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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연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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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을 귀족연합이라고 통칭한 자들의 성명.
그것은 사실상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제드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인 만큼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의외군. 곧바로 움직일 줄 알았는데, 꽤 늑장 부렸어.’
제드가 토바스 사태 이후에 그레즈와 토바스, 레지앙을 순회하면서 체계를 잡는데 잠깐도 시간을 아끼지 않았던 것은 귀족들이 금방이라도 손을 잡고 움직일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이대로 시간만 끌 참인가? 그런 생각이 들 차가 되어서야 이번 성명이 있었던 것이다.
늦어도 한참 늦은 대응.
해가 지나고 석 달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그들에게 존재하는 아주 작은 승률마저 완전히 사라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얼마 전의 성명문은 모두 들었을 것이다.”
제드는 눈앞에 나열한 마법사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단상의 아래에 삼십여 명이 서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춘 그들은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들은 국가 마법사라고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제드는 그들의 면면을 눈에 담고서 말했다.
“묻겠다, 제군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국가의 안녕에 위해가 되는 적을 부수는 일입니다.”
선두에 서 있던 한 명의 마법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루카스였다.
“어떤가. 모두 그렇게 생각하나?”
“예, 그렇습니다!”
하나로 단결된 목소리.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제 그대들이 누구인지 적들에게 증명하라.”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출병의 준비는 끝마쳤다.
레지앙을 끝나기 전, 제드는 지시를 내렸다.
“공정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런 일은 없으리라 여기지만, 혹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척결하는 게 바로 그대의 역할이다. 알고 있겠지, 리틀리 소위.”
“물론입니다, 수석마법사님.”
“좋아, 그대가 맡은 이 임무 역시 아주 중요한 일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러가도록.”
리틀리 소위라고 불린 마법사는 절제된 동작으로 거수경례를 마치고 돌아갔다.
지난 석 달의 시간.
그동안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저것이었다.
국가 마법사의 정체성.
제드는 국가 마법사의 기틀을 확립한 이후에 그들을 군대화하였다. 제식으로 통일성과 명령체계를 확립하였고, 군대의 계급을 통한 선임 마법사와 후임 마법사를 나누어 집단성을 강화하였다.
그 성과는 아주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지금의 것들이 조금 더 체계화된다면 사관학교로서의 토대는 완전히 갖춰질 것이다. 그건 시간이 쌓이면 해결될 문제다.’
푸르륵.
제드가 고개를 돌렸다. 흑마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곧 말을 끌고 온 사람에게 꽂혀 있었다.
“마리아.”
“후훗. 놀라셨나요?”
“조금은. 이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잖아. 머잖아 도시로 완전히 거듭나게 될 시장님께서 말을 끌고 오는 일을 하다니 말이야.”
“누가 하면 어떤가요. 저도 이 마을의 사람 중 한 사람에 불과한걸요. 그리고 이 말의 고삐를 진짜 주인에게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저 빼고 몇 없을 거에요.”
제드는 옅게 웃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다. 지금 이 레지앙에 그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으니까.
“그나저나 또 전쟁이군요.”
마리아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녀는 전쟁을 싫어한다.
아니, 애초에 전쟁을 좋아하는 이가 어디에 있으랴.
“왜 사람은 싸우려고 하는 걸까요.”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지고 싶은 법이고, 가진 자는 빼앗기고 싶지 않으니,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싸움은 끊이지 않는 거겠지. 그러니 그 싸움 속에서 짓밟히고 빼앗기는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힘을 기르고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법이지.”
“피할 수는 없을까요?”
“그럼 모든 것을 버려야겠지. 일군 것들과 지켜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책임까지.”
“······.”
마리아가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제드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할 것 없어. 그대가 전쟁에 나설 일은 없으니까. 이 길의 끝에는 질서가 있을 거야.”
제드는 그 말을 끝으로 말 위에 올랐다. 이제 작별의 때가 됐다. 하늘은 어느새 검게 물들어 있었다.
