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51) (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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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군주3

*

카드란 마탑의 심층부.

그곳에선 회의가 한창이었다.

전투의 패배와 스키터니안 후작가의 몰락.

이 일이 앞으로 마탑에 미칠 문제와 책임소재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로 짧게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외적으로 여왕의 적이 된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라르곤 마탑을 통해서 중재를 청할 수밖에요.”

“우리 카드란이 무엇이 아쉬워서 그래야 한단 말입니까? 애초에 마탑의 원칙 중 하나인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터인데!”

“그 점에 관해서는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마탑의 원로 마법사들이 한둘씩 동의하였다.

지극히 결과론적인 이야기였지만,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향하였다.

타블론 하이튼.

원로 마법사 중 하나인 그는 누구보다도 스키터니안 후작가의 일에 앞장서서 일을 주도하였다.

“그래서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하는 게 좋다고 보십니까, 타블론 원로님.”

“······.”

타블론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그 시선들을 마주하는 그의 눈빛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였다.

“어떻게든 일을 원만하게 마무리해야겠지요. 그 철혈의 백작이 그럴 생각이 있느냐가 관건이겠지만요.”

“대가를 치르겠노라면 그들도 응할 수밖에요.”

“만약 라르곤 마탑을 통하여 중재해온다고 한다면 저들이 바라는 건 비전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왕실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이번 사태가 보통 큰일이 아니니, 최소 3등급 이상의 마법은 내놓아야하겠지요.”

“3등급이라······.”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출혈을 감수해야 할 비전 마법.

그 목록으로 언급되는 것은 원로 마법사 타블론에게 귀속된 비전 마법의 지분이 태반이다. 당사자인 타블론이 책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걸 아까워할 때가 아니었다.

타블론은 미간을 모았다.

‘느낌이 좋지 않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드 크레인. 그는 지금까지의 귀족이나 정치인, 마법사와는 본질적으로 뭔가가 달랐다. 사고, 행동, 추진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그렇다.

타블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쩌면 그들이 상상하지 못할 어떤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협상할 거라면 빨리 나서야 함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때때로 사람의 직감이라는 것은 놀랍도록 잘 들어맞았다. 지금 타블론의 직감이 그러했다.

쿠구궁.

별안간 흔들리는 마탑.

“갑자기 무슨 일이지?”

“오늘 상층부에서 마법 실험이 있었던가요?”

“글쎄요. 예정된 사안은 없었을 텐데요.”

“이 정도 진동이면 상당한 마법이 실패했을 때나 발생할 폭발입니다. 회의는 잠깐 멈추고 상황을 파악부터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원로 마법사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저마다 의견을 말했다.

그러나 타블론의 낯빛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진동의 직전에 희미하게 들렸던 폭음을, 그는 알고 있다.

“으응? 뭔가가 이상합니다. 마탑의 방어기재가 발동했습니다. 외부 방벽이 깨졌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카드란 마탑이 외부에서 공격이라고 받았다는 얘깁니까?”

“그럴 리가요. 말도 안 됩니다.”

원로들이 부정하는 가운데, 타블론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을 펼쳤다. 마탑의 외부 시야를 확인하는 것이다. 곧 어둠의 장막 너머에서 외부의 풍경이 나타났다.

그리고 좌중은 보았다.

새빨간 불꽃이 날아드는 광경을.

쿠구구궁!

마탑이 또다시 요란하게 진동하였고, 타블론이 펼친 외부의 풍경은 그대로 흩어지듯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감히 누가 마탑을 공격한단 말입니까!”

원로 마법사들이 노성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타블론은 이를 짓깨물었다.

“모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선택해야 합니다. 싸울 건지, 항복할 건지.”

“타블론 원로께서는 지금 마탑을 공격한 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가 온 겁니다. 제드 크레인, 그 철혈의 백작이.”

*

바위의 협곡.

그 너머에 존재하는 하늘 높이 쌓아올린 문명의 탑.

인간이 긴 시간 속에 한둘씩 밝혀온 세계의 신비가 바로 저 탑의 내부에 켜켜이 쌓여 있다.

그래서 마탑은 문명의 등불. 지식과 지혜의 보고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그들은 때때로 왕의 조언가로서 활약했고, 때로는 인류의 혼란을 잠재우는 현자로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 세월 속에 쌓인 명성이 마탑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여기까지다.”

제드는 높은 바위의 위에 서서 작열하는 불꽃에 휘감긴 마탑을 눈에 담았다. 온갖 방어마법에 둘러싸인 마탑이었으므로 절대로 쉬이 부서지지는 않는다.

