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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66) (66/124)

군비증강3

*

드드드드.

마법사들 다수가 널찍한 광장에 모여 있다.

이곳은 수도 그레즈의 궁전 안뜰.

한때는 왕궁 연병장으로 쓰였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마법부의 실험장으로 변한 곳이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그들의 앞에 모여 있는 골렘의 형상을 한 바위가 바르르 떨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마법사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순간에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오늘의 실험을 주도하는 노마법사가 다음 신호를 주었다.

조금 더 출력을 올리라는 얘기였다.

수십 톤에 육박하는 이 무거운 거인이 움직이려면 그에 합당한 마나를 몸의 각 부위로 전달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출력이 필요하였고 말이다.

출력을 조금 더 끌어올리자 골렘은 더 거칠게 진동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이 만든 골렘은 한계치를 넘었다.

쾅!

별안간 굉음과 함께 골렘의 몸 중심부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연결 부위가 끊어지며 바위가 우르르 무너졌다.

“······65번째 실험 실패입니다.”

마법사들은 무거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엔 무엇이 문제였지.”

“코어가 마석이 발생시키는 출력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작 이 정도 출력도 못 견딘단 말인가? 라르곤과 카드란의 원로 마법사들이 전부 다 달려들어서 매진하고 있는데도?”

“······노심에 대한 기본적인 설계기틀이 없는 이상, 이 과정은 앞으로 수백 번은 더 실패해도 정답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비참한 일이로군. 지금 바로 코앞에서 제1 기갑중대라는 국가 마법사들이 골렘들을 공사 현장에 투입해서 움직이고 있는데, 정작 마법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말이야.”

라르곤의 마탑주였던 프란첼의 말에 그 자리의 마법사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라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자부심이었다. 그 자체만으로 그들이 일류 마법사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라.

그들은 자존심을 굽히고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서 여왕의 앞에 무릎까지 꿇었건만, 정작 그들이 보여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

“······수습한다. 다음 실험을 준비하도록.”

프란첼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이런 식으로 그들이 결과를 낼 수는 있는 것일까. 앞으로 1년······ 아니, 이런 식이라면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쿵. 쿵.

별안간 뒤쪽에서 땅이 진동했다.

장내 마법사들의 시선이 모두 그곳에 쏠렸다. 그곳에 검은색 골렘과 함께 걸어오는 한 젊은 마법사가 있었다.

그는 라이곤 왕국의 운명을 뒤바꾼 인물이었고, 이 나라의 마탑을 하나로 묶어서 여왕의 아래에 무릎을 꿇게 한 장본인이었다.

제드 크레인.

실험장의 마법사들이 모두 얼어붙은 것처럼 가만히 서 있는 가운데, 제드는 저벅저벅 걸어와서 노마법사 프란첼의 앞에 섰다.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결과는 아직 요원한 모양이군요.”

“······수도를 떠났다고 들었는데, 마법부의 성과를 조롱하기 위해서 돌아오신 모양입니다.”

“그럴 리가요. 같은 배에 탄 동료를 조롱할 이유가 없지요. 저는 장차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마법부가 너무 헤매는 것 같아서 약간의 도움을 주기 위해서 왔을 뿐입니다.”

“도움이라니. 무슨······.”

“골렘.”

제드가 끌고 온 골렘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골렘의 설계도와 세부 마법술식을 마법부에 인계하도록 하겠습니다.”

밀실.

지금 이 공간에는 프란첼과 제드 두 사람뿐이었다.

“둘 뿐입니다. 이제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시죠. 갑자기 나타나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골렘의 설계도와 세부 마법술식을 인계한다니.”

“전에 귀하께서 제게 말씀해주셨었지요. 안타레스의 유산에 관해서 말입니다. 그때 그 말씀을 듣지 못했더라면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겁니다.”

“성과라니······.”

프란첼이 미간을 모았다.

제드가 한 말의 의미를 헤아리려는 듯한 모습.

