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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89) (89/124)

데스트 아르마2

“눈앞에 인생을 뒤바꿀 기회가 있다. 이걸 포기하고 돌아갈 머저리는 없겠지!”

리더 카록의 고함에 사냥꾼들이 광기에 찬 고함을 지르며 응하였다.

“발키리는 나의 것이다!”

“지랄하고 있네! 내 것이다!”

서로 경쟁하며 달려오는 모습.

그들에겐 발키리 에델노르의 옆에 있는 제드는 안중에도 없었다. 방해가 된다면 그대로 목을 쳐버릴 따름이었다.

그리고 만용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제드는 손가락을 튕겨 마법을 전개했다. 이내 그의 앞에서 형성된 마탄은 쏜살이 되어 달려오는 사냥꾼들의 몸을 관통했다.

퍼퍽.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다. 선두에서 달려오던 넷이 별안간 쓰러지자 뒤에서 달려오던 사냥꾼들 여럿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빌어먹을, 마법사다!”

사냥꾼들이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것은 명확했다. 제드가 마법사란 걸 알자마자 사냥꾼들 몇 명이 활을 꺼내서 속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활에 대한 대응법은 명확하다.

화살막이 마법.

제드가 거의 영창의 순간도 없이 그 마법을 발동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마법사의 약점이 그대로 노출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날아드는 화살에 대응하는 순간, 칼을 든 사냥꾼들이 일직선으로 달려온다.

‘요정만이 아니라, 사람사냥에도 능숙하다.’

제드는 그 일련의 대응을 그렇게 평가했다.

위기의 순간.

쓰러져 있던 에델노르가 손을 뻗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휘오오오오.

그 순간, 바람막이 마법의 바람이 더욱 거칠게 변했다.

정령술이다.

예전의 제드였더라면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바람의 정령이로군.’

느껴진다. 바람의 정령이 조금 전 에델노르의 말에 응하여 어떻게 움직였는지 말이다. 그리고 에델노르의 마나가 어떤 식으로 소모되었는지도.

‘정령술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군.’

“쿨럭.”

에델노르가 왈칵 피를 토했다.

이미 한계를 넘었기에 당연한 일이다.

“상태가 안 좋군. 정령술을 더 쓰다간 목숨을 잃을 거다.”

“······그래도, 싸워야 해. 목숨, 걸어서라도.”

에델노르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흑마법에 의한 중독으로 요정 특유의 회복력은 기세가 꺾였고, 그런 상황에서 사일러스와의 전투로 몸 내부의 마나가 원래의 흐름을 잃고 폭주하는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발키리 에델노르, 우린 지금 수적으로 불리하다. 곧 내가 부리는 골렘이 나타날 테지만, 그들만으로는 역부족이야.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어떤 비책이 말이야.”

“······.”

에델노르는 말이 없다.

‘뭘 고민하느냐, 발키리 에델노르. 지금 이 대수림과 상황은 그리 썩 여유롭지가 않아.’

거센 회오리에 뒤로 떠밀렸던 사냥꾼들이 다시금 전열을 갖추고 덤벼온다. 활잡이들은 연신 화살을 쏘면서 제드에게 바람막이 마법을 강요하는 상황이었고, 칼을 쥔 사냥꾼들은 좌우로 나뉘어 포위의 형세로 좁혀온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포위될 것이다.

‘조금 더 극적인 상황이 필요하겠군.’

카앙.

“윽! 이, 이놈들은 또 뭐야!”

별안간 숲 속에서 튀어나온 은색 기사 세 명의 기습에 사냥꾼들이 당황했다.

캉! 카카캉!

불똥이 튀는 가운데, 맞상대하는 사냥꾼은 금세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사냥꾼들의 수는 훨씬 많았다.

“우리도 가세한다!”

금방 2:1, 3:1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은색 갑주의 기사들은 수적 열세에도 잘 버텼지만, 금세 수세에 몰린 듯한 모습을 보이며 고전하였다.

물론, 그 위기는 제드가 만들어낸 상황에 불과하였다.

사냥꾼들의 실력이 아무리 빼어나다고 해도 가장 뛰어난 실력자조차도 일반적인 기사 수준보다 조금 더 앞서는 수준. 세간에서는 익스퍼트라고 하는 정도였다.

반면, 제드가 조종하는 은색 기사들, 나이트 급 골렘들은 자크의 검술을 학습하며 마스터에 가까운 전투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카가각!

나이트 급 골렘의 갑옷을 긁고 지나가는 칼끝.

제드에게 집중되었던 적의 화력은 이제 분산되었으나, 싸움의 양상이 여전히 불리하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에델노르의 눈빛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제드는 그런 그녀의 작은 표정변화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좋아, 쐐기를 박을 때로군.’

쐐애액!

별안간 불꽃의 너머에서 지금까지 날아들던 화살과는 전혀 다른 기세로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에델노르가 다급히 손끝에서 실피드를 일으켰다. 그것은 커다란 원형의 방패가 되어 제드와 그녀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콰아앙!

폭발이 일어났고, 에델노르는 다시금 왈칵 피를 토했다.

바람이 찢겨나가며 돌풍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바람의 방패는 온데간데없었고, 에델노르는 숨을 몰아쉬었다. 다 죽어가는 그녀의 이런 대응은 제드에겐 돌발 행동처럼 느껴졌다.

‘바뀌는 건 없다, 에델노르여. 이제 쓸데없는 고민을 할 시간이 없음을 깨달아라.’

곧 에델노르가 고개를 들었고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자신을 가로막은 채 서 있는 제드의 모습 때문이다.

왼쪽 어깨를 관통한 화살에서 핏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상황은 명백했다.

제드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몸으로 막아선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담담하였다.

