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1
선전포고 이후로 벌써 근 한 달.
금방이라도 전투를 벌일 것 같았던 상황은 선전포고 이전과 크게 다를 것도 없이 그저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보병여단의 여단장급 이상의 수뇌부 작전회의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토르가 왕국의 국력은 강합니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은 본국에 불리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선제타격으로 적의 주력이 준비되기 전에 타격을 가해야 합니다.”
“무슨 소리! 뻔히 매복하고 있을 게 뻔한 사지로 걸어 들어가서 죽겠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하나? 일단 지금은 적의 전력을 충분히 파악한 이후에 대응하는 것이 옳습니다.”
“에잇! 언제까지고 적이 움직이는 걸 기다리기만 하겠다는 건가! 이미 충분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어. 선전포고를 하고서 이렇게 대기만 하는 경우가 어딨단 말인가.”
“12보병여단장의 말에 동의합니다. 대치 상황이 너무 길게 이어지면 나라의 경제 자체가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수개월의 군비증강으로 경제가 크게 악화 되었음은 모르는 이가 없겠지요. 지금은 우회기동으로 적의 매복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게 좋습니다.”
“말은 하기 쉽지만, 우회기동을 하자면 기사단급은 되어야 할 텐데, 토르가 왕국의 그 강력한 기사단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기사단이 본국에 있습니까? 적 기사단을 압도할 수 있는 기사단이 있느냔 말입니다.”
“기사단 대신에 골렘 부대를 운용한다면 어떨까요.”
“그걸 적이 모르겠습니까? 바로 이목이 쏠릴 겁니다.”
온갖 의견이 충돌하고 난립하는 가운데, 총지휘관인 로톤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리고 머잖아 저마다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소음이 되었을 때였다.
“그만.”
로톤이 끼어들었다.
곧 소란스러웠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모두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군은 여기서 때를 기다린다.”
로톤은 또 전과 같은 결론을 내놓았다.
회의에 참가했던 지휘관들은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물러갔다. 한창 소란스러웠던 회의장엔 이제 몇 명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은 국가 마법사 기관출신이자, 현재는 왕립 육군의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갑중대의 중대장들이었다.
로톤은 무거운 얼굴로 제1 기갑중대장 루카스를 보았다.
“······그래서 각하께서 연락을 해오셨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뭐라고 하셨나.”
“북쪽의 일이 마무리 되었으니 곧 합류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루카스는 품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서 로톤에게 건넸다.
“이게 전부인가? 각하의 서신을 가져온 이는 누구인가. 내가 직접 그와 만나야겠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각하께서는 사람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보낸 게 아니라고?”
“예, 새를 통해서 이 쪽지만 보내셨습니다.”
“새라니. 기상천외한 방법만 쓰시는군.”
로톤은 답답한 기색이었다.
그는 지금 라이곤의 육군 부대의 최고 지휘관이었음에도 아무것도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제드가 그에게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제드가 말한 건 딱 한 마디뿐이다.
-기다리세요. 곧 상황이 변할 겁니다.
“······모르겠군. 라이곤 왕립 육군의 최고책임자이며, 왕국 재상께서 그토록 위험한 작전에 혼자 임하시다니.”
“로톤 경께선 잘못 알고 계십니다.”
“무엇을 잘못 알고 있다는 건가. 지금 왕립 육군의 최정예 군대가 이곳에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분께서 적진의 한복판에 침투한다는 이 작전이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기라도 할 참인가?”
로톤의 태도에는 날이 서 있었다.
조바심이 난 것이리라.
그러나 루카스를 위시한 기갑중대장들은 침착하다.
“로톤 경, 각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혼자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최정예라는 말이 저희를 일컬어 하신 말씀이라면 그것 역시 적절하지 않은 말입니다. 이건 겸손도 무엇도 아닙니다. 현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각하께서 호위로 데리고 다니는 갑주를 입은 그 기사단을 말하는 건가. 그래, 인정하지. 그들은 강해. 하지만 제군들이 더 잘 알지 않는가. 전쟁은 바뀌었어. 전쟁은 이제 기사단과 병사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아. 골렘과 골렘을 조종하는 마법사. 바로 제군들과 같은 존재들에 의해 결판이 나지.”
