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64) (64/124)

군비증강1

드드드드.

땅이 진동하였다.

푸른빛이 점멸하며 터졌고, 자욱하게 흩어지는 흙먼지 속에서 제드는 천천히 눈을 떴다.

숲의 풍경.

그러나 주변의 정경이 익숙하다.

다수 골렘들이 지키고 있는 장소.

돌아온 것이다. 그레지안 산맥으로 말이다.

흙먼지가 전부 걷힌 뒤에는 주변 풍경이 모두 들어왔다.

저 멀리 12명의 마법사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국가 마법사 기관의 수뇌부들이었다.

“그동안 별일 없었나?”

“옛, 그렇습니다.”

각 잡힌 모습으로 거수경계를 받은 제드.

“공장의 체계는.”

“광산에서 마석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꾸준한 수량의 정제 마석이 쌓이고 있습니다.”

“좋아, 다른 특이사항은.”

“국가 마법사 희망자들의 지원이 더 늘어났습니다. 마법사들의 수가 많아져서 인원을 배치하는데 다소의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 마법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하지만 아무나 받아서는 안 돼. 국가 마법사는 라이곤 왕국의 정예집단으로 거듭났다. 입관 기준이 전과 같아서는 적의 첩자가 들어오기도 쉽겠지. 걸러낼 기준을 만들도록.”

“옛! 국가 마법사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사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의 발걸음은 어느새 마석 창고까지 다다랐다. 이곳은 기관 부지 중에서도 가장 삼엄한 경비를 자랑하는 장소였다. 여섯 기의 골렘이 주변을 지키는 모습을 보라.

“대위, 이 옆 부지에 예정이 있나?”

“없습니다.”

“좋아, 그러면 이 옆 부지에 새로 건물을 올리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지시를······.”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아우로렐.”

제드가 부르기가 무섭게 쿵쿵 땅을 울리며 다가왔다.

바로 그 순간, 창고를 지키던 골렘들이 12인의 통제도 없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물러났다. 제드가 명령권을 공유해준 것이었으므로 모든 명령의 최우선사항은 바로 제드에게 있었다.

우우우우.

아우로렐이 낮게 운 순간, 우드 골렘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외곽에서 나무를 뽑고 부지를 평평하게 갈아냈다. 그 모든 과정은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엄청나군. 팔이 저토록 자연스럽게 변형되다니.”

“이게 그레지안 급의 감춰진 성능이란 말인가.”

그 광경을 지켜보던 중위들이 저마다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저곳에서 움직이는 우드 골렘은 팔과 다리의 형태를 마음대로 바꿔가면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당연하게도 형태 변환은 전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봐서 알겠지만, 이곳 공사는 나와 아우로렐, 그리고 골렘들의 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대들은 각자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옛, 알겠습니다.”

드드드드.

땅이 거칠게 진동했다.

곧 맨 땅 위로 나무줄기가 무섭게 치솟더니 얽혔다.

그것은 순식간에 십자가의 형태로 가로지르는 뼈대가 되었고, 이내 반구형의 구조를 만들며 거미줄처럼 천장을 메워갔다. 공장을 만들 때와 같은 돔 형태 구조의 건물.

그 과정이 불과 수 시간 안팎 만에 끝났으니, 창고 외부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국가 마법사들은 입을 쩍 벌리고 할 말을 잃었다.

반구형의 건물이 완성된 직후에 제드는 우드 골렘들을 이용하여 창고에 놓인 각종 물자의 상당량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괜히 창고 옆에 건물을 만든 게 아니었다. 이곳은 앞으로 연구소로 쓰일 예정이었다.

‘제3의 유산.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를 파악해야만 해.’

그러기 위해서는 외벽과 내벽의 구조를 더욱 단단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마법이 폭주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재차 보강작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제드는 건물의 중심부에서 마지막 유산을 떠올렸다.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술식도.

지금부터 제드는 그것을 이 시대에 재현할 참이었다.

*

연구소는 사흘 만에 완성됐다.

