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86) (86/124)

숲 속의 사냥꾼4

*

‘블라르가 여기까지 돌아오기 전에 포위당한다. 적들은 이 공방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

은폐성이 강한 이런 공방은 위치가 포착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공방의 방어능력이 절반은 날아가는 거나 다름없다.

안개가 미로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위치가 정확하게 판별된 마당에는 별 의미가 없다.

‘적들에게 마법사가 있다는 건 확실하군. 빌헬름이 설치한 안개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제드는 사방에 펼쳐둔 결계의 알림으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적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용의주도함은 몇 번이고 제드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충돌을 피할 수는 없겠군. 자크 경, 신속한 상황 정리를 부탁하지.’

[알겠소.]

지척에서 그림자처럼 대기하던 자크가 공방 밖으로 나갔다. 곧 자욱하게 낀 안개 너머로 달려나가는 자크.

‘상황이 허락한다면 적들의 대장을 생포해주겠나?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제드는 그렇게 지시를 하고서 가만히 기다렸다.

마나가 소모되는 게 느껴졌다. 자크가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쿠웅.

별안간 진동하는 땅.

제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진동이라고?’

[주군, 적들에게 골렘이 있소.]

제드가 팔짱을 풀었다. 여기에서 갑자기 골렘이 왜 나타난단 말인가.

‘길드 수준에서 골렘을 운용한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오멜 공국에 골렘이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의외의 상황.’

“빌헬름, 골렘에 관해서 아는 게 있나.”

“······들은 바는 있다. 하지만 잘 알진 못한다.”

빌헬름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는 지금 끙끙 앓는 모습으로 그런 데에 심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상황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겠군.’

제드는 밖으로 나왔다. 안개의 너머에서 진동이 커졌다.

‘자크 경, 적 골렘의 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파악했나?’

[현재까지 파악한 골렘은 4기이오. 기동성이 제법 좋은 것 같소. 반응도 빠르고. 흡사 사람을 상대하는 듯하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물러나도록. 골렘을 투입하겠다.’

그 순간, 제드의 앞에서 다섯 기의 골렘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페인트에 투박한 생김새의 골렘. 하이렐 회전에서 활약했던 유령 부대. 라인 급 스톤 골렘이었다.

쿠웅.

땅이 진동하는 가운데, 골렘들이 안개의 너머로 나아갔다.

‘오멜 공국의 골렘인가. 어디 어떤 골렘이 있는지 두 눈으로 보면 알게 되겠지.’

*

콰콰쾅!

으지지직.

무서운 기세로 쏟아지는 무쇠에 나무의 밑기둥이 썰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흙먼지가 치솟는 가운데, 그 사이를 누비며 기동하는 자크. 조금 전 쓰러진 나무의 단면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다음 공격이 자크의 동선을 미리 차단하듯 쏟아졌다.

투콰아앙!

그러나 이번에도 그 공격이 적중하는 일은 없었다. 자크의 움직임은 몹시도 기민했고, 골렘의 공격은 빠르고 매섭긴 했지만, 자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자크는 이렇다 할 대응은 하지 않고서 시시각각 파악된 정보를 제드에게 전달했다.

[초기에 교전을 치렀던 이들은 모두 척후조인 것 같소. 적들은 일정한 제대를 짜고 움직이고 있고 그 제대마다 골렘을 한 기씩 운용하는 것 같소. 그 외에 골렘의 색적능력이 수준 이상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마법사의 지원을 함께 받는 것 같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쿠웅. 쿵.

진동은 자크가 물러나는 방향 쪽에서 들려왔다. 제드가 공간의 저편에서 불러온 골렘이었다. 익숙한 마나의 패턴이다.

그리고 곧 안개 너머에서 불쑥 튀어나온 골렘과 바로 뒤에서 추격해오던 적 골렘이 조우했다. 덩치는 적 골렘이 조금 더 작았지만, 대응 반응은 더 빨랐다.

콰앙!

발견과 거의 즉시 날아든 칼이 검은 골렘의 방패에 가로막히며 불똥이 튀었다.

