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증강2
*
시종일관 퉁명스러운 것 같았던 안톤의 얼굴은 기동장에서 우드 골렘을 본 순간 바뀌었다.
“저 골렘들은 수도에서 봤던 거랑은 다르군.”
“그래, 달라. 외부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
“주재료가 다른 모양인 것 같군. 레쟈스 나무인가? 탄력성과 수축성이 높은 아주 질 좋은 목재지. 아주 흥미롭군.”
난쟁이 특유의 탐구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제드는 피식 웃으며 리틀리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게 신호였다.
리틀리는 손을 크게 들어 빛을 터뜨렸다.
그 순간, 기동장 좌우에 서 있던 우드 골렘들이 움직였다.
총 10기의 골렘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음에도 기동장은 전혀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규모가 있는 교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장소였기 때문이다.
쿵쿵 땅이 진동하는 가운데, 마침내 맞붙는 골렘들.
콰앙!
귓전을 때리는 굉음과 흩날리는 흙먼지.
같은 출력의 골렘이 힘 싸움을 벌이자 거의 어느 한 쪽도 밀리지 않는 양상이 펼쳐졌다. 그 모습이 실전을 방불케 한다.
‘나쁘지 않군. 그동안 그냥 시간만 벌인 게 아니라는 걸 알겠어. 양쪽 모두 소규모 접전의 전술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
제드는 골렘의 움직임과 양쪽 진영의 골렘 마법사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서로 유기적인 호흡을 맞추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고, 끊임없이 바뀌어 가는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수준이야. 다만, 우드 골렘의 특성을 활용한 능력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군.’
우드 골렘은 스톤 골렘에 비하면 중량이 가벼운 까닭에 출력이 높아도 힘 싸움은 적합하지 않았다. 다목적성에 맞게끔 다양한 전술전략을 보여주는 게 맞다.
‘아직 그들에게 우드 골렘은 일렀나.’
제드가 차분하게 평가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 안톤은 눈을 한 번 깜빡이지도 않고서 그 싸움의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치열하게 이어지던 교전은 한두 기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균형이 깨졌다.
그렇게 기동훈련은 끝났다.
“이상입니다.”
“대위는 이번 연습 교전의 내용을 어떻게 생각하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골렘의 제 성능을 완전히 뽑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 아는군. 우드 골렘은 다양한 임무에 특화된 골렘이다. 제1 기갑중대의 스톤 골렘이 전면에서 전선을 만드는 전열 골렘이라면 우드 골렘은 다양한 전술적 변수를 만들어내는 게 역할이야. 그 점을 잘 생각하는 게 좋아.”
“옛, 명심하겠습니다!”
피드백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서 안톤이여, 그대는 어떻게 봤나?”
“음. 굉장하군. 확실히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 골렘이라는 마법병기가 이 정도일 줄이야. 발전 가능성은 아직 많군.”
“구체적으로 한 가지 방향성을 제시하자면 어떤가.”
“일단은 병장기겠지.”
안톤은 곧바로 대답했다.
“저 골렘이 무기를 갖게 되면 훨씬 더 놀라운 교전능력을 갖추게 될 거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장갑도 더 발전할 여지가 있을 테지.”
안톤의 눈동자가 열망으로 일렁였다.
제드는 말없이 웃었다.
‘같은 결론에 다다랐군.’
그랬다. 안톤은 전생에 토르가 제국에서 무기와 외부 장갑을 연구하였다. 그의 손을 거쳐 간 골렘은 더 많은 전공을 세우게 되었으니, 적들에겐 악몽 같은 존재가 되었다.
“좋은 의견이야. 결정은 이미 내린 것 같은데,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도 좋아.”
“······기다렸다는 듯한 태도로군. 그대는 내가 이렇게 말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 같단 말씀이야.”
“그게 뭐가 중요하지? 그대와 나의 이해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대는 대장장이로서 능력을 발휘할 곳이 필요하고, 나는 그대의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대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야. 그건 그대도 알 텐데.”
“크흠. 헛소리를 늘어놓기는······.”
안톤은 콧방귀를 뀌며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지만, 콧수염을 씰룩대는 걸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이 난쟁이는 기분 좋은 걸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전생에서부터 그랬다.
곧 안톤이 툭 던지듯 말했다.
“대장간이 필요하다. 아주 큰 대장간이 말이야. 이유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
“물론이다. 준비하도록 하지. 인력도 필요하겠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테고 말이야.”
*
제드는 제3 유산의 실험을 계속하였다.
유산이 어떤 것인지는 확실히 파악했다.
그러나 진짜는 지금부터다.
유산의 설계도대로 만들어진 골렘에 제3의 유산을 완성하는 건 실패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드의 골렘에 제3의 유산만 이식하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기본적인 노심의 마법술식부터 구동술식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골렘 마법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제드의 골렘 마법이었다.
콰아아앙!
