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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43) (4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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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연합4

*

정령의 목소리.

예전 블라르를 통해 아이의 웃음 같은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폭주하는 골렘에서 기억 일부를 엿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말의 의미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자크 경과는 전혀 다르다.’

제드는 흥분을 억누르고 골렘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름을 달라고 했던 것은 그대인가?’

[그렇다. 그대가 나에게 형태를 주었다. 형태를 규정하는 이름을 통하여 나는 새롭게 거듭날 것이다.]

분명한 의사의 전달.

제드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크가 반정령이 되어 아이언 골렘으로 거듭났던 것과는 달리 지금 이 스톤 골렘에 깃든 것은 순수한 정령이었다.

그런 정령이 이토록 분명하게 의사전달을 해오다니. 원활한 의사소통이 된다는 점에서 제드는 놀랐고, 동시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지금까지는 다른 골렘에게 이런 현상이 없었던 것일까. 정령의 개체차이? 혹은 격의 차이일까?

‘새롭게 거듭난다고, 그렇게 말했었지.’

이름은 그 존재를 규정하고 영혼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였다. 마법사가 이름을 건 맹세를 하는 것이 강력한 구속처럼 작용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연유였다.

“오베르. 너의 이름은 오베르다.”

제드는 루카스의 골렘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좌중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보기엔 갑자기 잠자코 있던 제드가 불쑥 저런 말을 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드드드득.

멀쩡하던 골렘이 육체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그때와 같은 상황인가?”

베른이 놀라서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챙.

자크가 번개같이 칼을 뽑았다. 언제든 지시가 떨어지면 달려나갈 기세였다.

[주군, 일이 커지기 전에 베겠소.]

“잠깐.”

제드가 자크를 제지했다.

저건 폭주와는 전혀 다른 현상이었다.

제드는 체내에서 마나가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골렘을 일으킬 때와 비슷하였다.

스스스스.

바닥에 모래가 빨려 들어가듯이 스톤 골렘으로 모여든다. 대지에 뿌리를 내린 발을 타고 모래가 골렘 전체를 뒤덮었다.

틀림없었다. 그것은 변화하고 있었다.

오베르.

이제 그 이름을 갖게 된 스톤 골렘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스톤 골렘의 재료를 향해 손을 뻗었다.

쓰스스스.

부서진 바위는 콰직 조각나더니 스톤 골렘의 팔에 달라붙었다. 철과 모래, 흙이 모두 흡수되었고 스톤 골렘의 체구가 조금씩 커졌다.

그렇잖아도 4미터나 되었던 스톤 골렘이었는데, 한 기를 더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집어삼킴 골렘은 이제 4.2미터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나를 깨우고 이름을 안겨준 자여, 이 몸에 걸맞은 활력을 다오.]

제드는 품에서 마석을 꺼냈다.

3개의 마석.

원래 이렇게 마석을 사용하려면 격 자체를 끌어올리는 사전 작업이 수반되어야만 했다. 마석의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마석 하나에 깃든 에너지의 양이 워낙에 거대한 까닭에 자칫 엄청난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저 스톤 골렘에 깃든 정령은 자의로 격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지이잉.

제드의 손에서 벗어난 마석 3개가 허공을 날았다. 스톤 골렘 오베르는 쿵 한쪽 무릎을 꿇고서 그 마석을 받아들였다.

마석은 가슴 안쪽으로 스며들 듯이 모습을 감추었다.

제드는 주문을 외웠다. 기존의 코어를 새로운 마석과 연결해서 전혀 새롭게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곧 제드와 스톤 골렘의 사이, 허공에 만들어진 푸른빛의 마법술식이 복잡한 구조로 얽히고설키기를 반복하였다.

그 마법술식의 구조와 배열은 지금까지 제드가 보여주었던 그 어떤 마법과도 달랐다.

“엄청나군. 3중, 4중으로 얽힌 마법술식을 제어하면서 엮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베른은 감탄을 거듭하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걸 실제로 하려면 한번에 얼마나 많은 마법술식의 패턴을 동시에 연산해야 하는지 짐작도 하기 어려웠다.

베른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대부분 마법사에겐 불가능한 일이리라. 저 정도의 술식연산을 해내려면 써클과 무관하게 방대한 정신세계의 영역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어야만 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제드는 머잖아 마법을 완성했다. 요동치던 마나의 흐름이 멎었고, 골렘을 중심으로 휘감기던 바람도 그쳤다.