드드드드!

골렘의 격한 기동에 짓이겨진 땅에서 먼지가 피어오르고 나무가 밀리며 쓰러지는 가운데, 자크는 언제 물러났었느냐는 듯 곧장 우회 기동하였다.

강습전의 교리를 이행하려는 것이다.

두두두두.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적진의 깊숙한 곳까지 단숨에 파고든다. 바뀐 갑주의 재질은 자크가 죽은 후에 얻은 것들을 모두 펼치고 있음에도 모든 운동 에너지를 넉넉하게 견뎌낸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법을 전개하는 적 마법사의 지척까지 다다랐다. 적 마법사 역시 무서운 속도로 접근해오는 자크를 포착하고서 곧장 마법을 전개하였다.

콰아앙!

자크의 전면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폭발의 여파가 검은 갑주를 무섭게 달궈놓고 집어삼키려고 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자크를 막을 수 없었다.

투화아악!

불꽃을 뚫고 솟구치는 지면의 창을 넘어서 단번에 마법사에게 쇄도한다.

“허억!”

마법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하는 것과 동시에 자크의 대검이 공간을 찢어발겼다. 충만한 오러를 머금은 불꽃 앞에서 마법사가 일으킨 연약한 방벽 따위는 무용지물.

썽둥 잘려나간 몸뚱어리가 바닥에 쓰러져 나뒹구는 가운데, 뒤늦게 마법사의 호위로 보이는 자들이 덤벼왔다.

“차압!”

“하아앗!”

그것이 만용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깡!

칼이 깨졌고, 대검이 덤벼든 둘의 목을 순식간에 날렸다. 대항은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 하지만 적의 제대는 하나가 아니다. 최소 다섯. 자크가 다시 적의 배후를 점하기 위해 기동했다.

골렘은 조종하는 마법사가 제압되면 무용지물이었다.

기사단의 역량에 따라 전투의 향방이 오갔던 지난날의 시대는 지나갔으나, 빼어난 실력의 기사단이 전쟁에서 주효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또다시 마법사들이 저항하였으나, 이번에도 자크를 막을 자들은 없었다. 그의 후방교란에 적 마법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적 마법사를 모두 해치웠소.]

자크는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제드에게 그리 보고하였다. 상황이 모두 끝났노라고 말이다.

그러나.

쿠웅. 콰앙!

대지는 여전히 진동하고 있었고, 골렘의 접전은 이어지고 있었다. 마법사는 모두 죽었음에도 말이다.

*

‘기이하군.’

적 골렘과의 교전을 지켜보던 제드의 평가였다.

적 골렘의 전투능력은 매우 빼어났다.

제드는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반응속도, 대응, 힘의 조절, 그리고 집단전의 방식까지.

‘꽤 긴 시간 훈련을 반복해온 게 틀림없다. 그렇잖으면 이 정도의 교전능력은 갖출 수 없어.’

이 정도면 라이곤 왕국의 기갑중대 중에서도 정예에 해당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루카스의 제1기갑중대나 되어야 압도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점차 뭔가가 이상했다.

‘골렘끼리 차이가 크다.’

처음에는 실력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적 골렘은 병기를 휘둘렀다. 골렘이 병장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병장기를 휘두르는 솜씨가 정교할 뿐만 아니라, 이상할 정도로 날카롭기까지 했다.

‘출력의 차이가 있는 정도가 아니야. 다섯 기의 골렘이 꼭 살아 있는 것 같다. 개성이 크게 두드러진다.’

아무리 조종하는 골렘 마법사가 차이가 있다고 해도 이건 좀 특별한 일이었다.

거기다 조금 전 제드는 후방으로 침투한 자크로부터 상황을 전달받았다. 적 마법사를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다섯 기 모두 아무 문제 없이 기동하고 있다.’

골렘의 조종권을 인계받을 때에는 골렘이 완전히 기동을 정지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순간은 없었다.

