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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60) (60/124)

폐광2

*

자욱한 어둠이 내린 나무 아래.

마법사는 가만히 눈을 감고서 골렘의 조종에 집중하고 있었다. 교육훈련은 받았지만, 실전 상황에서 골렘을 조종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쿠웅. 쿵.

땅을 진동하며 나아가는 골렘.

골렘의 시야를 통해서 저 앞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부터 보이는 탁 트인 시야의 저편엔 병사들과 용병들이 뒤얽혀 칼부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상황도 길게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골렘을 앞세워 적의 대열을 휩쓸어버리면 그때부터 전의가 꺾이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공을 세울 기회다.’

골렘을 조종하는 마법사 트라인 소위는 생각했다.

세상은 변했다. 마탑의 출신이 아닌 마법사들도 이름을 널리 알릴 기회가 생겼다. 골렘이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이다.

쿠웅.

그렇게 숲을 헤치며 골렘이 움직일 때였다.

“······!”

트라인은 별안간 집중력이 산산이 흩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숨이 턱 막히는 아찔한 통증. 불이 그의 몸을 지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끄으윽.”

칼.

비죽 몸을 꿰뚫고 들어온 칼이 그의 생명을 앗아갔다.

푸확.

이윽고 생명의 온기와 함께 몸에서 빠져나간 흉기.

그 칼의 주인은 절그럭대는 소리를 내더니 이윽고 바로 지척에서 날아드는 칼날을 후려치면서 교전에 들어갔다.

‘나는, 나는 이렇게······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캉! 카각!

멀어지는 쇳소리를 들으며 트라인 소위의 의식은 끊겼다.

쿠우웅.

“무슨 일이지?”

기동하며 다가오던 골렘이 별안간 멈춰 섰다.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꺾은 모습.

골렘을 조종하던 마법사에게 뭔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기사는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저 뒤쪽에서 치솟는 화염. 그리고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소음 속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며 발생하는 소리가 들렸다.

교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놈들······.”

“페, 페이오드 경, 어딜 가십니까! 당장 이곳 현장에 기사단을 투입해야 합니다.”

“후방이 공격받았소. 골렘이 멈춰 섰단 말이오. 놈들이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소.”

페이오드라고 불린 기사는 그 말을 끝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 남은 마법사 리암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바로 그때였다.

지잉.

어둠을 꿰뚫고 날아드는 마탄 세 발.

퍼퍼펑!

“읍!”

리암은 마법의 방벽을 펼쳐서 가까스로 그것을 막아냈다.

그때, 혼란의 저편에서 한 여성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젊은 여성이었다.

“페이오드. 조금 전에 당신, 페이오드라고 그랬었지.”

“누구냐!”

“지나가던 모험가다.”

“모, 모험가 나부랭이가 이런 짓을 벌이고도······!”

리암이 고함을 지를 때였다. 벼락같이 그의 측면에서 파고든 그림자가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록시의 일행이었다.

쉬아악!

함께해온 시간이 긴 그들의 합공은 아주 날카로웠다.

“끄으으으.”

순식간에 몸이 꿰뚫린 리암이 몸을 바르르 떠는 사이, 록시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서 그의 앞에 섰다.

“말해. 조금 전의 그 기사의 성과 이름을.”

“페, 페이오드······ 페, 페이오드 바이손······.”

리암이 그 이름을 힘겹게 내뱉었다.

그러자 록시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래, 역시 그렇단 말이지.”

까득. 록시가 이를 갈면서 동료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순간, 셋은 리암의 몸을 관통한 칼을 비틀어 뽑았다. 풀썩 그 자리에 쓰러진 리암은 몸을 바르르 떨어댈 뿐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록시, 페이오드라면······ 그 페이오드 경이 맞는 건가?”

“그래. 맞는 것 같아. 그 목소리를 듣고도 설마 했었는데, 페이오드 경이 우리 왕국을 배신한 거야.”

