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4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
더없이 넓은 공간에 내던져지는 듯한 착각.
그 영역에는 위아래와 좌우가 없다.
제드는 무한한 공간의 감각을 느꼈고, 그 너머로 펼쳐진 방대한 마법술식을 보았다.
‘이건 골렘의 설계도군.’
제드는 그것의 정체를 꿰뚫어보았다.
골렘을 움직이는 구동계 술식부터 그 핵심이 되는 조종의 술식과 골렘을 움직이는 출력의 근간인 노심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전생의 제국 골렘의 기본 사양에 해당하는 골렘이었다. 제드가 연산제어술식을 도입하지 않은 제국 골렘의 기본 사양이 딱 이러했다.
‘과연, 이곳이 시작이었나.’
그 순간, 땅이 바닥에 닿았다.
풍경은 다시 푸른 초원의 평야로 돌아와 있었으니, 눈앞엔 거목이 있었다. 그 아래에 있는 소년의 눈빛이 반짝였다.
“너 정말 신기하구나? 가디언을 이미 알고 있잖아.”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
“그것까지 알고 있단 말이지.”
금발 소년은 흥미롭다는 듯 히죽 웃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또다시 세계가 반전되었다.
무한한 공간의 영역 속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광활하고 복잡한 마법술식. 그것은 공간과 공간을 접어서 이어붙이는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등의 마법술식이었다.
‘역시 공간이동마법진도 유산 일부였군.’
발트 테바인이 연구한 결과가 차례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다만, 이 공간이동마법진은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게 아니었다. 제드가 알고 있는 공간이동마법과 비교하면 몇 가지 틀에 해당하는 것들이 빠져 있다.
‘발트는 이것을 현실적인 마법으로 바꾸는 과정에 긴 시간을 쏟았던 건가. 미지에 길을 밝히는 과정이었겠어. 불과 3% 정도를 더 채워넣는 과정이라고 해도 말이야.’
그리고 또다시 돌아왔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골렘과 공간이동. 이게 이곳에 존재하는 안타레스가 남긴 유산의 정체인가?”
“정말로 신기한 인간이네. 이건 그대가 도달한 마법의 수준으로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야. 그대들의 수준으로 따지자면······ 음, 그래. 최소 8써클 이상의 영역에는 도달해야만 하지.”
8써클. 인류역사상 그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는 마법사는 없다. 애초에 6써클이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일컬어지는 지금, 7써클도 요원하기만 한데 8써클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근데 넌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였어. 아니, 아니지. 반응을 보자면 너는 이미 이걸 알고 있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것조차도 기적의 영역인가?”
“대답해야 하나?”
“응? 그래, 그건 맞지. 대답은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다만, 먼저 선결된 두 가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한다면 세 번째를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거든.”
“세 번째라고?”
제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전생의 극동연구소에서 발표된 마법은 이동마법진까지였다. 그런데 그 이후에 다른 무엇인가가 더 있단 말인가?
“그건 직접 보도록 해.”
딱.
소년은 다시금 손가락을 튕겼다.
반전한 세계. 그곳엔 한쪽에 골렘의 설계도와 마법술식이 있었고, 반대편에는 공간이동의 마법술식이 존재하였다.
‘이외에 뭐가 더 있다는 거지?’
제드가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별안간 그 두가지 술식이 얽혔다.
제드가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골렘의 마법술식. 그 사이사이의 공간으로 공간이동의 마법술식이 끼어들면서 전혀 다른 술식으로 변하기 시작한 까닭이다.
상상조차도 해보지 못한 술식의 보완.
아니, 이 정도면 전혀 다른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기존에 제드의 상식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그것은 골렘과 공간의 개념을 알지 못하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마법이었다.
“허억!”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는 제드.
어느새 그의 이마엔 식은땀이 가득하였다.
“아하. 이것까진 몰랐구나?”
“······.”
제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의 당혹스러운 기색은 금세 사라졌고, 어느새 침착한 평소의 모습이다.
