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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85) (85/124)

숲 속의 사냥꾼3

*

제드는 오염의 근원지를 어렵지 않게 찾았다.

생명의 줄기인 강을 따라 흐르는 독의 흐름만 따라서 움직이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오염의 근원지는 알았지만, 그것 외에는 단서가 없었어. 연금술사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빌헬름 앙드레는 철두철미했다. 그는 정해진 날 외에는 공방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었다. 철저하게 은폐된 마법사의 공방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외부에서 강압적인 방법으로 찾으려고 하다가 그대로 내빼버리기라도 하면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제드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한 셈이었다.

바로 그러던 때였다.

‘사람?’

이 일대를 배회하며 수색을 이어나가던 블라르의 시야에 사람이 포착되었다. 그 수는 약 셋. 저마다 길목으로 성큼성큼 움직이며 대수림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주변을 탐색하고 있다.’

제드는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몇 가지를 알게 됐다.

그들이 저렇게 주변을 탐색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일정한 범위의 안팎에서만 그러한 탐색 작업을 벌인다는 것. 마지막으로 저들이 오멜 공국의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사, 살려······ 살려주십시오······ 저, 저는 그, 그냥 기, 길잡이······ 길잡이입니다.”

급습하여 붙잡은 사내는 팔을 꺾고 목을 조르자마자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하지만 조금 더 정보를 확실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제드는 다른 길잡이로 추정되는 인물들도 하나씩 잡아들였다. 그 과정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길잡이들은 돈을 받고 고용된 입장이었으므로 목숨이 위험해진 순간, 자신이 아는 바를 모두 털어놓았다.

‘거래라······.’

짐작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오멜 공국은 대수림 너머의 나라. 대수림을 끼고 있어서 라이곤이나 토르가, 북왕국연합과는 교역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길고 험한 길을 돌아서 당도한 상인들은 가끔 오멜 공국에 관한 소식을 전달하곤 했다.

그곳은 자유무역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오멜 공국은 노예무역이 가능하다.’

“거래의 품목은 바로 요정이겠군. 안 그래?”

“모, 모릅니다. 저, 저는 정말로······.”

“그거 이상하군. 너 이외에 다른 둘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제드가 은근하게 말하자, 길잡이는 눈을 도르륵 굴려대다가 이내 시인했다.

“그래, 진작 그랬어야지.”

딱.

제드는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그에게 죽음을 안겨주었다. 앞선 두 사람처럼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로써 제드가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제드는 때를 기다렸다.

거래의 때를 말이다.

그리고 기어이 그 순간을 포착하였으니, 제드는 먹잇감을 포착한 노련한 사냥꾼처럼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뜻밖이로군. 빌헬름 앙드레라.’

제드는 겁에 질린 눈앞의 노인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이름을 적잖이 들었다. 전생에 말이다.

빌헬름 앙드레.

대수림의 요정족을 무력화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제국출신의 마법사. 그는 이후 다양한 생물학 연금술과 치료와 재생술 따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였다.

‘젊고 아름다운 연금술사 빌헬름 앙드레. 그 실체가 실상은 추레한 노인이라는 얘기는 들었다만, 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줄이야. 소문만 무성하던 불로의 비약을 완성한 모양이군.’

불로의 비약.

마법사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모든 일에는 인과가 존재했고, 현상에는 대가가 필요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생물의 처음과 끝은 필연이었다.

즉, 불로의 비약이라는 것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결국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만, 그 유명한 연금술사가 설마 대수림에서 이런 공작을 벌이고 있을 줄이야. 대수림을 무력화했던 것도 이런 긴 시간의 연구가 바탕이 되었던 모양이군.’

“대, 대답해라! 너는 누구냐. 어떻게 나를 아는 거야!”

제드는 대답 대신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멜 공국의 길드원과 연금술사까지 남기지 않고 모두 죽이는 게 맞다. 하지만 눈앞의 인물이 빌헬름 앙드레라면 얘기가 좀 달랐다.

