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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84) (84/124)

숲 속의 사냥꾼2

*

밤이 드리운 시각이었다.

달은 구름에 가려졌고, 희미한 그림자마저 숲을 가득 메우는 안개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 어둠 속을 걷는 이가 있었다.

익숙한 듯 느릿하게 안개를 지나서 강가에 다다른 그림자는 물가에 손을 뻗었다. 메마른 나무 같은 손가락으로 물을 슥슥 휘젓던 그는 쯧쯧 혀를 찼다.

“당최 하루도 쉴 수가 없군······.”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는 노인의 그것 같았다.

노인은 이윽고 헤진 로브 안에서 약병 몇 개를 꺼내더니 병따개를 열고 그대로 강에 다 쏟아부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물에서 반짝거리는 녹색의 빛이 일었다.

톡 쏘는 시큼한 향은 이윽고 새벽의 밤 공기 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졌으니, 노인은 손을 천천히 뻗었다.

그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가 영롱한 빛을 내뿜었다.

쓰스스.

그것은 마법이다. 노인은 마법사였던 것이다.

긴 영창을 끝내고 마법을 완성한 순간, 영롱하게 흘러나오던 푸른빛이 검게 변하였고, 사악한 기운이 되어 기이한 울음을 내며 숲 저편으로 숨어들 듯 사라졌다.

그 일련의 과정이 모두 끝난 후에야 노인은 마나를 거두고 걸음을 돌렸다. 수없이 오갔던 길이었으므로 눈을 감아도 훤하다. 안개 따위는 조금도 그의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그러다 별안간 우뚝 멈춰서는 노인.

“오늘이 날이었던가?”

저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세상과 떨어진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둔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보름이 흐른 모양이다.

“아직 잘 살아있었군, 연금술사.”

“그러는 네놈도 용케 안 죽고 또 나타났구나.”

두 사람은 구면인 듯, 짧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곧 연금술사라고 불린 노인이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바로 그 순간, 짙은 안개의 너머의 풍경이 바뀌었다. 왜곡장 마법을 지워지면서 감춰져 있던 공방이 나타났다. 외부의 습격자로부터 연금술사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만든 방어책이다. 사내는 익숙한 듯 공방 안으로 따라왔고, 나머지는 그 주변을 경계하였다.

연금술사의 공방은 어지러웠다. 여느 마법사들의 공방이 그러하겠지만, 이곳은 특히나 더하다. 거기다 이곳에서는 단순한 마법이나 시약의 실험 외에 생체 실험까지 하였다.

“윽! 빌어먹을. 코가 떨어지겠군.”

“클클. 엄살이 심하구나.”

“······그 역겨운 짓은 만남의 날 전후로는 삼가달라고 말했을 텐데.”

“네놈이 언제 찾아올 줄 알고 내가 일정을 맞추겠느냐. 시끄럽고, 그래서 가져오기로 한 것들은 어디에 있느냐. 오늘은 손이 빈 것 같은데.”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무얼 말이냐.”

“시치미를 떼는 건가? 말해야 할 게 있을 텐데.”

날이 선 말에 연금술사도 미간을 모았다.

“그러니까 뭘 말이더냐.”

“먼저 보내두었던 탐색꾼이 이 근처에서 행방불명됐다.”

“어중이떠중이가 길을 잃는 게 내 잘못이란 말이냐?”

“놈들은 베테랑 길잡이인 녀석들이었어. 항상 네놈과의 거래를 마치기 전에는 그 녀석들이 사전에 탐색하곤 했다. 그걸 네놈이 모르지 않을 텐데.”

흐음. 연금술사도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쥐새끼들을 말하는 거였군.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군. 그놈들이라면 대수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아는 만큼 절대로 무리해서 새로운 길을 따라 움직이거나 하지 않을 터.’

문제는 그도 전혀 짚이는 바가 없다는 거다.

“짚이는 바가 없군. 특별히 이 대수림이 뭔가 달라진 점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모르는 일이다. 무관하다는 얘기지.”

“······.”

사내는 말없이 연금술사를 노려보았다. 조금 전의 말의 진의를 살피는 듯한 모습. 하지만 걸리는 게 없는 연금술사였기에 당당했다.

“남부 놈들과 손을 잡거나 한 건 아니겠지.”

