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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77) (77/124)

조우1

중앙전열의 붕괴.

그 사실이 야기하는 바는 명확했다.

적 골렘들은 분단되었고, 순식간에 포위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병사들의 교전과 다른 점은 골렘들에게는 공포가 없었으므로 전열이 붕괴해도 도망가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팽팽하게 이어졌던 전선이 무너진 순간부터 토르가 왕국군의 패색은 짙어졌다.

아우로렐을 위시한 우드 골렘의 기동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일반 스톤 골렘보다 체구도 전고도 작은 우드 골렘은 우월한 기동성과 팔다리를 변형해서 공세를 펼쳐왔다.

랜스 차징에 허리 끊어진 골렘들 대여섯 기가 바닥을 나뒹굴었고, 그 이후에 부러진 나무 랜스를 변형시켜 거대한 해머로 바꾸고 2차 공격을 감행해왔다. 그 공격은 자체만으로는 크게 위력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공격이 적 골렘의 오금이나 허리 등의 몸의 균형을 이루는 부위를 적극 노린다는 점이었다.

콰쾅!

굉음을 내며 바닥에 무너지는 골렘이 일어서려고 했지만, 미처 수복하기도 전에 전열을 이루고 있던 제드의 유령 골렘들이 방패나 칼을 휘둘러 코어를 박살냈다. 상황은 점점 더 일방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크악!”

“커헉!”

코어가 파괴되면서 강제로 연결이 끊어진 토르가의 골렘 마법사들이 비명과 피를 토하며 나자빠졌다.

“나, 남은 골렘들은 아군 전열의 배후를 교란하는 골렘을 최우선으로 대응한다. 나머지는 전열을 다시 형성한다. 뒤로 물러나면서 최대한 피해를 줄여!”

루베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그 명령을 이행하는 건 쉽지가 않은 일이었다.

우드 골렘의 기동성은 스톤 골렘이 베이스인 안타레스 급으로는 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전면전을 벌인다면 모를까, 요리조리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우드 골렘들을 상대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거기다 전열을 이루던 골렘 사이의 성능의 차이가 전열이 붕괴하고 혼전의 양상으로 치닫기 시작하자, 서서히 드러나는 판국이었다.

루베의 눈동자가 떨렸다.

패배.

이 순간, 처음으로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단은······ 기사단은 아직 적 골렘 마법사를 파악하지 못했나!”

루베의 외침이 공허했다.

그 소식을 아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저 앞을 살폈다. 하지만 그곳의 상황도 녹록지가 않다. 이 모든 것이 저 정체불명의 골렘 때문이다.

‘저놈만 아니었더라도!’

그 순간, 루베는 우선순위를 다시 정했다. 지금은 풀리지 않는 주변 상황을 모두 확인할 때가 아니다. 최대한 빨리 놈을 쓰러뜨린 이후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터였다.

그 순간, 측면을 잡고 기동하던 드라셀 급 골렘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였고, 안타레스 급과는 다른 우월한 출력을 바탕으로 하운드를 붙잡았다.

“내가 놈을 잡는다. 그때를 노려서 부숴라! 팔이든 다리든 머리든 뭐든 부숴서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거다!”

*

본대의 전투가 혼전의 양상으로 변해갈 그 무렵, 국경에서 충돌한 선봉대의 전투도 격해져갔다.

루카스가 이끄는 외뿔의 중갑 골렘인 오베르를 필두로 차근차근 균형을 무너뜨리는 왕립 육군의 기갑중대.

제드와 별개로 기갑중대의 전력 역시 100기에 달할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토르가 왕국의 전위대 골렘과 비교해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단 얘기다.

더욱이.

드드드드드!

콰아아앙.

이 국경지대에는 오베르가 있다.

마주잡은 손을 꺾고 그대로 적 골렘을 주저앉히고 발로 찍어 눌러 코어를 부수는 오베르.

[제드 크레인이 오베르를 기다리고 있다.]

오베르가 본격적으로 출력을 끌어올린 순간부터는 루카스의 의지를 벗어나 움직였다.

‘내 말을 듣지 않아. 그때와 같다. 내 의지를 벗어났어.’

루카스가 당황했다. 별안간 소모되는 마나의 양도 속도도 차원이 다르다.

“대단하십니다!”

중대의 마법사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독으로 적의 대열로 뛰어들어 몸으로 들이박고 커다란 팔을 휘둘러 적 골렘들을 한번에 넘어뜨리는 오베르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쟁의 신과 같은 모습이었다.

