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레스의 유산4
*
드드드드.
땅이 진동했다.
쩍쩍 진흙 속까지 파고든 나무의 뿌리가 나무의 내부로 모여들었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던 나뭇가지와 나뭇잎도 안으로 형태를 숨겼다.
그레지안 산맥의 깊숙한 안쪽에 긴 시간 뿌리내려왔던 나무가 그 형상을 바꿔나가고 있었다.
거친 생명의 맥동에 주변 나무가 거칠게 흔들렸고, 그것은 흡사 이 산맥 전체가 술렁이는 듯하였다.
사아아아.
그리고 나무의 형상은 서서히 다른 모습을 갖추었다. 나무껍질을 두른 3미터의 존재가 땅 깊숙한 곳에서 나와서 두 다리로 섰다. 옹이구멍에서 눈동자처럼 녹색의 안광이 일렁였다.
우드 골렘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 광경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국가 마법사 기관의 마법사들이다.
작은 소리를 내는 것조차도 불경한 일인 것처럼 그들은 그 기적과 같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드의 손끝에서 작은 마석이 나무의 중심부에 닿을 때마다 레쟈스 나무는 금세 우드 골렘의 형상을 갖추었다.
마석은 노심이 되어 골렘을 기동하는 심장이 된다.
그리고 우드 골렘 하나하나를 일으키는 과정은 토바스의 채석장에서 일으켰던 골렘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교하고 오래 걸린다.
우드 골렘은 스톤 골렘에 비하면 1미터는 더 작았지만, 생명에 코어를 넣어 정령을 불러들이는 일이었으므로 출력도 범용성도 스톤 골렘보다 훨씬 더 빼어나다.
긴 시간 속에서 제드는 연이어 마법을 펼치며 집중하였다.
해가 저물고 새벽이 되어서도 계속되는 작업.
쉼 없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느새 그 주변에 높이 뻗어있던 나무들이 한둘씩 사라져 이제 군데군데가 휑하였다.
살아 있는 나무를 일으키는 과정이었으므로 환경이 바뀌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흘렀을 때, 제드는 그제야 마나를 거두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는 7기의 우드 골렘이 서 있었다.
‘확실히 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정령을 부르는 것에도 거의 시간이 들지 않아. 정령과의 교감능력이 올라갔어.’
이전의 제드는 중요한 정령을 불러오는 과정에서 종종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젠 그런 일이 없었다. 제드의 부름에 정령은 반드시 응했다.
‘아우로렐.’
제드가 속으로 가장 처음으로 만든 골렘의 이름을 불렀다.
쿠웅.
곧 저편에서 숲이 흔들리며 3.5미터에 달하는 골렘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그 뒤를 따르는 7기의 우드 골렘들과 함께 말이다. 이로써 이곳에만 총 15기의 우드 골렘이 있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한 명씩 호명할 것이다.”
“옛!”
“버마 중위.”
제드의 앞으로 걸어나온 마법사들은 골렘과 체결하였다. 골렘의 선택이라고 부르는 과정이었다.
체결의 감각에 그들은 하나같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감각의 확장. 골렘은 그들의 의지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리틀리까지 기관의 마법사들은 모든 체결을 끝마쳤다. 아우로렐의 휘하에 있던 골렘 전부 그들과 개별적으로 체결을 끝마친 것이었다.
“앞으로의 시대는 더 많은 골렘 마법사를 필요로 한다. 나는 기관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제군들이 그 기대를 충족해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옛, 알겠습니다!”
리틀리 대위가 힘차게 대답했다.
머잖아 그들이 골렘과 함께 돌아갔고, 이제 이 깊은 숲에는 제드와 아우로렐만이 서 있었다.
우우우.
아우로렐이 낮게 울었다.
“그대의 부하를 저들에게 준 게 마음에 안 드나?”
제드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아우로렐이 별안간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녹색의 안광이 뭔가를 말하는 것처럼 일렁였다.
제드가 아우로렐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아우로렐.
그가 이 세상에서 다시 눈을 뜬 이후로 처음으로 일으켜 세운 골렘. 오베르보다 먼저 특별한 존재가 된 골렘이다.
“아우로렐.”
제드가 그 이름을 부르며 손을 천천히 뻗자, 아우로렐이 나무껍질 같은 얼굴을 내밀었다.
제드는 아우로렐을 만졌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골렘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말을 잘 듣는 인형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대 역시 특별한 존재다. 내가 너를 아우로렐이라고 불렀을 때부터 말이야.”
