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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83) (83/124)

숲 속의 사냥꾼1

밤이 늦은 시각이었다.

주점은 만원이었다.

“대 라이곤 왕국을 위하여!”

곳곳에서 흥에 겨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캄페르.

그레즈의 북쪽 황야의 너머에 존재하는 도시.

교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상업의 도시인 이곳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인 출신의 귀족이 영주가 된 특이한 이력이 있는 영지였다.

지금 그 캄페르는 축제의 활기에 휩싸여있었다.

하이렐 회전의 승리와 강화조약. 거기에 여왕의 혼인까지. 이어지는 겹경사에 이 나라의 앞날은 탄탄대로인 듯하였다. 그리고 이 경사는 캄페르에게도 더욱 큰 부를 안겨줄 게 틀림없었다.

“이 도시 놈들은 왜 이렇게들 좋아하는 거냐.”

주점의 구석.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는 사내가 있었다.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인물. 그는 바로 사일러스였다. 그와 동석한 이는 바로 제드였다.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왕이든 영주든 하는 놈들이나 얻는 게 많은 짓거리가 아니었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이것들이 왜 좋아하는지 말이야.”

“간단한 얘기다. 돈이 되기 때문이야.”

“돈이 된다고?”

사일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설명할 방법도 없다. 그 말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캄페르는 상업 도시로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해온 도시였다. 북부왕국연합과의 무역로를 통해서 말이다.

‘대외적으로는 말이지.’

영주와 영주의 측근이 모두 상인들로 이루어진 캄페르는 라이곤의 왕실에 매우 협조적인 지지자였다. 라니아 집권 초기부터 그러했다.

사회적 반향을 야기할 포고령 및 군비증강과 같은 국책에도 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나섰다.

당연하게도 왕실은 그런 캄페르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는데, 주로 내각관료 추천 따위가 그것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능력을 검증하고 뽑았지만, 기회 자체가 더 주어지는 일이었으니 자연히 캄페르 출신의 관료 수가 많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히 캄페르는 중앙정치의 사정에 밝게 되었고,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 곳보다 빨리 알 수 있게 됐다.’

현재 라이곤의 중앙정치는 파벌이 없었다.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여왕과 그 휘하의 내각관료가 저마다의 능력을 십분발휘해서 행정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방식은 뜻밖에 캄페르에 기회를 안겨주었다. 실리와 능력주의는 캄페르 상인과 영주의 방식과 일치하였고, 그들은 정보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자신들의 일에 사용할 수 있었다.

‘부르크 연방과의 동맹 강화. 그리고 저 숲 너머의 오멜 공국과의 관계 정립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캄페르의 역량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캄페르의 영향력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캄페르의 귀족들은 똑똑했다.

그들은 변화한 체제 아래 완벽하게 순응하였고, 자신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다.

제드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지 않았다. 능력이란 경쟁력이었다. 그들의 성장은 라이곤이라는 국가경쟁력의 근간이 된다.

‘다만, 문제는 암시장이다.’

빛이 커지면 어둠도 커진다고 했던가.

캄페르에는 예전부터 암시장이 아주 크게 운용되고 있었다. 라이곤 왕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노예업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공식적으로 이는 불법이었지만, 캄페르에서는 암암리에 노예 암시장이 운용되고 있었다.

제드가 그걸 알고 있음에도 놔둔 것은 캄페르의 자금력과 그들이 이루어내는 결과물이 어둠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드는 캄페르의 막대한 자금원을 건드리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캄페르의 영주는 똑똑한 인물이었고, 그는 적절한 선을 지킬 줄 알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암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 영향력도 점차 북쪽의 대수림으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제드는 온 나라가 축제의 분위기에 잠겨 있는 동안, 캄페르와 대수림의 정보를 다각도로 취합했고, 수치화된 결과를 두 눈으로 보았다.

‘이미 상당수 요정이 암시장에 흘러들어왔다. 요정은 은혜도 원한도 잊지 않는다. 캄페르와 요정족의 관계는 이미 원수 사이가 됐어. 이건 풀 수 없는 매듭이다.’

상황의 악화는 제드가 개입한다면 쉽게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데스트 아르마.’

제드는 그 전율적인 골렘의 이름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다가 사일러스에게 툭 던지듯 말을 걸었다.

“요정과 싸워본 적은 있느냐?”

“요정? 과거에 몇 번인가 있다. 설원의 푸른 요정과는 삶의 터전을 두고 경쟁했었지. 놈들은 사냥꾼이다. 날렵하고 기척이 거의 없지. 성가신 놈들이야.”

“마스터 급의 실력자인 그대도 어렵다는 얘긴가?”

“내가 애송이였던 시절에는 꽤 힘겨웠다만, 지금은 발키리 정도가 아니면 아무리 많이 와도 우습게 찢어발길 수 있다.”

“그렇단 말이지.”

제드가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전에 말했었지. 자크 경과 다시 싸워보고 싶다고 말이야.”

“그래! 그놈을 어렵지 않게 찢어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하인리 그 자식도 해치울 수 있을 거다. 거기다 어차피 그놈, 인간도 아니니까 웬만해서는 죽지도 않을 테고. 하인리 자식이 죽으면 네놈에게는 좋은 얘기가 아니더냐. 토르가 왕국이 눈엣가시 같을 테니 말이야.

“좋다, 그러면 자리를 마련해주지.”

“흐흐흐. 그래, 진작 그랬어야지!”

사일러스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때였다.

“단, 조건이 있다.”

“······빌어먹을 놈이 또 무슨 조건을 붙이는 거냐!”

사일러스가 쩌렁쩌렁 고함을 내질렀다. 주점의 시선이 모두 쏠리는 가운데, 제드는 그저 웃을 따름이다.