하늘을 향해 오만하게 뻗은 저 탑은 마법사의 전통적 가치와 그들의 기상, 그리고 오만의 상징이다.

콰콰콰쾅!

또다시 포격의 굉음과 함께 불꽃이 쏟아진다. 직사로 쏟아지는 불꽃은 마탑의 지척에 다다라서 연쇄적인 폭발로 이어졌다. 점멸하며 흩어지는 푸른빛의 얇은 막을 보아하니, 몇 개의 마법방벽이 사라지고 있었다.

“제드, 자네 정말로 마탑을 무너뜨릴 참인가?”

“그들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겠죠.”

“자넨 이 일이 야기할 파장이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군.”

“그 말은 틀렸습니다, 베른. 그 반대가 되어야지요. 그들이 감히 나를 적대한 것에 두려워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마탑의 외부로 우르르 마법사들이 나왔다. 그들은 곧장 마법을 전개하였다. 다수의 마탄과 불꽃, 벼락과 얼음 다발이 포병대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마법이 명중하는 일은 없었다. 바로 직전의 순간에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골렘들이 그 모든 마법을 그대로 받아냈기 때문이다.

“헉!”

마법을 쏟아내던 마법사들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바위 협곡 위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는 바위 거인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수는 30기에 육박하였다.

“굳이 내 명령을 기다릴 것 없다, 루카스 소위. 그대가 할 일을 하도록.”

제드는 뒷짐을 지고서 말했다.

곧 그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제1 기갑중대의 중대장 루카스 소위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단호하게 소리쳤다.

“국가의 안녕을 저해하는 적을 모조리 섬멸하라!”

그게 신호탄이었다.

콰아앙! 쾅!

협곡의 위에서 뛰어내리는 스톤 골렘들.

수백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거구의 골렘들이 일제히 뛰어내리자, 땅이 푹푹 꺼졌고 흙먼지가 치솟았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흔들리는 가운데, 우왕좌왕하는 카드란 마탑의 마법사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솟구치는 흙먼지를 뚫고 날아가는 스톤 골렘의 손아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으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죽어가면서도 치열하게 저항했다.

연신 불꽃과 얼음, 벼락이 터지면서 골렘의 장갑을 두들겼다. 하지만 그들이 쏟아내는 3써클 이하의 마법으론 스톤 골렘에 큰 타격을 주는 건 어려웠다. 대마법방어술식을 새겨넣지 않았다고 해도 스톤 골렘의 자체 맷집은 애초에 상당한 편이었고, 주변의 바위라는 소재와 골렘 마법사들의 마나가 있는 한 수복하면서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독하게도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마법사들은 짓뭉개지거나 깔렸고, 휘두르는 팔뚝에 튕겨나가 벽에 처박혔다.

골렘을 모르는 것이 그들의 패인이었다.

이 와중에도 포격은 계속 이어졌고, 마탑의 방벽은 점차 얇아지고 있었다. 골렘들이 마탑의 외부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기 시작하면 마탑 자체가 무너지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만! 그만 멈추시오!”

별안간 쩌렁쩌렁 외부에 울려 퍼지는 소리.

마법으로 증폭된 음성과 함께 마탑의 입구에서 다수의 마법사들이 걸어나왔다. 고풍스러운 로브와 로브에 새겨진 문양. 그리고 그들이 내뿜는 마나를 느낀 제드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중지의 디바이스가 빛을 머금었다.

“항복인가?”

제드의 목소리 역시 증폭되어 울려 퍼졌다.

원로 마법사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발원지로 향했다.

저 바위의 협곡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제드의 시선이 차갑다.

“······귀하는 누구시오. 지금 이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고 있는 것이오?”

“내 이름을 알고 싶거든 그대가 누구인지부터 밝혀라. 아직 지금의 상황이 파악이 안된다면 하던 걸 마저 해도 좋겠지.”

“크으음. 나는 원로 마법사 올리버 마르테라이오. 부족하나마 카드란 마탑의 탑주이오. 이제 귀하가 누구인지 밝히시오.”

“제드 크레인. 렌토의 총독이자, 반란군 토벌을 맡았다.”

“좋소. 제드 크레인. 귀하께서 그 유명한 분이시구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오? 다짜고짜 마탑을 공격하다니. 이런 터무니없는 짓이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여기시오?”

그 으름장에 제드가 통렬하게 비웃었다.

“누가 나를 용서하는가? 나의 권위와 힘은 이 나라의 지고한 군주이신 폐하께서 내려주신 것이거늘. 마탑의 마법사 따위가 군주의 권위보다 위에 있는가?”

