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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71) (71/124)

북부의 계승자4

*

땅이 진동하고 대기가 찢어질 듯 요동쳤다.

뇌성벽력을 떠올리게 하는 굉음 역시 뒤따랐다.

포부르크의 고성의 안팎을 아우르는 전투의 메아리.

이 성채 안에서는 마스터 급 기사들의 전투가.

이 성채 밖에서는 골렘들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투콰아앙!

땅을 박차고 달려들어 거대한 원형 방패로 후려치는 공격에 적 골렘이 균형을 잃더니 그대로 뒤로 무너졌다.

콰콰쾅!

땅이 쩍쩍 내려앉는 가운데, 이미 바닥에는 전투불능의 상태가 되어서 쓰러진 적 골렘 한 기가 있었다. 팔다리가 베여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모습이다.

‘조종 실력이 어수룩하군.’

갑작스러운 골렘의 등장. 그리고 좁은 성채의 동선에 적들의 골렘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경험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거기다 골렘이 병장기를 휘두른다는 점에서 방어력과 공격력은 기존에 배 이상으로 뛰었다. 적들은 이 생각지 못한 상황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추가로 골렘을 더 뽑지 않고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군.’

부웅.

제드의 골렘이 칼을 휘둘러 공간을 베어나갈 때였다.

이번에는 적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과감하게 뛰어들어온 것이다.

콰콰쾅!

칼의 타점이 빗나갔고,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허용하면서 제드의 골렘이 성벽에 처박히면서 널브러졌다.

콰르르르.

성벽 일부가 무너지며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적 골렘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포위하듯 움직여온다.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 희생말을 던져서 성벽을 부숴서 움직임의 제약을 풀었어.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건가.’

드드드드.

땅에 나뒹구는 적 골렘의 팔을 꺾어서 부러뜨리고 발로 차서 밀치며 몸을 일으키는 제드의 골렘.

금방 일어나긴 했지만, 이미 포위된 상황. 거기다 적들은 이미 희생말을 내던져 차근차근 잡는 방식으로 전략의 가닥을 잡은 듯했다.

확실히 이런 식이라면 금방 우위를 점하리라.

제드의 골렘이 한 기뿐이라면 말이다.

‘웬만하면 더 전력을 드러내고 싶진 않았지만, 별수 없군. 진짜 해방군이 끼어들 수 있을 상황도 아니다.’

고민은 아주 짧았다.

“나와라.”

제드가 공간의 저편에서 새로운 골렘을 불렀다.

가득 내린 어둠의 저편이 쩍 열리며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좋아. 이대로 무력화한다.”

골렘 마법사의 수장인 밀러는 차분하게 지시를 내렸다.

적 골렘은 단 한 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한 기조차도 썩 만만하지 않았다.

‘예사롭지 않군. 검과 방패라니. 저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저게 안타레스의 유산에 있던 것인가? 하지만 그건 이상하군. 만약 저런 게 있었다고 한다면 본국의 병기부에서도 어떤 얘기가 있었을 텐데 말이야. 성과가 나쁘지 않은 전투야.’

이미 승리라도 한 듯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쿵. 쿠웅. 쿵.

밀러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진동.

엉뚱한 곳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드리운 땅.

그곳에 시선을 던졌을 때, 그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저편의 어둠 속에서 녹색의 안광을 내뿜는 골렘들이 다가오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군이 아니다. 그 수가 다섯이나 된다.

“대, 대체······ 어디서······?”

밀러가 패닉에 빠진 순간이었다.

적 골렘들은 땅을 쿵쾅대며 기동하여 단숨에 아군 골렘의 배후와 측면을 잡았다.

“뒤, 뒤다! 적은 배후에 있다!”

밀러의 다급한 외침에 포위된 적 골렘을 파괴하기 위해서 등을 돌리고 있던 11기의 골렘들은 뒤늦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꽈아앙!