우우우.
부드럽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아우······ 로렐.]
제드는 들을 수 있었다.
아우로렐의 목소리를 말이다.
“그래, 그게 너의 이름이다.”
[내 이름, 아우로렐······. 그대의······ 이름, 말해다오.]
“나는 제드 크레인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우로렐의 옹이구멍과 같은 내부에서 녹색의 안광이 거세게 타올랐다. 그리고 제드는 자신의 몸 안에서 마나가 급격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게 시작이었다.
드드드드.
아우로렐이 변형을 일으켰다.
오베르 때와 같다.
기본적인 형태에서 덩치가 더 커졌고, 상 하체가 더 굵어졌다. 머리 위로 솟아났던 나뭇가지의 형상은 이제 완전히 뿔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오베르 때처럼 변화에 더 큰 출력 자체가 필요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이미 예전에 등급 자체를 끌어올리면서 노심을 강화했던 아우로렐이었기 때문이다.
“듬직한 모습이구나, 아우로렐. 산왕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모습이 되었어.”
우우우.
아우로렐이 울음으로 대신 답하였다.
‘이름을 붙인 골렘들도 저마다 성향의 차이가 있는 모양이군. 지금의 아우로렐은 과연 어느 정도의 능력을 보여줄까.’
노심이 2등급 수준이었고, 전고가 4미터가 조금 되지 않는 수준. 아마도 출력 자체는 이전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율성과 독립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으리라.
‘머잖아 알게 되겠지.’
*
산맥의 깊숙한 숲.
레쟈스 나무가 빼곡했던 이곳은 7기의 우드 골렘이 일어나면서 제법 널찍한 공간이 생겨났다.
그러나 제드의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넓은 토지면적이 필요하였다.
‘마력의 샘을 만들어야 해.’
이전 아우로렐이 일어나면서 마력이 괴었던 땅.
제드는 그걸 다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가장 빠른 방법은 더 많은 우드 골렘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수일 동안 제드는 도합 열 기의 우드 골렘을 더 만들었다. 그 골렘은 전부 아우로렐의 지휘권 아래 종속됐다.
그리고 엉망이 된 토지를 11기의 우드 골렘이 다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우로렐은 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시도하고 있군. 아우로렐이 효율성을 이해하고 있는 거야.’
우드 골렘은 특징적으로 살아있는 나무로 형태를 이루기 때문에 생장을 제어할 수 있었다. 아우로렐은 별다른 제드의 지시가 없음에도 스스로 팔과 다리의 형태를 바꾸면서 제드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다.
‘흥미롭군. 시간적인 여유만 있었다면 연구를 계속해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군.’
면적이 어느 정도 확보된 후에 제드는 정제된 마석 다량을 가져와 쌓아놓았다. 그 수가 어림잡아도 100개에 육박했다. 그 막대한 양의 마석은 지금부터 이 땅에 새겨넣을 마법진에 소모될 것이다.
제드는 우드 골렘이 깨어난 땅 곳곳의 균열에 마석을 흘려 넣고 격발시켰다. 인위적으로 마나가 괴게 한 것이다. 이 넓은 토지 전체에.
그 과정은 아주 완만한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근 보름이라는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우우웅.
대지 깊숙한 곳 내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마나.
‘됐다.’
이 넓은 토지 아래에 마나의 샘이 만들어졌다.
농후한 마나의 흐름이 대지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밖으로 흘러나오는 게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그 대지의 바로 위. 그곳에는 지름 5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마법진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 마법진을 완성하기까지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정제 마석이 소모됐다.
땅 깊숙한 곳에 마력의 샘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근 60여 개의 정제 마석이, 그 위에 새겨진 마법진에도 10개의 마석이 사용됐다.
금액으로 따지면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이 마법진의 가치는 그 천문학적인 금액이 절대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공간이동마법진.
전생 제국에 존재하였던 마도공학기술의 정수.
‘마법부와 연구부의 합작이었지.’
그리고 이 마법의 연구에도 발트 테바인은 껴있었다.
발트 테바인.
돌이켜 보면 그는 제국이 일구어낸 그 무수한 마법의 배후에 항상 있었다. 전생에서는 그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의심스럽다.
