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59) (59/124)

폐광1

최근 토르가 왕국 동부 일대에 어떤 소문이 퍼졌다.

칼베이 폐광에 안타레스의 유산이 잠들어 있다는 소문이다.

근거 없는 뜬소문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 소문을 듣고 이 낙후된 폐광 마을에 찾아온 사람의 수는 적지 않았다.

폐광에 위대한 안타레스의 유산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모험가와 용병들, 그리고 떠돌이 마법사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배치된 군대까지.

때아닌 호황에 마을엔 숙박시설이 한둘씩 계속 늘어나고 있었고, 각종 상인이 자리를 잡고 물건을 사고팔았다.

칼베이 폐광이 회색 숲의 영역과 바로 맞닿아 있었으므로 몬스터 사냥이라는 부수입도 꽤 짭짤하였다.

그러나 정작 이곳에 모인 외지인들은 폐광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뭐가 있긴 있는 게 틀림없대도. 그렇잖으면 저렇게 많은 병사가 저곳을 지킬 이유가 없잖아.”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유산이라는 게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비슷한 뭔가가 있다는 건 확실해.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군대가 지킬 정도면 엄청난 게 틀림없겠지. 그니까 저렇게 꼭꼭 숨기는 거 아니겠어?”

“빌어먹을 놈들. 죄다 좋은 건 저들이 다 가져가는군. 영주들이 힘을 잃고 왕한테 굽실대기 시작하더니 더 심해진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일단 마시자고.”

밤이 늦은 시각이었다.

주점에는 삼삼오오 모인 용병들이 저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최근 외지인들은 이곳에 모이면 늘 안타레스의 유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폐광의 깊숙한 곳. 그곳에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초라한 주점의 안쪽에는 다른 외지인들처럼 바로 몇 시간 전에 마을에 들어온 무리가 있었다. 록시 일행이었다.

“뜻밖이지? 모두 유산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까.”

록시가 킥킥 웃었다.

“걱정할 것 없어. 정보가 샌 게 아니라, 저거 다 우리 쪽에서 뿌린 거니까.”

“과연, 그랬군.”

“응? 뭐야, 더 안 물어보는 거야?”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혼란이 일어났을 때의 소요사태는 더욱 커지는 법.”

“······.”

록시는 취기가 싹 달아나는 걸 느꼈다.

“정말로 조금 전에 내 말만 듣고 그걸 짐작했다는 거야? 카일, 전까지는 대체 뭘 하고 지냈던 거야. 지금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게 이상한데.”

“마법사가 뭘 하겠소. 책을 읽었지. 자이러스 가문의 사람이라서 하는 수 없이 전술교리나 병법서 따위도 읽었을 뿐이오.”

“그러고 보니 자크 경의 실력은 보긴 했는데, 카일의 마법 실력은 보지 못했단 말이지.”

“실망스럽지는 않을 거요.”

“좋아, 기대할게.”

록시가 씩 웃으며 툭 쳤다. 그녀는 정말 사교성이 좋았다.

“그래서 일은 언제 진행할 참이오.”

“너무 재촉하지 마. 이틀 정도는 걸릴 거야. 일을 개시할 거란 걸 모두에게 전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거든. 그리고 그동안 다른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시간도 필요하고.”

바로 그때, 거친 인상의 웨이터가 다가오더니 퍽퍽한 빵을 탁자에 올려놓으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이곳에 거인이 있소.”

“······!”

록시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언제부터.”

“사흘 됐소. 모두 계획 변경을 요망하고 있소.”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갔다.

“록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트릭스가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티리도 심각한 건 마찬가지. 오직 버키만 무념무상으로 퍽퍽한 방을 찢어서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계획이 틀어졌소?”

“······그 괴물 같은 전쟁병기가 있다는군. 우리가 위틀리에 간 동안 배치한 거겠지.”

까득.

록시가 분한 듯 이를 갈았다.

악몽처럼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지를 진동하며 걸어오던 골렘의 존재. 그 존재 앞에서는 어떤 병기도 마법도 무의미했다. 화살도 불꽃도 병장기도 통하지 않았다.

그 존재 앞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다.

‘또 그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야?’

불합리한 일이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익혀온 마법도 철저하게 준비해온 계획도 골렘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니.

무거운 침묵이 그들 사이에 내려앉을 때였다.

“숫자.”

“······.”

록시가 고개를 돌렸다.