달려든 방패와 검이 그들의 골렘에 꽂히면서 순식간에 네 기의 골렘이 나자빠지며 해자에 고꾸라졌다.

“크으윽!”

단번에 코어가 파괴되면서 동기화에서 풀려난 마법사들이 코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댔다.

그 와중에도 적 골렘들은 대지를 무너뜨릴 듯 기동하며 그들의 아군 골렘을 보호하듯 진형을 갖추었다.

“······.”

그 광경에, 밀러는 직감했다.

이 싸움, 골렘전으로 간다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당장 골렘 마법사부터 찾아라! 우리 골렘들이 버틸 동안 찾아서 죽여야 한다.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어!”

주변의 기사들에게 소리치는 밀러. 그는 이미 냉정을 잃은 모습이었다.

*

콰앙!

귓전을 때리는 골렘전의 충격음.

집단전의 양상으로 싸움이 변한 순간부터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집단전에서 다수 골렘을 조종하며 적의 대열을 무너뜨리는 것이야말로 제드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더욱이 상대가 저런 햇병아리들이라면 더욱 제드의 상대가 아니다.

적의 수적 우위라는 장점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충돌할 때마다 적 골렘은 하나씩 쓰러져 금세 기동불능이 되었다.

일반적인 전선이었더라면 후방으로 돌아가서 재료를 사용하여 골렘을 수복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곳에서 일어난 싸움은 저들로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유격전의 양상이었다. 당연히 대비도 예비도 없었다.

이미 승패는 시간문제에 불과한 싸움의 상황.

적 골렘 마법사들도 그걸 알았는지, 수비대인 기사들을 동원하여 제드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조차 이미 제드는 대비해둔 상황이다.

“가라.”

제드의 곁을 지키던 두 기의 나이트 급 골렘이 절그럭대며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사들의 비명이 터졌다. 일반 기사급이 상대할 수준이 아닌 까닭이다.

‘세 곳의 전황 중 마무리 된 곳은 이곳뿐인가? 생각했던 것보다 광장쪽 싸움이 길어지고 있다. 20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스본의 실력이 생각 이상이야. 그리고 사일러스도 여간 강한 게 아니군.’

지금 이 순간에도 사일러스와 맞붙은 자크에게서 엄청난 양의 마나가 뭉텅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나의 소모 속도가 너무 크다. 특히 자크 경이 소모하는 마나가 너무 많아. 역시 마스터 급의 싸움인가.’

5써클의 마법사가 된 이후로 이 정도로 마나를 많이 쓴 건 처음이었다. 동시에 세 군데에서 교전을 벌이는 건 제드라고 해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나마도 정규 골렘의 전투가 벌어졌던 이곳의 싸움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곳의 교전마저 조금 더 길어졌더라면 그때는 철수를 염두에 두어야만 했으리라.

‘지금도 조금은 아슬아슬할 것 같군.’

제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성채의 회랑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이 내린 곳. 그 너머에서는 마스터 급 기사들의 치열한 접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후우우우.”

거친 숨을 토하는 사일러스.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부릅뜬 그는 혓바닥으로 입가를 날름댔다. 왼쪽의 광대의 스친 상처에서 흐른 피가 그의 혀를 적셨다.

“강하군, 아주 강해.”

사일러스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세를 다잡았다. 그의 팔뚝과 배, 그리고 허벅지 따위에 무시하기 어려운 상처가 즐비했다. 조금이라도 더 깊었더라면 뼈가 끊어졌을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들이었다.

물론, 사일러스도 그냥 당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저편의 검은 갑주의 기사는 왼팔이 날아갔다. 망토는 반쯤 찢어졌고, 말끔했던 갑옷에도 오러의 상흔이 새겨져 있었다.

검사의 한쪽 팔이 날아간 셈이니, 어느 쪽이 더 치명상인지는 더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말이다.

