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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87) (87/124)

숲 속의 사냥꾼5

*

포획한 골렘들은 전부 탑승형 골렘이었다.

‘이것들은 전부 규격화되어 있다. 즉, 골렘의 생산 방식이 오멜 공국의 내부에 존재한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동작술식의 구조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몇 가지 표면을 통해 드러나는 가동술식만으로도 대략적인 것들을 알 수가 있는 법이었다.

‘즉, 또 다른 방식의 골렘의 설계도가 존재한다.’

제드는 무거운 표정을 했다.

나이트골렘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찾아온 대수림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맞이한 까닭이다.

‘발트 테바인이 또 얽혀 있는 것인가.’

제드는 그 이름을 떠올렸다.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골렘들이 한둘씩 나타나는 상황. 이 모든 것들이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이조차도 안타레스의 유산이란 말인가?’

제드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내가 편한 대로만 상황을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면 중요한 순간에 실패하게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쌓아올렸던 것은 단 한 순간에 무너지는 거야.’

라이곤 왕국이라는 강대국의 실상은 바로 제드 크레인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낸 신화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운영과 전략의 방침은 실로 아슬아슬하고 위태한 것이었다. 제드의 실패는 곧 몰락의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제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전생의 오멜 공국은 철저한 약소국이었다. 제국으로 도약한 토르가의 군사적 압박에 무릎을 꿇고 위성국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전생 속의 이야기.

고개를 든 제드의 눈빛이 삼엄하게 빛났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오멜 공국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 정보가 필요했다.

‘일단 그건 나중의 일이다.’

제드는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기절하여 널브러진 골렘의 탑승자들이 있었다. 모두 생포한 까닭에 의식만 잃었을 뿐이다.

제드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빌헬름의 독이 대수림을 좀먹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골렘의 탑승자들인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걸 천천히 알아볼 참이었다.

······.

꿀꺽.

저주의 반동은 대부분 씻어낸 빌헬름은 지금 자신의 공방에 침입하여 멋대로 눌러앉은 마법사의 행위를 모두 지켜보며 질렸다는 표정을 했다.

오멜 공국의 전쟁병기인 골렘에 타고 있던 탑승자들 넷은 빌헬름이 공방 내부에 만들어 둔 우리 안에 온몸이 결박된 채로 감금되었다.

그리고 제드는 그들에게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 온갖 고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순순히 질문에 대답하는 게 좋아. 버텨봤자 의미가 없을 거다. 네게서 답을 얻어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야. 다소 번거로울 뿐이지.

처음 만났던 날, 제드는 빌헬름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지금 번거로운 일을 빌헬름 앞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부르르.

빌헬름은 몸을 떨었다. 그도 수없이 시체를 자르고 이어붙이고 실험을 해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체를 가지고 벌인 일이었다.

그런데 보라. 지금 제드는 살아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고통을 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어내고 있었다.

‘이걸로 더 얻어낼 정보는 없는 것 같군.’

제드는 신음하는 이들에게 안식을 내려주기로 했다.

손가락을 튕긴 순간, 형성되기가 무섭게 그들의 머리로 꽂히는 마탄. 죽음은 한순간이었다.

바닥의 홈으로 핏물이 스며드는 가운데, 제드는 우리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들 중 마법사는 없었다.’

그것이 그들에게서 알아낸 정보 중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그들은 전부 기사급에 해당하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상인 길드연합의 소속이 맞았다. 골렘 역시 길드연합에서 공적을 쌓게 되어 손에 넣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 골렘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져서 왔는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정보였어. 하지만 공통적으로 약 1년 전부터 골렘이 각지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다.’

누군가가 골렘에 관한 정보를 공개한 것이리라.

‘탑승형 골렘이라······. 탑승자의 실력이 골렘을 통해 발현된다는 점은 강점이다. 하지만 골렘의 파괴가 곧 탑승자의 죽음과도 연결된다는 점은 치명적인 단점이군.’