제드는 외부와 내부를 몇 중으로 보강 작업을 끝마친 뒤에 본격적으로 골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는 게 아니라, 유산에 기록되었던 방침 그대로 말이다.

평소에 제드가 골렘을 만드는 방식과는 달리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마법술식을 전부 다 짜 넣고 진행하는 일이었기에 시간은 다소 걸렸지만, 제드가 골렘을 일으켜세운 건 수도 없이 해온 일이었다.

제드는 눈앞에 있는 골렘을 눈에 담았다.

제1 유산의 설계도와 마법술식으로 만들어진 골렘이었다.

100마력 전후를 오가는 출력의 골렘. 현재 토르가 왕국의 차세대 주력기라고 할 수 있는 골렘의 사양이 바로 이것이었다.

‘100마력 전후의 사양은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정체불명의 발트 테바인이 토르가에 있다. 오스터 쌍둥이 형제도 무시할 수 없고.’

100마력의 노심출력을 더 끌어올려 코어의 개량을 이루어낸다면 그때부터는 만만치 않은 적이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런 적이 되었다.

‘케미트로스 평야에서 골렘의 전투가 전열전의 양상을 보였던 것은 명확하다. 약 20전후의 출력 우위만으로는 압도하는 게 불가능해.’

즉, 시간이 지날수록 월등한 마도공학기술력을 바탕으로 전략적 우위를 가져가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건 자명하다.

제드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토르가 왕국과의 전쟁은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렇다면 싸움의 판도 자체를 유리하게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북부왕국연합을 키워야 한다.’

록시에게 제1 유산을 넘길 때부터 대략적인 계획의 얼개는 잡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끝마쳐야만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칼베이 폐광에서 얻은 안타레스의 유산을 완전히 손에 넣는 것이다.

제드는 골렘의 표면에 드리운 무수한 마법술식에 안타레스의 던전에서 찾아낸 제3의 유산에서 얻은 마법술식을 하나씩 새겼다.

그 과정은 몹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제드는 이 마법술식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와 같다.

기억 속 술식을 그대로 구현하는 과정만 꼬박 수일이 걸렸고, 그것을 다시 검사하는 과정 역시 수일이 걸렸다.

제드는 오직 필요한 재료를 찾을 때를 제외하면 아예 연구소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는 오직 마법의 연구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되었다.”

제드는 마침내 눈앞의 골렘을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골렘의 표면을 빼곡이 채운 마법술식.

제드는 손으로 허공을 저었다.

그 순간, 표면에서 일렁이던 마법술식이 모두 사라졌다.

꿀꺽.

제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그 결과물을 확인할 때가 됐다.

제드가 정신을 집중했다. 눈앞의 골렘은 제1의 유산의 설계도로 만들어진 정통의 골렘이었으므로 제드가 조종하는 골렘과는 달랐다. 명령체계가 몹시도 복잡하였으므로, 한 기씩만 제어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조종법이 안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강력한 장점도 있었으니, 바로 일체감이었다.

현기증 이후에 제드는 시선이 부유하는 것을 느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감각. 그리고 앞에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동기화가 끝난 것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제드는 동기화한 골렘의 제2 마법술식을 가동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눈앞의 공간이 벌어지면서 쩍하고 열린 것이다.

새까만 공간. 제드는 그 공간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곧 주변 풍경이 모두 지워지는 가운데, 완전한 어둠이 도래하였다.

그리고 제드는 일체감에서 벗어났다.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제드는 눈앞을 눈에 담았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골렘이 있었던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다. 꼭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제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연구소의 외곽에 다가가서 주문의 트리거를 외웠다.

“나와라.”

그 순간, 바로 지척의 공간이 쩌억 열렸다. 조금 전과 같다. 그리고 곧 어둠 속에서 어떤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것은 바로 골렘이었다.

열렸던 틈은 닫혔고, 제드는 그 뒤에야 골렘을 확인했다.

틀림없었다.

이건 제드가 만든 골렘이었다. 실험 전에 남겨둔 흔적이 명확히 남아 있었다.