“······.”

올리버와 원로 마법사들의 얼굴엔 당혹의 빛이 스쳤다. 언제 그들이 이런 대우를 받아보았을까.

“마탑과 왕실은 상호 존중의 관계로······.”

“아직도 감히 그따위 소리를 하는가? 왕실의 호의를 저버린 것은 그대들이다. 반란을 꾀한 자들이 이토록 뻔뻔하게 나올 줄은 몰랐구나.”

제드의 태도에 원로 마법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상황이 대화로 마무리될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대화는 여기까지다. 마지막으로 그대들에게 선택지를 주겠다. 무릎을 꿇고 항복하여 폐하의 자비를 구하거나, 그게 아니면 이 자리에서 모두 죽는 것이다.”

“······.”

원로 마법사들이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할 바에야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게 낫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타블론이 다급히 말을 꺼냈다.

원로 마법사들이 어떻게 감히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타블론은 고개를 저었다.

“모두 냉정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마탑의 원로이십니다. 모르겠습니까?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카드란의 모든 것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불타서 사라져도 상관없단 말입니까?”

그 말에 원로 마법사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들과 같은 원로 마법사 타블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눈빛에 드리운 것은 틀림없는 공포였다.

타블론은 전장에서 제드를 만났던 경험이 있었다. 만약 항전을 택한다면 카드란 마탑의 존재는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들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절대로 말이다.

“못 이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는 마탑을 불태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마법사가 아니란 얘깁니다.”

바로 그때, 타블론의 시선이 마탑주 올리버의 가슴팍 언저리에 닿았다. 붉은빛이 점멸하고 있었다.

저 재앙 같은 빛이 뭘 의미하는지, 그는 안다.

한두 번은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골렘과의 전투 속에서 저 붉은빛이 터지기 시작하면 5써클의 원로 마법사들이라고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쿵.

“타, 타블론 원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도태될 뿐입니다. 나는 이 눈으로 봐야겠습니다. 이 시대의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무릎을 꿇은 타블론의 모습에 마탑의 원로 마법사들은 갈팡질팡하였다.

그러는 사이, 협곡의 아래로 척척척 2미터가 넘는 은색의 기사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곳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투구 속에서 일렁이는 녹색의 안광까지도 말이다.

“대체······.”

마탑주 올리버는 신음이 뒤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다 이내 무릎을 꿇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원로 마법사들도 한둘씩 무릎을 꿇었으니, 마탑의 마법사들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기어이 마탑이 제드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제드는 바람을 타고 그들의 앞에 내려왔다.

그 마법의 수준이 여간 대단한 게 아니다.

“그대들은 자비를 구하는군.”

“······.”

“맹세를 해줘야겠다. 그대들의 이름을 걸고.”

“크윽.”

“거절해도 좋다. 선택은 자유야. 책임만 지면 될 뿐이지.”

제드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선택.

이 일에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원로 마법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맹세하겠소······.”

올리버가 먼저 자신의 이름을 건 맹세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다음은 타블론. 그렇게 단 두 명의 원로 마법사를 제외한 모두가 맹세를 끝마쳤다.

“그 선택을 존중하도록 하지.”

딱.

제드는 손가락을 튕겼고,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리 위 협곡의 저편에서 붉은빛이 점멸하였다.

퍼퍽.

소리 없는 죽음이었다.

저항은 없었다. 그들은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남은 원로 마법사들이 끔찍하다는 듯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제드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환영한다. 카드란의 마법사들이여. 그대들은 새로운 시대를 마주할 자격을 얻었다.”

제드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로써 이 라이곤은 겨우 시작점에 섰다.

가장 곪고 썩은 부위를 모조리 도려냈다.

봉건제라는 구시대의 체제는 철폐될 것이고, 영주와 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체계도 점차 힘을 잃어갈 것이다.

수도에서부터 정치적 혁신이 온 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조각조각 분열된 나라는 비로소 하나가 될 것이다.

“수도로 돌아간다.”

남부 평정이 끝났다.

제드는 수도로 향하는 길에 올랐으니, 그 길목에서 마주한 모든 이들이 제드의 군대를 보고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이제 이 나라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제드 크레인. 그가 라이곤 왕국의 새로운 권력자라는 것을.

그리고 수도에 다다라, 개선식은 성대하게 열렸다.

환호성이 터지고 꽃잎이 제드의 앞길에 가득 펼쳐졌다.

“기구한 일이로다. 한 나라에 군주가 두 명이라니. 흘흘흘.”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 주정뱅이가 딸꾹질하며 골목의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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