그것을 어떻게 항구적으로 이끌고 갈 것인가는 잘 알지 못했다.

그것은 미지였다. 알 수 없는 것을 짐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잠깐.”

워워.

마부석의 기사가 고삐를 당겼다. 곧 마차가 멈춰서는 가운데, 제드는 마차에서 내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젊은 기사 메르센은 로브 안의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언제든 제드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는 칼을 뽑아들고 달려나갈 것이다.

“대기하고 있도록.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알겠습니다.”

마차를 뒤로하고 길로 나아가는 제드.

그의 시선이 꽂혀 있는 곳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오가는 그 골목의 저편에는 적당한 크기의 광장이 있었고, 그곳엔 어른과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제드는 저벅저벅 걸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 있는 곳. 그곳에는 작은 무대가 있었다. 귀여운 인형들이 실이 연결된 것도 아닌데, 알아서 움직였다. 인형극이다.

희미한 정령의 기운이 인형들 사이에서 느껴진다. 인형들은 대화를 주고받고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몹시 즐거워했다. 지금 이곳엔 남녀노소의 구분이 무의미했다. 모두가 한마음이다.

제드도 그 인형극에 심취하였다. 달리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꽤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곧 이야기가 끝났고 무대의 뒤에서 중절모의 중년인이 나와서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며 무대극 앞에 돈을 놓고 갔다. 그 금액은 너무 적었다. 제드가 수중에서 금화를 한 움큼 쥐어 그곳에 넣을 때였다.

“감사합······ 어이구. 이건 너무 많은 돈입니다.”

노신사 라데르 아일란이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가 이내 제드의 얼굴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드의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자네······ 구면이로군.”

“저를 기억하십니까.”

“하하. 내가 그 정도로 늙지는 않았다네. 적어도 수년 안팎의 일은 또렷이 기억하지. 더욱이 자네처럼 인상 깊은 청년을 어떻게 잊겠나?”

그는 유쾌한 듯 웃으며, 무대에 걸터앉았다.

“아직 수도에 계셨습니까.”

“핫핫. 그건 이상한 이야기로군. 나는 오랜 시간 이곳에서 계속 지내왔는데 말이야. 오히려 자네 덕분에 더 살기 좋아졌지. 많은 것이 좋게 바뀌지 않았나.”

라데르는 인자하게 웃으며 주변을 정리했다.

“이 도시에는 명암이 명확했지.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겐 꿈도 희망도 없는 나날들만 펼쳐져 있었다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아주 잠깐의 즐거움을 주는 게 전부인 광대에 불과해. 근데 자네는 다르군. 이 도시, 이 나라의 모든 걸 바꿨어.”

“······.”

제드가 놀란 얼굴을 했다.

설마, 라데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제드가 해온 일을 업적이라며 칭송하는 이야기는 이제 이 라이곤 왕국, 그리고 수도인 그레즈에서는 꽤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제드는 그것에 어떤 감흥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가 해왔던 일들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거나 평가를 받기 위해서 해온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라데르의 말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제드에게 있어 그는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꾼 은인이다. 제드에게 있어 삶의 지표가 되어준 인물이다. 평화라는 길. 그것이 나아가야 할 길임을 제시해준 존재였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물론이지. 뭐, 나 같은 사람이 뭘 알겠느냐마는 적어도 내가 보고 들은 것은 그렇다네.”

제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이군. 이런 식으로 웃게 되다니.’

드높은 영역에 다다른 지성과 확장된 정신세계 속에서 그의 감정은 온전히 통제되고 있을 터인데.

그것은 달리 말하면 라데르라는 존재가 제드에게 의미가 남다르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전쟁, 다툼. 피와 희생. 지나온 모든 것들이 이 땅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노라면, 귀하는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음.”

라데르는 난색을 보이며 침묵했다. 그러더니 이내 중절모를 고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글쎄······. 잘 모르겠군. 그 정도로 무거운 주제를 입에 담기에는 내 주제가 너무 초라하니까 말일세. 다만, 그건 누군가가 감히 평가할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 드는군.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야.”

라데르는 헛헛 웃었다.

“능력이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든 해서 이뤄낼 수 있는 게 좋겠지. 그리고 그것이 평화라는 것이라면 나는 자넬 응원하고 싶군.”

“고맙습니다.”

“핫핫.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처럼 위대한 사람에게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가 주게나.”

“아뇨. 자신을 낮게 평가하지 마십시오. 귀하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품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럴 리가. 내가 뭐라고······.”

라데르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젠 사라져버린 시간 속. 눈앞의 제드를 구한 것이 바로 그 자신임을 말이다.

“괜찮다면 조금 전의 그 인형극과 같은 무대를 더 큰 자리에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왕실의 지원을 받아서 이 도시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겁니다.”

“무슨 소린가! 그런 건 나 같은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아. 나보다 훨씬 더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을 걸세.”

“아뇨. 저는 라데르 아일란. 귀하에게 제안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귀하가 이 일을 마다치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그려나갈 평화라는 그림의 한 부분을 맡아서 함께 그려주십시오.”