“내가 그럴 이유가 없다. 정기적인 거래처를 놔두고 새로운 거래처를 만드는 게 나에게 큰 이득이 있을 것 같으냐? 그 과정에서 발생할 적대 관계까지 생각해보자면 훨씬 손해가 아니더냐.”

“······좋아, 믿어주지. 그렇다면 둘 중 하나라는 얘기군. 요정 놈들이 칼을 갈았거나 그게 아니면 저쪽 놈들이 수작을 부렸거나. 당신이 보기엔 어느 쪽일 것 같나.”

“모른다! 나는 구도자다. 네놈들 같은 천박한 상인이 아니야. 생물의 본질과 가능성. 그리고 순수한 마법과 연금술의 한계를 확인하고자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이다. 너희 사이에 알력다툼이 발생한 것을 내가 어찌 알겠느냐.”

“좋다. 거래는 잠깐 미루겠다. 일단 지금 이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겠어.”

“뭐든 좋다만······ 거래 중 일부는 그대로 진행하는 게 좋을 거야. 재료가 떨어져서 시약과 저주를 만들 수 없게 된다면 요정들이 다시 활개를 칠지도 모를 일이잖나.”

“쯧. 어쩔 수 없군.”

그들은 서로 주고받는 거래관계라지만, 이 거래의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연금술사에게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냥 넘기기는 어려운 일이로군. 요정의 움직임은 분명히 억제되어 있을 터. 달리 특별한 징후도 없었다. 그런데 베테랑 길잡이가 그것도 셋이나 사라지다니.’

연금술사도 상황을 확인해보는 게 좋을 듯했다. 앞으로의 거래를 위해서도 말이다.

사내는 밖으로 나가서 경계를 서는 부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물건을 가져오라는 얘기였다. 곧 덩치의 사내가 저편으로 걸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덜그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안개 너머에서 수레가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잠깐. 한슨, 멈추라고 했을 텐데. 이봐!”

저편에서 별안간 작은 소란이 일었다.

“뭣들 하는 거냐! 무슨 문제야.”

대장인 데일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고 저편으로 걸어갔다. 저 멍청한 놈들은 이곳이 어디인지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요정의 숲에서 큰소리를 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뒀건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별안간 멈춰서는 데일. 조금 전의 짜증스러운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심각한 얼굴로 칼을 뽑아들었다. 챙하고 맑게 울려 퍼지는 칼끝이 안개의 너머로 향했다.

“······.”

말은 필요하지 않다. 데일은 살기를 풍기며 안개 너머의 존재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저 앞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났다. 조금 전까지 언성을 높이던 부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개의 저편에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연금술사도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바로 마나를 개방하면서 주변을 경계하였다.

절그럭.

침묵에 잠긴 안개 너머에서 들려온 소음.

‘갑주?’

곧 안개를 뚫고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존재가 절그럭대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섬뜩한 감각을 느낀 연금술사는 곧장 마법을 전개했다. 품에서 다섯 개의 약병을 허공에 내던졌고, 마탄을 쏴서 그 약병을 깬다.

투화아악.

공기 중에 흩뿌려진 시약이 작개 갈라져 은색 갑주의 존재를 향해 쏟아졌다. 피하기엔 너무 넓게 흩뿌려진 시약은 최소 두 가지 이상의 독이 섞여 있었다.

‘끝이다.’

연금술사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정체불명의 적은 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독무를 고스란히 뒤집어썼으니,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자라고 해도 수 분 안에 죽음을 맞이할 터였다.

“이 미치광이가! 나까지 죽일 참이냐!”

아슬아슬하게 독무에 휘말리지 않은 데일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흘흘흘. 죽지 않았으면 된 것이 아니더냐. 혹 중독되었더라도 죽기 전에 구해주면 된 게지.”

“······후. 저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아냈어야 하는데.”

“그러다 목이 달아나는 법이다. 과욕은 화를 부르는 법.”

그때였다. 우두커니 서 있던 갑주의 존재가 무릎을 꿇었다.

“끌끌. 그래야지. 그것도 잘 버틴 게다.”

연금술사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고, 데일이 경계를 늦추지 않을 때였다.

쉬아악!

별안간 광풍이 일었다.

“무슨······ 허억!”

연금술사가 몸을 움츠렸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조금 전까지 그와 대화를 주고받던 데일의 목이 떨어져 나간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잃은 몸뚱어리는 바닥에 쿵 하고 쓰러져 간헐적으로 떨어댔다.