제드는 담담한 얼굴로 재차 말했다.

“적 골렘의 숫자는 얼마나 되오.”

“······글쎄. 따로 이야기가 없었으니까 아마도 하나겠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알고 있잖아. 단 하나라고 해도 그 병기가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 앞에선 아무리 많은 병력과 숫자도 무의미하니까.”

록시는 절망한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제드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골렘은 무적이 아니다.

*

달빛조차 감춘 새벽이었다.

밤하늘을 유영하듯 부드럽게 활공하는 새가 한 마리.

어둠에 가려졌으나, 그 깃털은 영롱한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고, 눈은 영롱한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새는 바로 블라르였다.

블라르는 마을의 동쪽 지대를 천천히 훑었다. 희미한 빛이 드리운 마을을 지나 동쪽으로 횃불의 빛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 나왔다.

블라르는 하강하였고, 그 빛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조용히 날았다. 길목마다 병사들이 서서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 일견 삼엄한 듯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나무에 기대서 조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태반이 용병으로 이루어진 급조된 부대였기 때문에 군기의 상태는 여간 불랑한 게 아니다. 순찰조가 지나가는 데도 근무태도엔 변화가 없었고, 순찰조 역시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그 길목의 끝자락. 폐광을 목전에 둔 작은 휴식처. 블라르가 그 건물의 지붕에 앉았을 때였다.

“아······.”

별안간 건물 내부에서 들려오는 달 뜬 신음. 그 소리가 한둘이 아니다. 남녀가 정을 나누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 밖에서 틈 너머로 그걸 지켜보는 병사들까지.

“저년 얼마라고 그랬지?”

“35골드랬던가.”

“35골드? 시발. 몸뚱어리 한 번 더럽게 비싸네.”

“킥킥. 그럼, 뭐 안 할 거야?”

“저걸 보고 그럴 수가 있겠냐?”

창녀가 한 남자에게 깔린 채로 훔쳐보는 이들을 보면서 윙크를 하였다. 이곳엔 더는 군기라고 불릴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더 안쪽, 폐광의 입구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향했을 때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곳엔 창이 아니라, 칼을 찬 이들이 있었고, 그들 사이엔 마법사들도 보였다.

그리고 수풀 사이에 일그러진 왜곡장 너머로 4미터의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골렘이다.

확인은 끝났다.

푸드득. 블라르가 나뭇가지를 튕기며 날아올랐다.

그때, 마법사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기사가 반사적으로 칼을 뽑아서 허공을 베었다. 칼끝에서 방출된 오러가 어둠을 훑고 그 너머에 드리운 나뭇가지를 베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나뭇잎과 나뭇가지.

“왜 그러십니까?”

“······아니, 꼭 뭔가가 감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신경 쓰지 말고 마저 얘기해보시오.”

“최근에 마을에 외지인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지 않았겠습니까. 그 점에 관해서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지라······.”

천천히 눈을 뜨는 제드.

‘록산느의 말처럼 경계근무를 서는 병사들의 수준은 형편없는 수준이야. 하지만 기사단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군.’

그 기사에 관한 건 아마도 록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익스퍼트 수준은 되는 것 같았다.’

제드는 적의 전력을 계산해보았다.

골렘 하나에 익스퍼트 급 기사까지.

적의 예비대까지 계산하면 어느 정도의 전력일까.

딱. 딱.

제드는 탁자에 올린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늦은 시간까지 생각을 정리하였다.

*

록시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언제까지고 계속 절망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

이걸 해내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녀를 조바심 나게 했다.

일행도 그런 록시의 고뇌를 이해한 듯 말을 걸지 않았다.

제드만 빼고 말이다.

“골렘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오?”

“······맞아.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해결할 방법이 없어.”

“내가 그 골렘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소?”

“뭐?”

록시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되물어왔다.

그러자 제드가 그녀가 앉아있는 탁자 위에 양피지 한 장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골렘의 형상을 그렸다.

“골렘에게도 약점은 있소.”

“그, 그게 사실이야?”

“나라가 망하고 나도 그저 떠돌기만 한 것은 아니오. 많은 것을 알아보고 연구했지.”

제드는 간단하게 골렘의 구조를 설명했다.

골렘에게는 노심이라는 코어가 존재하고 그것이 골렘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심장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각 구동계에 복잡한 마법술식이 있다는 것까지.

“대단해. 도대체 그걸 어떻게······.”