록시가 분노를 가득 담아 말했다.

페이오드 바이손.

그는 바로 포부르크 왕국의 기사였다.

그는 록시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기사였고, 왕국 기사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배신했구나, 왕국을!’

이제야 앞뒤가 이해가 됐다.

아무리 골렘이 밀고 들어왔다고 해도 모든 것이 너무 한꺼번에 무너졌다. 성문은 손쉽게 열렸고, 비밀통로는 족족 발견되었다.

록시는 등에 새겨진 상처가 쑤시는 것을 느꼈다. 왕국이 무너지던 날, 비밀통로로 빠져나가는 그녀를 쫓아온 적이 남긴 흉터였다.

“놈을 찾자.”

록시의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

‘역시 실력이 나쁘지 않군.’

마법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타난 적 기사들이 자크를 포위하고서 차륜전을 펼쳤다.

호흡을 맞추며 훈련을 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거의 동시에 움직이는 기사들의 검술은 아주 날카로웠다.

‘북왕국 검술인가?’

제드는 그들의 검술에서 어떤 특징을 알아보았다. 특유의 기원이 되는 검술은 하루아침에 바꾼다고 변하는 게 아니었다.

‘상황이 꽤 재밌게 돌아가는군. 이쪽에도 북부왕국연합에 얽혀있는 인물들이 있다니 말이야.’

제드와는 무관했으나, 아무래도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는 것이리라. 물론, 그 사연을 듣거나 확인할 일은 없다.

써걱.

“끄악!”

적의 검을 밀치며 그대로 팔뚝을 날려버리는 우악스러운 자크의 검에 한 명의 기사가 피를 쏟아내며 무너졌다.

경량화하고 소형화되었다고 해도 자크는 골렘이었다. 출력과 무게. 그리고 익혀온 검술의 숙련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자크의 실력은 적보다 우위에 있었다.

‘기사단의 숫자가 많지는 않은 것 같군. 거기다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이의 숫자는 불과 다섯에서 여섯 남짓. 제아무리 골렘이 있다고 해도 다룰 마법사가 없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법이지.’

제드는 수풀에서 걸어나왔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고함 등이 뒤얽힌 상황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폐광 길목으로 나아가는 제드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타오르는 불꽃 너머로 폐광의 입구가 희미하게 보이는 가운데, 제드가 미간을 모았다.

‘자크 경, 지금까지 상대한 기사들보다 수준이 조금 더 높은 자가 다가오고 있다.’

[그거 반가운 이야기로군. 마침 따분해졌던 참이오.]

그러는 사이, 제드는 폐광의 입구에 섰다.

안타레스의 유산.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이제 두 눈으로 목도할 때가 된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쐐애액!

퍽.

지척의 거리에서 날아든 얼음의 창이 아슬아슬하게 제드를 옆을 스쳐서 나무에 박혔다.

‘얼음 속성계 마법. 제법 제대로 배운 마법사도 있었나.’

이 정도 속성력이라면 마탑출신이었다.

“그분의 말씀이 사실이로군. 어쩌면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설마, 정말로 이런 발칙한 일이 일어날 줄이야.”

어둠의 저편에서 걸어나오는 마법사.

개방된 마나의 흐름이 썩 매섭다.

“너는 누구냐.”

“유산의 상속자.”

“헛소리.”

그 순간, 개방된 마나는 거침없이 발현된 마법술식에 따라 여러 개의 얼음송곳으로 변해서 공간을 가르며 쏟아졌다.

제드도 그에 맞춰 손가락을 튕겼다.

지지지징.

수십 발의 마탄이 마주 쏟아져 나가며 두 마법사 사이의 공간에서 마법이 폭발하였다.

그러나 속성 마법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폭발하며 흩어지는 얼음이 회오리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제드를 휘감았다.

“술식의 제어 속도는 제법이다만, 마법전에 경험이 부족해. 그게 너의 패인이다.”