“뭐, 뭐냐······.”

연금술사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독에 노출되어 무릎을 꿇은 적이 지금 이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 그곳에 서 있었다.

대검. 언제 휘둘렀는지도 모를 그 대검에 맺힌 핏물이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대신 설명하고 있었다.

‘마법이, 내 마법이 안 통했다고? 내 독에 영향을 받지 않았단 말인가?’

막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이런 곳에 공방을 두고 있었군. 과연, 찾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군. 이토록 꼭꼭 숨겨 놓았으니 말이야.”

“큭!”

연금술사의 반응은 빨랐다.

곧장 몸을 돌리고 약병 여러 개를 투척한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써걱.

양팔이 잘려나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지는 연금술사.

잘려나간 팔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낮게 신음하며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은색 갑주의 존재가 보였다.

‘대, 대체 언제······. 아, 아니 한 명이, 한 명이 아니란 말인가?’

연금술사는 전의가 꺾이는 것을 느꼈다.

죽은 데일의 앞에 서 있는 은색 갑주의 기사.

그리고 지금 자신의 팔을 베어버린 존재까지.

저런 괴물 같은 실력자가 둘이라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대체 어디에서 이런 존재가 나타났단 말인가.

“덕분에 꽤 시간 낭비를 했어.”

목소리의 주인이 천천히 걸어왔다.

연금술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젊은 마법사의 싯푸른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자인 것이다.

*

“배후가 누구냐.”

“······.”

“조금 전에 죽은 놈들이 오멜 공국의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다. 순순히 질문에 대답하는 게 좋아. 버텨봤자 의미가 없을 거다. 네게서 답을 얻어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야. 다소 번거로울 뿐이지.”

오싹.

연금술사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날카롭게 다듬어진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놈은 위험하다.’

“자, 다시 묻지. 배후는 있느냐?”

“······없다. 나는 구도자다.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곳에 왔고, 이해가 일치하는 거래를 해왔을 뿐이야. 연금술사로서 말이다.”

“그런 것치곤 마법적 수준이 높아. 단순한 독이 아닌 것쯤은 알아봤다. 강력한 저주 계통의 흑마법. 평범한 연금술사가 금지된 마법을 익히기도 하던가?”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는가는 중요한 게 아니야. 그보다는 네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말해라. 너는 누구냐. 그리고 목적하는 바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

“······.”

연금술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단단히 잘못 걸렸다. 흑마법은 금지된 마법.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그때에는 절대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그럴 수는 없다!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불로의 비약이 완성된단 말이다. 이 빌헬름이 이런 곳에서 무너질 수는 없단 말이다!’

고개를 숙인 연금술사 빌헬름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해볼 것은 다 해볼 참이었다.

다행히도 이곳은 그의 공방. 놈은 자신한 나머지 그의 공방에 들어왔다.

‘너의 주인 빌헬름 앙드레가 부르노라.’

빌헬름이 연구를 거듭해온 마법의 생물체에게 사념을 보냈다. 혹시라도 쓸데가 있을까 싶어서 만들고 안에 숨겨두었던 합성생명체, 키메라를 깨운 것이다.

빌헬름은 아주 세밀하게 마나를 통제했다. 그것은 공방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과 맞물려서 절대로 포착해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마나다.

‘기회는 단 한 번.’

꿀꺽.

그렇게 마른침을 삼켰을 때다.

“합성생물이군.”

젊은 마법사가 곧장 그 정체를 꿰뚫어보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공방의 안쪽 어둠 속에서 쏜살같이 달려드는 그림자. 요정의 몸과 붉은 늑대의 다리, 그리고 오크의 상체를 합쳐서 만든 키메라였다.

캬아아앙!

거침없이 덮쳐오는 키메라.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젊은 마법사의 측면의 공간이 쩍 열렸다. 그리고 검은 기사가 불쑥 튀어나왔다.

퍼퍼퍽.

그걸로 끝이었다. 칼끝에서 폭사하는 파도와 같은 오러가 달려들던 키메라의 몸을 도륙 냈다.

순식간에 핏덩어리 살점이 되어 널브러지는 키메라.

마, 말도 안 돼.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사이.

“과연, 그랬군. 빌헬름 앙드레. 그게 너였나?”

“나, 나를······ 나를 어떻게.”

젊은 마법사 제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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