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트 아르마4
*
“더 몰아붙이란 말이다!”
“알고 있다고! 근데 저 빌어먹을 것들, 방어가 더럽게 단단하다고. 틈이 없어!”
“젠장. 마법사들은 뭘 하고 있나!”
“그래, 큰 마법으로 한 번에 날려버리란 말이야!”
숨이 턱까지 차오른 사냥꾼들이 고함을 질러대는 소리가 아우성처럼 퍼졌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대지. 피어오르는 연기.
공기조차 희박해져가는 이 깊은 숲의 한복판은 이젠 가만히 있어도 열기 때문에 땀이 줄줄 흐를 지경이었다.
그뿐이랴, 계속된 전투로 그들은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에 치달아있는 상태였다.
“쯧. 안 되겠군.”
지켜보던 카록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 은색 기사들을 어쩌지 못한 와중에 불길이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었다. 자칫 이대로 숲 속에서 다 타 죽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까지다. 이미 충분히 잡아들였어. 거기다 죽은 놈들의 수도 많다. 이 정도면 평생 놀고먹어도 남을 수준이야.’
죽은 놈은 입이 없는 법이다. 이미 죽은 놈에게 갈 돈 따위는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카록은 이제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물러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저 괴물들 싸움에서 저 검은 기사가 사울을 쓰러뜨리기라도 했다가는 도망치기도 전에 다 죽는다.’
카록이 보기에 사울은 거의 마스터에 육박한 괴물 같은 실력자였다. 그런데 그 느닷없이 나타난 검은 갑주의 존재가 그런 사울과 거의 비등하게 싸우지 않았던가.
‘괴물이 둘이나 되는 바닥이야. 우리 같은 사냥꾼 따위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얘기지.’
카록이 이 바닥에서 길게 해먹으며 살아왔던 건 먹고 빠질 때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우우우우우.
오싹.
온몸의 털이란 털은 전부 다 곤두서는 듯한 감각.
“뭐, 뭐냐.”
숲 저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 퍼진 울음.
카록이 자신의 손을 보았다. 벌벌 떨리고 있다. 손가락만이 아니다. 발도 마찬가지다.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 것이다.
“염병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어이! 잡아들인 요정들 다 챙겨. 여기서 빠져나간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
“예, 옛!”
비교적 어린 사냥꾼들은 짐꾼의 역할이다. 그들은 카록의 외침에 곧장 따랐다. 그들은 선택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도 했고, 바로 조금 전에 울음 때문에 겁에 질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록은 알지 못했다. 그 선택이 조금 늦었다는 것을 말이다.
“꺼억!”
이변은 갑자기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수세에 몰려있던 은색 기사의 칼끝이 허공을 가로지르더니 달려들던 사냥꾼의 폐부를 관통한 것이다.
“찰리! 이 자식!”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동료가 그 광경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결정이었다. 동료의 몸을 비죽 관통한 칼이 그가 반응할 수조차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허억!”
카앙.
한 번의 검격으로 칼을 놓쳤고, 두 번의 검격에 머리가 쩍 쪼개졌다. 비명조차 없는 죽음이었다.
“뭐, 뭐야!”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냥꾼들이 당황할 때였다.
“비켜! 큰 마법으로 날려버린다!”
긴 시간 영창을 하던 마법사가 벌벌 떨리는 손을 내뻗었다. 마나가 요동치더니 전면을 가득 뒤덮고 뿜어져 나왔다.
투화아아아악!
그 화염의 기세는 여간 강하게 아니다. 저 용암지대에 서식한다는 라바 드레이크가 내뿜는 화염의 숨결이 아마 이러할 터였다.
“헉헉!”
마법사는 숨을 헐떡였다.
3써클의 마법이었으므로 마나의 소모가 컸다.
하지만 마법사는 자신했다. 이 마법으로 저 셋을 일망타진했음을 말이다. 긴 영창 시간과 소모 마나만큼 이 마법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좋아! 화염이 그치면 바로 들어가자고!”
의기양양하여 소리치는 사냥꾼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솟구치는 불꽃의 너머에서 불쑥 뭔가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헉!”
은색 갑주의 존재. 그들은 온몸이 불꽃에 휘감긴 채로도 멀쩡하게 움직여 대검을 휘둘러왔다.