“그 말씀대로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저희는 이 왕국의 최정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톤 경께서는 지금 까맣게 잊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뭘 말인가.”
“원수 각하께서 골렘 마법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홀로 군대나 다름없으십니다.”
“군대나 다름없다니. 레지앙 기관에서 당도하는 모든 골렘 병력은 육군 본부를 통해 전선에 전부 투입된 것 아니었나?”
“표면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로톤이 작게 탄식했다. 막대한 양의 골렘이 연이어 수도에 당도하는 걸 보고서 지레짐작하였다. 생산된 모든 골렘 전력이 육군 본부에 모였다고 말이다.
‘그런데 골렘이 더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미간을 찌푸리는 로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잠깐, 군대라고 할 수 있는 규모의 병력이 움직였다는 보고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는데? 아무리 움직임을 감추려고 해도 국경지대의 경계는 삼엄해. 소리까지 없앨 수는 없는 거 아닌가.”
“타당한 말씀이십니다. 다만, 그 방법에 관해서는 저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가 없다니. 그걸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예, 저희도 알지 못합니다. 그분의 계획을 모두 아는 이가 과연 이 나라······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그저 제가 아는 것은 각하께서 그러겠노라고 하신 것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뿐입니다.”
“······.”
로톤은 거북한 듯 입을 다물었다.
기갑중대장들. 소위 국가 마법사라고 불리는 그들과 대화를 할 때면 항상 이런 신앙에 가까운 절대적인 믿음으로 귀결되는 게 그는 불편했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답답함은 더 커졌다. 하지만 정작 로톤도 루카스의 말에 아무런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제드 크레인.
그가 하는 말에는 그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자신이 말한 것을 현실로 이루어왔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요. 그분께서 곧 합류하겠다고 하셨으니,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그 외에 다른 방도도 없으니. 부디 그전까지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일세.”
로톤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말에는 힘이 실린다고 그랬던가.
뎅뎅뎅.
별안간 군영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로톤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그것이 마법부의 마법사들이 설치한 경보음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 군대 만큼이나 적들도 몸이 달아오른 모양이로군. 더는 참을 수가 없던 모양이야.”
로톤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사방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고, 이내 저편에서 전령이 달려오는 광경이 보였다.
“적입니다!”
말의 고삐를 당기며 말을 돌려세운 전령이 다급히 소리쳤다.
“약 오십여 명의 소수 정예군이 남부의 산자락을 통해서 아군 진영으로 들어왔습니다!”
로톤이 미간을 찌푸렸다.
‘우회기동······ 아니, 그런 것치고는 병력이 너무 적다. 기사단을 투입했군. 그렇다면 목표는 지휘부. 요인 암살인가. 마스터 급이라도 내세운 모양이군.’
실로 과감하면서도 괘씸한 결단이었다.
로톤이 전령에게 소리쳤다.
“적의 공격에 대비하며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 것을 각 여단장에게 전하라. 적 기동대가 단독으로 움직였을 리 없다. 필시 양동 작전이겠지. 그리고 기사단은 모두 이곳으로 집결을 명한다!”
전령들이 곧 사방으로 퍼지며 달려나갔다.
“기갑중대는 여기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아닐세. 이게 양동작전이라면 정면에서 골렘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그대들은 맡은 바 일을 하도록 해. 나 역시 그리하도록 할 테니.”
그렇게 말하는 로톤의 눈동자에 불똥이 튀었다.
얕보였다. 적들은 라이곤의 기사단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무엇이 있든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 바로 그 점이 과감하고도 괘씸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
푸확!
“꺽!”
비명이 흩어졌고, 핏물이 어둠을 유영하다가 바닥에 스며들었다. 벌써 근 수십 명을 베어 넘겼음에도 도무지 적 병사들의 수는 줄어들지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많기도 하군.”
선두의 호리호리한 체구의 기사는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얇은 칼자루를 쥔 그는 가라앉는 눈으로 적들을 눈에 담았다.
“내가 선두를 선다.”