꿀꺽.

마른침을 삼킨 노마법사는 심한 갈증을 느끼는 듯했다.

“재, 재상께서는 안타레스의 유산을 손에 넣었다는 말씀입니까?”

“예, 손에 넣었습니다.”

“······!”

프란첼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대, 대체 어떻게?”

“그보다 중요한 건 유산이 무엇이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유산이라는 게 골렘이라는 겁니까?”

“예, 그렇더군요. 제 골렘과 그들의 골렘은 다릅니다. 아주 큰 차이가 있죠. 저도 그 유산이 정말로 골렘일 줄은 몰랐습니다.”

“······.”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그는 어수룩한 마법사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유산이라는 걸 공유하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좋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대신에 한 가지만 답해주시지요. 왜 그걸 우리에게 공유하겠다는 겁니까?”

“그야 그러는 편이 더 폭넓은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성?”

“제가 만들어낸 골렘과 마법부의 여러분이 발전시켜나갈 골렘. 그 이원화된 두 골렘이 경쟁을 하게 된다면 전에 없었던 발전의 가능성을 열게 될 겁니다.”

“고작 그 가능성이라는 것 때문에 그토록 엄청난 비전의 유산을 공개하겠다는 겁니까?”

“저는 여러분이 언제까지고 실패만 하면서 시간과 자원을 썩히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국가적 차원에서 큰 손실이죠.”

“후.”

프란첼이 복잡한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제드 크레인.

이 젊은 마법사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일반적인 상식의 잣대로는 판단할 수가 없는 인물이다.

아무리 봐도 마법사였지만, 마법사가 아닌 인물이다.

노마법사는 이내 쓸데없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안타레스의 유산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직접 귀하에게 기억으로 전달하겠습니다. 그걸 다른 마법부의 마법사들과 공유하도록 하시죠. 양피지로 남기기엔 너무나 방대한 자료입니다.”

프란첼은 록시와는 격이 다른 마법사였다.

록시가 그 방대한 마법술식과 설계도를 그저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제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던 것에 반해서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제드의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뜬 노마법사의 얼굴엔 충격과 경외가 가득하였다.

“엄청나군. 정말로 엄청나. 이것이 위대한 유산이라고 불리는 안타레스의 유산이란 말인가? 이토록 치밀하고 정교한 마법이라니. 10년······. 아니, 수십 년이 더 지났어도 이 정도의 마법을 완성할 수 있었을지······.”

“그럼, 결과를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져온 골렘은 이곳에 두고 가도록 하지요. 견본이 있는 편이 훨씬 더 골렘을 만들기 편할 테니까요.”

제드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을 나서기 전에 덧붙였다.

“바쁘게 움직여 주세요. 머잖은 때에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그리고 골렘은 마법사가 움직이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 골렘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골렘을 움직이는 골렘 마법사의 존재는 아주 중요합니다.”

*

“제드 경!”

들어온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체통 따위는 다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오는 여성. 이 나라의 군주인 여왕 라니아였다. 품으로 파고드는 그녀를 토닥이는 제드.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폐하.”

“아뇨, 그렇지 못했어요. 제드 경이 떠난 뒤로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제 생각은 안 했나요.”

“그럴 리가요. 하루도 빠짐없이 폐하를 생각했습니다.”

“정말인가요?”

그렇게 되물으며 우러러보는 라니아의 얼굴이 발그스름하다.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동자는 몹시도 애달프다. 그런 그녀의 턱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입을 맞추는 제드. 떨어지는 입술 사이로 라니아의 한숨이 흩어진다.

“대화는 재회의 해후를 충분히 나눈 후에 하기로 하지요. 지금 당장은 나의 폐하가 진정으로 건강한지, 내 두 눈과 손으로 직접 확인해야겠군요.”

제드가 그녀를 잡아당겨 안아 들었다. 라니아는 거부하지 않고 온순하게 제드의 품으로 파고들 따름이었다. 추운 겨울날 온기를 탐하는 고양이처럼 말이다.

