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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39) (3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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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볼6

*

어둠이 내렸다.

채석장의 임시 거처에는 희미한 불빛만이 넘실거렸고, 이곳엔 제드와 에델노르가 마주 보고 있었다.

물론, 제드의 바로 옆에는 자크가 지키고 있었다.

“인간은 거짓말, 항상 해.”

에델노르는 적의는 거두었지만,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했다.

제드도 그녀가 쉽게 자신을 믿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진실을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전생의 시간 속에 알게된 것들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죽음과 시간을 거스르는 것은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서 행해지는 기적이다. 제드는 그게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없었고 자신이 미래에서 거슬러왔다는 걸 증명할 생각도 없었다.

“세상엔 때때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지. 나도 그대가 어떻게 날 찾아왔는지 모르지 않나.”

“정령의 흔적, 따라왔어.”

설명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닌데, 역시 요정은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흔적 끝, 인간이 있었어.”

“굳이 인간 세상에서 정령의 흔적을 찾았던 것은 아마도 추측하건대 추방자를 찾고 있던 건가?”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에델노르. 정곡이군.

“어떻게 알아?

“들은 적이 있다. 인간 세상을 떠도는 요정을 너희는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지.”

“······.”

에델노르는 입을 다물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조차도 추방자들의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추방자를 찾았던 이유는 그들이 가진 지식과 지혜가 필요했던 거겠지. 안 그래? 너희 숲의 인도자가 영문 모를 병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으니까.”

“그 사실, 일족도 많이 몰라. 인간은 알 수 없어. 근데 너, 알아. 어떻게?”

“다시 말하지만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대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니까. 하지만 이거 하나는 장담할 수 있지. 바로 내가 그대들의 인도자를 낫게 할 수 있다는 것.”

에델노르가 귀를 꼿꼿이 세웠다.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모습.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얼굴엔 의심이 가득했다. 요정과 달리 인간은 얼마든지 거짓을 떠들어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기만의 종족. 요정은 인간을 그렇게 불렀다.

‘별수 없군. 이게 더 빠르겠어.’

“에델노르여, 내가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겠지.”

“알아. 자연의 흐름, 네 안에 있어.”

“그렇다면 마법사가 이름을 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있나? 내가 그대에게 제안한 내용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나의 이름 제드 크레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에델노르가 놀란 얼굴이다.

이름을 건 맹세에는 강력한 힘이 깃든다.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세계의 작용과 반작용이었다.

즉, 지금 제드가 말한 모든 말은 진실이란 얘기다.

잠깐의 침묵.

요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거 말해, 인간. 모든 일, 대가가 있어.”

“말이 잘 통하는군. 그래, 내가 원하는 건 거래다. 나는 요정족과의 우호 관계를 원한다. 상호 방위동맹. 그 정도로 볼 수 있겠지.”

*

에델노르는 쉬이 결정하지 못했다.

동맹이라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요정에게 있어 인간은 적이다.

요정의 숲과 인접한 지역에서는 지금도 요정을 잡아서 노예로 팔아먹는 노예업이 성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정은 대수림에 멋대로 들어오는 인간을 절대로 살려 보내지 않았다. 요정에게 있어 그것은 전쟁이었다.

“인도자의 목숨이 걸려있음에도 어려운 문제인 모양이군.”

“······인간과 동맹. 인도자,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과연, 그런 문제인가.

제드는 턱을 매만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건 보석이 알아서 굴러 들어온 격이었다.

발키리 에델노르.

그녀가 어떤 존재인가.

전생의 제국의 북방군을 크게 위축시킨 장본인이었다. 끝끝내 대수림은 불탔고, 요정은 태반이 죽어 흩어졌지만, 그 피해는 막대했다.

‘요정에게는 저력이 있다. 일이 조금만 잘 풀린다면 그 무시무시한 골렘에 대한 것도 알아낼 수 있겠지.’

대수림의 골렘.

데스트 아르마.