기사가 칼에서 흐르는 피를 털어내며 앞으로 나아가자, 혈기왕성한 적 병사들이 우르르 덤벼왔다.
그 순간, 기사의 칼끝이 어둠을 가로지르며 휘저었으니 푸른빛 섬전이 달려들던 이들의 몸을 유린하였다.
“끄악!”
“컥!”
눈으로 확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
병장기로 막고자 하면 그 병장기째로 베어버린다.
고오오오.
작은 체구에서 흘러나오는 기사의 존재감에 병사들의 전의가 꺾였다. 바로 그때 그들 사이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뇌, 뇌전의 기사란 말인가?”
“헉! 뇌전의 기사!”
“마, 말도 안 돼. 그 하인리 엘스우드란 말인가?”
적들 사이에서 소요가 발생했다.
뇌전의 기사 하인리 엘스우드.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토르가를 대표하는 동부왕국 최강의 검사. 그의 검은 벼락같은 오러를 일으킨다고 했다.
경외와 공포가 적들의 사이에서 전염되어갔다.
‘잘 되었군.’
하인리는 그것을 더욱 부추기기로 했다.
곧 그의 신형이 거침없이 병사들 사이로 파고들었고, 순식간에 허공간을 베고지나가는 칼끝.
파지직!
스파크가 터지듯 오러가 충돌을 일으키며 터진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 살점이 터지고 팔다리가 찢겨나갔으니, 또다시 그 자리에 십여 명이 널브러졌다.
“흐, 흩어져! 다 죽고 싶지 않으면 흩어지라고!”
“잘 생각했다. 현명한 판단이다.”
하인리는 물러서며 흩어지는 적들을 무시하고 달려나갔다. 막아서는 것은 베었다. 측면에서 압박해오는 적들은 뒤따르는 기사단이 베어 넘긴다.
그들은 하인리가 직접 키운 기사단이었고, 그의 제자만 다섯 명이 포진해있다. 1,000명이든 10,000명이든 상관없다. 돌파하고자 하면 가지 못할 곳이 없는 왕국의 최정예 엘리엇 기사단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물며, 지금 엘리엇 기사단은 단독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라이곤 군영의 이목이 엘리엇 기사단에 쏠려 있는 동안, 산자락에서 수십 다발의 불꽃이 날아들었다.
화염계 폭발 마법이다.
콰콰콰콰쾅!
연쇄폭발이 일어났다.
불꽃이 작열하였고, 금세 불길이 사방에 옮겨붙었다.
마법사의 진면목은 이런 대규모 난전에 있었다. 후방지원까지 완벽하다.
“마, 마법사도 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전황.
적진이 완전한 혼란에 빠질 때, 토르가 왕국의 골렘부대는 여명과 함께 진격해올 것이다.
“똑똑히 봐라. 본국이야말로 떠오르는 태양임을.”
엘리엇 기사단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라이곤의 군영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바로 그때까지는 말이다.
파지직!
하인리가 날린 전격의 오러를 튕겨내며 막아서는 기사. 그게 한둘이 아니다. 약 이십여 명. 그들 하나하나가 내뿜는 기세가 썩 나쁘지 않다.
“라이곤의 근위대인가.”
“귀하가 그 명성 높은 하인리 엘스우드라면 그대들은 엘리엇 기사단이겠군.”
하인리의 눈동자가 그곳에 닿았다.
기사들 사이에 노기사가 있었다.
물어보거나 확인할 것도 없다.
로톤 비르툼. 라이곤 왕실 근위대의 수장이자, 이곳 군대의 지휘부의 핵심인 인물이었다.
‘힌 명의 검사로서 도망치지 않고 맞선 용기는 인정하나, 일군의 지휘관으로서는 만용이고 무책임하기 그지없구나.’
내뱉지 않고 삼키는 감상은 거기까지였다.
하인리는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곧장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같은 숫자의 기사라고 해도 하나하나가 질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도 하인리 그 한 사람이 저들 열 명은 너끈히 상대하고도 남을 정도의 격차가 존재했다.