‘공간의 틈 저편에서 머무르다가 돌아왔다는 건가?’

연구소의 중심부에서 이곳까지는 수십 미터. 그 공간을 아무런 제약도 없이 이동해왔다는 얘기다.

제드는 몇 번이고 더 확인했다.

연구소 내부의 넓은 공간을 활용하여 공간의 저편에 골렘을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계속 진행됐다.

얼마나 먼 거리에서 부를 수 있는가.

충분한 공간이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제드는 계속해서 연구를 거듭했고, 그 수백 번의 과정에서 공간에 넣고 부르는 과정은 단 한 번도 실패하는 일이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안정성이었다.

그러나 제드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유산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유산의 설계도대로 만들어진 골렘에만 적용되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디르게 응용할 수 있는 것인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

“각하.”

제드는 눈을 떴다.

연구소 외부에 누군가가 그를 찾아왔다.

퀭한 얼굴로 일어난 제드가 허공을 휘젓자, 그그그긍 연구소 밖으로 이어지는 문이 열렸다.

“대위인가. 무슨 일이지.”

“쉬고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급히 각하를 뵙기를 청하는 이가 있습니다.”

“나를?”

“예, 웬만하면 각하를 귀찮게 해드리는 일은 없었을 테지만, 찾아온 이가 인간이 아니기도 하고 그가 각하의 디바이스를 만들었다고 하는지라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내 디바이스를?”

제드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안톤 라그노푸스.

그가 드디어 제드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어디에 있나.”

기관 본부 건물의 안쪽 접객실.

모든 것이 절제된 듯한 이 공간은 오랜 시간 쓰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삭막하기 짝이 없군.”

땅딸막한 난쟁이는 혀를 차며,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 연기가 퍼져 나가는 가운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타난 인간의 모습에 난쟁이는 미간을 모았다.

“······인간은 정말이지 금방도 변하는군. 이제 고작 1년 반정도 지난 것 같은데 말이야. 마지막 모습은 분명히 어린 인간이었는데.”

“그랬었지. 그대는 똑같군. 안톤 라그노푸스.”

제드는 유쾌하다는 듯한 태도로 그의 앞에 앉았다.

“이 나라가 아주 시끄러워졌어.”

“그런 시대지.”

“그리고 제드 크레인. 그 이름이 아주 지겹게 들리더군.”

“그런 것치곤 생각했던 것보다 늦게 찾아왔군. 훨씬 더 빨리 찾아왔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흥. 내가 찾아온다는 건 이미 확정된 일이라는 거냐?”

“그래, 그건 시간문제였어.”

제드의 단호한 확신에 안톤이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크하핫 웃었다.

“그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는 여전한 인간이로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기도 한 법이지.”

“끌끌. 좋아. 쓸데없는 잡담은 집어치우자고. 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다.”

“알고 있다. 골렘이 알고 싶은 거겠지.”

꿈틀.

안톤의 눈썹이 휘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지만, 이 눈앞의 인간은 그를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 골렘을 제공해주지. 알고 싶은 만큼 마음껏 살펴봐도 좋아. 대신에 안톤, 그대는 이곳에 머물면서 병기관으로서 일해줘야겠다.”

“나를 네 녀석의 종으로라도 부리겠다는 거냐?”

“협력관계라는 거다. 인간사회가 책무와 직위, 그리고 계급으로 나뉜다는 건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대가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자리가 필요하다는 거다.”

“말은 잘하는군. 난 거절할 수도 있어. 그 골렘이라는 전쟁병기가 이 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옆 나라든 아래 나라든······ 난쟁이의 손기술을 원하는 곳은 넘치지.”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안톤, 그대는 이곳에 왔다.”

“······.”

제드와 안톤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안톤이 커다란 코로 연기를 내뿜었다.

“일단은 그 골렘이라는 걸 내 두 눈으로 보고 판단하겠다.”

“얼마든지. 리틀리 대위.”

“옛, 각하.”

“지금부터 기동장으로 가겠다. 준비해두도록.”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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