루카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따름이었다.

골렘이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움직인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오베르라는 골렘에게서 어떤 의지 따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드와 연결되어있다.

‘틀림없다.’

루카스는 묵묵히 나아갔다.

저 너머에 제드가 있다.

그리고 그곳엔 영광스러운 승리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한편, 골렘전이 벌어지는 전열에서 벗어난 숲길을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바로 하인리 엘스우드가 이끄는 엘리엇 기사단이었다.

적 지휘부를 모두 죽인다는 목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예상보다도 훨씬 늦어진 골렘전은 기습전의 묘리를 살리지도 못하고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그마저도 숫자가 적다. 뭔가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됐어. 거기다 그들은 주력이 아니다. 전위대야. 후위의 골렘부대가 합류하지 않는 건 어째서란 말인가.’

지금의 상황은 작전이 어그러진 정도가 아니었다.

하인리는 불안감을 느꼈다.

이미 국경지대를 지나서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의 너머에서 진동이 느껴졌고 굉음이 들렸다.

저 후위의 본대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적들이 오히려 아군의 본대를 쳤다는 것인가?’

거침없이 숲을 헤치며 나아가는 동안 그 불안감은 서서히 실체를 드러냈다. 진동은 점차 선명해졌고 골렘끼리 충돌할 때의 굉음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아군의 본대가 공격을 받다니······.”

“대체 어디에서 이런 대규모 골렘부대가 나타난 거지?”

엘리엇 기사단의 일원들도 그 광경을 보고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적의 허를 찔러 무너뜨릴 참이었는데 오히려 더 크게 허를 찔린 셈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파악하는 건 나중이다. 우리는 나뉘어 움직인다. 작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방법은 하나다. 대규모의 적 골렘들의 배후에 존재하는 마법사를 처치하는 것. 그게 지금부터 엘리엇 기사단이 해야 할 일이다.”

하인리를 선두로 거침없이 숲을 횡단하는 엘리엇 기사단.

골렘전이 벌어지는 양상으로 보건대 적 골렘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나마 특정하는 건 썩 어려운 일이 아니다.

‘500미터 남짓의 거리에서 골렘을 운용하고 있을 터. 숫자를 나누었을 테지.’

“이대로 조를 나눈다. 적 마법사들을 발견하는 즉시······.”

하인리는 지시를 끝까지 내릴 수 없었다.

달려가던 중 숲길에 널브러진 시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복색이 낯이 익었다.

“스텔라 기사단입니다.”

잔인하게 널브러진 시체를 확인한 기사단이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시체를 살피는 하인리의 얼굴이 악귀의 그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시체들의 몸에 새겨진 상처가 익숙하였기 때문이다.

“흐흐흐. 심심풀이 정도는 되는 녀석들이었다.”

엘리엇 기사단이 기민하게 반응하며 사방으로 물러나는 가운데, 하인리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다. 이 잔혹한 죽음의 현장 너머에 저벅저벅 팔자 걸음으로 걸어오는 거인이 보였다.

“오랜만이군. 그 재수 없는 낯짝.”

“사일러스, 이 짐승 같은 놈······.”

“좋은 표정이다. 그래, 싸움이란 자고로 이렇게 서로 죽이려고 안달이 나야 재밌는 법이지. 네놈의 그런 표정을 보니, 내가 제대로 찾아왔구나.”

“······짐승을 길들일 생각 따위를 하는 게 아니었거늘. 오늘 네놈의 목을 직접 쳐주겠다.”

하인리가 일그러진 얼굴로 칼자루를 꽉 쥐었다.

그 순간, 그의 신형이 늘어나듯이 뻗어나갔고, 쩡 오러와 오러가 부딪치며 사방으로 오러의 회오리가 발생하여 휘몰아쳤다.

으지지직.

바로 지척의 나무가 쓰러지는 가운데, 마스터 급 실력자들 사이의 교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진 순간이었다.

“단장님과 합을 맞춰 사일러스를 처단한다!”

엘리엇 기사단이 포위진형을 갖추려고 할 때였다.

별안간 검은 신형이 기사단의 중심부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쇄도했다.

꽈앙!

“컥!”

내리찍어오는 대검의 일격.

받아낸 기사의 칼은 부러졌고, 검격은 쇄골을 부수고 심장 언저리까지 다다랐다.