제드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잘만 이용한다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탑승형 골렘은 귀중한 샘플이다. 되찾기 위해서 추가부대가 편성될지도 모르겠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골렘을 더 꺼내두어야겠어.’

*

대수림의 길목을 따라 나아가는 사냥꾼들.

그 수는 이십여 명이 넘었다. 사상자는 아주 적었고, 그들은 거침없이 대수림을 횡단하고 있었다.

‘으음. 예상 밖이로군.’

사냥꾼 부대의 리더인 카록은 지금 이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은 처음 계획했을 때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손쉽게 이 대수림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기 때문이다.

카록은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냥꾼들의 수준이 대개 어느 정도인지도 알았다.

근데 지금 그 예상과 기대가 완전히 어긋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이 사냥꾼 무리에 뒤늦게 낀 한 남자 때문이다.

‘설인족의 후예가 타고난 사냥꾼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을 줄이야.’

거구인 그는 도저히 그 외관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칼솜씨로 곳곳에서 매복공격을 펼쳐오는 요정의 공세를 받아내고 오히려 요정을 제압하였다.

여느 사냥꾼들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저마다 공을 앞다투었으나 그러다 몇 명이 죽고 나자 이제 사냥꾼들은 절대 무리하지 않았고, 사울이라는 저 설인족 사내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이미 기대하던 것 이상의 이익은 거두었다만, 여기서 돌아갈 생각 따위는 아무도 없겠지. 끄응.’

사상자는 적은데 이득은 막대한 상황이다. 벌써 잡아들인 요정이 여섯이나 됐다. 지금과 같은 기세면 앞으로 이 두 배를 더 잡아들인다고 해도 썩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흐흐흐. 또 잡히러 왔느냐?”

선두에서 나아가던 사울이 웃어댔다.

그게 신호였다. 사냥꾼들은 곧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머잖아 사방에서 화살의 비가 쏟아졌다.

쉬쉬쉬쉬쉭!

마법사들이 곧장 화살막이 마법을 발동했다. 작금의 시대에 활의 가치를 떨어뜨린 결정적인 마법이었다.

회오리치는 바람의 방벽에 날아들던 화살이 표적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사방으로 튕겨 나가 박혔다.

그때부터는 이제 사냥꾼들의 역량이었다. 조를 이룬 사냥꾼들은 역할을 맡아서 움직인다. 대부분이 그렇다.

사울이라는 저 설인족의 후예만 빼고 말이다.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잘도 움직여 다니는구나!”

사울이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화살막이 마법의 밖으로 나갔다. 화살은 순식간에 집중되어 쏟아졌으나, 사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양손의 칼을 풍차처럼 크게 휘두르며 날아드는 화살을 튕겨내며 땅을 박찬다.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를 빠르게 오가던 요정의 다리를 붙잡아서 그대로 땅에 내다 꽂아버렸다.

퍼억!

나뭇가지와 나뭇잎 따위를 걸친 요정은 곧장 유연한 몸놀림으로 사울의 목을 노리고 화살촉을 들이밀었지만, 그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사울은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이마로 요정의 머리를 들이박았다.

뻐억!

요정의 이마에서 피가 터지면서 널브러졌다. 머릿속이 진탕이 났을 테니, 당분간은 의식이 없으리라.

“일단 하나!”

사울이 바람막이의 방벽 너머로 요정을 홱 던졌다. 다급히 사냥꾼 몇 명이 그 요정을 받아드는 가운데, 사울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움직이며 요정들을 잡아들였다.

“무시무시하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냥꾼들이 혀를 내둘렀다. 저 날렵한 요정들을 저토록 쉽게 잡다니. 저자의 정체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넋을 놓고 있던 사냥꾼들이 정신을 퍼뜩 차렸다.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몫을 챙겨야 한다. 그렇게 기회를 엿볼 때였다.

쐐애액!

파공성과 함께.

퍼억!

화살막이 마법을 펼치던 마법사 한 명의 머리가 꿰뚫렸다.