라데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기색으로 제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평범하게만 보였던 제드의 눈빛이 바뀐 순간, 그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아주 거대한 사람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이게 세상을 바꾸는 사람의 기백이로구나.’

라데르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제드 크레인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것이 기뻤기 때문이다.

곧 라데르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스쳐 지나가는 청년과 노신사가 아니라 그들이 앞으로도 만날 사람이라면 관계를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꺼이 받아들이겠나이다.”

“제 제안을 받아줘서 고맙습니다.”

스승님. 그 뒷말은 삼키며, 제드는 라데르의 앞에 마주 앉아 그의 손을 붙잡았다.

*

라데르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서 마차는 계속 나아갔다.

서부의 토바스를 지나서 레지앙까지.

마차는 국가 마법사 기관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그리고 이미 그즈음 제드가 레지앙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 마법사 기관에서도 알고 있었다. 미리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마차가 기관의 정문 앞에 다다랐을 때, 정문의 좌우에는 기관의 마법사들부터 생도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이 넘는 인원이 오와 열을 맞추어 대기하고 있었다.

“경례!”

우렁찬 외침과 함께 일제히 거수경례가 쏟아졌고, 제드는 그들의 사이를 지나쳐갔다. 이곳의 변화는 짧은 사이에도 급격하게 이루어진다.

“각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리틀리 수석. 그간 특이사항은 없었나?”

“수도에서 지시하셨던 상황 외에는 이렇다 할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그 외에 제2의 생산설비가 갖춰지면서 상황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직접 보도록 하지.”

“옛,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넓은 기관의 내부를 가로지르자, 머잖아 제드가 직접 설비를 구축하고 운용했던 제1생산공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너머로 제2생산공장 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없었던 건물이었다.

수많은 인부들과 마법사들이 그곳에 있었고, 세 기의 골렘이 그 공사를 돕는 광경이 보였다.

“제법 진행됐군.”

“마법부의 골렘 지원과 난쟁이족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 아무래도 컸습니다. 작업의 속도가 달라졌습니다.”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공사가 진행되는 부지 근처에 다다르자, 작업에 매진하던 마법사들 몇몇이 그를 알아보고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내부에서 한 명의 마법사가 걸어왔다. 백발이 성성한 노마법사였다.

제드가 웃었고, 그건 노마법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

“오랜만입니다, 베른.”

그 노마법사는 바로 베른이었다.

제드가 광산의 관리감독직으로 보냈던 그가 지금은 이 제2생산공장의 총책임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놀라울 정도의 공을 세웠습니다, 베른.”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갑자기 그렇게 존대를 하니 어색하군요. 전처럼 편히 하는 게 어떻습니까.”

“허허. 그럴 수는 없지요. 폐하로부터 작위까지 받고 지금은 마법부 마법사의 일부가 되었는데, 그리한다면 위계질서가 엉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편합니다, 베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제드도 굳이 더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은 원칙적으로 맞았고, 베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런데 어떻게 난쟁이를 끌어들일 생각을 했습니까. 그들은 요정 이상으로 배타적인 족속들인데.”

“크흠. 그것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미리 허가도 없이 멋대로 일을 좀 벌였습니다.”

“일을 벌이다니, 뭘 말입니까?”

“흘흘. 골렘으로 거래를 좀 했습니다. 마음껏 만져보게 해주겠다고 말입니다. 거기다 안톤 같은 선례가 있다 보니 이야기가 편했습니다. 원래부터 무기나 특별한 걸 만드는 데에는 호기심이 많은 종족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나니 일사천리였습니다.”

“잘했군요.”

제드가 웃었다.

골렘을 해부하고 조사해보는 게 무엇이 문제일까. 그들이 손에 넣은 것은 훨씬 더 거대한 것일진대.

지금 이 순간, 제2 생산공장 부지에는 약 오십여 명의 난쟁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건물의 골조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장인의 종족이라고 소문난 그들은 인간에게 배타적이고 깔보기 일쑤였지만, 호기심이 아주 많았다.

‘일이 더 쉽게 풀릴 수도 있겠군.’

“그것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렇잖아도 대장관 쪽에서 마법부의 마법사들과 함께 연구가 한창입니다. 안톤이 거의 잠도 자지 않고서 들여다보고 있지요.”

“진척은 좀 있습니까?”

“마법부가 가지고 있는 골렘 설계도와 약 80% 정도 일치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20%만 알아내면 되는데, 그 분석에 시간이 좀 걸립니다.”

베른의 대답에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은 대수림에서 노획한 오멜 공국의 탑승형 골렘을 해체 분석하고 있었다.

조금 전 베른이 말한 것처럼 그 구조나 마법술식이 기존의 골렘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으리라.

물론, 더 쉬운 방법도 있었다. 설계도 확보가 목적이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제드가 굳이 이 방법을 선택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자강(自强).

라이곤의 국력의 기반. 미래를 헤쳐나갈 힘.

제드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키우고자 하였다.

마법부, 대장간, 기관.

‘마도공학은 앞으로의 미래다.’

마도공학의 핵심이 되어 줄 각 조직부서가 커지고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면, 그때 이 나라는 제드가 알지 못하는 가능성을 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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