그 골렘은 요정들에게 그렇게 불렸다.

초기에만 해도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다시피 했던 요정이 제국을 상대로 끝까지 저항할 수 있었던 힘의 근간. 그것은 벼랑 끝에 선 요정이 불의 난쟁이와 함께 벼려낸 최후의 병기였다.

고작 한 기.

그 한 기의 골렘이 전황을 지지부진하게 이어가게 하였다. 제드도 그때의 연이은 패전 소식을 듣고 놀랐다.

‘추정마력만 500을 넘는 괴물 같은 골렘이었지.’

제국의 내로라하는 어떤 골렘도 그런 엄청난 출력은 뽑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훗날 제국의 전력분석가들은 단언했다.

만약, 대수림 요정들에게 데스트 아르마가 딱 1기만 더 있었더라면 북방군은 전멸했을 것이고, 제국은 북진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말이다.

제드가 탐내는 것은 바로 그런 그들의 저력이었다.

‘무엇보다도 요정과 나의 이해는 일치한다.’

요정들은 매우 보수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만을 지키고 그 안에서만 살아갔다. 매우 배타적이었고, 기본적으로 다른 종족에게 무관심했다. 그리고 바로 그게 제드가 요정들과의 우호 및 동맹을 원하는 이유였다.

‘요정들이 대수림에서 버텨준다면 그 자체가 곧 완충지대가 된다. 북부 왕국의 개입을 막을 수 있을 것이고, 동쪽으로는 토르가의 북진을 억제한다.’

전생과는 많은 게 달랐다. 제드는 토르가의 사람이 아니었고, 제국의 방침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즉, 전생에서 요정과 그는 적이었을지 몰라도 이번 생은 아니란 얘기다. 제드가 확립하는 질서의 구축에 대수림의 요정은 반드시 도움이 된다.

문제는 인간을 향한 요정의 적개심이다.

‘확실한 방법이 있다고 해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되든 안 되든 던져보는 수밖에.’

일이 가장 잘 풀리는 건 그들과의 우호 관계를 쌓고 동맹을 맺는 일이었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요정의 힘이 강해지는 건 제드와 라이곤에 나쁠 게 없는 얘기였다.

“그러면 이렇게 하기로 하지. 대수림의 인도자를 낫게 할 약을 만들어주겠다. 그걸 대수림으로 가져가라. 그대의 인도자를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안 돼, 요구, 약속 못 해.”

“동맹의 이야기는 잊도록. 발키리라고 해도 그런 권한이 없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이건 그냥 내가 요정들과 우호관계를 원한다는 일방적인 표시다. 제드 크레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대 내 말에 거짓은 없다.”

“······.”

의심과 경계를 드러내던 에델노르는 또다시 제드가 그렇게 맹세를 하자,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그러자 제드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인도자를 살리지 못하면 너희 대수림은 뿔뿔이 나뉜다. 그래서 그렇게 싫어하는 인간 세상까지 나온 게 아니던가? 발키리, 지금은 중요한 게 뭔지, 그것만 생각해라.”

에델노르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제드 크레인.”

*

“가져가라.”

제드는 두 개의 약병을 건넸다.

하나는 푸른빛이 감돌았고, 나머지 하나는 투명했다.

“푸른색 약을 먼저 먹이고, 차도를 보이면 그 후에 투명한 약을 먹이도록 해. 회복을 도울 거다.”

킁킁.

냄새를 맡더니 얼굴을 와락 찌푸리는 에델노르.

귀가 파르르 떨리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인간 남성이라면 누구나 다 귀엽게 느낄 모습이었다. 외관만 보자면 요정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미남미녀뿐이었기에, 겉으로는 전혀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정 노예가 인기가 많은 건 다른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제드는 조금도 감정적인 동요가 없었다. 그의 절제력이 남다르기 때문이기도 했고, 발키리라는 칭호는 절대로 어린 요정이 얻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짐작건대 그녀의 나이는 못해도 300살이 넘었을 것이다.

