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76) (76/124)

양동3

*

도약.

그것은 도약이었다.

어둠 속에서 땅을 갈면서 나타난 하운드.

4족 보행의 짐승과 같은 형상을 한 골렘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특히 골렘 마법사들이 그렇다.

“말도 안 돼. 저게 정말로 골렘이란 말인가?”

“허. 골렘이 저런 식으로 기동할 수가 있단 말인가?”

골렘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족보행과 팔다리의 쓰임새가 같은 것도 그런 연장선이다.

그런데 저 골렘은 단순히 출력을 높이거나 외장을 두껍게 하거나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골조 자체가 인간과는 달랐다.

“뭣들하나! 멍청하게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별안간 울려 퍼지는 고함.

루베가 서릿발 같은 기세로 소리쳤다.

곧 루베의 골렘이 쿵쿵대며 왜곡장을 걷어내고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토르가 왕국의 골렘과는 다른 외형의 골렘. 그 골렘은 두꺼운 장갑을 두른 채로 하운드를 끌어안았다.

콰드드드.

바위가 깎이고 불똥이 튀는 가운데, 루베의 골렘은 하운드를 숲으로 끌어왔다. 급습에 휩쓸린 병사들을 수습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건 쉽지가 않다.

‘출력이 어마어마하다.’

루베는 적잖이 놀랐다. 무게는 비슷하거나 그가 다루는 골렘보다 조금 더 가벼운 듯한데, 버티는 힘만 보자면 루베의 골렘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도대체 출력이 어느 정도란 말이냐. 드라셀 급 골렘은 130마력에 육박할 정도로 개량된 차세대 급이다. 그런 골렘보다도 더 출력이 높단 말인가?’

바로 그 순간이다.

드드드드.

목을 꽉 잡혀있던 하운드가 그 커다란 아가리로 골렘의 팔뚝을 깨물었다. 그 치악력이 얼마나 강력하였는지, 두꺼운 팔뚝의 외부 철갑판이 단번에 으깨졌다.

철갑판이 저렇게 찢길 정도면 팔뚝이 그대로 으깨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였다.

‘못 버틴다.’

곧장 루베의 골렘이 몸을 뒤틀었다. 그러자 균형이 무너진 하운드의 얼굴이 바닥에 꽂혔다.

콰아아앙!

땅이 진동하였고, 두 골렘이 나뒹굴면서 숲의 나무가 우지끈 쓰러졌다. 금방 루베의 골렘이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그보다 빠르게 튀어나와 흙먼지를 꿰뚫고 쇄도하는 하운드.

콰콰쾅!

또다시 나무가 쓰러지며 무너지는 가운데, 루베는 머리를 향해 벌린 하운드의 아가리를 밀치며 버텼다.

루베가 낮게 신음했다.

“손이 남는 자는 나를 도와라! 이 짐승이 놈들의 대장기가 틀림없다. 대장기를 쓰러뜨려야 한다!”

“제법이군. 하운드와 대적할 수 있다니.”

멀리서 전황을 지켜보던 제드도 감탄했다.

하운드는 200마력에 육박하는 네임드 급 골렘.

그런데 그런 녀석을 상대로 제법 버티고 있었다.

제드는 그 골렘을 주목했다. 생김새와 기동성. 그리고 그 골렘을 중심으로 한 진형의 구축까지.

“오스터 형제인가?”

제드의 눈동자가 서슬 시퍼렇게 빛났다.

블라르를 통해서 상공에서 전황을 파악하는 중이었지만, 골렘전이 시작된 이후로 시야가 많이 제한되어 상대들의 골렘 마법사의 위치를 특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골렘은 보여도 골렘 마법사들까지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상황을 봐서는 쌍둥이가 다 있는 건 아닌 것 같군. 그랬다면 최소 대장급 골렘이 둘은 되었겠지. 하지만 저 골렘을 제외하면 나머지 골렘은 안타레스 급 골렘이다.’

안타레스 급 골렘은 던전에 존재했던 유산의 방식대로 만들어진 골렘을 뜻했다. 약 100마력 전후의 골렘. 지금 이 시대의 평균을 가늠 짓는 골렘의 수준이 그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오스터 형제 중 한 명만 이 자리 와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대장이 누구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루베 오스터.”

오스터 쌍둥이. 둘 다 천재적인 역량의 소유자들이었지만, 골렘의 조종이라는 것만 두고 보자면 둘 중에선 피바잉 오스터보다 루베 오스터가 월등히 빼어났다.

토르가 제국의 유일무이한 나이트골렘이었던 <해머락의 괴물>을 조종했던 마법사도 바로 루베 오스터가 아니었던가.