제드는 마법진의 중심에 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토록 빨리 이 마법을 꺼낼 생각은 없었다. 공간이동마법진은 이 시대의 마도공학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섰기 때문이다. 완성된 마법술식을 파헤치기 시작하면 그것이 드러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전생에서도 흘러가는 양상이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모든 게 급변하고 있어.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안타레스의 유산이 무엇인지. 그리고 만약 그게 정말로 존재한다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준비는 끝났다.
제드가 고개를 돌렸다. 숲의 새까만 어둠 속에서 절그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서 전신에 갑주를 두른 대검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크를 필두로 한 아이언 골렘들이었다.
그 수만 해도 거의 100기.
저 많은 골렘을 다 데리고 공간이동을 할 수는 없었다. 수와 질량이 커질수록 더 많은 마나가 소모되기 때문이었다.
자크를 포함한 10기의 아이언 골렘이 앞으로 나섰다.
‘아이언 골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보다는 적진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만큼 혹시 모를 골렘전에 대비하는 게 맞으리라.
“아우로렐.”
우우우.
쿠웅.
제드의 부름에 앞으로 나서는 아우로렐.
가능하면 나머지 10기를 전부 데려가고 싶지만, 크기가 유달리 큰 대형급 골렘인 우드 골렘은 기동에 많은 제약이 따랐기에 전부 데려가는 건 효율이 떨어졌다.
‘3기 정도라면 전면전은 어려워도 유격전 정도는 펼칠 수 있겠지.’
쿵. 쿵. 아우로렐의 옆으로 두 기의 우드 골렘이 앞으로 나왔다. 자크와 아우로렐을 포함한 총 13기의 골렘이 마법진의 위에 올라섰다.
마지막으로 점검을 해보았다. 빠진 것은 없는지.
요인 저격에 특화된 마법사인 베른을 데리고 간다면 일이 더 수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겐 광산의 일을 맡겼다. 그건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 마법을 설명할 방법도 없다. 이 마법은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아.’
그렇게 마지막 생각의 정리도 끝났다.
마법진의 중심엔 30여 개의 정제 마석이 쌓여 있었다. 오고 가는 데 필요한 마석의 양이었다.
제드가 손을 뻗은 채로 마나를 개방했다.
심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써클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4개의 써클이 완전히 활성화되었고, 지하의 마력 샘에서부터 솟구친 제드의 몸에 흘러들어왔다.
콰콰콰콰.
마나의 격류.
그 격류가 생각지도 못하게 완성을 목전에 두었던 다섯 번째 고리를 만들었다. 이전 격류를 받아들였던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이 따랐군. 이렇게 5써클에 쉽게 도달하게 될 줄이야.’
막 완성된 다섯 번째 써클도 회전을 시작했다.
그 순간,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마나의 증폭이 이루어졌다. 제드의 로브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우우우웅.
마력의 샘과 마석. 그리고 제드의 마나가 마법진 중심부에서부터 빛을 밝혔다. 마나의 공명이 점차 커졌다. 마법이 발동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너희는 이곳을 지켜라. 그 누구도 이 마법진의 근처에 다가와서는 안 된다. 예외는 없다.”
마나의 폭풍 속에서 제드가 싯푸른 안광을 발산하며 남아 있는 골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고고고고.
대기가 요동쳤고 머잖아 마법진 전체가 빛에 휘감겼다.
팟.
순간적으로 빛이 점멸하였고, 세찬 돌풍이 일대를 휩쓸었다. 쉬이익. 마나가 흩어지며 새하얀 연기가 주변을 휘감는 가운데, 마법진의 내부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약 십여 분이 흘렀을까.
머잖아 저편에서 14기의 우드 골렘과 함께 국가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리틀리 대위와 중위들이었다. 그들은 이 일대에서 발생한 마나 폭풍을 감지하고 곧장 달려왔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도착하고 보니, 엉뚱하게도 골렘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이 현장에 다가가니, 골렘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마치,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가, 각하께서는 어디 계시지?”
“혹시라도 뭔가 사고가 있었던 게······.”
보좌들이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그러나 흩어지는 마나의 잔재와 그곳을 지키는 골렘의 모습을 확인한 리틀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저 골렘들은 기동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는 제드의 지시가 있었으리라.
“모두 돌아간다. 우리는 그분이 지시하고 맡긴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분과 관련한 모든 일에 어떤 의문도 품지 마라. 모든 것은 각하께서 구상한 계획 일부일 테니까.”
절대적인 신뢰는 가히 신앙에 가깝다.
그리고 리틀리의 말에 그들은 서슴없이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