마법술식이 잔상처럼 흩어졌고, 그 중심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서 앉아있는 스톤 골렘이 있었다.

꿀꺽.

바로 지척에 서 있던 루카스가 마른 침을 삼켰다.

골렘과 체결된 상태인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골렘이 아까 전과는 전혀 다른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오베르.”

제드가 골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골렘이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드드드. 높이 뻗은 뿔이 하늘로 향하였고, 마침내 그 골렘이 일어났을 때, 장내의 모든 마법사들은 전혀 달라진 골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오베르. 그대가 나를 새로이 거듭나게 하였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너는 나와 함께 질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인지하였다. 나를 창조한 존재여, 그대의 이름을 말해다오.]

‘제드 크레인.’

[그대의 이름이 내 안에 각인되었다.]

제드는 경이에 잠긴 얼굴을 했다.

눈앞의 스톤 골렘에게서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정확한 출력은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어림잡아도 200마력이 넘으리라는 건 분명했다.

골렘의 등급을 끌어올리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골렘을 설계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지금 오베르는 그 모든 과정을 건너뛰었다.

“루카스 소위, 축하한다. 그대의 파트너는 특별하다. 이 골렘에겐 이름이 생겼다.”

“오베르. 그것이 이 골렘의 이름입니까?”

“그렇다. 소위는 선택을 받았어.”

제드가 그렇게 말하며 루카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루카스의 눈동자가 떨렸다. 벅찬 기색을 감추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제드, 나는 그대를 통해 태어났다. 저 존재는 그대를 대신할 수 없다.]

그 분명한 의사에 제드가 당황했다.

‘루카스가 그대를 조종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의미인가?’

[저 존재에게 그런 권한은 없다.]

다시금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오베르.

제드로서는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골렘이 이토록 명확하게 자기 의사를 밝히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자크야 원래 인간이었으므로 그럴만하지만.

‘내가 그걸 원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인가?’

오베르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 침묵이 당혹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지금 오베르는 흡사 생각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인간 같은 면모였다.

[알겠다. 하지만 나는 저 존재와 대등하다.]

오베르가 그렇게 받아들였다.

물론, 완전히 제드의 말을 따른 건 아니었다.

대등하다.

그 말에 깃든 의미 때문이다.

‘격이 올라가게 되면 자아가 명확해진다는 건가. 나머지 골렘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중에 아우로렐을 통해 확인해봐야겠어.’

제드는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는 국가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대들은 따로 맡아서 해줄 일이 있다. 골렘을 조종하는 것만큼이나 아주 중요한 일이지.”

“맡겨만 주신다면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대들은 지금부터 포병대를 맡아줘야겠다.”

*

그레즈.

라이곤 왕국의 수도.

대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큰 왕궁의 집무실에서는 여왕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12인 회의가 성립된 이후로는 이렇게 두통이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바로 며칠 전의 성명이 지금 그녀를 몹시도 괴롭히고 있었다.

“폐하, 건강을 챙기셔야 합니다.”

“로톤 경······.”

늘 바로 지척에서 그녀를 지키는 근위대장 로톤의 걱정 어린 말에 라니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쟁이 바로 코앞인데, 어떻게 국왕인 제가 건강을 따질겨를이 있겠어요. 저 반역자들의 병력이 2만 명이 넘는 대군이라는데 말이에요.”

“전장은 숫자가 많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숫자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겠죠. 현재 직할령에서 병력을 다 동원한다면 군대가 얼마나 될까요.”

“족히 2,000명의 병력은 나올 것입니다.”

“10배가 더 차이 나는군요. 지금 용병을 모은다고 해도 도저히 저들과 비슷한 숫자를 맞추는 건 불가능하겠죠. 2만이면 이미 태반의 용병들이 다 저쪽에 붙었다는 얘기일 테니까요.”

기실 로톤은 숫자를 더 올려서 말했다.

여왕의 통치 이후에 직할령이라고 해도 각 도시는 저마다 돌아가는 판국이었으니, 실질적으로 여왕이 소집을 명해도 모이는 건 기껏해야 렌토 지방의 병력이 전부이리라.

“아직 총독에게서 서신은 없었나요?”

“예, 아직 아무런 서신도 당도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하네요. 그들이 말한 시간의 유예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러다가 그레즈가 유린당하는 것은 아닐지 악몽까지 꿀 정도예요.”