공간의 틈에 반쯤 걸린 골렘이 그대로 폭발을 일으키는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공간의 저편에 완전히 들어가도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 완전히 분해가 되거나 짓뭉개져서 쏟아져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쌓이는 건 실패사례뿐이다.
‘쉽지가 않다. 아주 약간의 비틀림이 곧바로 실패로 이어지고 있어. 유산을 이식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벌써 이십여 기에 달하는 골렘이 부서졌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골렘이 부서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초췌한 기색으로 제드는 마나를 일으켰다.
또다시 골렘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드드드드드.
바위들이 들썩거리며 서로 얽히고설키며 형상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흙이 그 사이를 메우기 시작했고, 머잖아 4미터의 거인이 제드의 앞에 나타났다.
라인 급 스톤 골렘.
이제 왕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이 골렘은 ‘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국제적으로 바위를 베이스로 한 스톤 골렘이 여러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이상, 차별된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라인 급 스톤 골렘의 형상이 완전히 갖춰지자, 제드는 그 골렘에 노심을 구축하고 정령을 불러들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해왔던 일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싹.
별안간 등줄기를 내달리는 소름.
‘뭐지, 이 느낌은.’
제드가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드드드드.
아직 정령이 깃들지 않은 눈앞의 골렘이 떨리고 있었다.
제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마나가 급격하게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옆에 따로 분류해두었던 재료가 지금 이 순간 눈앞의 골렘의 발아래로 빨려 오고 있었다.
‘재구축? 오베르 때와 비슷해. 특이점이 발생한 건가.’
그러나 그건 뭔가 이상한 일이었다.
제드는 눈앞의 골렘을 특별하게 만들고자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느낌. 오베르나 아우로렐 때와는 또 다르다.
신경을 긁는 듯한 불쾌감.
‘이건 골렘이 폭주할 때와 비슷한 감각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때보다도 훨씬 더 선명하여 흡사 제드를 찌르는 듯하다는 것이다.
분노, 혹은 살의.
‘어째서지?’
제드가 미간을 모으고 원인을 분석할 때였다.
곧 저편에 널브러진 골렘의 잔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이유는 명확해졌다.
‘······알겠군. 실험으로 골렘이 계속 파괴되면서 깃들었던 정령의 스트레스가 쌓여서 모인 거다. 그리고 그게 나를 향한 분노가 됐다.’
그르르르르르.
한계점까지 출력이 상승하는 노심을 중심으로 골렘의 형상이 바뀌어 갔다. 장갑이 덧씌워지면서 상체가 무거워져서 앞으로 기우뚱 무너지듯 쾅 주저앉았다.
인간의 형상을 본뜬 거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 모습은 흡사 짐승의 그것과 닮아있다. 주둥이를 앞으로 쭉 뻗어나온 형상. 녹색의 안광이 타오르듯 일렁였다.
온몸에 사무치는 적의는 명확히 제드를 향하고 있었다.
‘분노, 살의. 그리고 원망. 슬픔, 고통······. 이렇게나 복잡한 감정이 정령의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니.’
감정의 격류가 점점 더 선명해지면서 역류하듯 제드에게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르르르르르르.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것 같은 짐승의 울음이 귓전을 때릴 때였다.
우우우.
익숙한 울음과 함께 땅이 진동하였고.
콰아앙!
거대한 나무기둥이 바위 짐승을 후려쳐버렸다.
붕 떠올랐다가 바닥을 나뒹구는 짐승형 골렘.
제드는 난입한 골렘을 눈에 담았다.
우우우우.
그 낮은 울음은 평소와는 달리 아주 공격적이었다.
아우로렐.
제드가 일으킨 최초의 골렘이 나뭇가지를 빳빳이 세운 채로 몸을 낮춘 채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
‘아우로렐이 스스로 움직였다.’
제드의 위기에 반응했다는 것이다. 특이점으로 자아가 강해진 골렘의 특징이었다.
아우로렐이 움직인다는 건 눈치챘지만, 이 정도로 과격한 대응을 보이다니.
아우로렐은 지금 저 폭주하는 골렘이 제드에게 명확한 적의를 드러냈음을 알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개입했다.
그르르르르르.
널브러졌던 짐승이 몸을 낮추더니 땅을 쾅 박차고 뛰어올랐다. 바위가 주재료였고 추가 장갑이 더 붙었을 텐데도 기동성이 거의 죽지 않았다.
‘4족 보행으로 각력이 올라간 건가.’
제드가 냉정하게 분석하며 뒤로 물러났다.
연구소의 부지는 아주 넓다. 기동장만큼이나.
즉, 골렘끼리 교전에 들어가도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주군, 저건 아무리 봐도 폭주 같소. 내가 틀렸소?]
“경의 말이 맞아.”
[상황이 더 심각하게 흘러가기 전에 다른 골렘을 투입하는 게 좋지 않겠소?]