“크악!”
“꺽!”
화염에 휘감긴 대검이 공간을 휘저을 때마다 사냥꾼들이 쓰러졌다. 머리가 떨어졌고,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저 셋을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상황은 일방적이었다.
사냥꾼들은 이제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카록도 뒤늦게 그 광경을 보았다.
“빌어먹을, 달려!”
그러나 곧장 추격해오는 은색 갑주 기사들의 속도는 너무 빨랐다. 카록은 잡아들인 요정들을 포기했다. 죽으면 무엇이든 다 끝이다. 살아야만 했다. 일단 살아남으면 그 이후는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의 그런 필사적인 노력도 의미 없이.
푸욱.
“끄어어억!”
몸을 불쑥 헤집는 칼끝과 함께 카록은 까맣게 타버린 대지 위로 널브러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간헐적인 몸의 떨림은 머잖아 멈추었다.
은색 기사는 피와 불꽃에 그슬린 모습으로 몸을 돌렸다. 그들이 제드로부터 받은 지령은 명확했다.
싸움을 끝내라.
그리고 그것은 사일러스와 자크의 대결도 예외는 아니었다.
*
으지지직.
나무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쿠웅.
수풀과 쓰러진 나무 너머에서 골렘 한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에 검은 십자가의 문양을 붙인 골렘이었다.
“대체 뭔 짓을 벌이는 거냐, 캄페르 놈들.”
골렘의 내부에서 탑승자는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뭔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지금까지 수없이 해왔던 연금술사와의 거래가 어그러진 것이 그 시작이다.
거래 물품을 가지고 나갔던 거래조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그 거래조를 찾기 위해서 골렘을 가지고 나갔던 제압조도 그대로 행방불명됐다.
연금술사의 공방 근처에는 골렘전을 짐작해볼 수 있는 흔적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금술사가 일을 벌인 게 아니야. 아마도 제3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캄페르 놈들이다.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것인가?’
강 너머 남쪽으로 이어지는 흔적을 미루어보건대 확실했다.
그런 상황 속에 대수림의 중심부 언저리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포착된 것이다.
“뭐든 나타나면 일단 공격부터 해. 한 놈만 잡으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알겠나?”
“옛.”
부하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제카르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지금의 이 상황이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라도 가를 참이냐. 캄페르의 멍청한 사냥꾼 놈들.’
으드득.
그렇게 이를 갈 때였다.
쿠웅.
그들이 나아가는 길목 방향에서 땅이 진동하였다.
제카르는 그걸 그냥 넘기지 않았다.
“잠깐, 멈춰! 골렘, 골렘이 앞에 있다. 역시 골렘이 있었던 거군.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일을 벌이지 못했겠지.”
제카르의 골렘을 포함한 10기의 골렘은 곧장 멈춰 섰다.
그리고.
쿠웅.
또다시 땅이 진동했다.
“포위대형을 갖춘다. 소리만으론 적은 한 기다.”
제카르는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곧 그들의 앞에 우거진 나무들을 옆으로 밀치며,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 골렘? 저건 골렘인가?”
그것은 나무였다. 움직이는 나무의 형상.
제카르가 당황하여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우우우우.
오싹 소름이 돋는 울음과 함께 나무의 형상을 한 골렘이 움직였다.
쿠웅! 쿵쿵!
서서히 이곳을 향해서 달려오는 골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게 뭔진 몰라도 놈이 우릴 적대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군. 하나라고 방심하지 마라!”
그 순간, 제카르의 골렘 부대는 산개 기동을 보여주며 숲을 가로질렀다. 그 움직임은 몹시 빠르고 일사불란하였다. 그들이 골렘 기동전술의 합을 수없이 맞춰왔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다만.
투콰앙!
“크아악!”
좌측에서 날개를 펼치듯 기동하던 골렘이 그대로 나자빠졌다. 땅에서 불쑥 치솟은 거대한 넝쿨이 발을 휘감으면서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클락, 괜찮나!”
“끄으윽. 괘, 괜찮아. 근데 이 빌어먹을 것들은 뭐지?”