‘근데 이놈은 베는 느낌이 없다. 살가죽과 근육, 뼈를 끊는 느낌이 말이야. 즉, 갑옷은 단단하지만, 그 안은 비었다. 인간이 아니라는 이야기란 말이렷다.’

크흐흐. 사일러스는 낮게 웃었다. 인간이 아닌 적수라니. 재밌군. 쾅 땅을 내리찍으며 폭발적으로 쇄도하는 사일러스 그의 쌍검이 대전에 푸른 불꽃과 같은 잔상을 남기며 검은 기사에게로 쏟아진다.

그러나 검은 기사는 남은 한 손으로 그 대검을 거침없이 휘두르며, 파도처럼 층층이 일어나는 오러의 충격파로 그 무수한 검격을 대부분 걷어냈다.

쩌저저정!

충돌하는 검격에서 충격파가 바로 지척의 대전 기둥이 부서지며 먼지가 흩날렸다.

그리고 뿌연 연기를 꿰뚫고 녹색의 안광이 번득였으니 푸른빛 섬전이 공간을 꿰뚫었으니, 이내 노도처럼 몰아치는 해일과 같은 내려치기.

꽈아앙!

“크학!”

받아내는 사일러스가 피를 왈칵 토했다. 대전의 바닥에 거미줄이 새겨졌다. 조금 전 일격이 얼마나 강력하였는지를 알려준다.

“이 정도로 쓰러질 것 같으냐!”

사일러스가 핏물이 드리운 이빨을 보이며 다시 달려들었다. 조금 전의 큰 일격으로 생긴 약간의 틈. 쏜살같이 쏟아지는 쌍검이 틈을 파고들어 복부의 갑주를 파괴하였다. 꿰뚫은 것이다. 회심의 일격.

그러나 사일러스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이번에도 베는 느낌이 없었다. 몸의 중심부. 놈이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곳이 그곳이었기에 바로 그곳이 약점인 줄 알았건만.

‘속았다!’

꽈앙!

여지없이 쏟아지는 대검.

땅에 꽂히고도 꺾이지 않은 오러의 파동이 분분히 일어나 거미줄처럼 엮인 바닥의 틈에서 칼날 같은 기운이 솟구쳤다.

몸을 튕기며 가까스로 목숨은 구한 사일러스였으나, 조금 전 충돌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공세를 흘려내던 중에 팔뚝부터 잘려나간 오른팔. 그리고 바닥에서 솟구친 오러의 칼날에 폐가 관통된 까닭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사일러스는 퉷 입안에 가득 찬 핏물을 내뱉었다. 온몸이 삐걱댔다.

“뭘 기다리느냐. 이 사일러스는 아직 살아있다.”

감각이 무뎌진 팔부터 왼팔의 손가락 끝까지 마나를 순환시켜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는 사일러스.

그러나 검은 기사는 덤벼오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따름이다.

“이봐. 재미없게 굴지 마라. 자비 따위는 너나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죽고 죽일 때까지 멈춰서는 안 되는 짐승이 아니더냐!”

사일러스가 사납게 도발했다.

그러나 검은 기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에 사일러스가 막 움직이려는 찰나.

“사일러스 발베르트.”

별안간 그의 귓전을 때리는 목소리가 있다.

사일러스가 눈알을 굴렸다. 엉망이 된 대전의 저편. 그곳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뒷짐을 진 채로.

“누구냐.”

“이 상황을 계획한 사람이다.”

“네놈이 계승자인지 뭔지 하는 놈이냐.”

“명칭이야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 안 그렇더냐.”

“썩 꺼져라. 죽고 싶지 않으면.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해도 네놈을 잡아 죽이는 일 따위는 손쉬운 일이야.”

“죽다만 주제에 입은 살았구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자크 경이 잘 알려주었을 텐데.”

꿈틀.

사일러스의 눈동자가 사납게 빛났다.