‘아깝군.’

그게 지금 제드의 속내였다.

빌헬름이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 세상의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기에 제드는 고민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기저 욕망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제드가 단 한 가지에서 만큼은 좀처럼 자유롭지 못하였는데, 그건 바로 사람에 대한 욕망이었다.

“빌헬름이여,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나?”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빌헬름.

지금 그의 목숨이 위험했다.

“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다오. 혀, 협조하겠다.”

빌헬름은 그 말 끝에 여러 사족을 덧붙였다. 흑마법은 마법실험을 위한 일이었을 뿐이라는 이야기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제드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사족은 필요 없다. 협조하겠다고?”

“무, 물론이다. 뭘 원하지? 지금 내가 하는 것들을 멈춰야 한다면 얼마든지 그 말에 따르겠다. 당장 이곳을 떠나겠어. 내가 오늘 겪었던 것은 모두 평생 비밀로 하겠다. 원한다면 내 이름을 걸겠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오히려 그 반대다.”

“······.”

빌헬름의 미간에 주름살이 깊게 파였다. 반대라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던 까닭이다.

그러자 제드가 웃으며 말했다.

“숲을 더 오염시켜야겠다. 지금처럼 어설픈 수준이 아니라, 대수림의 근원지까지 아예 완전히 싹을 뽑을 작정으로 말이야.”

*

생명의 줄기.

대수림을 관통하는 강을 부르는 명칭.

대수림의 충만한 생명은 바로 이 강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연금술사 빌헬름은 대수림을 없애겠다는 생각도, 요정의 뿌리를 뽑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이곳을 택한 것은 이곳이 인간 세상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안전하였고, 동시에 그의 실험에 필요한 개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체를 거래하는 부정한 방식이었음에도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보편적인 마법사들의 의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빌헬름도 다른 마법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랬다. 그는 마법사로서 연금술사로서 목적하는 불로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 이 방법을 계속해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놈은 대체 뭘 노리고서······.’

힐긋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제드가 뒷짐을 지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줄기를 바라보면서도 그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정말로 해도 되는 거겠지.”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이건 명령이다. 그대는 내 일에 협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어.”

“큭.”

그 말대로다. 빌헬름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지금 그의 목숨은 제드의 손아귀에 있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빌헬름이 품에서 몇 개의 약병을 꺼냈다. 그중에는 비장의 한 수로 꼭꼭 숨겨왔던 것도 있었다. 강력한 독성과 흑마법에 대한 반응성. 빌헬름의 최고의 걸작이다.

꿀꺽.

강물에 약을 흘린다. 물과 닿은 약이 은은한 빛을 발산하였고, 빌헬름은 마법을 영창했다. 흑마법이었다. 주문을 영창하는 것만으로도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지금 영창하는 마법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머잖아 빌헬름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곧 그의 얼굴에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드리웠다. 흑마법의 반동이었다. 흑마법이 금지된 마법으로 불리게 된 까닭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마법의 악독함보다도 시전자, 그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저주의 흑마법은 강한 사념을 마법에 담는 것. 그 반동으로 그 자신의 몸에도 상당한 저주가 쏟아지게 된다. 빌헬름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는 가운데, 곧 마법은 완성됐다. 강물의 흐름을 따라 퍼져 나가는 마법이 시꺼멓게 변하더니 살아있는 것처럼 물속을 휘저으며 퍼져 나갔다.

“헉헉!”

마법을 끝마친 빌헬름이 숨을 헐떡였다. 온몸을 떨어대는 모습. 수척해진 외관과 퀭해진 눈가. 그리고 죽음의 저주가 그늘처럼 드리운 모습까지.

‘가관이로군.’

흑마법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은 제드였다.

그러나 이 마법이 왜 금지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토록 평가 절하되는 것인지를 바로 이해하였다.

마법사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족속들이다. 선악의 관점에서 크게 좌우되지 않는단 얘기다.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이성적인 비이성적인가.

