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레스의 유산3
*
안타레스의 유산.
그리고 발트 테바인.
그 이야기를 들은 직후, 제드는 계획을 바꾸었다.
‘콜렉 남작령의 일이 급한 게 아니다. 그보다 이 일이 훨씬 더 급해.’
제드가 콜렉 남작령에 가려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광산의 활성화를 위함이었다. 슬슬 적재된 마석이 모자랐다.
두 번째는 콜렉 남작가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콜렉 남작가는 이번 남부 귀족의 반란모의에 끼지 않았다. 왕정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 이전 광산의 소유권을 두고 전투를 벌이면서 영지의 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드는 광산에 대한 확실한 정리와 함께 남작령의 자치권을 정리하기 위해서 다음 행보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발트 테바인.’
제드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그는 마법사치곤 드물게 성격이 아주 부드럽고 사교성이 좋았다. 실없어 보였지만, 마법에 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고 가져오는 연구결과는 놀라웠다.
출중한 능력의 마법사.
그게 발트 테바인이라는 마법사에 관한 제드의 평가였다.
그런데 그 이름이 지금의 시대엔 엉뚱한 곳에서 언급됐다.
‘토르가 왕국이 이루어낸 중앙집권의 확립은 거의 15년 이상 빠른 상황이야. 마법사 집단의 국가기관화, 고출력 골렘의 등장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변화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안타레스 유산이 이 일의 배후에 있는 거라면 말이 된다.
‘안타레스의 유산이 어떤 것인지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건 내가 알던 전생에는 없었어. 하지만 만약 그게 실재한다면 이 일은 절대로 가만히 두고 봐서는 안 될 일이다.’
제드는 생각을 정리하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반복적으로 두드렸다.
토르가 왕국과는 이번 사태를 통해 이미 군사적 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전쟁 준비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국경에 경비가 삼엄해질 터였으니, 그걸 넘어서 왕국을 횡단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시간도 시간일 테고.
‘그럼에도 토르가 왕국의 땅을 밟아야 한다면.’
반복적으로 까닥거리던 제드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방법은 하나다.
제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익.
문을 열고 나가자 저편에 노마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베른이다.
“이제 움직이는 모양이로군.”
“예, 기다리게 했군요.”
“괜찮네. 이 늙은이는 맡은 일이 없어서 한가롭군.”
베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말대로였다.
수도의 상황은 지금 톱니가 맞물리듯 알아서 돌아가고 있었다. 행정에 관해서는 여왕을 필두로 하여 마이스터와 자본가 계층의 협력을 통해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마법부는 카드란과 라르곤의 파벌로 나뉘어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룰 터였다. 그들은 이미 여왕의 앞에서 충성의 맹세를 자신의 입으로서 선언하였기에 섣부른 짓은 할 수 없었다.
남은 건 왕립 육군 본부였는데, 육군의 근간인 보병부대의 체계가 잡힐 때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달리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비록, 육군 원수직에 재상인 제드가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육군 본부는 왕실 근위대의 소관이었으므로 실무자는 근위대가 맡게 될 터였다.
그리고 근위대장인 로톤은 전투 이후 앞으로의 전쟁의 양상을 계속 연구하고 있었다. 주변국과의 긴장감이 올라감에 따라 앞으로의 전쟁을 예측하는 게 그의 숙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베른은 어떤 기관에도 소속되지 않고 제드의 직속으로서 움직여왔기에 맡은 임무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 늙은이의 능력이 자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모양이군. 안 그런가?”
“아뇨, 그 반대입니다. 베른께서는 다른 일을 해주셔야겠습니다.”
“허허.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로군.”
“곧장 움직일 생각인데, 떠날 준비는 되었습니까?”
“물론일세. 골렘은 어떻게 할 참인가.”
“제1 기갑중대는 수도에 머물 것이고, 은색 기사단과 베른의 골렘은 저와 함께 움직입니다.”
“알겠네. 그럼 목적지는 예정대로 콜렉 남작령인가?”
“아니요. 레지앙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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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서 약 이틀 안팎의 거리.
제드는 베른과 함께 레지앙으로 왔다.
은색 기사단과 베른의 골렘 7기도 함께였지만, 그들이 외부로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은폐장으로 모습을 감추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땅이 진동하는 소리를 감추기는 어려웠다. 기동성도 다소 떨어지기도 했고. 그래서 그들의 이동 시기는 해가 떨어진 이후 무렵이 되었다.
