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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45) (4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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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밤1

그곳에 펼쳐진 것은 지옥도였다.

평화로웠던 밤 속에 떨어져 내린 불꽃은 지상을 불태웠고, 수없이 많은 병사를 집어삼켰다.

“처, 천벌이다!”

“하늘에서 불의 재앙이 내린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패닉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기 바빴고, 이 소식은 포격을 받지 않은 막사 진영으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병사들 대부분이 술에 취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으. 머리야.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거나하게 취하여 창녀와 뒹굴고 나자빠져 있던 병사들이 밖의 소란에 한둘씩 나왔다. 사방에서는 조장과 용병단장들이 고함을 질러대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병력의 수가 자그마치 2만 명이었다. 그 혼란의 수습이 쉬울 리가 없다.

퍼퍼펑.

아주 멀리서 울려 퍼지는 포격음은 그 소란 속에서 완전히 묻혔다. 우왕좌왕하던 병사들 태반은 자신의 머리 위로 불꽃이 날아들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였으니.

콰콰콰쾅!

처음 포격이 떨어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불꽃이 세차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혼란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 소식은 성에서 단잠에 빠져있던 스키터니안 후작의 귀에도 그대로 들어가게 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란이란 말이냐!”

“가, 각하! 공격을 받았습니다!”

“뭐라고?”

깜짝 놀란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오는 후작은 나체였다. 그의 곁에서 잠들었던 어린 소녀 둘이 슬그머니 헐벗은 나체를 감추는 가운데, 후작은 가운을 대충 걸치고 저 밖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문의 앞에 섰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주둔지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광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건방진 계집년이 감히 나를 쳐!”

후작이 핏발이 선 얼굴로 소리쳤다.

“당장 혼란을 수습하고 대응해! 적은 바로 코앞까지 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드란 마탑의 마법사들 다 데려와!”

스키터니안 후작의 군대는 오합지졸은 아니었다.

기사단과 병지휘관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병사를 규합하여 재집결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포격은 도심지까지 미치지는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주둔지 막사로 포격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으므로 사상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후작은 한결 침착해진 태도였다.ㅇ

“당장 대처는 이만하면 된 것 같군. 자, 이제 지금 저게 무슨 상황인지 한 번 설명해보시오, 타블론. 저게 도대체 무슨 마법이오?”

“마법의 종류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단, 저토록 먼 거리에서 이렇게 위력적인 마법을 일정 간격을 두고 쏟아내는 것은 통상적인 마법은 아니지요. 아마도 소문의 화포라는 병기를 사용하는 듯합니다.”

“귀하의 마법사들은 저런 마법을 사용할 순 없소? 뭔가 대처를 해야 할 것 아니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저런 마법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당장 어떤 대처도 어렵습니다.”

“흥! 그럼 어쩔 도리가 없다는 얘기군. 그럼 귀하들이 할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이오?”

후작이 사납게 소리쳤다. 하지만 타블론이라고 불린 마법사는 침착한 기색이었다.

카드란 마탑의 원로 마법사인 그는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후작의 곁에 있었으므로, 그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많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라르곤 마탑이 카드란 마탑을 기만했다는 것이지요. 카드란 마탑은 지금 이 순간부터 각하와 같은 편에 설 것입니다.”

후작의 굵은 눈썹이 요동쳤다.

“라르곤 마탑이 여왕의 편에 붙기라도 했다는 말이오?”

“그렇게밖에 보기 어려운 정황입니다. 불과 이틀 전에 그들은 저희 마탑에 제드 크레인 총독의 목숨에 관한 건으로 중재를 요청해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야간에 공격을 해오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 마법입니다. 라르곤 마탑이 배후에 있음은 자명합니다.”

“하! 카드란 마탑의 권위라는 것도 땅에 떨어진 모양이오. 라르곤 마탑이 당신들을 이렇게나 무시하다니.”

“그래서 카드란 마탑이 앞으로 각하와 함께하리라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각하께서도 앞과 뒤에서 다른 짓을 하는 부류를 아주 싫어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그런 놈들을 모조리 찢어 놓소. 근데 마탑을 상대할 수는 있는 것이오?”

“각하와 함께라면 카드란 마탑이 왕국 최고의 마탑이 되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큭큭. 후작은 웃었다.