자크. 그게 저 검은 기사의 이름이라는 건 굳이 물어볼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검은 실루엣의 존재는 성큼성큼 다가온다. 이 정도의 거리라면 아슬아슬하게 죽일 수 있다. 까득. 손가락의 뼈에 힘을 줄 때였다.

“죽는 게 소원이라면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짐승의 목숨 하나를 거두는 일이 무엇이 그리 어려운 일이겠느냐?”

“뭣이?”

사일러스의 머리칼이 그가 스멀스멀 내뿜는 마나에 다시 두둥실 떠오르며 갈기처럼 일렁일 때였다.

“한 가지 묻자. 네 싸움은 여기에서 끝났느냐, 사일러스.”

“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여기서 목을 쳐내기에는 아깝다는 얘기다.”

“하! 같잖은 새끼······. 네놈이 뭔데 나를 아깝다는 것이냐. 나는 나다. 내가 죽을 곳은 내가 정한다.”

“우습군. 너의 죽음은 지금 순전히 나의 손에 달린 일이거늘. 내가 너를 죽이지 않겠다면 너는 자결이라도 하겠느냐? 죽음을 정한다는 게 그런 의미인가?”

“너!”

사일러스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검은 기사 자크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타오르는 녹색의 안광이 말하고 있다. 그것을 용납하지 않겠노라고.

“빌어먹을. 목줄에 묶인 개새끼한테 당하다니······.”

사일러스는 칼을 땅에 꽂고 기댔다. 후두둑 떨어지는 핏물.

“전란의 시대다. 많은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 그대 같은 호전적인 짐승이 지금 나에겐 필요하다는 얘기다.”

“······크흐흐. 멋대로 지껄이는구나. 다시 말해 말을 잘 듣는 개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냐.”

“필요한 건 투견이다. 적을 물어 죽이다가 결국에는 그 자신마저도 죽을 정도로 매서운 투견. 미쳐버린 투견이 어찌 주인의 말을 들을까.”

“미친놈이로구나.”

“미친 투견을 부리고자 하는 이가 어찌 정상이겠느냐.”

그제야 사일러스는 고개를 들어 검은 기사의 너머에 시선을 던졌다. 뒷짐을 진 젊은 사내가 차분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내가 네놈을 물면 어쩌겠느냐.”

“죽여야지.”

“크흐흐흐흐흐.”

사일러스가 즐겁다는 듯 웃었다. 오랜만이다. 이런 느낌은. 분명히 죽어가고 있을 텐데도 심장이 더 거칠게 뛰는 듯하다. 아주 오래전에 잊고 있었던 야생의 숨결이 떠올랐다.

“그래, 좋다. 나를 부릴 수 있으면 부려봐라. 하지만 알아야 할 거야. 틈이 보이면 네놈의 목덜미가 떨어져 나간다.”

“그건 네놈이 걱정할 게 아니야. 그리고 그때가 오기 전에 너는 죽는다.”

“크하하하하.”

사일러스가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제드의 차분한 어조가 마음에 들었다.

시시각각 들이닥치는 죽음의 그림자도 그의 웃음을 막을 순 없었다.

그때였다. 별안간 사일러스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쿵 주저앉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한계에 다다른 것이리라.

“신전으로 가지, 자크 경. 거둔 짐승이 죽게 놔둘 수는 없는 법이니.”

[주군, 그는 강하오. 만약 주군을 노리려고 들면 아주 위험할 것이오. 무엇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따르던 주인을 배신까지 하지 않소.]

“자크 경, 짐승은 부리는 거지. 믿는 게 아니야. 그리고 자크 경이 날 지키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아니면 다시 저자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는가?”

[앞으로 10번을 더 싸워도 10번 다 이길 수 있소. 나는 그보다 강하오. 그리고 더 강해질 수 있소.]

반발하듯 강한 사념을 전해오는 자크.

제드는 씩 웃었다.

“그거 아주 믿음직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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