“혹 다른 게 더 있나?”
“아니, 너는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손에 넣었어.”
“지식은 얻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군. 너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지. 아니, 못하는 건가?”
“맞아. 나에게 그럴 권한은 없어. 나는 정해진 정보만을 전달하게 되어있으니까. 나는 고도로 잘 만들어진 마법에 불과해. 정해진 메시지를 다양한 형태로 하는 것에 불과하지.”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
“그러면 앞으로도 누군가가 이곳에 도달한다면 너는 또 같은 정보를 전달하겠군. 골렘. 그리고 공간이동마법진을 말이야. 그리고 그걸 이해하면 세 번째를 줄 것이고.”
“맞아.”
“좋아, 이제 알고 싶은 건 다 알았어. 이곳에서 나가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건가?”
“응. 돌아가는 길엔 더는 아무것도 보지 않게 될 거야.”
“그거 고맙군.”
“잘 가. 너희 인류 역사에 더 큰 발전이 있기를 바랄게.”
소년은 씩 웃으며 손을 저었다.
지금 이곳과 같은 던전 형태의 유산이 얼마나 더 있는지, 제드는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저 사념의식엔 그 답이 없을 테니까.
제드가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눈앞에 펼쳐졌던 초원 평야의 풍경이 사라졌다.
이곳은 처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와 같은 공동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드가 지나온 길에는 희미한 빛이 드리워 있었다.
제드는 왔던 길을 따라 나갔다.
비스듬히 열린 문밖으로 나와서 얼마나 걸었을까.
우뚝 그 자리에 멈춰선 제드.
고개를 돌려 비스듬히 열린 문을 눈에 담았다.
‘발트 테바인은 세 개의 유산을 모두 손에 넣지 못했다. 아니, 공간이동마법진조차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겠지. 지금 놈이 완전히 손에 넣은 건 골렘의 설계도 하나뿐이다.’
제드는 확신하였다.
만약, 자신이 발트 테바인이었고 세 가지 유산을 모두 손에 넣었다고 한다면 폐광을 이런 상태로 계속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럴 이유가 없다.’
풀지 못한 문제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발트 테바인은 이곳을 남겨둔 것이다. 그리고 숨기고 지키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게 우연히 발견된 것이고.
그 순간, 제드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렇다면 이곳은 더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골렘과 공간이동마법진 둘 다 엄청난 수준의 마법이다. 하지만 마지막 마법은 더더욱 그렇다.
고오오.
제드가 마나를 개방하면서 로브가 펄럭였다.
순식간에 허공에 마법술식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술식이 밖으로 뻗어 나가며 술식의 크기를 키워나갔다.
드드드드.
마나가 압축에 압축을 거듭하면서 공기가 요동쳤다.
이 마법은 제드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폭발계 마법이었다. 연산제어술식으로 복잡하게 얽힌 마법은 연쇄폭발을 일으키리라.
‘그 누구도 이 유산에 접촉할 수 없어야 한다.’
저 문 너머에 존재하는 마법은 이 시대의 마도공학의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선 마법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마법의 결과물이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조차도 가늠할 수가 없는 상황.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것이 앞으로 많은 것을 바꾸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제드는 품에서 마석 두 개를 꺼냈다. 손톱보다도 작은 두 개의 마석을 타이머에 맞춰 연결한다. 마침내 마법이 완성됐다.
제드는 마나를 갈무리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서 올라갔다.
지상을 향해 나아갈수록 매캐한 연기가 밀려드는 가운데, 제드는 바람을 일으켜 공기를 밖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제드의 신경은 저 아래의 던전에 쏠려 있었다.
‘지금의 내 마법만으로는 던전을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할 거야. 하지만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자체를 완전히 날려서 매장하는 건 가능하다.’
던전은 상당히 깊숙한 곳에 있었으므로 그걸 다시 찾아내는 데에는 아주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어쩌면 운이 좋아서 아예 찾지 못할 수도 있을 테고.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밀려드는 검은 연기의 너머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상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때가 됐다.