“언젠가 다가올 그때를 위해서 마리아, 그대는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부디 무사히 다녀오세요.”
*
“용병을 끌어모아야 합니다.”
“아니요. 그건 이미 늦어도 한참은 늦은 일입니다. 일이 더 악화하기 전에 그들과 화친을 맺어야 합니다.”
“화친이라니? 그 성명문을 듣고도 그런 소리를 합니까? 그건 선전포고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뒤늦게 용병을 모으는 건 현실적인 이야기란 말입니까? 저 남부에 모인 병력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못 들으신 모양입니다. 자그마치 2만 명이랍니다. 2만!”
“크흠.”
토바스의 관청 회의실은 소란스러웠다.
이른 아침부터 줄곧 이런 상황이었다.
귀족연합이 성명을 발표한 이후부터 토바스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말이 오가는 와중에도 시장인 베스퍼는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시장님, 그렇게 가만히 계시지 말고 뭐라고 말씀을 좀 해보십시오. 뭔가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여러분께서는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착각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시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것들은 저나 여러분의 소관이 아니란 말입니다.”
베스퍼의 말에 좌중은 일순 침묵했다.
“아, 아니······ 이게 왜 저희의 소관이 아닌지요? 토바스의 일이 아닙니까. 토바스의 행정을 담당하는 저희가 아니면 대체 누가 이 일을 책임진단 말입니까?”
“그걸 정말 몰라서 물어보시는 겁니까?”
그러자 그들은 침묵하였다.
베스퍼가 말하고자 하는 게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철혈의 백작이자 렌토의 총독.
제드 크레인.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나 여러분은 총독 각하를 대신해서 이 도시의 행정을 맡은 겁니다. 병력을 모은다거나 전쟁에 대처하는 권한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냉혹한 현실이 좌중을 덮쳤다.
그들은 일찍이 시장을 비롯한 귀족들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왔는지를 보았다. 그래서 헷갈렸던 것이다. 자신들에게도 그와 같은 영향력을 손에 넣었노라고 말이다.
베스퍼는 침착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적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각하의 적은 아닙니다.”
“크흠. 저, 저희도 주제넘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저희도 각하를 보필하는 사람으로서······ 그저 돌아가는 사태가 염려스러워 그러는 것이지요.”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여러분의 염려를 덜어드리기 위해서 한 가지 알려드리죠.”
베스퍼는 좌중을 슥 훑고 말했다.
“총독 각하께서는 이미 토바스에 와 계십니다.”
드드드드드.
땅이 진동했다.
토바스의 도심지에서 꽤 떨어진 북쪽의 채석장.
지금 이곳에선 연이어 골렘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마법사들이 다수. 그들은 모두 레지앙에서 당도한 국가 마법사들이었다.
제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막대한 마력이 회오리치며 스톤 골렘의 몸을 이루는 몸 곳곳에 복잡한 마법술식이 되어 스며들었으니, 머잖아 바위의 정령이 코어에 자리를 잡았다.
우우우우.
낮게 울려 퍼지는 골렘의 울음.
‘언제봐도 경이로운 광경이로군. 그나저나······.’
베른이 힐긋 시선을 돌렸다.
제드와 함께 찾아온 마법사들.
그들은 마법이 시작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처음 자세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 모습 그대로 그곳에 서 있었다.
‘저들은 대체 누구지?’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법사들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전부 검은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고, 그들의 로브 끝자락에는 라이곤 왕국을 상징하는 붉은색 타일의 국기가 새겨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저런 식으로 문양을 새겨넣는 건 본 적이 없거늘.’
그 순간, 베른은 한 가지를 떠올렸다.
전에 제드가 툭 던지듯 했던 말이 떠오른 까닭이다.
‘설마, 저들이 용병 출신의 떠돌이 마법사란 말인가?’
스스로 생각하고도 황당하다. 그건 불과 얼마 전의 얘기였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석 달 남짓.