그 의미심장한 미소가 사일러스가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녀석이 저렇게 웃을 때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곤 했기 때문이다.

*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축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의 밤.

거리의 어둠 속에서 속속들이 모여드는 이들이 있다.

조심스럽게 골목을 지나서 한 건물에 모이는 사람들.

그들은 저마다 병장기를 가지고 있었고,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허름한 겉모습과 달리 건물 안쪽의 지하는 제법 넓었다.

퀴퀴한 악취가 나는 이 습한 지하 공간을 비추는 빛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나약했다.

“대충 다 모인 것 같군.”

애꾸눈의 사내가 명부와 모인 사람들을 슥 훑었다.

일부는 수없이 봤던 베테랑이었고, 태반은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늘 그랬기 때문이다.

“조를 짜도 좋고, 짜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성과다. 얼마나 멀쩡히 생포해오는가, 그걸 가장 높이 평가할 것이다. 당연히 보상도 크다. 그리고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보상은 배로 늘어난다. 제대로 된 사냥 한 번에 네놈들의 인생도 한 번에 확 펴질 수 있다는 얘기지.”

그 말에 좌중의 얼굴에 탐욕의 빛이 번져나갔다. 이미 이 사냥의 보상금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는 이가 없을 지경이다.

“물론, 일을 진행하다가 죽는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 책임도······.”

사내가 말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쾅.

“컥!”

별안간 문이 강제로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저 계단 위의 문지기 하나가 계단을 굴러내려 왔다. 푹 꺼진 얼굴로 피를 쏟아내는 모습.

채채챙.

순식간에 장내의 인물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꺼내며 살기등등한 태도를 보일 때였다. 저벅저벅. 계단에서 거구의 사내 한 명이 몸을 구부정하게 숙이고 내려왔다.

“쥐새끼들처럼 처박혀있구나. 뭐가 무섭다고 이렇게 숨어 있는 거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숙였던 허리를 펴는 사내. 2미터가 넘는 신장에 거구의 몸은 웬만한 성인 장정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이거 놀랍군. 설인족의 후예인가?”

“그렇다. 하나 남은 눈깔이 썩 쓸만하군.”

그 이죽거림에 곁에 있던 사내들이 눈을 부릅떴지만, 이 장내의 모임을 주관한 인물은 손을 들어 오히려 그들을 제지했다.

“이곳에 찾아왔다는 건 사냥에 참가하기 위함이겠지. 무슨 사냥인지는 알고서 찾아온 것이냐.”

“그것도 모르고 돈지랄을 했을 듯싶으냐? 돈이나 단단히 준비해두는 게 좋을 거다. 만약 지불할 돈이 없다고 할 때는 네놈들의 목이 달아날 테니.”

그 포악한 말에 장내의 분위기는 더욱 흉흉해졌지만, 애꾸눈의 사내는 흐흐흐 웃을 따름이었다. 설인족의 후예가 타고난 사냥꾼이라는 건 유명한 소문이었다.

“부디 그러길 바라지. 그래서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냐.”

“사······ 울! 사울이다.”

누가 봐도 가명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부자연스러웠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에 모인 사냥꾼에게 이름은 별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성과였으니까.

“좋아, 사울.”

애꾸눈의 사내는 명부에 그 이름을 적었다.

“길잡이는 요구한다면 준비해줄 것이다. 하지만 길잡이를 고용하는 건 비싸다. 무조건 돈을 먼저 받는다. 이번 사냥은 쉽지 않아. 돌아오지 못하는 이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지. 그 전에 앞서서 사냥의 내용과 조건을 설명하겠다.”

애꾸눈은 설명을 시작했다.

곧 그 이야기에 모두가 집중하였다.

이내 누구도 사울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사내에게 더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하였을까.

그가 사일러스 발베르트라고 불리는 아주 유명한 기사라는 것을 사실을 말이다.

*

대수림에는 생명의 줄기라고 불리는 강이 있다.

그 강줄기는 서쪽의 그레지안 산맥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대수림 중심부를 관통하고 흘렀다.

대수림의 모든 생명은 이 강으로부터 기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요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요정의 약점이기도 했다.

대수림의 서쪽 외곽지대를 따라 거침없이 이동하는 이가 있다. 그는 마치, 길을 전부 아는 것처럼 나아가고 있었다.

이미 며칠을 숲 속에서 지낸 듯, 후드나 로브는 더럽혀져 있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나아갔을까.

머잖아 우거진 숲길이 끝났고, 넓은 강가가 나타났다.

“생명의 줄기.”

대수림을 관통하는 기원의 흐름이었다.

후드를 벗자, 뒤로 넘긴 짙은 갈색 머리칼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제드였다.

얼마 전 캄페르에 있던 그는 지금 대수림의 서부 외곽지대를 홀로 떠돌고 있었다.

제드는 갈증이 이는 것을 느끼며, 흐르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렇게 갈증이 좀 가실 무렵, 제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품에서 작은 약병의 마개를 따서 그대로 들이켜는 제드. 그것은 해독약이었다.

‘쇠약화와 전염성 독. 이것만으로는 별 볼 일 없다. 하지만 베이스로 깔리는 마법. 이게 제법 강하군. 독이라기보다는 저주다. 흑마법 계통인가?’

몸으로 경험하고 보니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연금술과 흑마법이 결합해 있다. 그리고 그게 강물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흐르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꽤 치밀하게 준비를 한 것 같군.’

요정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도 이해가 간다.

생명의 줄기라고 불릴 정도의 강. 이런 강을 오염시키려면 어지간한 마법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강 자체의 정화력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제드는 몸을 일으키고 다시 후드를 썼다. 그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저 창공의 너머에서 이 일대를 광범위하게 수색하는 블라르가 서쪽으로 거침없이 날아갔다.

지금부터 오염의 근원지를 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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