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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94) (94/124)

강대국의 증명2

*

대수림의 교전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안이었다.

그러나 라이곤 왕국 북부에 기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음은 모르는 이가 없게 됐다.

별안간 라이곤의 육군의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갑중대가 캄페르 방면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북부로 이동한 기갑중대의 전력은 하이렐 전역에 참전했던 세 개의 기갑중대와 신설 기갑중대, 그리고 마법부의 특무부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정도의 병력배치는 준전시태세와 같았다.

이런 가운데 캄페르에서는 돌연 노예업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수색부대의 운용 등 군수산업에 대대적인 지원을 공표하기까지 하였다.

눈치 빠른 상인들은 이 모든 일들의 배후에 왕정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음을 눈치챘다. 누가 보더라도 명확하다. 작금의 이 기묘한 공기가 바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짐작은 옳다.

육군 원수인 제드는 군부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비록, 여왕의 재가가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긴 했으나, 정작 여왕은 원수의 말이면 무엇이든 따랐으니 사실상 의미가 없는 제약이긴 했다.

거기다 서서히 배가 불러오는 라니아는 그동안 열정적으로 보여주었던 정치에 대한 열망을 태어날 아이에게 모두 쏟고 있었다.

어쨌든 이런 라이곤 내부의 상황들은 당연하게도 대수림 북쪽 너머의 오멜 공국에게도 알려졌다.

캄페르에 예상을 한참 웃도는 육군 전력을 집결한다는 것 자체가 군사적 도발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제드는 책을 덮었다.

“들어오도록.”

곧 문을 열고 들어온 검은 제복의 군인은 절도있는 자세로 거수경례를 하였다.

검은 근위대라고 불리는 이들이었다. 기존 왕실 근위대가 왕립 육군의 수뇌부로 자리를 잡으면서 새롭게 발탁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호위와 경호, 그리고 부관의 역할까지 겸한다.

“조금 전 그레즈로 오멜 공국의 사절이 찾아왔습니다.”

“보름이 걸렸나. 적당하군. 그래서 패트릭 경이 나섰나?”

“그렇습니다.”

“교섭의 결과가 나면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오멜 공국에서 찾아온 사절은 모르스 알레인 백작이라는 인물이었다. 후덕한 인상의 그는 평소 부드러운 인상과 느긋한 어조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오늘 만난 상대는 아무래도 그런 자신의 기조대로 풀어나가기 어려운 인물인 듯했다. 그의 지난날의 경험으로 반추해볼 때, 대개 저런 인물은 아주 고집스러웠기 때문이다. 무표정한 얼굴에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 따위가 그렇다.

“날씨가 벌써 덥군요. 이맘때의 남쪽이 따뜻하다는 이야기는 적잖이 들었습니다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하하.”

적당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노력도 허사였다. 라이곤 왕국 측 외교관인 패트릭의 표정은 일말의 변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끄응. 괜히 더 돌려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겠군.’

“제가 오멜 공국의 공식적인 사절로서 이곳에 찾아왔음은 귀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제가 이곳에 앉아있는 것 역시도 귀하께서 공국의 사절이기 때문이지요. 어떤 용무로 이렇게 본국을 찾으셨는지 말씀하시죠.”

“다름이 아니라 최근 남부 일대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 연일 관저에 들려오는지라 대공 전하께서 이 일을 매우 우려하고 계십니다.”

“좋지 않은 소식이라 함은?”

“군사적 긴장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귀국의 군사훈련 및 행동에 본국이 간섭할 권리는 당연히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전에 통보나 협의없이 이런 무익한 긴장은 본국과 귀국 사이의 미래지향적인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부드럽지만 명확했고 객관적이었으며 예의를 거스르는 일이 없는 좋은 화법이었다. 모르스 알레인 백작이 고르고 고른 사절이라는 것은 명확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앞에 있는 패트릭 역시 그렇다. 그는 이미 모든 상황과 해야 할 말을 제드에게 전달받았다. 그러니 들은 대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할 따름이다.

“글쎄요. 최근 공국의 골렘으로 추측되는 무력집단이 본국의 영토로 멋대로 침범하는 사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본국의 육군은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응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건 뭔가 착오가 있는 듯합니다. 본국에서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가 있겠습니까? 본국 역시 감찰을 통해 전후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명확히 알아보았습니다. 남부의 상단이 대수림 일대에서 상권의 보호를 위해 자위적 활동을 벌인 것은 명백하나, 국경을 침범한 일은 없었습니다.”

적절한 반박이었다.

그러나 패트릭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귀하께서 잘못 알고 있는 일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공교롭게도 그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전달이 늦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전달이 늦었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

“대수림은 본국의 영토라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즉, 귀국의 상인 길드가 본국의 영토에서 자위적 활동을 벌였음은 다시 말해서 국경을 침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그게 무슨!”

시종일관 표정의 변화가 없던 공국 사절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진 순간이었다. 그러자 패트릭은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말을 잇는 것이었다.

“대수림 일대는 약 보름 전 동맹협정에 따라 라이곤 왕국에 완전히 귀속되었습니다. 이는 대수림의 실효지배권을 가진 요정족과의 협약을 통해 체결되었습니다.”

*

크고 웅장한 방이었다.

완성된 육군 본부의 원수 집무실이었다.

특별히 신경 쓴 이 방은 꽤 오래전에 만들어졌음에도 주인이 오랜 시간 머무른 적이 없는 공간이었다.

그랬던 이 방에는 별스럽게도 두 사람이 있었다.

나이 차이가 수십 년은 족히 날 두 사람이었지만, 상석에 앉아있는 인물은 놀랍게도 젊은 사내다.