‘······거기다 이들은 아무리 봐도 용병이나 떠돌이 마법사 같지가 않다. 꼭 규율이 잘 잡힌 군인 같구나. 이토록 단시간 내에 마법사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베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제드라면 무슨 일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도 제드는 계속해서 골렘을 일으켰다. 사전에 재료는 준비되어 있었으니, 당장 골렘 오십여 기는 족히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해가 저물었고, 깊은 밤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동이 틀 무렵이 되었을 때, 제드는 마나를 갈무리하였다.
“후.”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나는 제드.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고생했네. 근데 이토록 급하게 진행할 이유가 있었는가? 아직 유예는 10일도 더 넘게 남아 있지 않은가. 차근차근 준비해도 충분한 시간일세.”
“어느 시대건 전쟁은 길어져 봐야 좋을 게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귀족연합이 그 막대한 군대를 유지하는 데에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쓸데없이 소모되고 있을 겁니다.”
흘흘 베른은 낮게 웃었다. 제드는 이미 귀족연합이 소모하는 자금마저 자신의 것처럼 아까워하고 있었다.
“좋아, 그러면 앞으로 자네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적의 병력에 관해서는 이미 들었을 테지.”
“예, 2만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 규모의 병력이 모인 건 이 라이곤 왕국의 역사를 통틀어봐도 몇 번 되지 않을 걸세.”
“의미가 없는 숫자입니다. 알지 않습니까?”
“골렘을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얘기군.”
“시대가 변했다는 걸 모두가 알게 해줘야겠지요. 보병과 기병으로 전쟁을 벌이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국가 마법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카일 소위.”
“옛!”
제드의 호명에 그들 중 가장 왼편에 서 있던 마법사가 대답하며 앞으로 나왔다.
“지금부터 그대에게 골렘을 인계하겠다. 준비는 됐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결의에 찬 눈빛엔 투지가 엿보였다.
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준비된 스톤 골렘 한 기의 명령권을 공유했다. 곧 그 마법사는 자신과 체결된 골렘의 존재를 알아보았다.
“체결이 끝났으면 골렘의 옆에 서도록.”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하고 골렘의 옆에 가서 서는 마법사.
그 뒤로 제드는 각각 마법사를 호명하였고, 한 기씩 일으켜 세운 골렘을 공유해주었다.
19기의 골렘의 인계가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골렘은 단 한 기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앞에 선 마법사는 11명. 그들 중 열 명은 골렘을 받지 못한단 얘기다.
그리고 이 11명 중에는 루카스가 있었다.
국가 마법사들은 사실 그게 제일 의아했다. 루카스는 누구보다도 수석마법사에게 인정을 받은 최초의 골렘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루카스는 담담했다.
골렘을 인계받지 못한다고 해도 그에겐 다른 중요한 임무가 내려질 것임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이곳에 서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루카스를 마지막으로 호명하는 데에는 달리 이유가 있었을 뿐이다.
“루카스 소위.”
“옛.”
“소위에겐 국가 마법사를 이끄는 중대장의 역할을 맡기겠다. 앞으로 그대들 삼십 명은 하나의 중대로 묶일 것이고, 제1 기갑중대로 명명하겠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남아 있는 한 기의 골렘이 그가 활성화한 제어술식과 체결되었다.
“중대장의 골렘인 만큼 조금은 특별할 필요가 있겠지.”
제드가 손가락을 퉁긴 순간, 마지막 남아있던 골렘의 외형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 뭉툭했던 머리의 이마에 뿔 하나가 튀어나온 것이다.
“제1의 이름에 걸맞은 성과로서 증명하겠습니다.”
“기대하겠다.”
루카스의 대답을 들으며 제드는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뿔이 생겨난 골렘과 제드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파직.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감각.
제드가 미간을 모았다. 그 감각이 썩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름······.]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제드가 눈을 크게 떴다.
[이름을 다오.]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
제드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정령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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