딱.
제드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머잖아 땅 깊숙한 곳부터 무시무시한 굉음이 터졌고, 그것은 연쇄적으로 몇 번의 굉음을 더 터뜨렸다. 땅은 무너질 듯이 요동쳤고, 머잖아 폐광은 안에서부터 무너져내렸다.
콰르르르르!
마침내 폐광의 입구까지 전부 무너져내렸고, 그 안에서부터 시뻘건 불꽃이 소용돌이치며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
천재지변.
그 광경은 폐광의 밖에서 보자면 그렇게밖에 안 보였다.
그들은 유산을 노리는 자요, 지키려고 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땅이 진동하며 폐광이 무너져내리고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지금 더는 싸우려고 하는 이는 없었다.
“······안타레스의 저주야.”
“히익! 비켜. 다 비키라고!”
공포는 순식간에 전염됐다. 한둘이 도망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솟구치는 불꽃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록시 일행이었다.
“안타레스의 유산, 유산은 어떻게 된 거야!”
록시가 착잡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런 그녀를 일행이 붙잡았았다.
“진정해, 록시!”
“저 안으로 들어가면 죽는다고!”
“이제 다 왔는데······.”
록시는 일그러진 얼굴로 입술을 짓깨물었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 긴 시간 준비하였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 남은 건 유산을 손에 넣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그 목전에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록시,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은 물러날 때야.”
“트릭스 경의 말대로야. 록시, 일이 너무 커졌어.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빠져나가야만 해.”
주저앉았던 록시가 땅을 몇 번이고 내리치다가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말이 옳다.
지금은 절망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록시가 자신의 얼굴을 짝하고 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너울거리는 불꽃의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은색 갑주의 기사를 눈에 담았다.
자크.
바로 그 순간, 폐광으로 들어간 카일을 떠올린 록시다.
“······카일은 어떻게 됐지?”
“유감이지만, 죽었을 거야. 조금 전의 불꽃을 봤잖아. 안에서 뭔가가 잘못된 모양이야.”
록시는 미간을 모았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정을 거의 드러내는 법이 없었던 그의 얼굴이 지금도 선명했다.
‘그가 죽었다고?’
앞뒤 정황을 보자면 그게 맞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게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크 역시 담담하게 너울거리는 불꽃을 지켜보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봐, 자크 경. 안 된 일이지만, 그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여길 벗어나야 해.”
트릭스가 자크에게 말을 걸었지만, 자크는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젠장······. 말을 들을 생각도 없는 것 같군. 충격이 큰 모양인데, 어쩔 수 없어. 여기서 더 미적대다가는 다 죽을 수도 있다고. 록시, 어서 가야 해!”
트릭스가 다시 재촉했을 때였다.
쿠웅.
별안간 땅이 진동했다.
“이 소리······.”
이건 조금 전의 폭발과 함께 발생했던 진동과는 달랐다. 진원지가 훨씬 가까웠다.
“빌어먹을. 골렘이야!”
그들이 다급히 소리치며 록시를 잡아끌었다.
“록시!”
“잠깐! 잠깐만.”
“머뭇거릴 시간 없대도!”
록시는 가만히 서서 너울거리는 불꽃 너머를 보았다.
그때, 타오르는 나무를 무너뜨리며 불쑥 4미터의 새까만 바위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웅.
골렘이었다.
“록시!”
“적이 아니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적이 아니라고!”
록시는 확신했다.
마나 패턴. 저 골렘에게서 카일의 마나 패턴이 느껴졌다.
곧 불꽃에서 완전히 나온 골렘이 천천히 무릎을 꿇더니, 움츠렸던 팔을 풀었다. 그러자 품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검은 로브의 마법사. 그는 바로 제드였다.
“세상에······.”
록시 일행 전원은 할 말을 잃었다.
저 화염 속에서 살아 돌아온 것도 놀라울 지경인데, 심지어 적의 골렘을 조종하면서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