그리고 토바스를 지나서 레지앙에 도착했을 때, 베른은 적잖이 놀랐다. 레지앙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기가 산골 마을이 맞는가?”
“글쎄요. 이젠 마을의 규모라고 할 수는 없겠군요.”
그랬다.
레지앙은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또다시 크게 변해있었다. 제드가 수도와 남부를 돌면서 일을 정리하는 동안, 레지앙에는 더욱 많은 사람이 모여든 까닭이다.
잘 다듬어놓은 길에는 이제 포장이 되어 있었고, 그것은 도시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먼지가 일거나 진흙 범벅이 되는 일은 없단 얘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을 풍경 자체도 많이 변해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들 사이에 석재로 쌓아올린 건물들이 보였고, 토지공사로 트인 땅에도 무수한 건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온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계속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정도면 토바스보다 사람이 훨씬 많겠군.”
베른은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러나 제드도 레지앙의 발전속도가 놀라운 건 마찬가지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리란 건 짐작하였으나,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올 때마다 풍경이 달라지고 있었다.
‘아이러니로군. 케미트로스 평야에서 작열한 불길 속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가 생겼거늘, 오히려 이 레지앙에는 사람이 모이고 번영을 하다니.’
레지앙은 이제 왕국 전역에 유명했다.
정확히는 레지앙 출신의 마법사들이 그랬다.
제1 기갑중대라는 생소한 군인집단이 바로 레지앙의 국가 마법사 기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없다.
마탑과는 무관한 마법사들이었던 자들이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들은 이 나라의 군사력을 책임지는 최정예 군단이었다.
여왕은 제1 기갑중대의 국가 마법사들의 공로를 치하하였고 그들에게 직접 문양까지 하사했다.
하얀 배경에 검은색 창. 그 문양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흑기사 부대라는 별칭까지 생긴 상태였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마법사들은 더욱 모여들 수밖에. 레지앙과 관련한 소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부풀고 있었고, 이건 제드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성장세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레지앙의 서쪽 길목 너머에 세워진 공장지대. 완전히 분업화된 정제공정술식이 돌아가던 그곳은 이곳은 이제 어엿한 국가 마법사 기관으로 변모해있었다.
‘이곳도 많이 변했군.’
도시화가 진행되어가는 레지앙만큼, 이곳의 풍경도 크게 변해 있었다. 반구형의 공장 건물 3개를 제외하고서 아무것도 없었던 대지는 이제 길과 바닥이 전부 다 포장되어 있었고, 크고 작은 건물들이 여럿 세워져 있었다.
“정말이지 자네는 정말 매번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도대체 이런 것들은 다 언제 구상하였는가? 자네가 레지앙에 머물렀던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베른이 연신 감탄을 거듭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그 말에는 제드도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의 변화는 제드로서도 놀라울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사관학교는 겨우 뼈대만 얼추 만들어 놓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변할 줄이야.’
체계화라는 것은 대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성되곤 한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격변을 맞이하고 있었고, 연이어 터지는 사건들이 그 체계화를 훨씬 앞당겨놓았다.
제드와 베른이 기관의 입구로 향하자, 검은 로브의 마법사들이 창을 뻗어 둘을 제지했다.
“이곳은 국가 마법사 기관입니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으니, 귀하의 성명과 목적이 무엇인지 먼저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창을 쥔 자세나 절도 있는 동작. 그리고 단호한 말투까지.
이들의 모습은 제드가 알려주고 갔던 제식교리의 표본과 같았다. 전생에 대륙 최강의 군대였던 제국 군인들의 모습이 이러했다.
“제드 크레인. 목적은 기관 운영방침 하달이다.”
제드가 후드를 젖히며 그렇게 나직이 말한 순간이었다.
위병 근무를 서던 마법사 둘이 두 눈을 크게 뜨더니 곧장 거수경례하였다.
제크 크레인. 그 이름이 가진 무게를, 이 기관의 마법사 중에서 모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드는 베른과 함께 기관의 내부를 돌았다.
그 뒤를 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뒤따랐다.
그들은 초기에 국가 마법사로 발탁되어 제1 기갑중대 마법사들이 선출된 이후, 기관을 운영해왔던 실무자들이었다.
