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63) (63/124)

폐광5

*

동녘에서 푸르스름 해가 밝아온다.

나라가 망한 이후로 노숙은 하루이틀 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익숙했다. 하지만 사나웠던 전날의 새벽은 돌이켜봐도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불침번을 선 록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온몸에 묻은 검댕과 탄내, 귓전을 때리는 고함과 비명. 그 전투의 현장은 지난날 고국을 뒤로하고 도망치던 날을 떠올리게 한다.

‘해낸 건가?’

록시는 자문해보았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실패다.

그들이 끝끝내 얻고자 했던 건 얻지 못했다.

폐광을 습격했던 건 골렘의 제작도, 혹은 설계도를 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솟구치는 화염 때문에 폐광에 무엇이 있는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정말로 안타레스의 유산인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부 다 실패했다고는 할 수 없다.

록시의 시선이 한곳에 쏠렸다.

나무에 기댄 채로 눈을 감고 있는 마법사가 있었다.

카일리 자이러스.

‘반은 성공인가?’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알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정체가 뭘까? 그 불꽃을 넘어서 폐광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도 그렇고, 골렘을 조종했던 것도 그렇고.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 그는 연합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는 거.’

그렇기에 오랜 시간 준비하였던 계획이 실패라는 결론에 다다랐음에도 록시는 실망하지 않았다.

저 두 사람과 연을 맺었다는 것. 그게 앞으로 그들에게 엄청난 힘이 되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조금 전까지 눈을 감고 있던 마법사가 눈을 똑바로 뜨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는 가운데, 그는 따라오라는 듯 숲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가 우거진 곳. 그곳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골렘이 있었다. 폐광에 배치되었던 적 골렘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참이오.”

“글쎄. 생각 중.”

그 대답에 제드가 고개를 돌렸다.

빛이 스며들지 않은 숲의 어둠 속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빛나는 푸른색 눈동자. 마성적인 눈이다. 록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 아무것도 묻지 않소?”

“그럴 겨를이 없었어. 그곳의 상황이 워낙에 급했잖아. 그리고 물어보면 대답은 해줄 의향은 있는 거야?”

“그럴 의향이 없었으면 같이 움직이지 않았겠지.”

“하긴 그도 그렇겠네.”

록시는 그렇게 말하면서 골렘을 눈에 담았다.

몹시도 증오스러운 전쟁병기였지만, 동시에 앞으로의 투쟁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골렘은 반드시 필요했다.

“카일, 안타레스의 유산이 정말로 그 안에 있었어?”

“그렇소.”

“그랬군. 그럼 그걸 얻은 거야?”

“일부는 그렇소.”

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골렘을 가리켰다.

“설계도와 조종법. 그걸 당신에게 알려주겠소. 이게 앞으로 북왕국 연합이 토르가로부터 독립하는 데에 힘이 될 것이오.”

“고마운 말이군. 근데 어쩐지 그 말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 것처럼 들리는데. 내 착각일까?”

“아니, 정확하게 짚었소.”

록시가 미간을 모았다.

“어째서? 에이부르크 왕국을 다시 세우고 싶지 않은 거야? 이 골렘과 자크 경의 실력. 그리고 당신의 지식과 지혜를 하나로 모은다면 우리는 해낼 수 있어.”

“유감이지만, 우리의 여정은 여기까지이오. 나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소.”

“······.”

록시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너무 단호한 까닭에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통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게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거야?”

“나는 이름을 버렸소. 카일 자이러스는 죽었단 말이오.”

“······.”

록시는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알겠어. 이해는 안 되지만, 우리와 함께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거겠지. 대신 한 가지만 말해줘. 우리가 앞으로 적으로 만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묻는 록시의 눈빛이 무거웠다.

제드와 자크가 왕정의 편에 서게 된다면······ 그들의 싸움은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 짐작도 하기 어려웠다.

“세상 일이란 걸 간단히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는 법이나, 그대가 북왕국 연합이라는 독립이라는 이념을 이루기 위해 싸워나간다면 우리는 같은 편에 설 가능성이 높소. 가까운 시일 내에 그렇게 되겠지.”

그 말에 록시는 언제 심각한 표정을 지었느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거면 충분해.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과 적으로 만나는 건 정말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거든.”

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두 사람의 거리가 바로 코앞까지 좁혀졌다.

록시는 제드를 우러러보았고, 제드는 그런 록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곳에서 얻은 것을 기억으로 전달하겠소.”

“그런 고등의 마법까지 할 수 있단 말이야?”