단 한 기의 조종실력만 두고 보자면 제드도 동일한 출력 수준의 골렘으로는 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세밀한 조종 능력과 감각적인 운용은 정령을 통해 명령을 내리고 지시받는 방식의 제드의 조종법으로는 당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수십 년 이후의 이야기. 그것도 적이 아니라 아군으로서 실력을 겨뤄보는 시간이었기에 나왔던 결과였다.

제드의 골렘 마법 특징은 1:1에 특화된 게 아니었다. 철저한 집단전의 전략과 전술. 그게 바로 군단 마법사라고 불렸던 제드의 강점이었다.

“시작해보자, 아우로렐.”

딱.

제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

숲에서 낮게 울려 퍼지는 울음.

그 소리가 쩌렁쩌렁하였으니, 꼭 숲 전체가 우는 듯하였다.

그리고.

후우웅!

대기를 찢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고, 숲 위로 열댓 개의 나무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끝이 뾰족하게 나선형으로 비틀린 그것은 투창이다. 그 굵기가 수십 센티미터라는 게 일반적인 투창과 달랐지만 말이다.

콰콰콰콰콰쾅!

지상에 포진해있던 토르가 왕국의 골렘들이 날아든 투창에 꿰이거나 튕겨 나가며 바닥을 사납게 나뒹굴기 시작했다.

“하이렐 숲을 낀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제드의 눈동자가 살기등등하게 빛났다.

아우로렐이 이끄는 우드 골렘들은 이 숲의 나무를 하나씩 깎아내고 벼려내 계속해서 원거리에서 공격을 날릴 것이다. 계속해서 말이다.

*

말도 안 돼.

루베는 벌써 그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배후에서 나타난 골렘 부대.

수뇌부를 급습한 짐승형 골렘.

그리고 숲에서 나무를 통째로 투창하는 원거리 지원까지.

“······.”

이건 악몽이다.

믿을 수 없는 악몽.

많은 준비를 했다. 이길 수 있다고 확신도 했다.

그런데 이 상황은 대체 무엇인가.

그의 상식을 아득하게 벗어난 양상의 싸움이다.

보라. 골렘이 병장기를 들고 있다. 검과 방패. 그 때문에 아군의 골렘이 적의 빽빽한 전열을 뚫지 못했고, 그로 말미암아 뒤에 늘어선 골렘들이 우거진 숲 속으로 우회하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느닷없이 뛰어든 이 짐승형 골렘도 그렇다. 골렘부대를 이끌어야 할 루베 자신이 묶였고, 수뇌부급 골렘 마법사 둘이 더 골렘을 끌고 온 상황이다. 그럼에도 쉽지가 않다.

그리고 이젠 저 숲에서 원거리 요격까지.

짝!

루베가 별안간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루베 오스터.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 순간,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레이 경!”

“옛!”

“스텔라 기사단은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인지 파악해. 그리고 움직일 수 있다면 서둘러 숲 내부로 들어가서 적 골렘 마법사를 찾아야 한다고 전해라. 서둘러라. 이건 시간의 싸움이야. 그리고······.”

루베는 냉정해진 태도로 차근차근 명령을 내렸다.

우왕좌왕하던 골렘들이 다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연이어 계속 투창이 날아들고 있었지만, 아직 멀쩡하게 기동할 수 있는 골렘의 수는 많았다.

더욱이 파손되었다고 하더라도 코어만 멀쩡하다면 가져온 골렘전 물자를 통해 파손을 수복할 수 있었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라.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모른다면 당장 조종권을 예비 마법사에게 넘기고 썩 꺼져라. 겁쟁이 따위가 나서도 될 정도로 만만한 전장이 아니니까 말이야!”

루베의 사나운 외침에 골렘 마법사들은 다시 용기백배하였다. 하지만 작금의 전황은 단순히 용기백배하는 것만으로는 타개할 수 있을 정도로 녹록지 않았다.

그 무렵,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서쪽의 전위부대가 국경지대에서 라이곤 왕국의 선봉을 맡은 기갑중대와 충돌했다.

“제1의 부대가 무엇인지 보여줘라. 누구에게도 공을 양보하지 말란 얘기다. 각하를 제외한 우리가 라이곤 왕국 최강의 골렘 마법사다!”

루카스의 결연한 의지는 기갑중대의 마법사들 전원에게 전염되듯 퍼져 나갔다. 그들 모두 최초의 국가 마법사로서, 기갑중대라는 핵심 전력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다.

제드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은 루카스를 제외한 나머지 기갑중대의 마법사들 전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투콰콰쾅!

양쪽의 스톤 골렘이 육중한 충격음을 내며 격돌했다. 땅이 짓뭉개지며 갈려나갔고 나무들이 꺾이다가 부러졌다.