둘은 침실로 향했고, 문이 닫힌 뒤 희미하게 여왕의 신음만이 울려 퍼질 따름이었다.

열락의 시간이 지나고, 헝클어진 여왕의 머리칼이 제드의 가슴에 흐트러져있었다.

“제드 경, 이번엔 얼마나 수도에 있을 생각인가요.”

“금방 돌아가야 합니다. 마법부에 전해야만 하는 게 있어서 돌아온 겁니다.”

“······그럼 나는요?”

“물론, 폐하를 만나 뵙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컸던 건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제드. 라니아는 언제 샐쭉한 표정을 지었느냐는 듯 행복하게 웃으며 제드의 평평한 가슴에 뺨을 비볐다.

“또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럴 수 없겠죠.”

“우리의 적이 호시탐탐 본국을 노리고 있습니다.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머잖은 때에 폐하와 저는 더는 함께할 수 없을 테지요.”

“안 돼요.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언제 어리광을 부렸느냐는 듯 날카롭게 소리치며 몸을 벌떡 일으킨 라니아.

달빛이 드리운 하얀 젖무덤과 탐스러운 과실이 제드의 눈에 적나라하게 들어오는 가운데, 그녀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였다. 저것이다. 제드가 지금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저 뜨거운 열망이었다.

“알려주세요, 제드 경. 우리가 나아갈 길을 말이에요.”

“······얼마 전 토르가 왕국의 북부에서 침략전쟁이 있었습니다. 도시국가연합이었던 북부왕국들이 차례로 복속되어 저들의 왕정에 무릎을 꿇었지요.”

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선명한 라니아의 눈동자를 조금 더 제대로 보기 위해서 그녀의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

“지금 그 북부왕국의 해방가들이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도와준다면 우리는 저 동부왕국을 북쪽에서 짓누를 수 있는 강력한 우군을 얻을 수 있을 테지요.”

“어쨌거나 동부왕국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겠군요.”

“예, 처음부터 전쟁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폐하.”

제드가 부드럽게 말했고, 여왕은 굳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이튿날, 여왕은 내각 수뇌부를 한 자리에 모았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어젯밤에 제드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토르가 왕국은 본국의 내정에 개입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일진대, 저들은 본국을 적대하며 국경 부근에 병력을 모으고 있죠. 이 순간부터 저는 그들을 적으로 규정하겠습니다.”

그 강경한 발언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차피 토르가 왕국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라니아 여왕의 국정안정은 남부평야에서 귀족연합을 분쇄하면서 일구어낸 것이었고, 그 귀족연합을 토르가 왕국이 뒤에서 지원하고 있었음은 명명백백하였다.

더군다나 첩보부에서는 토르가 왕국이 국경 일대에 군대를 끌어모으면서 전쟁준비를 해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오고 있었으니, 이미 군사적 긴장감은 팽배해있는 상태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이곤 왕국이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때입니다. 이견이 있나요.”

“없습니다. 폐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내각 회의에는 드물게도 제드도 재상으로서 참석해있었으니, 모두가 어렵지 않게 짐작하였다. 여왕이 내린 이 갑작스러운 결단의 배후에 그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체적인 전쟁준비를 위한 군비증강의 대책 방법이 오가는 가운데, 제드는 끼어들지 않고 그 회의의 방향을 지켜보다가 한 번씩 흐름을 바로잡아주기만 했다.

이 자리에 모인 내각 수뇌부들은 바보가 아니다.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 그들은 차근차근 실현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실현준비란 다른 것이 아니다.

군비증강.

지금부터 라이곤 왕국은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 국가의 총생산력을 동원할 참이었다.

국제질서를 위한 한 걸음.

이 한 걸음은 전쟁으로의 한 걸음이다.

그러나 제드는 확신했다.

이 걸음이 멈추는 그 길의 끝에는 반드시 평화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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