많은 병사가 불꽃 속에서 죽어나갔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병사란 주인을 위해서 쓰이는 존재들이다. 다시 말해서 저들이 이렇게 죽는 것조차도 그를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좋아, 그럼 이제 반격을 해야겠지. 지금쯤 기사단이 적 진영에 다다랐을 거요. 아마도 그들만으로도 싸움이 끝날지도 모르오.”

후작은 단언하였지만, 타블론은 신중했다.

병력만이 아니다. 질적으로도 연합군의 기사단이 우위에 있다는 걸 적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먼저 공격을 해오지 않았던가.

과연, 이게 철저한 준비 없이 가능한 일일까.

“각하, 군대를 서둘러 정비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

“남부의 늑대라더니. 그냥 숫자만 맞춘 건 아닌 모양이군.”

제드의 평가였다.

주둔지를 벗어나는 병사들의 모습에 질서가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적들의 지휘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한편, 개전부터 지금까지 제드의 옆에서 모든 상황을 목도한 로톤은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화포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에 적의 주둔지는 불바다였다.

경악한 건 로톤만이 아니다. 그와 함께 이 전장에 서 있는 도시수비대 병사들. 그들도 똑같다. 저런 압도적인 병기가 존재한다면······ 그들 하나하나의 목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로톤은 그제야 제드가 했던 그 말의 의미를 겨우 헤아렸다.

제드는 진심으로 이 병력으로 충분하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닐 것이다. 스키터니안 후작,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고만 있진 않을 거다. 이미 반격을 준비하고 있겠지.’

로톤의 예측은 정확하였다.

‘이렇게나 틀에 박힌 대응이라니.’

제드가 피식 웃었다. 창공을 나는 블라르는 이 일대의 전역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 밤의 어둠조차도 블라르에게는 큰 방해가 되지 않았으므로, 그 시야에서 벗어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였다.

적의 기사단이 줄지어 초원평야를 내달리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들은 총 세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었는데, 각각 갑주에 새긴 문양과 나부끼는 깃발이 다른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각각 가문의 정예들이리라.

“빌, 적이 오는군요.”

“준비하겠습니다.”

때를 기다리며 대기하던 장창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진형을 갖추었다. 제식이 갖춰지고 군기가 잡힌 모습. 복장에 갑주, 그리고 무기까지 통일된 그들은 정예병처럼 보였다.

“자크 경.”

[알겠소. 저번처럼 대응하겠소.]

두두두두두.

땅이 진동한다.

좌우에서 먼지를 흩날리며 모습을 드러낸 기사단은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토바스 때처럼 각 가문의 기사들이 뒤섞였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하나로 뭉친 제대로 된 기사단이었다.

그들은 일정한 대열을 유지하면서 언덕의 너머 방진을 이루고 창벽진을 갖춘 적들을 발견했다.

‘제법 체계적이다. 하지만 숫자가 적어. 충분히 뚫는다.’

“가자, 밀리안 기사단이여. 백작가에 영광을!”

“영광을!”

랜스를 옆구리에 붙이고 달려오는 기사단. 그 수는 수십에 육박하였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은 코르센 남작가의 기사단이었다. 그들 역시 적을 깨부수는 것이 자신들의 몫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꼿꼿이 세우고 있는 창의 숲을 향해서 전투마가 뛰어들려고 할 때였다. 창벽의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이들이 있었다. 2미터가 넘는 은색 갑주의 존재들. 그 수가 100명에 육박한다.

“엇!”

써걱.

벼락같은 공격은 그들의 반응속도를 아득하게 넘어섰으니, 선두의 기사가 말과 함께 두 동강이 나며 널브러졌다.

“갈라진다!”

그 순간, 기사단은 좌우로 대열이 나뉘었다.

저 괴물 같은 존재들과 정면에서 충돌하는 게 아주 위험한 일이란 걸 눈치챈 까닭이다.

기민한 대응이었으나,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남김없이 모조리 베어라.]

자크가 대검을 붕 휘두르며 땅을 박찼다.

*

제드는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했다.

인간을 죽이는 행위 자체는 아이언 골렘에 깃든 정령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폭주로 이어진다.

‘현재는 그걸 막을 수 없다.’

