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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61) (61/124)

폐광3

*

꽝!

한계까지 다다른 오러가 쪼개지면서 충격파가 발생하였다.

붕 떠올랐다가 바닥을 끌며 자세를 다잡는 사십 대의 기사. 그의 얼굴엔 난색이 역력하였다.

‘이놈, 도대체 정체가 뭐냐.’

벽.

눈앞의 이 거구의 존재는 그렇게 느껴졌다.

어둠 속, 은색갑주를 두른 거구의 존재. 기사로 보이나, 정체는 알 수가 없었다.

검술로는 일찍이 그 상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갖췄던 페이오드였다. 그의 실력이 일정한 수준에 오른 뒤로는 지금껏 그의 검술을 받아낼 정도의 실력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 은색의 기사는 뭔가가 달랐다.

그는 아무리 빠른 검격에도 대응하였고, 힘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오러를 휘감아 쏟아내는 강격조차도 받아냈다.

‘대체 어디에서 이런 실력자가 나타났단 말인가.’

페이오드가 칼자루를 꽉 쥐다가 미간을 모았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조바심을 느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이건 불꽃의 열기 때문이다.’

숲을 불태우며 솟구치는 불꽃의 기세가 강렬했다. 이런 기세라면 이 일대의 모든 숲을 다 불태우고 말리라.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름이 무엇이냐.”

페이오드는 다시금 물었다. 적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미 그는 이 질문을 처음에도 했다.

“끝까지 말하지 않겠다는 거군. 좋다. 더는 묻지 않으마. 하지만 지금부터는 또 다를 것이다.”

페이오드가 눈을 부릅떴다. 개방된 마나가 그의 전신의 근육을 통해 개방됐다. 폭발하듯 달려나가는 그의 신형이 바람을 갈랐고, 쏟아지는 칼은 섬광의 궤적을 만들어냈다.

꽝!

다시금 오러를 머금은 칼끼리 충돌이 일어나면서 발생한 충격파에 주변에 옮겨붙던 불길이 한꺼번에 사그라졌다.

페이오드의 검이 가속에 가속을 더했다. 푸른빛의 잔영이 그의 칼끝을 따라 분열하며 상대를 노렸다. 이번에야말로 베어버리겠노라는 필살의 의지.

그러나.

꽝!

횡으로 불쑥 파고드는 묵직한 검격.

번쩍 떴다가 바닥을 나뒹굴며 쓰러지는 페이오드.

“커헉!”

피를 왈칵 토하는 그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역력하다.

‘어떻게?’

이해가 안 됐다. 그렇게 빠르게 쏟아낸 검이 그토록 간단히 막혔다는 것도 그랬고, 저렇게 거대한 대검이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파고들었는지도 이해가 안 됐다.

페이오드는 자신의 복부를 보았다. 칼끝에서 솟구친 오러가 헤집은 상처가 흉측했다.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내장이 곤죽이 됐으리라.

절그럭.

갑주의 이음새가 부딪치며 나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든 페이오드는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내가······ 물러났다고.’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페이오드의 얼굴이 악귀의 그것처럼 일그러졌다. 그건 어떤 이유에서든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끝났군.”

일렁이는 화염의 저편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트릭스가 그렇게 말했다.

실력의 차이는 명확했다.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무모하게 덤벼든 페이오드는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하군, 자크 경은.”

“······저 정도면 마스터 아닐까요.”

록시의 곁을 지키는 동료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록시에겐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항상 냉정하였고 흐트러짐이 없었던 페이오드.

그가 지금 저 불꽃 속에서 피를 흩뿌리는 모습은 통쾌하면서도 어쩐지 몹시도 씁쓸했다.

“록시, 괜찮은가?”

“괜찮아. 그냥 좀 생각이 많아졌을 뿐이야.”

그러는 사이, 페이오드는 이제 걸레 짝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왼팔을 잃고 복부부터 가슴팍을 가로지르는 긴 상처에 죽어가고 있다.

“잠깐만 자크 경. 잠시만 시간을 주면 안 될까.”