“아니, 지켜볼 가치가 있다. 아우로렐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능력을 끌어내는지 알아볼 수 있는 지표가 될 거야. 그리고 내 능력도 점검해볼 수 있을 거다.”
바로 그 순간, 아우로렐의 팔뚝에서 나무줄기가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왔고 이내 거대한 망치의 형상이 되어 달려드는 짐승을 후려쳤다.
그러나 짐승도 외부 장갑을 집중하여 견갑으로 그 공격을 받아내더니 그대로 아우로렐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쿠구구궁.
땅이 갈려나가는 가운데, 아우로렐은 수 미터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밀어붙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촉수 같은 넝쿨을 온몸으로 뿜어내더니 짐승을 포획하듯 붙잡았다.
그르르르르르!
짐승은 날뛰었지만, 애초에 노심의 출력 자체가 다르다.
마석 하나로 만들어진 짐승은 아무리 폭주한다고 해도 한계점이 명확하다. 하지만 아우로렐은 최소 3개 이상의 마석을 엮어서 만든 노심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서 발생하는 출력의 차이는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더욱이.
쿵. 쿠쿠쿵.
어느새 이 주변을 포위하고 서 있는 우드 골렘들. 그 골렘들은 제드가 제어한 게 아니었다.
“장관이로군.”
산왕, 아우로렐이 이끄는 나무 거인들이 왕의 명을 따라서 짐승을 포획하고 있다. 몇 기 되지도 않는 우드 골렘들이건만, 그 광경이 흡사 산맥 전체가 움직이는 듯하다.
‘우드 골렘을 그레지안 급이라고 부르고 있었던가.’
그레지안 산맥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명칭.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으리라.
그르르르르.
바닥에 짓눌린 짐승은 여전히 울부짖고 있다. 제드의 마나를 갉아먹으며 노심의 출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채로 자신을 불사르고 있었다.
제드는 그 앞에 섰다.
요동치는 안광.
포효하듯 벌어진 이빨이 제드를 물어뜯을 듯 사납다.
아우로렐이 흉흉한 안광을 빛내며 손으로 그 아가리를 짓누르려고 할 때였다.
제드는 손을 들어서 아우로렐을 저지했다.
우우우.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다.”
아우로렐의 걱정을 뒤로하고서 제드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래, 알고 있다. 너희를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그건 모두 나의 잘못이다. 너희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잘못을 인정하였다.
그건 진심이었다.
제드는 유산을 자신의 골렘에 이식한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그 실험 속에서 정령이 짓뭉개지는 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골렘에 깃든 정령이 사람처럼 교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슬픔, 괴로움, 분노, 아픔, 상실감 등. 너희가 느낀 무수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게 지금 너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더냐.”
제드가 또다시 한 걸음 다가갔다.
속박되었다고 해도 이제는 짐승의 아가리가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러나 돌의 이빨이 제드를 향하는 일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요동치던 짐승의 녹색 안광이 조금씩 차분해지고 있었다.
그르르.
제드는 이제 짐승의 앞에 섰고, 천천히 손을 뻗어서 골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바로 그 순간, 제드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골렘이 부서지고 짓눌려 붕괴하면서 정령들이 겪었던 고통의 순간이 기억의 격류가 되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큭.”
제드가 낮게 신음하였다.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 금방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서 쓰러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제드는 견뎌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르릉.
짐승의 울음은 온화하게 변해 있었다.
녀석의 속에서 요동치던 기억의 격류를 모두 제드가 받아낸 까닭이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과연, 그 요정이 했던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었나.
짐승을 묶고 있던 아우로렐의 넝쿨이 풀렸고, 우드 골렘이 물러났다.
네 발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짐승형 골렘은 얌전히 제드의 앞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 흉폭하게 날뛰던 그 짐승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모습이었다.
“너의 이름은 지금부터 하운드다.”
제드가 그 골렘의 이름을 붙인 순간, 골렘의 형상이 다시 변화하였다. 외부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두꺼운 장갑이 쿵쿵 떨어지더니 허리가 길어지며 늑대의 형상에 더 가까워진 것이다.
제드는 품에서 마석을 꺼내서 하운드의 코어 부근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이름을 얻어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골렘에겐 더 높은 출력이 필요했다. 제드는 하운드의 그 허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제드 크레인. 내가 이제 너의 주인이다.”
그르르릉.
녀석이 울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운드의 몸 곳곳에 새겨진 마법술식이 영롱한 빛을 내뿜었고.
쩌억 공간이 열렸다.
제드가 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눈앞에 4족 보행의 골렘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
확연히 느껴진다, 그 존재감이.
제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드리웠다.
“나오너라, 하운드.”
골렘을 부른 순간이었다. 공간이 열렸고 어둠 속에서 하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의 저편에 들어갔다가 나온 골렘은 멀쩡했다.
흐흐흐흐.
제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성공이었다. 안타레스가 남긴 제3의 유산이 제드의 골렘에 이식됐다. 무수한 실패의 끝에 비로소 길이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