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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47) (4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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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밤3

땅이 크게 진동했다.

골렘과 골렘.

전혀 다른 형상의 골렘이 어둠 속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하였다.

“거, 거인이 저쪽에도 있다.”

쏟아지는 불꽃을 넘어서 진격하던 병사들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병사들의 사이사이에 포진한 카드란 마탑의 마법사들도 마찬가지다.

‘여왕이 골렘을 부린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터무니 없는 일이로군. 라르곤 마탑과 그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는 것인가?’

그런 상황 속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동부왕국 토르가에서 찾아온 마법사들은 별로 놀라지 않은 듯 침착한 어조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놀랍군요. 저 움직임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마석의 출력을 한계까지 무리 없이 끌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 확실히 예상했던 것 이상입니다. 이 정도면 일개 마탑이 단독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마도공학기술력이 아닙니다. 포격도 포격인데, 골렘까지 보유하고 있을 줄이야.”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싸워야죠. 우린 적 골렘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라이곤 왕국에 대한 영향력도 잃을 수 없다는 게 왕국 수뇌부의 판단이에요. 승산은 우리가 더 높습니다.”

대화의 흐름을 엿듣던 마법사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대화를 들어보니,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한참 어린 마법사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던 까닭이다.

‘뭔가 기이하군. 저 어린 마법사가 리더란 말인가? 대체 그는 누구지?’

그 순간이었다.

군대의 전면에서 나아가던 골렘을 감추던 왜곡장이 모두 사라졌다. 일그러졌던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골렘의 모습이 전부 드러났다.

“적 골렘은 저희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 적들은 연합군에서 맡아주시죠.”

“크흠. 아, 알겠습니다. 귀하들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이 일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각하께 말씀드리겠소.”

중앙부대를 맡은 밀레안 백작은 헛기침하며 생색을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토르가의 골렘 마법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히 측면에서 다가오는 골렘을 상대하기 위해서 집결을 시작하였다. 그 골렘의 수가 자그마치 23기나 되었다.

쿠웅. 쿵.

다수의 골렘이 한 곳에 집결하였다.

땅의 진동은 점차 더 커졌고, 귀족연합군은 우측에 밀집하면서 병력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라. 적은 코앞에 있다! 적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려줄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밀레안 백작은 우렁차게 고함을 질러댔다. 그의 명령을 따라 각 부대가 다시 진군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을 때였다.

“헉! 가, 각하!”

“무슨 일인가!”

“그, 그것이······ 가, 각하의 몸에······.”

“으응?”

밀레안 백작이 고개를 내리고 자신의 몸을 보았다.

가슴 정중앙. 그곳에 붉은색으로 일렁이는 빛이 드리워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그의 말은 도중에 끊겼다.

퍽.

별안간 붉은 섬광이 터졌고, 그의 몸에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다.

“가, 각하!”

백작이 그대로 말에서 고꾸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휘관을 잃은 중앙군이 그야말로 우왕좌왕했다.

바로 그 순간, 언덕 위에서 은색 갑주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렬로 늘어선 그들은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하나같이 엄청난 거구와 장신의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바로 아이언 골렘들이었다. 적 기사단을 무찌른 그들의 갑주는 어느새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를 따라라. 적의 대형을 분단한다.]

자크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은색 기사단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선두의 자크를 중심으로 쇄기진형을 갖추었고, 지휘관을 잃은 중앙부대의 종심을 단숨에 돌파하였다.

그리고.

콰아앙!

좌측 전선의 골렘 역시 마침내 충돌하였다.

*

골렘의 수는 양측이 거의 같았다.

대지를 짓밟으며 달려나간 골렘들은 한꺼번에 충돌하였고 곧장 힘 싸움을 벌였다.

손과 손이 부딪쳤고, 한쪽을 꺾으려는 듯 드드드드 갈려나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몇백 미터가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 광경은 바로 코앞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먼지가 자욱하게 흩날리는 가운데, 제드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출력이 상당하군.’

제드는 그걸 단번에 눈치챘다.

스톤 골렘의 출력은 약 120마력의 안팎을 오가는 수준.

그런데 적 골렘은 그에 썩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량까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고가 비슷한 골렘전에서 힘 싸움이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는 것은 적 골렘의 출력이 스톤 골렘에 썩 밀리지 않는다는 걸 말했다.

‘최소 100마력. 초기형 골렘을 이 정도로 만들어낼 수 있다니. 오스터 형제의 영향력이 이 정도란 말인가? 이상하군. 이건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곧 골렘전의 양상이 본격적으로 변했다.

양쪽 골렘이 박투를 시작한 것이다.

초기 골렘은 따로 무기를 드는 일이 없었으므로 싸움은 자연스럽게 힘 대 힘의 양상이 되었다.

쾅! 콰쾅.

적의 검은색 골렘의 외장인 철판이 구겨지고 으스러졌다. 일방적인 타격은 아니었다. 공격을 주고받은 스톤 골렘의 바위도 부서지며 흩날렸으니까.

이런 식의 골렘전은 길어진다. 적 골렘의 수가 몇 기 더 많기는 했지만, 그게 절대적인 전력의 차이는 아니었으므로 전투가 이어지며 수복과 파괴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전열 골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마법사는 어디에 있지.’

블라르를 통해 적 진형의 골렘 마법사를 찾는 제드.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골렘의 교전 지역에서 약 400미터 떨어진 장소. 효율적으로 골렘을 조종하면서 안전할 수 있는 거리.

자리를 잡은 적 마법사들이 왜곡장을 펼치고 있었으나, 이미 위치가 포착된 상황이었으므로 때는 늦었다.

그리고 그들 마법사 중에 한 사람이 제드의 눈에 들어왔다.