“그게 약이라는 것에 이름을 걸고 맹세하길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주지.”

“······아니. 제드 크레인, 믿겠다. 달라. 다른 인간과.”

제드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요정들에게 느끼는 건 그저 지극히 사무적인 감정이었다. 그들에겐 어떤 유감도 없었고, 반대로 호감도 없다.

득과 실. 그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이 앞으로의 계획에 득이 되기에 호의를 베푸는 것뿐이다.

“고마워. 요정은 은혜, 잊지 않아. 반드시, 제드 크레인. 은혜를 갚을 거야.”

에델노르는 후드를 벗더니 한 걸음 다가왔다. 그 모습에 곁을 지키던 자크가 곧장 움직였지만, 제드가 이를 만류했다.

곧 에델노르는 작고 가는 손가락을 뻗어 제드의 이마부터 코, 그리고 턱에 이르기까지 부드럽게 쓸었다. 그러자 옅은 풀냄새가 코에 얽혔다가 흩어졌다.

“정령은, 너를 좋아해. 친구로 대해.”

“어려운 주문이군. 그대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정령에게서 어떤 것도 느끼기 어렵다. 따라서 그들의 분노나 절망하는 것도 알기 어렵지.”

“들을 수 있어. 느낄 수 있는 것, 볼 수 있는 것. 듣는 건, 그다음. 싫어하는 것엔 화를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러면 알 수 있어.”

“······.”

에델노르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물러났다.

작별의 때가 된 것이다.

“발키리 에델노르.”

제드가 불쑥 그녀를 불렀다.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다. 인도자를 비롯한 요정들에게 어째서 병이 생겼는지, 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반드시 또 일어날 거다.”

에델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들은 원인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요정은 세계에 비밀과 자연과의 교감에 관해서는 인간이 감히 따라갈 수 조차도 없는 존재들이었으나, 인간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무지했다.

‘원인은 인간에게 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 훗날 거래를 위한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작은 개입만으로도 대수림의 운명은 아주 크게 달라질 터였다.

‘대수림이 건재하면 토르가도 북쪽으로 뻗어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크흠.”

제드가 힐긋 고개를 돌렸다.

저편에서 베른이 뒷짐을 진 채로 걸어나왔다.

“자네와 있으면 놀랄 일이 끊이질 않는군. 어떻게 요정에 관해서도 그렇게 잘 아는가?”

“기회가 있어서 연구를 좀 했습니다.”

“허허허.”

베른은 그냥 황당하다는 듯 웃을 따름이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제드에겐 말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걸 따지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근데 정말로 그 신전의 축복 물약과 연금술사의 해독 물약이면 충분한 것인가? 그 대단한 종족이라고 불리는 요정이 고작 그 정도의 병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군.”

“요정에게는 신앙이 없으니 축복도 없습니다. 자연의 축복을 받기에 이파리나 숲 깊은 곳의 샘물이면 회복도 금방이죠. 다시 말하면 그들에겐 연금술의 해독이나 신성력에 의한 치료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단 얘깁니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병은 그런 그들의 맹점을 파고드는 것이죠.”

“으음.”

베른은 더 많은 게 궁금했지만, 굳이 더 묻지는 않았다. 혹 제드가 요정과 더 얽히게 된다면 그 이유는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까.

“어쩐지 이 세상의 주요 사건들은 자네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 시대라는 바다를 거칠게 휘저어놓는 폭풍 말일세.”

“그러면 이제 베른도 그 폭풍의 일부입니다.”

그 순간이다.

베른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저편의 어둠 속에서 7기의 스톤 골렘의 존재감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제드가 오늘 채석장에서 일으킨 골렘의 제어권을 모두 베른에게 공유해준 것이었다.

“······반드시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지.”

새 시대의 질서를 위해서.

베른의 눈동자가 뜨겁게 타올랐다.

그 불꽃은 제드의 눈동자의 그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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