쓰러진 골렘의 탑승자인 클락이 다급히 골렘의 머리를 돌렸을 때였다.
투콰아앙!
별안간 눈앞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를 돕기 위해서 다가왔던 동료 안토니의 골렘의 몸 중심부가 그대로 관통되었다.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만들어낸 것 같은 그 무기의 형상은 옛 기사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마상창, 랜스와 같다.
“아, 안토니!”
고함을 내지르며 클락이 칼을 휘둘렀다. 몸을 휘감고 있던 넝쿨을 썽둥 자르며 무너진 동료의 골렘에 다가갔지만, 이미 탑승석이 박살이 났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클락이 골렘의 병장기에 마나를 주입하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적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투콰콱!
둔탁한 충격음.
“이, 이럴 수가.”
클락이 낮게 신음했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적 골렘이 저 거대한 견갑으로 조금 전의 그 횡 베기를 받아낸 것이다.
그리고.
콰앙!
순식간에 탑승부가 관통됐다. 조금 전 안토니의 골렘을 잠재웠던 예의 그 랜스였다.
*
‘훌륭하군. 기대 이상이야.’
전황을 지켜보던 제드는 속으로 연신 감탄했다.
새로 거듭난 아우로렐의 전투력은 예상했던 수준을 아득하게 웃돌고 있었다.
기동, 방어, 특수능력, 힘, 그리고 체계적인 전투능력까지.
모든 면에서 기존의 수준을 넘어선다.
‘이 정도면 300······ 아니, 400마력에도 육박할 것이다.’
제드는 흥분했다.
전생에도 이런 무시무시한 능력을 갖춘 골렘은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저 압도적인 전투 능력은 가히 나이트골렘에에 육박하리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아우로렐은 스스로 생각하고 기동하며 학습할 수 있다. 상위 정령 그 자체야.’
쿠구구구궁.
땅이 진동하였다. 수십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이곳에까지 전투의 여파가 전달됐다.
일방적인 전투 속에서도 오멜 공국의 골렘들은 파상 공격을 펼치며 싸우고 있었지만, 아우로렐 앞에선 아무것도 먹히지 않았다.
‘더욱이 이런 곳에서라면 아우로렐은 무적이나 다름없다.’
아우로렐은 지금 이 순간, 숲의 의지 그 자체였다. 정령의 의지로 말미암아 나무가 반응하였으니, 적 골렘들은 아우로렐의 손아귀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잠깐 사이에 또 두 기의 골렘이 파괴됐다.
그리고 싸움이 이어질수록 아우로렐의 전투 방식은 바뀌었다. 처음에는 원거리에서부터 묶어놓고 랜스 차징으로 탑승부를 일격에 박살 냈지만, 이제는 견갑을 강화하여 거대한 몸으로 밀어버리는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전투역량을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고는 5미터. 무게는 50톤······ 아니, 60톤은 되는 것 같군. 아우로렐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데스트 아르마.
지금 아루로렐의 모습을 보라!
전생의 그 대수림에 강림했던 전쟁의 신이 지금 이 순간, 제드의 손아귀에서 다시 탄생한 순간이었다.
요정의 목숨 따위를 불태울 필요도 없고, 그 형태가 사라지는 일도 없다. 제드의 마법과 정령, 그리고 유산이 하나로 얽혀 만들어진 걸작 중의 걸작이다.
우우우우우우.
마지막 골렘까지 쓰러뜨린 아우로렐이 승리를 크게 울부짖었다. 제드는 몹시 흡족한 듯 만면에 미소를 그렸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마나의 소모가 막대하다는 거군. 절대로 장기 전투에 운용할 수 없겠어. 지금의 아우로렐과 자크 경이 동시에 활약한다면 감당할 수 없다.’
적들은 좋은 연습상대였다.
제드는 전투 경과를 분석하며 고개를 돌렸다.
인도자와 에델노르. 두 요정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제드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숲을 가로지르며 다가오던 공국의 골렘은 모두 파괴하였고, 요정을 사냥하던 사냥꾼들은 모두 죽였다. 이제 요정족의 숲을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두 요정의 얼굴은 여전히 굳은 채였으니, 쿵쿵 땅을 울리며 제드에게 돌아오는 아우로렐에게서 그들의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