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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46) (4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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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밤2

*

오싹.

등골을 스치는 그 감각에 기사는 고개를 돌렸다.

마나가 울부짖고 있었다. 이토록 거대한 마나를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이다.

‘큭. 마법사가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 좋지 않구나. 대체 이 정도의 기사들이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단 말인가?’

특히나 조금 전부터 미쳐 날뛰는 듯한 저 기사는 기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밀릴 지경이었다.

‘마법은 견딜 수밖에 없다. 먼저 저 광전사를 처치하지 않으면 길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 카드란 마탑의 고위 방어마법이 걸린 방어구인 만큼, 적어도 한두 번 정도는 견딜 수 있을 터.’

생각과 결단까지는 한 번에 이루어졌다.

스키터니안 후작가의 기사단장 도널드는 랜스를 내던지고 칼을 뽑았다. 푸른빛 마나가 촘촘하게 얽혔으니, 그의 칼에 오러가 드리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퍽.

“컥.”

도널드가 신음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의 가슴팍. 마법이 깨진 방어구에서 마나가 흩어졌다. 그리고 그의 심장부에 지름 3센티미터 남짓의 구멍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유언처럼 내뱉은 그 말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말에서 떨어진 그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약 백여 미터의 밖.

연신 불을 뿜는 화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베른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역시 훌륭하군요.”

“기묘하군. 자네에게 내 마법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마법을 펼칠 때의 술식만으로도 많은 걸 알 수 있는 법이죠.”

제드의 말은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술식 하나로 그렇게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면 세상에 비전이라는 말은 사라졌어야 했다.

그러나 베른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제드라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마법의 특성과 강점까지 진즉 꿰뚫어보았다는 말이지.’

베른은 쓰게 웃으며 곧장 다음 마법을 준비하였다.

거대한 마나를 압축하고 압축한 후에 아주 작은 구슬의 형태로 쏘아 날리는 그의 마법은 투사 마법 중에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마탄과 비슷했다.

그러나 형태만 같을 뿐, 그 마법에 가미된 술식은 4써클의 마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마나 압축, 투명, 정밀 조준, 무음, 투사 속도, 나선 등 다양한 마법술식이 베이스가 되는 이 마법은 단 한 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마나가 소모된다.

그러나 완성된 마법은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었으니. 목표점을 잡고, 그 후에 검지의 손가락 끝에 모인 마법을 날린다.

피융.

흡사 바람이 찢기는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가 멈추는 곳. 고함을 지르며 칼을 휘두르던 또 한 명의 기사가 비명을 내지르며 널브러졌다.

“둘.”

제드는 카운트를 세고 있었다.

조금 전의 마법으로 두 번째 기사단의 수장까지 쓰러졌다.

남은 건 하나였다.

그러는 사이, 기사단장을 잃은 각 기사단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사단 최고의 실력자가 널브러져 죽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하지만 폭주하기 시작한 아이언 골렘은 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살육에 눈이 멀어 버린 그들은 적 기사단을 향해 저돌적으로 덤벼들 따름이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들이!”

고함이 울려 퍼지고 불똥과 굉음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들의 고함이 어둠 속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제드는 힐긋 어둠의 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적의 주공의 기세가 꺾였으니, 이제 다음으로 넘어갈 때다.

“포격 중지.”

*

밤은 점차 깊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새벽의 시각.

주둔지를 불태우던 불꽃이 서서히 그 기세를 잃어갔다.

귀족연합군의 병력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아직 정확한 집계도 되지 않았음에도 들려오는 사상자의 수만 해도 천 명은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 덕분에 후작의 심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해지고 있었다.

‘이 대가는 비싸게 치러야 할 것이다.’

후작이 그렇게 속으로 이를 갈고 있을 때였다.

“각하.”

“또 무슨 일이냐.”

“적들이 쏟아내던 불꽃이 멈추었습니다.”

그 순간, 후작이 눈을 치켜떴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흐하하. 그렇지! 기사단이 적의 진영을 휘저어놓았구나.”

그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포격을 계속 이어나간다면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는데, 돌연 멈출 연유가 무엇이던가.

“전군 즉시 진군한다.”

“옛!”

후작이 명령을 내린 직후였다.

카드란 마탑의 타블론이 다가와 조용히 제언했다.

“각하, 지금의 전장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의 경우가 있으니, 그들을 앞세워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들.

타블론의 말에 후작은 미간을 모으고 고민에 잠겼다.

그 제언은 일리가 있다. 포격이 다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타블론이 말하는 이들을 이 전쟁에 참전하게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훗날 그가 왕위에 오를 때 외세의 힘을 빌렸다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들과의 우호 관계는 나라를 운영해나갈 때 분명히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알겠소. 그렇게 하지. 그들은 어디에 있소?”

“각하께서 찾으실 줄 알고 미리 불러두었습니다.”

타블론이 그렇게 말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곧 저편의 어둠 속에서 마법사 여럿이 걸어나왔다. 그들은 타블론이나 카드란 마탑과는 또 다른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저희를 찾으셨다지요.”