“······살아 있나, 발키리 에델노르.”

“제드 크레인······.”

에델노르는 낮게 신음하였다.

인간을 줄곧 증오해왔던 에델노르였다.

숲을 오염시키고 불태우는 것도 역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녀를 살리고 대신 피를 흘리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인간이었다.

인간을 이 숲의 너머로 인도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러한 고민은 그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인도자가 예견한 한 줄기의 희망. 그 존재가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었고, 요정족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제드 크레인, 숲, 저쪽, 갈 수 있겠어?”

“그 너머에 뭔가가 있나?”

“있어. 싸울 방법.”

에델노르의 단언.

드디어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것이다.

제드는 속으로 웃었다. 조금 전에 날아든 그 화살이 몸을 숨긴 골렘이 날린 화살임을, 에델노르는 감히 짐작도 못할 것이다. 어깨가 관통되는 고통 따위는 얻게 될 것에 비하면 희생이랄 것도 없는 일이었다.

제드는 에델노르의 몸을 안아들고 다급히 숲 안쪽을 향해 물러났다.

“이런 빌어먹을! 발키리를 놓치겠어!”

카록이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냥꾼들이 그를 쫓으려고 하였으나 그건 여의치 않았다.

별안간 나타난 은색 갑주의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추격자들의 경로를 틀어막아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냥꾼들에게 길을 내주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제드가 그걸 허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정령의 존재가 이렇게 뚜렷하게 느껴지다니.’

제드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인간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장소라는 것을 말이다.

요정의 숲. 그 중심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어깨에서 줄줄 흐르던 핏물도 서서히 멎었다. 숲에 깃든 강력한 생명력이 제드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에델노르 역시 이제 스스로 걷고 있었다. 여전히 얼굴은 창백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잘, 따라와. 제드 크레인, 길, 잃어버릴 거야.”

에델노르의 말대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욱한 안개가 드리웠고, 넝쿨의 미로가 방향감각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에델노르가 나아가는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그런 일은 없었다. 넝쿨은 알아서 길을 열었고, 자욱한 안개 안에서도 에델노르의 뒷모습은 명확히 보였다.

그리고 얼마나 나아갔을까.

별안간 안개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다수의 인기척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제드가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요정들이 겁먹은 모습으로 제드를 경계하고 있었다. 파수꾼이 아닌 요정들. 인간의 관점에서 보기에 그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제드는 외견이 아닌 감각의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정령의 감각이 전부 다 달랐다.

‘어리거나 늙은 요정들이로군.’

그 요정들의 수는 수백 명을 헤아린다. 요정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시간이 흐를수록 미지의 땅은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수림도 예외는 아니란 얘기다.

경외와 공포.

요정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제드는 에델노르를 따라 나아갔다. 계속해서 앞을 틀어막고 있던 넝쿨이 갈라졌다. 정령의 존재감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단순히 수가 아니라, 존재감 자체가 달라져 가고 있었다.

‘경이롭군.’

제드가 그 감각에 취해 있을 때였다.

별안간 눈앞의 풍경이 조금 전과는 또 달라졌다.

탁 트인 공간.

외부와 단절된 그 공간의 중심에는 메마른 나무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썩 놀라운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제드는 알 수 있었다. 저 나무 내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힘. 틀림없다. 저 나무야말로 이 대수림의 심장이었다.

“앞으로.”

에델노르는 나무와 이 외곽의 경계를 나눠놓은 듯한 절벽의 앞에 섰다. 곧 넝쿨과 나뭇가지, 흙 따위가 서로 얽히며 길을 이루었다.

제드가 에델노르를 따라 그 길을 넘었을 때였다.

“당신이로군요. 정령들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자.”

노래하는 듯한 들려온 무미건조한 목소리.

제드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곳에 메마른 나무의 뒤에서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의 머리칼에 투명한 눈동자. 감정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굴.

‘인도자.’

에델노르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감각.

제드와 인도자는 말없이 서로 바라볼 따름이었다.

인도자는 곧 차분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제드 크레인. 당신에게선 저 밖의 인간들과는 다른 강한 욕구가 느껴져요. 무엇을 위해서 이곳엘 찾아왔죠.”

“알고 싶은 지식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제드는 숨기거나 돌리는 일 없이 순순히 말했다. 요정족은 진위를 간파하는 데 능하였고, 인도자는 다른 요정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군요. 전에 에델노르에게 들었습니다. 바깥 세상에서 당신과 거래라는 걸 한 적이 있다고 말입니다.”

“예, 그랬었죠. 대수림과 인도자, 당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네, 저와 대수림은 이미 당신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인도자는 그렇게 말하다 이내 메마른 나무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당신이 알고 싶은 것. 그 지식은 이 세계수의 가지 안에 있을 겁니다. 그 답을 얻을 수 있도록, 열쇠를 제공하겠습니다. 대신에 대수림을 위협하는 적을 물리쳐주십시오. 부디 제가 마지막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당신에겐 그 정도로 강한 힘이 있다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과연, 인도자인가.

제드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것까지 간파했다면 이야기는 빠르다.

“알겠습니다. 제가 알고 싶어하는 지식이 이곳에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긴 하겠지만, 그것이 원하는 지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요정족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인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이 일대에 바람이 불었다.

선선하면서도 훈훈한 바람.

그 바람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을 때, 별안간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숲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평화로운 동산이 펼쳐져 있었다.

이 풍경을 제드는 기억하고 있다.

“또 만났네?”

제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금발의 소년이 배시시 웃으면서 나무 뒤에서 고개를 슬쩍 내밀고 있었다.

과거, 폐광의 지하 안타레스 유산에 접촉한 순간에 나타났던 그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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