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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79) (79/124)

조우3

*

번쩍.

“······.”

강제적으로 깨어나게 된 마법사 발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가를 훔쳤다.

붉은 피.

마법의 역작용으로 적잖은 타격이 내부를 뒤흔들어놓았다.

자신이 피를 흘리다니. 도대체 얼마 만일까.

“재미있는 자로군. 제드 크레인.”

틀림없다. 작금의 이 시대에 불고 있는 폭풍우의 중심. 그곳에 있는 것은 바로 제드였다.

발트는 이제 그걸 명확히 알았다.

“놈이 뭘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군. 하지만 내 예상보다 마도특이점이 훨씬 이르게 발생하는 이유가 놈 때문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발트는 웃었다.

놈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떻게 그조차 아직 다 해명해내지 못한 안타레스의 유산을 완성했으며, 이토록 완벽하게 다룰 수가 있는 것일까.

이 싸움을 지켜보기를 택한 건 잘한 일이었다.

만약 그대로 두고 봤더라면 차근차근 쌓아올렸던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졌을 수도 있었다.

‘안 될 일이지. 안 될 일이야.’

발트는 정신을 차렸다. 지금부터는 그의 임무가 막중했다.

“백기사는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콰콰콰콰.

밀려드는 라이곤의 기갑중대.

그 선두에는 중갑의 스톤 골렘 오베르가 있다.

통상 골렘보다 10톤 이상은 더 무거운 무게 때문에 출력은 200마력을 넘어서지 않지만, 대신에 충격과 함께 발생하는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콰아앙!

오베르가 재구축한 도끼를 막아내는 백기사.

그 무게에서 전달되는 충격에 땅이 푹 꺼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미 기갑중대의 마법사들은 하얀 골렘 백기사가 얼마나 무서운 골렘인지 파악이 끝났다. 진형을 갖추고 제2파, 3파를 이루어 차륜전을 벌이는 골렘들.

“저 정도의 골렘이면 마나 소모도 막대할 거다. 무리하게 승부를 보려고 할 게 아니라, 말려 죽여야 한다.”

제1 기갑중대장인 루카스는 현명했다.

그리고 나머지 기갑중대장들은 그런 루카스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기관에서 익힌 집단전 전술은 효과적으로 먹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부우우우우!

별안간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

‘아군의 나팔이 아니다.’

루카스는 나팔이 적 진형의 배후에서 들려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알았다. 그들과 싸우는 하얀 골렘이 토르가 왕국군이 후퇴하는 시간을 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루카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미 후속 부대는 속속들이 이곳 전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퍼퍼퍼펑!

뒤쪽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침내 자리를 잡은 포병대가 불꽃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해가 떠오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꽃이 이내 빠져나가는 적진의 대열로 떨어졌다.

콰앙! 콰콰쾅!

작열하는 불꽃에 병사들이 휩쓸려 폭사하는 가운데, 토르가 왕국의 남은 골렘들이 다급히 병사들을 보호하며 움직였다. 등과 팔 따위로 불꽃을 받아내면서 퇴각을 재촉한다.

“제9기갑중대는 적을 쫓아라!”

*

“헉헉.”

“후욱. 후우.”

엉망이 된 숲의 한복판.

그곳에 두 사람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의 모습이 몹시 대조적이다.

하나는 2미터가 넘는 거구를 한 야성의 사내.

다른 한 명은 호리호리한 체구에 다소 유약한 인상의 사내.

마주 보고 적대하는 두 사람이 충돌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 같았다. 거인 앞에 선 사내는 거세게 부는 바람 앞에 작은 촛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왜냐하면, 그 두 사람이 바로 사일러스와 하인리이기 때문이다. 토르가 왕국을 대표하는 마스터 급 실력자들.

두 사람의 싸움은 늘 하인리의 승리로 끝났다. 지금의 양상도 그런 지난날의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사일러스의 크고 우람한 근육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온몸이 피칠갑. 숨은 거칠었고, 사납게 흘러나오던 마나의 흐름은 불안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하인리도 멀쩡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쿨럭.”

