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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82) (82/124)

강화조약3

*

제드가 라이곤 왕국의 수도 그레즈로 복귀한 것은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뒤였다.

개선식은 크게 열렸다.

대외적으로는 총사령관으로서 전장에 나섰던 로톤이 크게 칭송받았으며, 큰 공적을 세운 기갑중대의 명성이 동부 전역을 뒤흔들어 놓았다.

물론, 그 실상을 아는 기갑중대의 마법사들은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허명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루카스를 비롯한 기갑중대장들은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자극을 받았다.

‘더 강해져야만 한다.’

하얀 골렘 한 기에 무력감을 느낀 국가 마법사들의 의식 속에는 투지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마법부 소속의 골렘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실전을 처음 겪은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갑중대를 쫓는 것조차도 버거웠던 까닭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제대로 된 싸움도 해보지 못했다.

그렇게 개선식 이후에는 승리를 축하하는 성대한 축제가 열렸다. 골렘이 광장에 서 있었으니, 도시의 사람 중에서는 골렘이 전쟁의 신이라며 칭송하는 이들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 제드는 여왕과의 긴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푹신한 침대에 알몸으로 늘어진 여성. 그녀가 바로 이 라이곤의 여왕 라니아였다.

제드가 그녀의 하얀 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자, 기진맥진한 라니아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 모습에 제드는 그녀의 골반을 붙잡아 끌어올렸다.

“잠깐······ 오늘은 그만······ 아.”

그녀의 거절은 신음과 함께 흩어져갔다.

젊은 남녀의 움직임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졌고, 제드는 무심한 얼굴로 그 행위를 계속 이어나갔다. 젊은 몸의 활력은 좀처럼 수그러드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열정적인 행위와는 무관하게도 제드는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아! 제드, 제드 경!”

라니아가 땀에 젖은 얼굴로 제드에게 꽉 안겨왔다.

제드는 그녀의 열기를 느끼며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발트 테바인. 너는 전쟁의 소용돌이 너머에서 무엇을 보고 있느냐. 무엇을 원하지? 너는 누구냐. 그 많은 피와 전쟁의 역사 너머에서 추구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이윽고 열락의 시간은 끝났다.

라니아는 제드의 품에 안겨서 잠들어 있었다. 제드는 천천히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 젖지 않은 이불로 그녀를 덮어주고 발코니에 섰다. 쏟아지는 달빛에 조각으로 빚은 듯한 전라의 근육질 몸이 드러났다. 서늘한 밤 공기가 온몸의 땀을 식혀주었다.

‘평화는 가까워졌는가?’

제드는 그렇게 자문해보았다.

저 성 아래로 보이는 도심의 풍경은 늦은 밤까지도 계속되는 축제로 활기가 넘쳤다.

평화란 상대적이었다.

제드는 그걸 알고 있다.

제국주의를 실현할수록 강대국은 평화와 부를 얻게 되지만, 침략당하는 국가는 고통에 몸부림치게 된다.

물론, 그것은 원인과 결과 같은 무미건조한 시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세상 모든 존재가 평화를 얻고 행복해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얘기였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평화. 제드가 이룩할 평화는 전쟁과 종이 한 장의 차이였다.

한 발 너머에는 전쟁이 있고, 거기서 멈춘다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질서라는 폭풍의 중심에 서 있는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서서히 궤도에 오르고 있다. 단 하나, 발트 테바인이라는 불씨만을 남겨두고서.’

그것이 얼마나 긴 싸움일 될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미지의 적과 싸울 방법은 하나뿐이다.

준비와 설계.

제드가 고개를 돌려 침대를 눈에 담았다.

잠든 라니아가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제드는 한동안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통합력 1644년.

하이렐 회전 이후로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공식적으로 라이곤과 토르가는 강화조약을 맺었다.

승전국과 패전국이 나뉜 조약의 체결이었다.

토르가 왕국은 전쟁의 배상금을 전부 물게 되었고, 서부의 땅과 북부왕국연합의 독립을 인정하게 됐다.

그리하여 대륙 동부의 지도는 재정립되었으니, 라이곤 왕국의 영토는 전과 비교하여 훨씬 더 커지게 됐다.

그리고 북부왕국연합은 새로이 연방국가로 쇄신하였으니 부르크 연방이라는 이름을 채택하였고, 정식적으로 라이곤과 수교를 맺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동맹의 형식이었으나, 거의 일방적인 라이곤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에 국제적으로는 부르크 연방이 위성국가나 다름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후, 남부의 렌시아 공화국에서 화친의 움직임과 불가침의 수교를 원하는 움직임이 발생하면서 라이곤의 외무부는 할 일이 많아졌다.