에델노르는 정령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그랬다. 그러면 들릴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제드는 그 골렘들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제드는 요정들과는 달랐다.

‘지금은 폭주를 막을 게 아니라, 그마저도 이용해야 할 때다.’

전생의 제드는 오랜 시간 전장을 겪었던 골렘이 폭주하는 경우가 잦다는 결론에 도달한 이후에 오히려 그러한 골렘들을 최전방으로 보냈다.

그 골렘들은 십중팔구는 반드시 폭주하였고, 그렇게 폭주하는 골렘이 적진의 한복판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적들조차도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제드가 고개를 돌렸다.

어둠. 그 너머에서 희미하게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그 수는 수십 명을 가뿐히 넘겼다.

‘자크 경, 곧 적의 후속대가 온다. 그들이 적 기사단 중에서도 단연 최정예다. 준비하도록. 일곱 번째와 아홉 번째. 그리고······.’

제드는 자크에게 몇 가지를 지시하였다.

그리고 곧 땅이 무섭게 진동하였다.

세 번째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혼전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쐐기진형을 갖추고서 제드가 있는 본진으로 곧장 달려오는 기사단.

푸른 독수리가 새겨진 깃발을 나부끼는 그들은 바로 스키터니안 후작가의 늑대 이빨이라고 불리는 기사단이었다.

“지금이다.”

제드는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달려오는 기사단의 좌우에서 몇 기의 아이언 골렘이 무섭게 뛰어들며 대검을 휘둘렀다.

“어림없다!”

카아앙!

늑대 이빨이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닌 듯, 그들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좌우의 협공에 대열이 흐트러지기는 하였으나, 이내 몇 명이 말에서 내려 대응할 뿐, 목적은 명확하다는 듯 제드를 향해 달려온다.

그들을 모두 막기엔 제드의 군대는 수가 적다. 이대로라면 적 기사단이 창벽진으로 뛰어들 터였다.

‘좋지 않다.’

흘려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로톤은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허리춤의 칼을 뽑았다.

“저도 돕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각하, 이대로라면 밀립니다. 스키터니안 가문의 기사단은 강합니다! 밀레안이나 코르센 기사단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듯하군요. 특히 선두의 저 기사는 마스터에 근접한 것 같습니다. 로톤 경과 대결한다면 좋은 적수가 되겠죠.”

“그렇다면 더더욱 나설 때로군요.”

“아니요. 거듭 말하지만, 이번 싸움에 경이 나설 때는 없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제드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시작됐군.’

적 기사단의 대열에 뛰어들었던 아이언 골렘 중 한두 기가 별안간 바르르 몸을 떨어대는 게 보였다. 거듭된 살육과 전투 피해. 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콰아앙!

별안간 대검에서 줄기줄기 흘러나오는 마나가 폭발하며 대적하던 기사의 몸을 휩쓸어버렸다.

“뭐, 뭐냐. 모두 놈부터 해치워라!”

갑주가 거의 다 파손되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아이언 골렘이 녹색 안광을 뿜어내며 광전사처럼 달려들어 순식간에 기사 하나를 찢어발기자, 깜짝 놀란 기사단장이었다.

그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기사단은 달려들던 것을 멈추고 폭주하는 아이언 골렘을 상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드는 힐긋 베른을 보았다.

“이제 베른의 차례인 것 같네요. 집단에는 머리가 있고, 그 머리가 쓰러지면 집단의 힘은 약해지는 법이죠. 그를 거꾸러뜨려 주셔야겠습니다.”

“명예롭진 않은 일이로군.”

“전장에 명예란 오직 공으로만 따지는 법입니다.”

“음, 그도 그렇군. 아주 지당한 말일세.”

그 순간, 베른의 목걸이가 빛을 내뿜었다.

마나가 개방되어 그의 로브와 흰 수염이 무섭게 나부꼈다.

곧 서슬 시퍼런 베른의 시선이 기사에게 꽂혔고, 베른은 주름진 손을 허공에 뻗었다.

어둠 속에서 붉은빛이 점멸하였고, 곧 적 기사의 가슴팍 한가운데에 그 빛이 맺혔다.

저격.

붉은 재앙.

베른에게 그 무서운 이명을 안겨주었던 마법이 펼쳐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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