페이오드를 끝장내기 위해 다가가는 자크의 앞을 막아선 록시. 자크는 그 거대한 대검을 붕 휘두르더니 어깨에 얹더니 가만히 기다렸다.

“고마워.”

록시는 그렇게 말하더니 페이오드를 눈에 담았다. 빛을 잃어가는 눈동자가 그에게 죽음이 성큼 다가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페이오드 경.”

록시가 그를 불렀다.

그 부름에, 그의 눈동자에 일말의 빛이 드리웠다.

핏발이 선 시선이 록시에게 향했다.

“······.”

페이오드가 거친 숨을 토하는 가운데, 록시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대가 왕국을 배신했나? 지금이라도 그걸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따위 것들은 모두 공허한 울림일 따름이다.

“고국을 버린 자에게 미래는 없는 법이야.”

록시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페이오드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무수한 말이 입가를 맴돌았으나, 그것은 입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에서 흩어져갈 따름이었다.

그리고 곧 그의 몸으로 대검이 꽂혔다.

불길은 점차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고, 소요사태는 좀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

“자크 경, 그는 어디에 있지?”

록시가 뒤늦게 물었다.

그러자 자크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세차게 너울거리는 불꽃의 저편. 그곳엔 폐광이 있었다.

록시가 미간을 모았다.

“혼자서 들어갔다고······?”

*

제드는 폐광의 안쪽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폐광의 밖에서 들려오던 소음은 어느새 잦아들었다.

어느새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것이다.

폐광 곳곳에는 과거의 적들이 보였다. 잘 다듬은 길목과 횃불. 부서진 수레 따위가 한쪽에 박혀 있었다. 길을 잃거나 할 일은 없었다. 막힌 길에는 다 표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드는 계속 길목을 따라 내려갔다. 그렇게 깊숙한 곳에 다다랐을 때였다.

희미하지만, 마법의 흔적이 느껴졌다.

환각.

뭔가가 감춰져 있었다.

곧 제드가 마법을 펼쳐 눈가를 훔쳤다.

그 순간, 새로운 길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별안간 지금까지의 길목과는 달리 널찍한 통로가 나타났다.

‘숨겨진 공간이다. 이곳은 고위 마법으로 만들어졌어. 땅을 깎아낸 게 아니라 형태 그 자체를 바꿨어.’

제드가 통로의 형상을 지켜보며 감탄였다.

그 길의 끝에 거대한 문 따위가 있었다.

‘이것이 안타레스의 던전.’

제드가 경이롭다는 표정을 했다.

이 거대한 문에 음각으로 새겨진 것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 마법술식이었다.

다양하고도 복잡한 마법술식은 제드조차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몇 가지의 마법이 맞물려있는 것인지조차 알기 어렵군. 이 마법을 풀었단 말인가?’

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이미 풀려버린 마법은 그 순간, 기능을 상실하였다.

‘이건 뭐지?’

제드가 문을 살피다가 어떤 흔적을 발견했다.

문의 마법술식에 희미하지만 뭔가가 묻었음을 파악했다.

마나다.

마나패턴이 느껴진다.

‘이건 피다. 하지만 보통 피가 아니야.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피에는 이토록 강력한 마나 패턴을 암호처럼 새겨넣을 수 없다.’

바닥, 그리고 벽.

제드는 그 마나 패턴의 흐름을 찾다가 이내 그것이 문 중심부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과연, 피를 통해 문을 열었다는 건가?’

앞뒤 정황을 보자면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할 터인데, 이해가 안 되는 건 어떻게 피에 이런 마법과 같은 방대한 정보를 담을 수가 있느냐였다.

‘이걸 문을 연 자는 인간이 아니다. 발트 테바인은 역시 인간이 아니었던가.’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전생에도 거의 늙지 않았던 모습.

그리고 전생과 이번 생 모두 유산과 긴밀하게 연관된 사실까지 미루어 짐작해볼 때,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짐작하는 건 썩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놈은 뭐지? 드래곤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젓는 제드.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발트 테바인이 정말로 드래곤이라고 한다면, 그 절대적인 전설속 존재라고 한다면 굳이 안타레스의 유산 따위를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드래곤은 신적 존재에 한없이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드래곤과 관련된 존재라는 건 틀림없다.’