한편, 왕립 육군도 내부적으로 쇄신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이렐 회전 이후에 육군의 내부에서는 쓸데없이 많은 숫자의 군대는 불필요하다는 게 정론이었다.

오히려 적 기사단이 보여주었던 기습작전이나 척후작전 따위의 특수전의 병사들이 필요하다는 게 주류가 되면서 강습전 교리의 토대가 잡혀 나가고 있었다.

로톤을 중심으로 기사단 육성이 시작되었고, 제드의 은색 기사단이 교관이 되어 그것을 도왔다.

그리고 군의 핵심전력인 기갑중대는 수도에 새로 만들어지게 된 골렘 기동훈련장에서 실전에 가까운 접전을 벌이며 실력을 늘려나가고 있었다. 레지앙에서 새로 보급된 골렘의 병장기를 사용해서 말이다.

콰아앙!

쇠가 갈리며 불똥이 튀었고 커다란 무쇠 칼이 공간을 파고들었다. 반대편의 골렘이 원형의 방패로 그 공격을 비스듬하게 받아내며 흘리는 가운데, 얽힌 골렘들은 방패로 서로 몸을 밀치기를 반복했다.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던 중 골렘 한 기가 다른 골렘의 다리 사이에 발을 쑥 넣더니 그대로 걸어서 넘어뜨렸다.

쿠우웅.

쓰러진 골렘은 곧장 일어서려고 했지만, 이미 칼끝이 골렘의 몸에 겨눠져 있었다.

“후. 정말 대단하십니다.”

“많이 좋아졌다, 에일 대위.”

대련이 끝난 직후 루카스는 자신과 맞붙었던 제5기갑중대장에게 몇 가지를 일러주었다.

최근 기동훈련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실력이 가장 빼어난 루카스가 1:1을 하고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는 광경이 잦았다. 그 이후엔 집단기동전이었다.

‘아직 부족하다.’

루카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이렐 회전 이후 눈부신 실력의 성장을 이룬 루카스였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건 스스로 가장 잘 알았다. 하얀 골렘과의 접전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각하께서는 우리의 존재를 전력으로서 염두에 두시지도 않으셨었다. 홀로 그 싸움을 끝내고자 하셨어.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분의 검이자 방패이어야만 한다. 그분은 이 나라의 모든 것이야.’

루카스는 그 일념으로 하루하루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제드도 여전히 수도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최근 마법부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다.

“오오. 과연,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마법부에서 제드를 대하는 태도는 그동안 완전히 변해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반발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제드가 그들이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마법의 이론과 방식을 선보였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더욱이.

“국가 마법사 기관에 계속 뒤떨어져 있을 참은 아니겠지요. 나는 당신들이 정통성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통해서 쌓아온 마법을 결과로 보여주길 바랍니다.”

그 말은 마법부 소속 마법사들을 끓어오르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조롱이나 도발 따위가 아니었다.

제드는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고, 그들의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그들이 실전성 높은 골렘을 만들어내고 나아가서 특수부대화 되기를 진정으로 바랐던 것이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마탑의 마법사들이었지만, 마법에 대한 열의와 진정성은 국가 마법사들과 비교할 게 아니었다.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골렘 마법의 가능성을 열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제드가 원하는 바였다.

‘지금 내가 활용하는 것들은 모두 전생의 기억을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앞은 미래 설계의 영역이야. 그때가 되면 역량을 갖춘 마법사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진다.’

인간의 역사는 한 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다음, 그 다음. 켜켜이 쌓여가는 마탑의 지식과 비전처럼 인간의 역사 또한 그렇다.

그렇기에 제드는 수도에 있었다. 다음 세대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말이다.

“으음.”

노사제는 얼굴을 찡그리고 한참 동안 있더니, 이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더니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긴장한 기색을 애써 감추던 여왕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드리운 순간이었다.

“폐하의 품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아이가······. 그렇단 말이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라니아.

아직 혼인조차도 올리지 않은 미혼의 여왕이 아기를 갖게 된 것은 경사라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 씨가 누구의 것인지는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노사제가 물러간 뒤에도 라니아는 한참 그 기쁨을 누리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어쩐지 그런 것 같았다. 꿈을 꾸었다. 필시 그것이 태몽이었으리라.

달칵.

곧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살포시 웃었다. 라이곤의 여왕인 그녀의 침실에 이토록 무례하게 들어올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다.