록시가 흥분한 듯 중얼거렸을 때였다.

“사실 이런 건 굳이 다 알 필요가 없소.”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것들이 골렘의 약점이 아니란 거야?”

“약점이오. 하지만 약점이라는 건 많이 알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오. 가장 취약한 부분. 그 부분을 노려야 하는 거요.”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는 게 대체 뭔데.”

“골렘 마법사. 골렘을 조종하는 마법사가 죽으면 골렘은 아무것도 할 수 없소.”

록시는 깜짝 놀랐다.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골렘은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그걸 특정할 수 있겠어?”

“그냥 떠돌기만 하던 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소. 방법은 있소. 단, 선결되어야 하는 몇 가지 조건이 있소.”

“말해봐. 그게 뭔지.”

“골렘을 꾀어내야만 하오. 그래야 숨어 있는 적 골렘 마법사의 위치를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오.”

“꾀어내야 한다······.”

록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작전의 계획이 다시금 머릿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이 작전, 진행하려면 두 사람이 아주 위험한 임무를 맡아야만 해. 그래도 괜찮겠어?”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왔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나도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끝내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거든.”

록시는 결의에 찬 얼굴로 지금 머릿속으로 정리한 작전을 모두 설명했다.

“결행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데.”

“동감이오.”

“좋아. 그럼 오늘 밤, 작전을 진행하자.”

*

해가 저물었고 밤은 금세 찾아왔다.

칼베이 마을의 거리엔 여느 때처럼 무수한 외지인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밤은 평상시와는 달랐다.

용병과 마법사들이 삼삼오오 주점에 모이는 게 아니라, 거리로 나와서 동부 폐광의 길목에 모여든 것이다.

“모두 물러나지 못해!”

“해산하지 않으면 왕정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할 것이다!”

병사들이 창을 겨누고서 다가오는 이들을 향해 겨누고 있었고, 폐광을 관리하는 마법사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거듭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위대한 유산은 나라가 독차지할 게 아니야!”

“옳소! 대마법사 안타레스는 온 세상에 마법을 전파하고 다니셨다는 것도 모르나!”

“유산은 모두가 확인할 권리가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된 외침. 그게 불꽃을 지폈다. 분위기는 점차 험악해졌고, 앞을 막던 병사들이 난색을 보였다.

“어, 어떻게 합니까, 리암 님!”

“이, 이 빌어먹을 것들이······.”

리암이라고 불린 마법사가 당황한 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벌레 같은 것들.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구나!”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고함과 함께 저편에서 서슬 시퍼런 살기를 내뿜는 기사 한 명이 걸어나왔다.

“한 놈이라도 그 앞을 넘어온다면 내가 직접 그 목을 베어주마.”

챙하고 뽑혀나온 칼끝의 예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어지간한 용병들도 섣불리 나서지 못할 때였다.

“헉! 부, 불이 났습니다!”

“뭐라고?”

으름장을 놓은 기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숲 안쪽 임시 막사에서 불꽃이 치솟는 게 보였다.

“이것들이······.”

기사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별안간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끄악!”

병사가 코앞까지 다가온 용병을 느닷없이 창으로 찔렀다.

“무, 무슨 짓이냐!”

리암이 기겁하여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들 중 한 명이 피를 보면서 쓰러진 순간, 모여든 군중의 이성은 마비됐다.

“이 자식들 다 죽여버려!”

채채채챙!

칼이 뽑혀 나오는 소리가 일제히 터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빌어먹을! 제, 제압해! 모조리 제압하란 말이다!”

리암이 소리 지르며 뒤로 도망쳤다.

머잖아 저 뒤편에서 병사들이 달려왔다.

그러나 이내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달려온 병사들끼리 등에 창을 찌르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진 까닭이다.

“끄악!”

“뭐, 뭐야! 왜 아군이······.”

“길을 뚫어라! 위대한 유산은 모두의 것이다!”

혼란 속에서 이 상황에 불을 지피는 발언이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 모든 게 계획되었구나!’

상황을 파악한 기사가 다급히 고함을 질렀다.

“기사단이여, 적들을 모조리 도륙하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웅! 땅이 진동했다.

비로소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존재가 있었으니.

폐광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숲.

어둠 속에서 제드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이다, 자크 경.’

그 순간, 저 앞에서 가만히 때를 기다리던 거구의 기사가 절그럭 몸을 일으켰고, 무섭게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목표는 적 골렘 마법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