‘더욱이 자크와 교전에 들어간 마법사들은 대응 마법을 전개했다고 했어. 그러자면 한순간이라도 골렘은 완전히 기동정지했어야만 한다. 그 마법사들은 골렘 마법사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면 적 골렘 마법사들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기동하면서 넓은 지대를 색적하는 자크. 그럼에도 적 마법사는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점점 더 흥미롭군.”

대강적인 적의 전투능력은 파악이 끝난 셈이다.

“나와라, 하운드.”

곧 저편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며 시꺼먼 틈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네 발로 걸어나오는 짐승형 골렘.

그르르르.

하운드가 나직하게 울었다. 하이렐 회전에서 큰 공적을 세웠던 이 포악한 골렘은 파괴의 화신이나 다름없었다. 이 숲 속에서 녀석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골렘은 없다.

“적을 물어뜯어라, 하운드.”

제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달려나가는 하운드.

콰앙!

머잖아 땅을 쾅 박차고 도약한 녀석은 그대로 측면에서 적 골렘을 덮쳤다. 수십 톤의 골렘이 가속과 무게로 들이박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다.

널브러진 골렘이 땅에 푹 꺼진 가운데, 하운드가 길죽한 아가리를 들이밀어 적 골렘의 목을 뜯어냈다.

콰드드득.

버둥대는 적 골렘이었지만, 이미 승부는 났다. 하운드가 적 골렘의 몸통부에 비죽한 발톱을 쑤셔 넣기 시작한 까닭이다.

으지지직.

“으음?”

제드가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묘한 표정을 했다.

오멜 공국의 골렘은 겉으로 보기에 영락없는 스톤 골렘이었다. 조금 더 땅딸막하고 어깨 견갑이 거대하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런데 가슴팍은 외부 장갑판만이 아니라, 내부까지 철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부가 비어 있다는 얘기다.

콰직!

그러는 사이, 마침내 골렘의 가슴의 장갑판이 모두 뜯겨나갔다. 곧 그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을 때, 제드는 하운드를 통해 시야를 파악하고서 적잖이 놀랐다.

찢겨나간 장갑판. 그 안쪽에는 사람이 있었다.

“쿨럭.”

피를 왈칵 토하며 죽어가는 사람이 말이다.

“괴, 괴물 같은 놈이······.”

그 사람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팔을 움직였다. 마법으로 연결된 듯 골렘은 그의 움직임에 맞춰서 기동하였다.

하운드에게서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적 골렘.

쿵쿵쿵!

곧 저편에서 적 골렘이 하운드를 노리고서 달려오는 광경이 보였다. 하지만 제드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콰아앙!

유령 부대의 골렘이 달려드는 골렘을 밀치며 늘어졌다.

그 사이, 제드는 공간의 저편에서 새로운 골렘을 불러왔다. 이번에 꺼낸 건 나이트 급 골렘이었다. 은색 기사단이라고 불리는 갑주의 기사.

은색 갑주의 기사는 날렵하게 몸을 날리더니 제압된 골렘의 몸 위로 뛰어 올라가 탑승자의 목을 틀어쥐고 그대로 골렘에서 꺼냈다.

“차앗!”

곧장 칼을 뽑아들고 저항하는 모습이었지만, 이미 크게 다친 적을 제압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뻐억.

“꺼윽!”

복부를 얻어맞고 축 늘어진 적을 어깨에 둘러메고 물러나는 은색 기사.

한편, 하운드에게 제압된 골렘은 이제 기동이 아예 멈췄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코어인 탑승자가 없었으니 말이다.

‘나머지 골렘도 모두 똑같을지도 모른다.’

제드는 곧장 하운드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머지 골렘도 모두 제압하라고 말이다.

그르르르.

하운드가 녹색 안광을 빛내며 땅을 쾅 박차고 적 골렘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앙!

대지가 무너질 듯 진동했다.

그러는 사이, 은색 기사가 저편에서 제드에게 다가왔다. 그 기사의 어깨에는 조금 전까지 골렘에 타고 있던 적 조종사가 늘어져 있었다.

제드의 표정은 무거웠다.

탑승형 골렘.

그건 전생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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