막 요정들을 잡아들이던 사울이 눈을 치켜뜨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에 느껴진 섬뜩한 기운은 다른 요정의 그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때, 또다시 쏟아지는 화살. 폭풍을 머금은 화살은 화살막이 마법을 꿰뚫고 마법사를 노려왔다.

“마, 마법이 뚫렸다. 서, 설마 발키리란 말인가?”

카록이 이 느닷없는 상황에 경악하여 소리쳤다.

요정 중에서도 전투에 특화된 존재. 성난 정령의 축복을 한몸에 두른 그 존재들은 인도자라고도 불린다. 그것이 바로 발키리였다.

다른 사냥꾼들의 얼굴에도 공포가 드리울 때였다.

“크하핫. 이제야 좀 쓸만한 게 나타났구나!”

사울이 쩌렁쩌렁 고함을 내지르며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그 모습은 흡사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과 같았다. 붕붕 휘두르는 그의 칼끝에서 푸른빛 불꽃의 잔영이 일기 시작했다.

*

“때가 됐군.”

제드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서 일어나는 상황을 줄곧 지켜보다가 이제야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공방의 밖으로 나온 제드는 토양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무의 상태를 확인했다. 손끝이 저리고 코끝을 쏘는 듯한 향. 그리고 스멀스멀 몸으로 스미는 저주의 그림자.

며칠에 걸쳐 이 대수림의 광활하게 펼쳐진 독과 저주는 요정을 약화시켰고, 숲의 기운을 억눌렀다.

“이제 뭘 할 참이지?”

“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요정족을 구한다고 말이야. 이제 숲이 더럽혀지고 요정족이 외부의 사냥꾼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으니, 그들을 구해야지. 요정족은 은혜와 원한을 잊지 않는 존재들이니까.”

“······.”

빌헬름은 경악하였다. 요정족을 구한다는 게 그런 의미였단 말인가.

“그럼 자네도 준비를 해주겠나?”

“······뭐, 뭘 말인가.”

“모름지기 일에는 인과가 있어야 하는 법이지. 결과로서 대수림은 오염되었고 요정족은 위험에 빠졌다. 그렇다면 원인이 있어야겠지. 위험하고 사악한 흑마법사가 말이야.”

꿀꺽.

제드의 푸른 눈동자를 마주한 빌헬름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무섭다. 그는 이 눈앞의 이름 모를 젊은 마법사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무엇을 두려워하나. 나는 그대에게 그 역할을 맡으라고 한 적이 없는데.”

제드의 말에 빌헬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의 말에 숨은 뜻을 헤아린 것이다. 제드는 지금 그 사악한 흑마법사의 역할을 만들어두라는 것이었다.

“시체를 가지고 노는 건 그대의 특기였지, 빌헬름 앙드레.”

“아, 알겠다, 준비하겠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늦어도 내일 안에는 그럴싸한 게 만들어져야 할 거야. 나는 그대가 가치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에 살려둔 것이다.”

“나를 어떻게 할 셈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목숨이다.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내 앞에서 있는 그대의 목숨이 누구의 것이겠나? 앞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대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 아직까진 말이야.”

그 순간, 빌헬름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이 이미 눈앞의 제드의 것임을 말이다.

“그럼 준비해두도록.”

쿠웅. 쿵.

제드의 지시를 따라서 골렘들이 움직이며 부서진 탑승형 골렘을 옮기기 시작했다. 종막의 순간에 무대에 그것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드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저 멀리 블라르를 통해서 보이는 발키리와 사냥꾼 사울······ 아니, 사일러스의 싸움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사일러스는 잘해주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발키리 에델노르. 전생의 대수림 최후의 인도자가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살아남은 요정 전사들과 함께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일러스와 사냥꾼들이 뒤를 쫓고 있었다.

요정들은 충분히 위협에 노출되었다. 종족의 명운은 몰아치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전생에 대수림의 나이트골렘 데스트 아르마가 나타났던 그때처럼 말이다.

“자, 이제 종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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