“양피지에 적어서 남길 정도로 만만한 정보가 아니오.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도 않을 거고, 제법 머리가 아플 것이오.”

“······아픈 건 견딜 수 있어.”

“좋소. 견디시오.”

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록시는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제드의 몸에서 은은하게 마나가 개방되었다. 그것은 록시에게는 이제 제법 익숙한 마나 패턴이었다.

그러나 편안함은 잠깐이었다.

파지직!

별안간 머릿속에서 벼락이 터지는 듯한 감각.

록시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가 딱딱 부딪치는 가운데, 제드의 눈동자가 싯푸르게 빛났다.

안타레스의 유산에 존재하였던 첫 번째 마법인 골렘의 설계도에 관한 정보가 격류가 되어 그녀의 머릿속으로 직접 꽂히고 있었다.

록시가 몸을 벌벌 떨더니, 이내 코피를 뚝뚝 흘렸다.

2써클 남짓의 마법사인 그녀가 받아들이기에는 워낙에 어렵고 방대한 마도공학의 산물인 까닭이다.

자칫하다가는 그대로 정보의 격류에 휘말려서 백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제드가 그녀의 한계점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차례대로 그 정보를 그녀의 안에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골렘의 형상과 크기에 이르는 정확한 수치부터 각 구동계를 이루는 절묘한 마법술식. 가장 중요한 심장부인 노심의 구체적인 해부술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골렘의 조종법까지 모두 전달하였다.

그 일련의 정보는 모두 칼베이 폐광 아래에서 접했던 제1의 유산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었다.

이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100마력 상당의 출력을 자랑하는 골렘을 만들어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준비할 수만 있다면 토르가 왕국조차도 그들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으리라.

손을 떼고 물러나는 제드.

록시는 초점이 없는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정보 때문에 생물로서의 최소한의 기능만 하고 있을 터였다.

쿠웅.

제드가 잠들어있던 골렘을 움직여서 록시의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게 하였다.

“이건 작별선물이다, 록산느 리베라. 내 이름을 기억해라. 나는 제드 크레인이다.”

록시는 원하는 것을 얻었고, 그건 제드도 마찬가지다.

제드는 그녀를 뒤로하고서 숲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머잖아 그곳으로 록시의 일행이 달려왔다. 조금 전 골렘의 진동 때문이었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골렘에 다가온 그들은 곧 록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이. 록시!”

트릭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손을 뻗으려고 할 때, 버키가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트릭스, 건들면 안 돼.”

“왜 건들면 안 되는데.”

“몰라. 근데 지금 록시는 함부로 건들면 안 돼.”

“쳇.”

트릭스는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지만, 버키의 말을 따랐다. 때때로 버키의 말은 놀랍도록 잘 들어맞곤 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 녀석들은 어디 간 거지?”

트릭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카일과 자크의 모습이 주변 어디에서도 보이지가 않았다.

“······아까 불꽃 속에서 나타난 것도 그렇고, 정말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군. 대체 그 녀석들 정체가 뭐야? 진짜 에이부르크의 사람은 맞긴 한 거야?”

*

제드는 숲을 따라서 위틀리로 돌아왔다.

위틀리는 한창 칼베이에서 있었던 화재와 전투에 관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거기 정말로 유산이 있었던 거 아니야?”

“모르지. 근데 확실한 건 거기 뭔가가 있었다더군. 별안간 사방에서 불꽃이 타올랐다잖아.”

“으음, 그 자리에서 100명도 넘게 죽었다던데······.”

“저주래도! 갑자기 눈알이 뒤집혀서는 피아를 식별할 수가 없게 됐다고 하잖아. 거기 생존자한테 들었는데, 갑자기 주변 풍경이 바뀌면서 주변에 있던 자들이 몬스터로 보인다는 거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엔 그런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 사람들을 지나서 제드는 정보 길드에 찾아갔다.

위틀리의 정보 길드는 꽤 유명했다.

“무슨 정보를 원하십니까.”

“안타레스의 유산.”

“으음, 그거라면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그야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지요. 정보 길드에서 파는 건 정확한 정보뿐입니다. 뜬소문만 무성한 정보는 팔아봐야 신용에 문제가 될 뿐입니다. 더군다나 바로 전날에 칼베이에서 일어난 화재와 관련된 이야기 때문에 온갖 정보가 뒤섞여서 더 알 수가 없습니다.”