그 실무자들 중심에는 보좌 마법사라고 불리는 리틀리 소위가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기 전 기관의 운영을 맡겼던 인물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방식의 공정은 처음 보는군. 완전히 분업화되어 있어. 하나하나가 완전히 개별적으로 돌아가고, 그게 작은 조각으로서 모여서 전체를 이루는 마법, 그 자체가 된다니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군······.”
베른은 이 기관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는 정제공정을 두 눈으로 보고는 충격에 빠졌다. 정제공정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술식의 체계 자체만 보고도 그 가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마법에 대한 이해도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훌륭한 직무 수행이다, 리틀리 소위.”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수석 마법사님.”
“마석의 산출량은 서류로 정리됐나?”
“여기 있습니다.”
리틀리 소위는 미리 준비한 서류 더미를 건넸다. 일정한 오차율 범위 안에서 계속 만들어진 마석. 그동안 상당한 양이 정제됐다.
“실수량과 차이는.”
“매일 해가 뜰 무렵과 해가 질 무렵에 파악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일치합니다.”
리틀리 소위는 흐트러짐 없는 태도로 응답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다른 마법사들 역시 절제된 태도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썩 길지 않은 시간이었을 텐데, 그들 스스로 모범이 되어 있을 줄이야.’
“자리를 비운 동안, 내부 체계를 갖춘 모양이던데.”
“효율적인 통제를 위하여 몇 가지를 체계화하였습니다. 미비한 점을 말씀해주신다면 즉각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훌륭하다. 더할 나위 없이. 그대는 내 기대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었어. 나는 소위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과찬이십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리틀리 소위는 그렇게 대답했으나, 상기된 얼굴은 감추지 못하였다. 그리고 능력의 증명과 성과에는 보상이 필요한 법이었다.
“리틀리 베바르크, 앞으로 나와서 예를 갖추도록.”
“옛!”
갑작스러운 제드의 말에 곧장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리틀리 소위. 제드는 그를 내려다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왕립 육군의 원수로서 지엄하신 폐하를 대신하여 그대의 공로를 치하하노라. 소위는 이 시간 이후로, 공식적으로 국가 마법사 기관의 장이 되어 임무를 다할 것이다. 직책 계급의 원칙을 따라야 하나, 현재 왕립 육군의 계급체계는 아직 규율이 잡히지 않은 만큼, 2계급 특진만 시키겠다.”
본래는 장성급 군인이 사관학교의 장을 맡는 게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쓸데없이 고위 장교를 많이 만드는 건 불필요한 일이었다.
“목숨을 바쳐 명을 받들겠습니다!”
“일어나도록, 리틀리 대위.”
리틀리의 눈동자가 뜨겁게 타올랐다. 그 뒤로 서 있는 마법사들의 눈빛도 빛나고 있다. 그들 역시 보좌직으로써 리틀리와 함께 이 기관을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제군들도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도록.”
그들은 모두 중위로 진급시켜주었다. 국가 마법사가 된 이들의 계급이 소위라는 점에서 기관의 다른 마법사들과 차별점을 둔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은 국가 마법사의 덕목인 충성과 헌신을 공적으로 증명하였으니, 이제 골렘의 선택을 받을 때가 되었다.”
새로운 골렘 마법사들의 탄생이 예고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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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공간이었다.
기관의 핵심인 12인의 보좌 마법사들의 승인을 거쳐야만 열리는 이 창고의 내부가 드러났다.
그러자 베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창고 안에 가득 쌓여 있는 마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이 모든 것이 전부 최상급 마석이란 말인가?’
그 순간, 베른은 눈치챘다. 저 공정술식의 정체를 말이다. 그것은 바로 대규모 설치형 마법진을 부분적으로 쪼개놓은 것이다. 치밀하게도 그 마법의 술식을 완벽히 감추면서.
“베른께서는 광산을 맡아주셔야겠습니다.”
“크흠. 광산이라면······ 남작령 방면의 그 광산인가?”
“예, 그게 무슨 뜻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겁니다.”
베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마석을 이 레지앙의 기관으로 가져오면 대규모 공정에 따라 눈앞의 최상급 마석으로 정제되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정제된 마석은 병기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베른은 전율하였다.
이토록 치밀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안배되어있는 것 같다. 전혀 다른 일들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교묘히 맞물리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과연, 이다음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