기사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의의 기습이라곤 해도 단 일격조차도 받아내지 못했다는 사실. 그게 말하는 사실은 명확하다.

“마, 마스터 급 실력자······.”

검은 기사 자크가 반쯤 파고든 칼자루를 짓누르며 기사의 몸을 마저 베어 넘겼다.

푸확.

핏물이 바닥을 적시는 가운데, 엘리엇 기사단은 자세를 잡고 각오를 다졌다. 마스터가 상대라면 승산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

“끝나가는군.”

전황을 지켜보던 제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바로 조금 전부터 자크가 전투에 들어갔다. 마나가 빠지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런 속도라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30분 남짓.’

워낙 빠르게 마나가 사라지는 까닭에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하지만 곧 상황은 종료된다.

바로 조금 전부터 하운드의 파손율이 높아져서 그대로 전선에서 이탈시켰지만, 이건 전체적인 상황으로 볼 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루베 오스터. 아직 경험이 없는데도 제법 매섭군. 만약 살아서 돌아가게 된다면 다음엔 훨씬 더 귀찮은 적이 되어 나타나겠지.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파비앙 때처럼 놓칠 수는 없어.’

적 전열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모든 골렘을 하운드가 날뛰었던 적 수뇌부가 있는 곳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전열이 사라진 이상, 적 골렘 마법사는 노출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적들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았다. 제드의 하운드가 이탈하면서 루베와 직속부대의 골렘이 본격적으로 전열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드의 골렘부대는 이미 수적으로도 적의 본대보다 우위에 서 있었다. 아우로렐의 기동부대가 루베의 직속부대 골렘들을 하나씩 쓰러뜨리고 코어를 집요하게 노려 파괴하면서 루베는 이미 고립됐다.

그 말인즉 루베와 토르가 왕국의 골렘 마법사들을 지킬 골렘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

뒤늦게 손이 빈 마법사들이 화염과 벼락 따위를 쏟아내며 파고드는 아우로렐의 기동부대를 요격해왔지만, 의미가 없는 일이다.

아우로렐은 나무를 넓은 방패 따위로 변형시켜 날아드는 마법을 받아내면서 거리를 좁혔고, 마법사들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퍼퍼퍼퍽!

커다란 나뭇가지에 휩쓸린 마법사들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거나 몸이 꺾여서 허공에 날아올랐다가 처박혔다.

“큭! 모두 산개해서 싸워라! 손이 비는 마법사들은 계속해서 적 골렘의 이목을 끌면서 아군 골렘 마법사들을 지킨다!”

루베가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다수 골렘의 급격한 기동에 날아든 돌에 머리가 깨져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골렘을 조종하면서 명령을 내리고 회피까지 하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미 패색이 짙은 이 전투 상황 속에서 사냥당하는 마법사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흐아아악!”

“사, 살려줘!”

“커헉!”

널브러진 마법사들의 시체. 귓전을 때리는 비명과 낮게 울려 퍼지는 골렘의 울음까지.

“······.”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는 루베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이건 지옥이었다.

그리고.

쿠웅.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우드 골렘이 팔을 들어 올렸다. 피할 수도 없었고, 피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파비앙, 내 복수를 부탁한다!’

루베는 눈을 부릅떴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마음이 꺾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지지직!

눈앞의 골렘의 몸통을 관통한 시꺼먼 쇠붙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루베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코어가 일격에 관통된 우드 골렘은 골렘은 이윽고 늘어지며 앞으로 쓰러졌다.

“허억!”

그 앞에 있던 루베는 미처 무너지는 골렘을 피하지 못했고 그대로 깔렸다.

꽈아앙!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완전히 기동정지한 우드 골렘의 등에서 쇠붙이를 뽑는 하얀색 골렘.

별안간 나타난 그 골렘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어느 한 지점을 향해서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

쾅! 쾅쾅!

대지가 진동하는 가운데, 전장을 가로지르는 그 골렘이 향하는 곳의 너머. 그곳엔 제드가 있었다.

5미터에 육박하는 전고에 육중한 크기. 그러면서도 날렵하기 짝이 없는 기동성과 하얀 뿔을 달고 있는 그 골렘을, 제드는 알고 있었다.

“설마, 해머락의 괴물이란 말인가?”

전생의 토르가 제국에 유일무이했던 나이트골렘.

해머락의 괴물이라고 불렸던 그 골렘의 형상이 딱 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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