“좋아, 그럼 다르게 묻지. 얼마 전의 칼베이의 안타레스의 유산이 있다는 정보는 유력한 정보였나? 답변에 대한 대가는 지불하지. 내가 알고 싶은 건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뜬 소문을 포함한 정보 길드의 분석이다.”

정보 길드의 사내는 입맛을 다시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칼베이 폐광에 관한 정보는 뜬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갑자기 안타레스의 유산이 그곳에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게 이 위틀리를 중심으로 퍼진 이야기거든요. 아마도 북왕국의 반란세력이 다른 의미로 일을 도모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입니다만.”

그 대답에 제드는 턱을 매만졌다.

‘위틀리의 정보 길드에서조차도 정확한 정보를 모르고 있다는 얘기군.’

“다른 정보는 없나? 안타레스의 유산에 관한 정보.”

“하아. 요즘엔 그 안타레스의 유산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끊이지가 않는군요. 정보가 아니라 소문의 영역으로 가면 정말 온갖 얘기가 다 있습니다. 하지만 전부 다 근거가 없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런 건 정보 길드에서 팔 게 아닙니다.”

그 대답을 끝으로 제드는 거리로 나왔다.

이걸로 한 가지는 명확해진 셈이었다.

‘정보 길드라고 해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게 아니야. 그리고 혹 유산이 더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는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해.’

제드가 무작정 토르가 왕국으로 넘어와서 안타레스의 유산에 접촉하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돌이켜보자면 그 모든 것은 반쯤은 우연이나 다름없었다. 우연과 전생의 기억이 맞물리면서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 것이었다.

‘다른 접근이 필요하겠어. 발트 테바인의 행보를 추적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게 아니면 전생의 기억을 되짚어보거나. 발트 테바인과 관련한 다른 중요 정보가 있던가? 혹 오스터 쌍둥이와 관련한 정보나.’

제드는 차분히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외에 정확히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이렇게 계속 생각하고 있어도 의미가 없는 일이다. 모든 열쇠는 발트 테바인에게 있다. 안타레스의 유산을 찾아낸 것도 놈이었고, 그것을 세상에 발표한 것도 역시 놈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의 용무는 끝났다.

제드는 돌아갈 때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지금은 적진에서 발트 테바인의 행보를 좇고 있을 때가 아니다. 손에 넣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할 때다.

“어? 외눈박이 사냥꾼.”

“또 숲에 가시오? ”

동부 검문소에서 병사들이 제드와 자크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그들의 말에 제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할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도 느꼈지만, 과묵한 사람이로군.”

“분위기가 좋잖아. 딱 봐도 얼마나 강해 보여.”

“하기야 외눈박이를 아무나 잡는 게 아니지.”

병사들의 관심은 곧 다른 주제로 옮겨갔다.

제드와 자크는 숲의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길잡이들이 잘 다듬어 놓은 길이 아니라, 무작정 더 깊숙한 곳을 향해서 말이다. 이제 어떤 몬스터가 나타나서 그들을 습격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이 숲 일대의 왕이었던 외눈박이를, 자크가 너무도 손쉽게 해치웠기 때문이다. 그 피비린내는 자크의 갑옷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새로운 숲의 왕에게 반기를 드는 존재는 없었다.

해가 저물었을 때, 제드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인간이 아직 다다르지 못한 미지의 땅.

공간이동마법진이 새겨진 땅에 다다르자, 3기의 우드 골렘과 10기의 아이언 골렘이 제드를 반겼다.

우우우우.

“돌아가자, 아우로렐.”

제드가 마법진 위에 올라 마나를 개방했다.

곧 흙에 덮여서 모습을 감췄던 마법진이 싯푸른 빛을 발산하였다. 마법진 위에 놓인 마석이 반응을 일으키며 점차 마법진 가동에 충분할 정도의 마나가 압축을 거듭했다.

고오오오.

대기가 요동쳤고, 땅이 진동하였다.

머잖아 푸른빛이 점멸하였고, 광풍이 밀어닥친 후에 그곳엔 흙먼지만이 흩날릴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백 킬로미터 남서쪽으로 떨어진 장소.

토르가 왕국의 수도 피테르노. 그 중심부에 있는 마탑의 최상층부. 하늘 높이 세워진 피뢰침과 같은 형상의 마나집적기가 무섭게 웅웅댔다.

그 앞에 선 마법사는 수치화된 마나를 읽었다.

“틀림없군. 공간이동마법진이 발동했어. 설마 했는데.”

번쩍.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 사이로 벼락이 번쩍이면서 마법사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이름은 발트 테바인이었다.

“누구냐, 너는.”

그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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