“폐하,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근위대가 폐하를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제드 크레인 백작이 어떤 사람인지는 누구보다도 폐하께서 잘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그는 절대로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니아의 표정에 드리웠던 조바심이 그제야 좀 가셨다.

“그렇겠죠. 그가 손을 놓고 있을 사람이 아니죠.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 준비해주세요. 최대한 많은 병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옛, 알겠습니다.”

로톤이 막 그렇게 대답했을 때였다.

똑똑.

별안간 노크에 두 사람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폐하, 아리에입니다. 총독 각하의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드, 들어오너라!”

라니아는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나깨나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다.

수도 그레즈의 남부엔 여러 영지가 있었다.

가장 먼저 수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때는 직할령 일부였던 케미트로스 공작령이 있었다.

그 공작령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콜렉 남작령, 남부로는 밀리안 백작령과 코르센 남작령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국 남부 전역에서 가장 거대한 영지를 보유한 스키터니안 후작령이 있었다.

스키터니안 후작령은 예로부터 동쪽으로는 토르가를 견제하고 남쪽으로는 공화국을 견제하면서 강력한 군사력을 상시 유지해왔고, 완벽한 자치권을 행사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조금씩 더 힘을 키웠고, 영지전을 벌이며 몇 개의 가문을 흡수하면서 이젠 국왕 직할령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영토를 보유하게 됐다.

당대의 스키터니안 후작은 보기 드문 야망가였고 수완이 대단하여 왕국의 남부 전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였다.

그 말인즉, 귀족연합의 수좌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란 얘기다.

이곳은 스킵턴. 스키터니안 씨족이 발원한 땅이자, 바위의 요새라고 불리는 성채였다.

벌컥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오는 인물의 등장에 넓은 회의실에 앉아있던 수십 명의 귀족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 사내는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장신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한 인물이었다.

무수한 귀족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

그가 바로 이 거대한 영지의 주인이었다.

바무르 스커스 스키터니안.

늑대와 같은 인상의 영주는 상석에 앉았고, 수십 명의 귀족은 그제야 한둘씩 자리에 착석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서슬 시퍼런 시선이 좌중을 훑었다.

“그레즈에서는 여전히 소식이 없다지.”

“······.”

“어린 계집이 겁이 없군. 오합지졸의 용병을 잡았다고 해서 이 라이곤이 제 것이 된 줄 아는 모양이야.”

어린 계집.

그게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공석에서도 후작은 여왕을 그렇게 멸시하였다. 그는 늘 그랬다. 아니, 그건 선왕 시절 때부터 그랬다.

힘이 없는 왕권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차근차근 좀먹어가는 왕권을 그는 언제고 빼앗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하지 않은 것은 그깟 왕관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여왕이 건드렸다.

“현실이 어떤 것인지 알려줘야겠지. 공작령까지 군대의 진군을 명한다.”

“하지만 그러면 공작령에서 반발이 있을 것입니다.”

“반발? 껍데기만 남은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설친다면 싹 다 죽여서 입을 다물게 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 말에 입을 꾹 다무는 좌중. 실로 무시무시한 발언이었다. 아무리 케미트로스 공작이 죽으면서 공작가의 위세가 땅에 떨어졌다고는 해도 그들은 왕족이었다.

그러나 후작은 거침이 없었다.

“아직도 왕족을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다니. 그대들은 아직도 감이 안 오는가? 세상이 변했다. 바로 내가, 이 바무르 스커스 스키터니안이 왕좌에 앉을 때가 되었단 말이다. 저깟 왕족이 다 무슨 소용이냐? 그 어린 계집 따위는 내 첩으로 삼아주마. 모든 게 뒤집어지면 내가 곧 왕이다!”

왕위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 하지만 가신을 비롯한 연합의 귀족 중 감히 그의 의견에 토를 다는 자는 없었다.

후작가의 깃발 아래에 집결한 군대를 보라!

저 걸걸한 외침에 고개를 조아리는 무수한 귀족을 보라!

지금 이 순간, 그는 누구보다도 왕좌에 가까운 인물이 틀림없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머잖아 세상은 뒤집힐 것이다. 그것을 의심하는 이는 이곳에 없었다.

그렇게 남부에 집결한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이 실로 장관이었다. 무수한 상인 마차의 대열과 창녀들이 북쪽으로 나아가는 군대를 따라 움직였다.

남은 유예의 시간은 10여 일.

후작의 눈이 굶주린 늑대의 그것처럼 희번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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