‘파비앙 오스터. 예상했던 대로인가.’

토르가가 이 일에 개입한 것이다.

“1포부터 3포, 지금부터 내가 특정하는 좌표로 포격한다.”

제드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적 마법사를 노리고자 한다면 강습병 교리대로 움직이는 게 가장 확실하지만, 지금은 손이 모자랐다. 아이언 골렘은 좌측 전선에서 맡은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콰콰쾅!

곧 화포가 불을 뿜었고, 낮은 각도로 쏟아진 마법은 적 마법사들을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비교적 후위에서 머물러 있던 골렘이 불쑥 튀어나와서 포격의 화염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화르르륵.

불꽃이 일그러지며 요동쳤다.

조금 전의 포격으로 장갑판이 우그러졌고, 검게 그슬렸지만 빠른 수복으로 피해를 견뎌내는 모습.

“포격의 대처도 했다는 얘기군.”

기실 이 정도 근거리에서 포격을 정통으로 맞으면 웬만한 골렘도 버틸 재간이 없다.

그러나 지금 제드의 포병대가 기용한 마석은 겨우 정규급을 살짝 넘은 수준의 마석이었으므로 골렘을 쓰러뜨리기엔 화력이 다소 모자랐다. 그 정도로 강력한 화포를 제조하려면 조금 더 복잡하고 정밀한 공정이 필요하다.

“1포부터 3포는 같은 좌표로 유동적으로 조정하면서 계속 포격한다.”

콰콰콰쾅!

나머지 포문이 불을 뿜었다.

불꽃이 무방비하게 노출된 적군 병사들의 대열로 쏟아졌다. 불꽃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튀었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시간은 저들의 편이 아니었다.

머잖아 연합군의 측면에서 스톤 골렘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베른의 골렘들이 마침내 움직인 것이다.

‘끝났다.’

제드는 처음부터 적을 이 언덕을 앞둔 교전지까지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우측에 제1 기갑중대를 배치하고, 좌측에는 베른을.

적이 중앙으로 밀고 들어오는 순간에 좌우에서 골렘을 밀어넣어 적의 측면부터 분쇄하는 것이다.

비록 이 계획에 예상하지 못했던 적 골렘의 전력 때문에 우측의 제1 기갑중대가 묶이게 되었으나, 작전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적들에겐 대응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대열 속에서 카드란 마탑의 마법사들이 분전했다.

마탄을 쏟아내고 불꽃과 벼락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베른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더욱이 그들이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베른의 저격 마법은 붉게 점멸하며 마법사들의 목숨을 노렸다.

그리고 골렘은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왔다.

병사들은 이제 우왕좌왕했다.

붉은빛이 터질 때마다 지휘관과 마법사들이 죽었다.

머리 위로는 불꽃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종횡무진 진형을 부수며 사냥하는 적의 기사단까지.

이미 이건 전투가 아니다.

“퇴, 퇴각! 퇴각하라!”

지휘계통이 무너지고 대열이 흐트러진 군대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어둠 속을 가득 메운 적들의 횃불이 땅에 떨어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질서없이 도망가는 군대의 뒷모습.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군대는 걷잡을 수가 없다.

우르르 패주하는 병사들의 수가 1만 명을 웃돌았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전투다. 이토록 일방적이라니. 진정 시대가 바뀌었구나.’

베른이 생각이 깊어진 얼굴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감상에 잠길 때가 아니었다.

저 멀리서 골렘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스톤 골렘들이 다시 기동하였다.

*

승산은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오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리해졌다. 적은 이 전투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어.’

파비앙 오스터.

토르가 왕국 출신인 젊은 마법사는 불세출의 천재라고 불리는 인재였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진짜 이 마법사 부대의 우두머리가 바로 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종합적인 전력은 훨씬 유리했을 텐데. 지금은 완전히 무너졌다.’

파비앙은 생각했다.

적 지휘관이 이 넓은 전장을 손아귀에 두고서 쥐락펴락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이다.

그러는 사이, 적의 포격은 이제 이곳에 집중되었다.

콰콰콰콰쾅!

소용돌이치는 화염의 폭풍.

골렘이 온몸으로 마법사들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포격이 이 정도로 한곳에 집중되어서는 제대로 막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일렁이는 화염이 초원을 불태우고 있었고, 대기는 화상을 입을 정도로 들끓었다.

“파, 파비앙 님! 더는 골렘이 못 버팁니다!”

“······.”

까득.

파비앙은 이를 짓깨물었다.

이토록 일방적인 결과라니.

아직 그들의 골렘은 한 기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싸움의 결과는 이미 결정 났다.

‘이곳에서 더 버티다가는 낭패를 크게 볼 거야.’

파비앙은 그 결론에 다다랐다.

정면에서 붙어도 승산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적 골렘. 그런 상황에서 위력적인 포격마저 골렘을 조종하는 마법사들에게 집중된 상황. 적은 이 상황을 모두 내다보고 준비한 것처럼 너무나도 체계적으로 대응해오고 있었다.

‘더 머뭇거리다간 연합군을 무너뜨린 적의 날개 병력이 우리의 배후를 점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전멸이다.’

“후퇴하겠습니다. 모두 똑똑히 들으세요. 피해가 큰 골렘을 후위대로 두고 최대한 적 골렘을 붙잡고 늘어져야 합니다. 그렇잖으면 오늘 이곳에서 우리 모두 뼈를 묻게 될 수도 있습니다.”

파비앙의 서슬 시퍼런 경고에 마법사들은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곤 왕국에 이토록 강력한 골렘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적들의 격이 다른 전략과 전술에 대한 위험성을 본국에 알려야만 했다. 이 전투를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라이곤 왕국은 이제 군사 강국으로 완전히 거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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