왜냐하면, 그 젊은 사내가 바로 이 방의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공국이 발칵 뒤집히겠군요.”

“그럴 겁니다. 대수림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지는 일에 그치지 않고 주기적인 돈벌이 수단도 함께 없어지는 셈이니까요.”

“각하, 전쟁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글쎄요.”

백발이 성성한 제복의 군인은 복잡한 표정을 했다.

육군의 총수권자인 원수 제드가 없을 때, 모든 권한을 대행하는 근위대 대장이자, 현재는 육군 본부 사령대행으로 대장직에 있는 그는 로톤 비르툼이었다.

“각하, 아직 하이렐 전역이 끝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너무 잦은 전쟁은 민심의 이반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백성들의 궁핍함으로 연결된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지 않습니까. 동부의 위대한 왕국으로부터 받아낸 배상금은 이 왕국에 결과적으로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으음······.”

제드의 말에 로톤은 할 말이 없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정세라는 건 전쟁만으로 풀어갈 수 없는 법이다.

그 배상금으로 나라의 경제를 끌어가기 시작한다면 팽창주의는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비대해진 몸뚱어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것은 제드가 목적하는 바가 아니었다.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면 굳이 할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하지만 국제질서라는 건 때로 증명하지 않으면 잡히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지요.”

“으음. 토르가 같은 동부의 대국도 본국의 앞에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이 이상의 증명이 필요하단 말씀이십니까?”

“혼란스러운 시대가 아닙니까. 힘의 질서가 명확하지 않은 시대예요. 더욱이 지금의 오멜 공국에게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될 정도의 힘이 존재합니다.”

“······.”

로톤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삼갔다.

제드는 절대로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일어난다고 하는 일은 일어난다.

‘힘의 질서가 정해지지 않은 혼란한 시대인가.’

“언제든 전쟁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죠. 그리고 이왕 육군 본부에 온 김에 라이곤 왕국을 지킬 검과 방패를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도 좋겠네요.”

“그러시다면 각하께 한 가지, 특별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레즈 남부의 육군 본부 연병장 부지.

그 한 곳에는 약 이십여 명의 장신의 기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들의 몸은 숱한 훈련과 경험 속에 단련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정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본 육군 부대에 소속된 기사 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최고의 실력자들입니다.”

제드는 고개만 끄덕일 따름이었다.

하이렐 전역 이후로 로톤을 비롯한 육군 수뇌부의 고민은 그도 알고 있었다.

특수 강습전에 대한 대응책. 그리고 앞으로의 전투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곤 왕국의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갑부대의 전력은 금방 숫자를 부풀리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기사단 혹은 강습대 전력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의 전력은 단기간 내에 한 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개개인의 실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드는 그 두렷한 약점을 메우고자, 로톤의 호위대로서 비밀 국가 마법사들을 곁에 두었던 것이다. 나이트 급 골렘을 유사시에 기용하여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야.’

로톤도 그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겠나?’

[괜찮소.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오히려 내가 주군께 부탁하고 싶을 정도요. 삶과 죽음의 영역 속에서 손에 넣은 칼의 영역. 그 깨달음을 남길 수 있다고 한다면 지금의 내게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물일 것이오.]

자크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다. 그 목소리는 다른 정령의 그것처럼 무미건조하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제드는 느낄 수 있었다. 자크와의 연결고리를 타고 느껴지는 고양감을. 자크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절그럭.

앞으로 나서는 검은 기사 자크.

2미터가 훌쩍 넘는 장신의 자크를 앞에 두고서도 기사들은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동자엔 호승심의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가 바로 본국 최강의 기사 자크 경이다. 그대들 중 그의 검을 받아내고 인정을 받는 자는 그의 검술을 배우고 이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

라이곤 왕국이 교섭의 자리에서 말한 대수림 협정에 관한 소식은 오멜 공국을 크게 뒤흔들어놓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수림 지대는 예로부터 중립지대였고 완충지대였다.

오멜 공국과 라이곤 왕국은 방대한 대수림의 지역을 끼고 있었기에 국경을 마주하는 일이 없었고, 따라서 아주 제한적인 무역과 왕래만을 해왔다.

그렇기에 라이곤과 오멜은 충돌할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콰앙!

탁자가 부서질 듯 진동했다.

내려친 주먹은 부르르 떨렸고, 치켜뜬 눈썹은 꿈틀거렸다.

금발의 대공.

그가 바로 오멜 공국의 왕이나 다름없는 알렉세이 오멜 발레그였다. 공국의 상인들을 모두 지배한다고 하여 상인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이 바로 그였다.

“······라이곤이 대수림을 자국 영토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공표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더불어 대수림의 요정족 역시 라이곤의 신민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왔습니다. 더는 본국이 멋대로 요정족을 노예로 잡아들이는 것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까지 들었습니다.”

“흥! 전쟁 얘기를 잘도 돌려서 하는군.”

“대공 전하. 신중하셔야 합니다. 라이곤 왕국은 지금 떠오르는 태양과 같습니다. 왕정의 중심부에 있는 그 젊은 국서의 카리스마가 하늘을 찌른다는 이야기가 자자합니다.”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본국이 라이곤 왕국 따위를 두려워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골렘의 수라면 본국 역시 절대로 밀리지 않아!”

알렉세이는 큰소리쳤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노라고 선포하는 듯한 태도. 그 눈동자가 호기롭게 빛났다.

“공국 각지의 길드 마스터를 모두 불러라. 대의회를 열 것이다. 의결의 주제는 대수림의 지배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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