적 마법사는 단언했다. 제드가 휘감은 냉기의 회오리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얼음 칼날이 그의 몸을 유린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피식 웃을 따름이다.

‘웃어?’

마법사가 미간을 찌푸릴 때였다.

“내가 언제 마법전을 벌이겠노라고 한 적이 있더냐?”

“끝까지 헛소리더냐.”

마법사가 손을 들어 올렸다. 더 쓸데없는 소리를 듣고 있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적에게 제드가 말했다.

“돌려주마. 섣부른 판단과 결론. 그게 네 패인이다.”

“갈기갈기 찢어주마.”

마법사가 눈을 부릅떴을 때였다.

써걱.

그의 몸이 허리부터 두 동강이 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마법사는 알지 못했다.

“끄허억······.”

숨을 쥐어짜듯 내뱉은 마법사가 피를 게워내며 핏발이 선 눈을 부릅떴다. 그곳에 은색의 갑주를 두른 기사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닥에 드리운 거대한 대검에는 핏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골렘 마법사가 마법전 같은 쓸데없는 짓을 왜 하겠느냐.”

제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법사의 옆에 서 있는 아이언 골렘을 눈에 담았다.

은색 기사. 그건 자크가 아니었다.

공간이동마법진으로 제드와 함께 토르가 왕국에 왔던 10기의 아이언 골렘 중 하나였다. 제드의 명령에 따라 아이언 골렘들도 숲을 따라서 이동해왔던 것이다.

마나 소모는 컸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적진의 한복판에 뛰어드는데 그 정도 준비도 하지 않을 순 없는 일이었다.

이제 폐광의 입구에 제드를 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 들어가기 직전, 제드는 고개를 돌렸다. 적진의 막사와 숲에서부터 시작된 불꽃은 이제 사방으로 옮겨붙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제드는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숲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곧 화염구가 발현됐다.

화르륵.

제드는 이보다 더 강력한 화염속성 마법을 알지 못한다. 배울 수 있음에도 배운 적이 없다.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드가 완성된 마법에 술식공정을 추가로 더했다.

그러자 손끝에서 일렁이던 불꽃의 크기가 두 배로 커지더니 이내 분열되면서 허공에 작은 불꽃 덩어리가 형성됐다.

제드의 마법의 근간인 연산제어는 술식에 대입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었다.

곧 불꽃 다발이 숲을 향해 쏟아졌고, 이내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쾅!

붉은 화염에 매섭게 피어올랐다. 퍼져나가는 열기는 이제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 정도 불꽃이면 금방 이 일대를 휘감고 타오르리라. 벌써 새까만 연기가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쪽은 어떤가.’

[제법 괜찮은 상대이오. 익스퍼트 수준은 충분히 되겠소.]

‘적당히 하고 끝내도록. 나는 지금부터 폐광에 들어가겠다.’

[알겠소.]

바로 그때였다.

구우웅.

땅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수십 톤에 육박하는 골렘이 거칠게 기동하기 시작하면 이런 진동이 일어난다.

‘골렘 마법사가 하나가 아니었나?’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연기 때문에 블라르의 시야는 이제 제한이 됐다. 하지만 굳이 확인할 것도 없다.

골렘의 전술적, 경제적 가치를 생각해볼 때, 사실 그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드는 그 골렘이 날뛰는 걸 지켜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골렘 마법사를 모두 처치하고 숲의 외곽으로 물러나도록.”

제드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지척에 우두커니 서 있던 아이언 골렘이 땅을 쾅 박차고 불꽃 너머로 달려나갔다.

폐광을 지키는 핵심 전력이 뿔뿔이 흩어지고 박살이 난 지금, 전투의 결말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페이오드가 쓰러지면 상황은 자연히 정리될 터였다.

그즈음이면 솟구치는 화염 때문에 폐광은 그 누구도 쉬이 접근할 수 없으리라.

제드는 홀로 폐광으로 들어갔다.

일대를 집어삼킨 화염은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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