제드가 그녀의 옆에 다가왔다. 라니아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껴안는 가운데, 제드 역시 그녀를 부드럽게 안았다.

“우리의 아이가 생겼어요. 들었죠.”

“그럼 혼인을 올려야겠군요.”

“정말이에요?”

“폐하와 왕가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기뻐요! 정말로 기뻐요, 제드 경!”

라니아가 제드의 품에 안기며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다.

“폐하, 그럼에도 저는 대외적으로서는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할 것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들도 여전히 그대로 이행해나가게 되겠지요.”

“알아요. 그래도 좋아요. 우리가 한가족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폐하께서 행복하시다니 저도 좋습니다.”

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의 몸 깊숙한 곳에서 그와 자신의 아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건 곧 미래고 역사다. 다음의 세대.

제드는 고양감을 느꼈다. 전생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

공식적으로 여왕의 혼인식이 진행됐다.

배우자는 제드 크레인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은 알고 있던 일이었다.

여왕의 남편이 되었으므로, 제드는 국서로서 대공의 작위로 불리게 되었다. 라니아는 제드도 왕으로 즉위하길 바랐으나, 제드가 이를 거절하면서 대공의 작위만을 받게 됐다.

‘쓸데없는 분란의 씨앗일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제드가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되면 대외권력은 이원화된다. 그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작은 틈조차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이로써 두 분께서는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덕망 높은 노사제의 선언을 끝으로 제드와 라니아는 신 앞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고, 내각관료와 몇몇 귀족들만 지켜보는 가운데서 조용하게 끝났다.

그 뒤로 여왕이 혼인했음을 알리는 공문이 붙었다.

곧 남부의 공화국, 북부의 공국, 부르크 연방 등 소국들에서도 축하의 사절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다.

물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제드는 사교회나 행사 등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크레인 대공은 여전히 베일에 감춰진 존재였다.

왕성의 안쪽 침실.

밤이 드리운 시각이었다.

“아침이 밝기 전에 수도를 떠나려고 합니다.”

“전에 말했던 일 때문인가요.”

“예, 본국을 위한 일이 될 것입니다.”

“······알아요. 하지만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길 바라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저는 돌아옵니다. 이제는 이곳에 제가 있을 곳이 아닙니까.”

“아아, 그렇게 말해주니 기뻐요.”

제드는 자신의 품에 안긴 라니아의 배를 나직이 쓰다듬었다. 아직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럴 리가 없을 텐데도, 벌써 그녀의 몸 안에서 생명이 맥동하는 게 느껴지는 듯했다.

라니아가 잠들 때까지 그녀의 곁에서 누워 있던 제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새벽의 거리에 드리운 어둠 속에서도 도시는 활기찼다.

곧 그의 곁으로 거구의 사내가 따라붙었다.

“온 도시에 네 녀석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근데 이렇게 무방비하게 돌아다니다니. 네놈은 암살이나 해코지가 두렵지도 않으냐?”

“누가 감히 나를 해할 수 있겠느냐?”

그 자신만만한 대답에 거구의 사내가 큭큭 웃었다. 하이렐 회전 때, 하인리에게 당한 흉한 상처가 씰룩거리며 그렇지 않아도 험악한 그의 얼굴을 더욱 무섭게 보이게 하였다.

사내의 이름은 사일러스다.

“네놈이 아직도 여기서 머물고 있을 줄이야. 진작 하인리 엘스우드를 찾아갔을 줄 알았는데.”

“흥. 그놈은 아직은 못 잡아. 조금 더 강해져야 한다.”

“그러다 놈이 죽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사일러스는 단언했다.

“어떻게 확신하지?”

“그놈의 검. 검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를 찢어 죽일 때까지는 절대로 뒈져버리지 않겠노라고 말이야.”

사일러스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제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전생과 같다고 한다면 하인리 엘스우드의 죽음은 가깝다.

그러나 이미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인리 엘스우드. 그의 운명도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번엔 어디로 가는 거냐.”

“대수림.”

제드의 시선이 북쪽에 닿았다.

하얀 골렘에 밀리지 않을 힘이 필요했다.

물론, 제드에겐 안타레스의 유산 같은 것은 없다. 대신에 그에겐 기억이 있다. 바로 전생의 기억이 말이다.

‘대수림의 나이트골렘, 데스트 아르마. 그 괴물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만 알아낸다면······ 하얀 골렘을 넘어설 수 있는 골렘을 만들 수 있다. 나이트골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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