연구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제드는 그 희미한 흔적들을 잘 모아서 작은 주머니에 담아서 마법으로 봉인하였다. 그리고 살짝 열린 문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문 너머의 공간은 무한히 펼쳐져 있는 공간 같았다.

‘공간이 왜곡되어 있군. 어디서부터 어떻게 건드렸는지도 모르겠어. 엄청나군.’

제드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희미하게 드리운 길을 따라 나아갈 때였다.

별안간 땅이 쩍하고 갈라지면서 몸이 쑥 꺼지는 듯한 감각.

그러나 제드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마법의 환각이란 것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정교하지만, 그뿐이다.’

제드의 정신세계는 이 정도에 흔들릴 정도로 얕고 좁지 않았다. 몇 걸음 더 나아갈 때마다 끊임없이 그런 환각이 연이어 제드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제드의 눈동자는 그저 고요할 따름이었다.

바닥이 꺼지고, 불꽃이 치솟았으며 물이 차올라 숨이 턱 막혔고,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들어 몸을 꿰뚫었다.

걸음을 나아갈 때마다 모습을 바뀌는 환각은 점점 더 현실처럼 변해갔다. 마치, 단계를 높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모두 마법의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놀랍게도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실제처럼 통증을 일으켰다.

‘알고 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군. 이건 그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세계를 갖추었는가를 가늠하는 지표, 그 과정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견딜 수 없는 자. 자격이 없는 존재는 끝에 다다를 자격이 없음을, 이 던전은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제드는 멈추지 않았다.

머잖아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세찬 눈보라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 대신에 나타난 것은 드넓은 평야였다. 평야의 중심. 그곳엔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사아아아.

하늘을 가득 뒤덮을 듯 수놓은 나뭇가지의 나뭇잎이 별안간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거리며 울었다.

제드의 로브가 펄럭였다.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분명히 이곳은 지하 깊숙한 곳의 공동이었을 터인데,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신기한걸. 이렇게 또 누군가가 도달하다니.”

느긋한 목소리가 제드의 귓전을 때렸다.

고개를 돌리자, 나무 뒤에서 불쑥 금발의 소년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모습은 평범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그 눈동자는 절대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눈이었다.

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심연보다도 더 깊은 것이었다.

“거기다 인간이잖아.”

“······정령에 가까운 사념의식인가?”

“호오. 그런 것도 알아? 아는 게 꽤 많구나.”

금발의 소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제드의 주변을 빙글 돌았다. 심연을 머금은 금색 눈동자가 가늘게 변했다.

“아주 특이하네. 도달한 마법의 수준에 비해서 정신세계가 이상하리만큼 거대해. 이 시대의 마법 수준이 높아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구나.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기적의 영역에 도달했었어. 그 덕분에 정신세계의 한계 폭이 넓어진 거야. 너 재밌는 인간이네.”

소년은 키득거렸다.

제드는 소년이 말한 기적이라는 것이 회귀임을 눈치챘다.

“뭘 알고 있는 거지.”

“하하. 그걸 나한테 묻는 거야? 네가 알지 못하는 거라면 나도 모르는 거야. 기적이란 건 그런 거지. 아무튼, 인간은 재미있는 존재라니까. 자, 쓸데없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이곳에 도달한 존재에게 지식을 전하는 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말이지.”

“안타레스의 유산인가?”

“응, 맞아. 역시 알고 왔구나.”

“그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안타레스는 정말로 최후의 드래곤이었던 건가? 그리고 나보다 더 먼저 이곳에 도착했던 존재는 누구지? 그 역시 드래곤인가?”

제드가 빠르게 질문했다.

그러나 소년은 고개를 저을 따름이었다.

“유감이지만 그 질문에는 답을 해줄 수 없어. 내가 너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 오직 그가 남긴 지식뿐이거든.”

사아아아.

다시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소년이 고목에 손을 얹은 순간, 제드는 눈을 부릅떴다.

머릿속으로 어떤 기록이 쏟아지듯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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