“지금부터 군대를 진군시킬 참이오. 상황을 미루어보건대 적들의 포격이 끝나기는 한 것 같소만, 혹시 모를 일이지. 이왕 이런 식으로 전투가 개시되었으니 귀국의 성의라는 걸 한 번 볼까 하는데, 괜찮겠소?”

“물론입니다. 불러주실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움직인다.

제드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포격을 피해서 도심지로 숨어들거나 저 멀리까지 빠졌던 적의 군대가 대열을 맞춰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적은 제드가 예상한 그대로의 대응만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이 이 시대의 기본적인 전술교리였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 정도로 예상 그대로 움직여서야 그 명령에 죽어야 할 병사들의 목숨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아군의 측후방을 급습했던 적 기사단은 이미 무너진 상황. 저마다 살 길을 찾아 달아난 상태였다. 후작이 예상했던 바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물론, 귀족연합군도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포격에 대비하여 병력을 산개하여 진군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개전부터 기습 포격으로 많은 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군은 포격이 다시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혼비백산할 것이다.

어느새 약 500미터 앞까지 진군해온 군대.

평야에 가득 내린 어둠의 너머로 일렁이는 횃불이 보였다.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지평선을 가득 메운 듯한 광경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다.

슬슬 때가 되었다. 제드가 팔짱을 풀고 손을 들어 올리다가 별안간 미간을 모았다.

‘이 소리는 뭐지?’

쿵. 쿵. 쿵.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소리. 그건 땅이 울리는 소리였다. 제드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소음. 전장의 소리.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다가오는 적들에게서 들려왔다.

‘이건 병사들의 발소리가 아니다. 그것치곤 너무 소리가 커.’

그 순간, 블라르가 높은 하늘에서 아래로 빠르게 하강하였다. 위에서 살피던 병사들의 모습이 가까워졌고, 조금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움직이는 병사들과 떨어진 곳 앞쪽. 그곳에서 먼지가 절로 이는 게 보였다. 그게 한두 곳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블라르가 더 낮게 날았을 때였다.

어둠 속에서 기묘하게 일그러진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곡장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병사들 틈에서 수십 발의 마탄이 쏟아졌다.

퍼퍼퍼퍼펑.

매섭게 쏟아지는 마탄을 곡예비행으로 가까스로 피한 블라르는 곧장 하늘 높이 치솟았다.

조금 전의 마탄의 수준은 일반적인 마도사가 사용할 수준이 아니었다. 마탑의 마법사가 함께한다는 얘기다.

제드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배후가 있군. 다른 거대 세력이 끼어들었어.’

후작가를 지원하는 마탑이라면 남부의 카드란 마탑이 가장 유력할 터였다.

그러나 저 왜곡장 너머에 있는 존재.

골렘은 또 다른 얘기였다.

‘지금 골렘을 동원해서 라이곤의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면 둘 중 하나다.’

렌시아 공화국 혹은 토르가 왕국.

렌시아 공화국은 이전 광산 전투에서의 피해가 컸으므로, 절대로 이번 일에 끼어들 생각이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군. 토르가 왕국의 골렘이다. 정제법을 발표했을 때부터 다수의 골렘이 있으리라 짐작은 했다만.’

제드가 웃었다.

재미있군.

골렘 대 골렘이라.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기실 그게 당연하다.

전장에서는 항상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법이었다.

확인해보면 알겠지.

제드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뒤에서 포병대를 지휘하는 마법사가 우렁차게 외쳤다.

“각 포, 포격 개시!”

곧 일제히 화포가 불을 뿜었고,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굉음이 뒤따랐다.

그리고.

콰콰콰쾅!

500미터 지척에서 연쇄폭발이 터졌다.

불꽃에 휘말린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포격에 휩쓸리진 않았어도 그 광경을 본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포격의 불꽃 중 절반은 허공에서 폭발했다.

아니, 정확히는 왜곡장 안에 가려진 골렘을 명중한 것이다.

폭발의 여파가 왜곡장을 완전히 지워내자, 곧 그 너머에서 검은색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4미터의 거구에 철판 따위를 두른 골렘.

그게 한두 기가 아니었다.

“허. 골렘이라니. 연합군에도 골렘이 있었단 말인가?”

옆에서 베른이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 놀라지 않은 이가 없다. 특히나 그처럼 거대한 골렘을 처음 본 로톤은 거의 기절할 듯 놀란 모습이었다.

“거, 거인······!”

그러나 이 상황 속 단 한 사람, 제드만큼은 침착하였다.

토르가에서 정제법이 발표된 이후로 어쩌면 그가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개입을 해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상관없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제1 기갑중대.”

제드는 지금까지 대기하던 마법사들을 불렀다.

적의 대군이 포격을 넘어서 코앞까지 당도하면 나서서 한번에 정리할 참이었는데, 이제 예정이 바뀌었다. 지금부터 골렘전이 벌어질 터였고, 이 전장은 이제 그들의 무대였다.

“눈앞의 적을 섬멸하라.”

제드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쿠구웅!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진동과 묵직한 소음이 우측의 언덕 뒤에서 들려왔다. 짙은 어둠 속에서 스며 나오듯 회색의 바위 거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곡장의 완벽한 상위 단계의 마법인 은폐장이 마침내 걷혔으니, 제1 기갑중대의 스톤 골렘들이 드디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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