“어, 엄청나군.”

전열이 형성되는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는 병사들은 마른침만 꼴깍 삼킬 따름이다.

라이곤의 왕립 육군 태반은 구세대의 전쟁 경험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완전히 바뀌어버린 전쟁의 양상을 지켜보면서 전율했다.

땅이 진동하고 굉음이 귓전을 때렸으며, 저편에서는 불꽃이 산자락을 불태우고 있었다.

병사와 병사의 충돌, 그리고 간헐적인 마법전은 이제 아주 먼 옛날 얘기처럼 느껴졌다.

*

‘이 녀석, 정체가 대체 뭐지?’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사일러스는 이 터무니없는 전장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한 명이다.

제드 단 한 명이 지금 토르가 왕국의 군대를 휘젓고 있다.

‘보통내기가 아니란 건 알았지만, 이건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놈이다. 대체 저 공간의 너머에 얼마나 되는 골렘이 있는 거냐.’

골렘이 엄청난 병기라는 건 사일러스도 안다.

그러나 그 엄청난 병기는 한 명의 마법사가 조종해야만 했고, 그동안 그 골렘을 조종하는 마법사는 무방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드는 그렇지가 않다. 왕실의 마법사들로부터 들었던 정보와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 다 들어맞는 게 없다. 혼자서 수십 기가 넘는 골렘을 다루고, 그 골렘들 하나하나가 다 저마다 움직이고 있었다.

전열을 형성하는 모루로서 수십 기의 나이트 급 골렘. 그리고 적 수뇌부를 흔들며 유격전을 펼치는 하운드. 원거리에서 나무를 통째로 날리는 골렘들까지.

‘이미 혼자서 군대다.’

상식을 완전히 깨부수는 차원이 다른 방식의 전투.

그렇게 사일러스가 황당한 얼굴로 숲 너머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오래 기다렸다. 이제 네놈의 차례다.”

불쑥 제드가 그렇게 말해왔다.

“차례? 무슨 말이냐.”

“빚이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반드시 갚겠노라고 언성을 높이며 떠들더니, 막상 상황이 코앞까지 다가오니 겁이라도 먹은 것이냐?”

“뭐야? 누가 겁을 먹는다는 거냐!”

사일러스가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이내 눈을 치켜떴다. 전의가 끓어오르는 얼굴.

“그래서 놈은 어디에 있느냐. 잔말 말고 그거나 말해라!”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저 푸른 새를 따라가라. 네게 길을 안내해줄 것이다. 하인리 엘스우드와 마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제드가 하늘을 가리켰다. 동녘부터 푸르게 물들어가는 하늘 속에 스며든 것처럼 공중을 배회하는 한 마리의 새가 서쪽으로 유유히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일러스는 대답도 않고 땅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그가 모습을 감춘 후에 제드는 곧장 말했다.

“자크 경도 따라붙도록 해.”

[주군이 위험할 수 있소. 이곳은 전장이오.]

“나이트 급 골렘 다섯 기가 내 주변을 지키는 거면 충분해. 그보다는 사일러스가 앞으로 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확실히 하인리의 발을 묶도록, 경이 엘리엇 기사단을 정리해줘야겠다. 할 수 있겠지.”

[어렵지 않은 주문이오. 근데 괜찮겠소? 이미 주군은 너무 많은 마나를 사용하고 있소.]

“알고 있다면 전투는 최대한 짧게 부탁하지.”

[······알겠소.]

절그럭.

검은 기사가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제드는 전황을 살피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전황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한꺼번에 거의 100기의 골렘을 통제하는 만큼 마나의 소모는 막대하였다.

‘이렇게 싸울 수 있는 건 길어야 두 시간이다. 그 안에 승부를 봐야만 한다.’

제드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다.

하나는 아군과의 합류를 기다리는 것. 다른 하나는 온 힘을 다 쏟아서 이 상황을 무너뜨리는 거다.

그리고 제드는 어렵지 않게 답을 결정했다.

“기다리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제드의 명령이 떨어졌고 숲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땅이 진동했고, 레지앙의 산왕이라고 불리는 골렘 아우로렐을 필두로 우드 골렘들이 숲에서 나타났다. 팔뚝에 랜스와 같은 거대한 나무를 휘감은 채로 적 골렘을 향해 쇄도하는 모습. 그 광경은 흡사 기사단의 돌격과 같았다.

“이 전투를 결정짓는다.”

투콰콰콰쾅!

배후에서 돌격을 맞은 토르가의 골렘들이 순간적으로 붕 들렸다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토르가의 골렘부대 중앙전열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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