별안간 각혈하는 하인리. 붉은 선혈이 그의 입가를 물들이자, 그 모습이 더 아슬아슬하게 보일 지경이다.

“짐승의 이빨이 더 날카로워졌구나.”

“흐흐흐. 네놈의 칼이 무뎌진 것이 아니더냐.”

으르렁대는 사일러스가 다시금 자세를 다잡았을 때였다.

부우우우우.

멀리서 울려 퍼지는 나팔소리.

사일러스는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그 상대인 하인리는 아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착잡한 기색이 스쳤다.

“한눈을 파느냐!”

꽝! 땅을 박차고 쇄도하는 사일러스. 쌍검에서 매섭게 휘몰아치는 오러의 회오리가 공간을 찢어발기며 쏟아졌다.

꽈르릉!

하인리의 칼끝에서 폭사하는 뇌전의 오러가 굉음을 터뜨리며 쇄도하는 사일러스의 오러를 찢어발겼다.

직후 역공을 펼치는 게 맞는 상황이었으나, 하인리는 그러지 않았다. 곧장 현장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칠 수 없다!”

사일러스가 천둥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그 뒤를 쫓았으나, 오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하인리는 중거리에서 뇌격의 오러를 쏟아내며 따라붙는 사일러스를 계속 떼어냈다.

그리고.

“크아아악!”

미처 제대로 흘리지 못한 뇌격에 적중된 사일러스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인리에게 있어서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조금 전의 나팔은 퇴각을 알리는 신호다. 설마, 아군이 패배했단 말인가?’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쿨럭 다시금 각혈한 하인리.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몸 상태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나빴다. 지쳤다고 해도 사일러스를 쓰러뜨리지 못할 줄은.

곧 숲을 빠져나온 하인리는 접전이 벌어졌던 전장을 눈에 담았다. 시체와 무너진 골렘이 즐비한 대지. 그곳에서 진형을 이루고 나아가는 군대가 보였다. 라이곤 왕국의 깃발이 보인다. 적의 군세가 위풍당당하였다.

으드득.

하인리가 이를 갈았다.

핏물과 흙에 더럽혀진 토르가 왕국의 국기가 보였다.

‘저 짐승과 어울릴 때가 아니었다. 일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 곧장 돌아와야 했다······.’

그는 이 모든 게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그의 의지와는 무관했다. 그저 제드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판을 만들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가 돌아올 자리에 사일러스라는 적수를 세운 것이다.

하인리는 붉기 물든 국기를 들고 주변을 훑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음에도 엘리엇 기사단은 합류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검은 기사조차 마스터 급이었는가.’

뿌드득.

이를 갈아대는 하인리.

가눌 길 없는 분노가 속에서 들끓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적들의 대열로 뛰어들어 죽는 순간까지 싸우고 싶었으나, 하인리는 들끓는 화를 겨우 억눌렀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패배한 직후에 퇴각하는 군대는 가장 취약한 법이었다. 주인을 잃고 숲 근처를 서성이는 말에 오른 하인리는 말 배를 차며 전장을 가로질러 달려나갔다.

*

해 질 녘이 다 되었을 때 전투는 완전히 끝났다.

훗날 하이렐 회전이라고 불리는 싸움이 마침내 끝을 고한 것이다. 적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기병대는 그런 적을 추격하였다.

그러나 죽은 적병의 수를 헤아리는 것은 과거의 방식이었다. 작금의 전쟁은 쓰러진 골렘의 수를 세는 게 맞았다.

“파괴된 적 골렘의 수는 어림잡아도 80기 이상입니다.”

“대승이로군.”

로톤이 피로한 얼굴로 짧게 말했다.

적의 후방교란과 함께 시작된 싸움이었다.

예상치 못한 교전이었기에 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공을 보고하는 보병 지휘관들이 모두 지나가고 나자, 이제 이곳엔 기갑중대장들만 남았다. 모두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번 전투의 핵심은 그들이었고, 사실상 싸움을 확정 지은 장본인들도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1 기갑중대장인 루카스를 바라보는 로톤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이제 더 듣는 귀도 없고 싸움도 끝났으니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떤가. 이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던 일인가?”