그것이 마법사들의 선택지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근데 이 흑마법이라는 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군. 최악의 두 요소를 둘 다 갖췄어.’

적을 죽인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의 생명을 깎아야 한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었고, 술식의 정확하게 계산하고 통제해야 하는 게 기본적인 마법이라면 이 저주의 흑마법은 폭발적인 사념을 구겨 넣어야만 한다. 그 리스크는 당연히 시전자의 정신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제······ 네가 말한 대로 되었다. 대수림의 오염은 급격해질 것이야. 요정들이 죽어나가겠지······.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다. 네가 뭘 원하는지는 몰라도 이건 위험을 초래하게 된 거야. 죽음의 오염 앞에서 요정들이 날뛰게 될 거야. 종족의 보존을 위해서 말이야······. 요정을 절멸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이건 틀린 방법이다.”

“착각하지 마라. 누가 요정족을 절멸시키고 싶다고 했나? 오히려 그 반대다.”

“반대라고?”

빌헬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대수림을 저주와 독으로 죽어가게 하여 요정이 죽어나가는 것이 어떻게 그 반대인 요정을 구하는 일이 될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제드는 대답없이 의미심장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제드는 그 뒤로 빌헬름의 공방에서 머물렀다.

가장 강력한 독을 풀고 벌써 사흘이었다.

그동안 빌헬름은 고열과 오한에 제정신을 못 차렸다. 흑마법의 여파와 맞서 싸우는 시간이었다.

그러는 사이, 제드는 그에게 관여하지 않고 공방에서 머물며 명상을 할 따름이었다.

빌헬름이라는 마법사가 가진 미래의 잠재성이 탐이 나긴 했지만, 여기서 이렇게 맥없이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제드는 새 형상의 골렘 블라르를 통해서 대수림의 상황을 살폈다.

변화는 강가에서부터 시작됐다. 물고기가 배를 뒤집고 물가에 올라왔다. 그 후엔 토양의 색깔이 변했다. 그리고 나무가 시들었다.

전염 현상은 강줄기 주변으로 빠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 사태는 요정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다.

요정족 절멸은 이제 눈앞까지 다가온 위기였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의 대수림에는 사냥꾼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것도 평소보다 훨씬 더 매서운 사냥꾼들이 말이다.

강줄기의 하류, 동남부 쪽을 날다가 별안간 숲에서 불꽃이 터지고 우거진 나무가 무너지는 것이 포착됐다. 블라르가 그 일대를 빙글빙글 배회하며 녹색의 안광이 감도는 눈동자로 그 현장을 포착하였다.

타오르는 붉은 화염은 마법의 불꽃이었다. 그리고 쓰러진 나무의 저편에서 눈으로 좇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다니는 요정들의 모습과 그런 요정과 대적하는 사냥꾼들이 보였다.

곧 제드가 감았던 눈을 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다.

남은 것은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때때로 계획에는 변수가 발생하는 법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제드가 미간을 모았다.

‘누군가가 접근해오고 있다. 다수.’

공방을 중심으로 설치한 감시형 결계가 도미노처럼 연속으로 발동하며 경고를 해오고 있었다.

블라르가 저 멀리서부터 크게 선회하여 이곳을 향해 돌아오고 있었지만, 외부의 침입자가 접근해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마치, 이곳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제드가 고개를 돌렸다.

“빌헬름. 네 짓인가?”

“빌어먹을. 나는 그대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그런 내가 뭘 할 수가 있다는 게야. 지금 이 상황은 모두 그대가 초래한 거다! 나와 거래하던 자들을 너무 우습게 봤단 말이다.”

제드는 곧 이해했다는 얼굴을 했다.

이곳으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침입자들의 정체가 오멜 공국 출신의 상인 길드연합이라는 얘기다.

거래를 위해서 보냈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후발대를 보냈다는 것이리라.

‘우습게 봤다.’

빌헬름의 그 말을 곱씹으며 제드가 웃었다.

과연, 누가 누구를 우습게 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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