하인리의 몸이 가속하였고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얇은 칼폭에서 점멸하며 터지는 오러가 스파크가 되어 공간을 가르는 뇌전이 됐다.
파지지직!
퍼퍼펑!
오러가 폭발하고 근위대 기사들이 낮은 신음을 흘리며 밀려난다. 그들 하나하나가 벽이 될 요량으로 앞을 막아서고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여명이 오기 전에 그를 잡는다.’
하인리의 검이 재차 뇌전을 뿜었다.
순식간에 근위대가 기사들이 무너지고 로톤이 노출됐다. 하인리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쐐애액.
바람을 가르며 쏟아지는 칼날이 좌우에서 거의 동시에 날아들어서 하인리를 노려왔다. 그 공격을 튕기며 물러난 하인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예비 기사단? 그런 것치곤 실력이 훨씬 빼어나다.’
한 번의 합이었지만, 하인리는 그걸 알 수 있었다.
별안간 합류한 기사들. 옛 시대에나 입었을 풀 플레이트 아머로 전신을 가리고 있는 자들이었는데, 그 수가 자그마치 삼십이나 되었다.
‘라이곤 왕국에 근위대보다 빼어난 기사단이 있다니.’
아마도 극비의 정보였으리라.
“과연, 믿는 수가 있었군.”
로톤이 한 걸음 물러나는 가운데, 대열을 갖춘 은색의 기사단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거의 이십여 명이 동시에 하인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나머지 열 명은 엘리엇 기사단을 막아선다.
꽈릉.
오러가 번쩍거리며 터진다.
가까스로 물러난 로톤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무시무시하군. 이게 마스터 급의 기사란 말인가. 하인리 엘스우드. 동부왕국 최강의 기사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대적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조금 전의 검격. 그 움직임만 보고 알았다. 단 다섯 합을 겨루기도 전에 그의 목은 달아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상을 초월한 격전 이상으로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앞일을 미리 내다보았던 제드의 혜안이었다.
“이런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셨다는 겁니까······.”
은색 갑주의 예비 기사단.
아니, 정확히는 기사의 형상을 한 골렘.
그들은 오직 로톤을 지키기 위한 경호부대로서 제드가 붙여둔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움직이도록 하는 건 지금 저 안쪽의 국가 마법사들이었다.
“후우.”
로톤은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눈앞의 싸움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지금 그는 한 명의 기사로서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 총지휘관으로서 전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로톤은 말에 올랐고, 달려나가면서 전령들에게 소리쳤다.
“각 포병대는 적 마법사의 위치를 특정하고 요격한다. 그리고 적의 주공에 대비하여 병력을 산개하고 대열을 갖춰라. 당장 척후조를 운용하고, 대기하는 기갑중대는······.”
*
새벽이 깊어갔다.
땅이 진동하고 불꽃이 피어올랐다.
비명과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포격의 굉음과 함께 산자락에 불꽃이 쏟아졌다.
가장 어두운 새벽의 시간을 지나서 머잖아 여명이 밝아오는 시각.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으음······. 계산 착오로군. 일을 그르쳤어.’
하인리는 낮게 신음했다.
악몽 작전은 실패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때가 되면 아군의 주공이 공격해올 터였다. 그리고 그때까지 적 지휘부를 완전 궤멸시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그러나 적 예비 기사단의 실력은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놈들의 정체는 뭐지?’
자그마치 열둘을 베어 넘겼는데, 다 속이 텅 비었다. 전부 다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란 얘기다.
‘······일단은 지휘관부터다. 놈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무래도 좋다. 이곳에서 죽더라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리라.’
하인리가 결사의 각오를 다질 때였다.
“단장님, 당장 후퇴하셔야 합니다!”
느닷없이 뒤에서 들려온 외침에 하인리가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피범벅이 된 채로 달려온 전령이 보였고, 기사단원들의 보였다.
“무슨 일이냐.”
“아, 아군의 본대가 새벽에 공격받았다고 합니다.”
그 순간, 하인리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동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숲의 협곡의 저편을 보았다. 동녘의 여명과 함께 나타나야 할 군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골렘의 진동도, 전투의 함성도 없다.
······뭔가가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