“그렇게 보이십니까?”

“그렇잖으면 적의 기습작전으로 시작한 싸움이 오히려 대승으로 이어진 이 상황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

로톤의 말투는 날이 서 있다. 그도 그럴 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군대의 총책임자인 그는 작전의 개요 정도는 알고 있었어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카스도 할 말은 있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희도 로톤 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닥친 상황에 대응하였으나, 무엇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로톤이 이 예상하지 못한 말에 당황스러운 듯 말을 잇지 못할 때였다. 별안간 임시 막사 안으로 불쑥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가, 각하!”

로톤이 그 인물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기갑중대장들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타난 인물은 바로 제드였다. 그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하는 가운데, 제드는 비어 있는 자리 중 한 곳에 앉았다. 그 역시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모두 훌륭했다.”

제드는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요.”

로톤이 당혹스러워하며 묻자, 제드는 담담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일의 전말을 무미건조한 사실만으로 들으면서 좌중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제드가 했노라고 말한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의 힘만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가 있단 말인가?’

로톤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것은 이전 남부 평야에서 전장의 흐름을 관조하며 쥐락펴락했던 것과는 또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루카스 대위, 이번 전장에서 보여주었던 공로를 매우 놀라웠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늦지 않고 전장에 합류, 강한 상대와의 대치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던 점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

“너무 관대한 평가이십니다! 그 한 기의 적조차도 해치우지 못하고 오히려 아군 골렘 부대가 격파되었으니, 오히려 책망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루카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마지막에 조우했던 하얀 골렘. 그 골렘을 상대하면서 두 기갑중대의 골렘들이 차례로 널브러지며 전투불능이 되었다. 그러고도 잡지 못했으니, 이런 추태가 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드는 고개를 저었다.

“적 골렘의 성능이 압도적이었다. 누구도 책임을 질 일은 없다. 본국은 승리했고, 귀관들은 그 주역이다. 적의 기습침략을 버텨낸 로톤 경과 근위대의 분전 역시 말할 것도 없겠지. 지금 우리는 잃은 것과 얻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때가 아니다. 대국 토르가를 쳐부수고 승리를 거머쥐었음에 기뻐해라.”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제드는 전장의 한복판에 섰다.

하얀 골렘이 전장에 난입한 직후에 코어를 단숨에 부순 우드 골렘이 그곳에 있었다.

그그긍.

좌우에서 라인 급 골렘이 쓰러진 우드 골렘을 천천히 옆으로 밀쳤다. 그러자 그곳에 흉한 모습으로 죽은 청년 마법사가 보였다.

“루베 오스터.”

제드는 빛의 구체로 시신을 살폈다.

차갑게 식어버린 몸이 그의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이변은 없었다. 그는 죽은 것이다.

제드는 전생에 동료였던 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완벽한 승전이었다.

목적은 다 이룬 셈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

딱 하나만 빼고 말이다.

‘해머락의 괴물. 그것이 전생의 나이트골렘 급은 아니라고 해도 작금의 다른 골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발트 테바인. 놈이 숨기고 있던 비밀병기였어.’

다만, 이해가 안 되는 건 그 정도의 골렘을 만들 정도의 마도기술력이 있었음에도 그걸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제약이 있거나, 만들기 어렵다는 단점 따위가 있었던 것이겠지. 정확히는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골렘이 처음부터 전선에 있었더라면 루베가 죽는 일도 없었겠지.’

발트 테바인.

제드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것들이 그와 맞물려 있었음을 알게 됐다.

‘전생의 나이트골렘 해머락의 괴물. 그것도 오스터 형제의 작품이 아니었던 게 틀림없으리라. 하얀 골렘의 형상이 해머락의 괴물과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닐 터. 필시 발트, 그놈이 만들어낸 거겠지.’

어둠을 노려보는 제드의 눈동자가 무섭게 빛났다.

이제 명확했다. 그가 이루고자 하는 질서의 확립이라는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발트 테바인이라는 혼돈을 척결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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