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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38) (3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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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볼5

*

땅이 진동했다.

정령이 제드의 부름에 응했기 때문이다.

반응으로 보건대 바위, 혹은 땅의 정령.

제드는 품에서 마석을 꺼내 골렘에게 가져갔다.

그 순간, 허공에 둥실 떠오른 마석은 스톤 골렘의 몸 중심부로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코어를 형성하는 술식을 넣고, 부름에 응한 정령을 그곳으로 인도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톤 골렘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눈동자가 나타났다. 스톤 골렘 한 기가 완성된 것이다.

제드는 쉬지 않고 곧장 다음 공정을 준비했다.

코어를 만들어 그곳에 정령을 인도한다. 그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두 번째 골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됐다.

제드는 그 과정을 반복하였으니, 얼마간 떨어져서 지켜보는 베른은 연신 감탄을 터뜨리기 바빴다.

‘빠르고 정확하다. 언뜻 보기에도 술식 구조도 보통 복잡한 게 아닌데, 그걸 이런 식으로 연달아 전개할 수가 있다니.’

정신력과 집중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증거다.

거기다 제드는 최상급 마석을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주저가 없었다. 수도 없이 사용해온 것처럼 말이다.

‘정말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수수께끼투성이로군. 대체 정제법은 언제 어떻게 연구했고, 골렘 마법은 언제 익혔단 말인가? 이건 개인이 짧은 시간 사이에 이루어낼 수가 없는 성과일진데.’

아무리 많이 봐줘도 이십 대에 불과한 제드였다. 그런 제드가 그 많은 것들을 해냈다는 것도 말이 안 됐고, 이렇게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후. 내 짧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구나.’

베른이 그런 깊은 고뇌에 잠겨 있는 동안, 제드는 이제 다섯 번째 골렘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꽤 신중하군. 금방이라도 개입할 줄 알았는데.’

정령의 잔향은 여전히 근처에서 느껴졌다. 그 존재는 틀림없이 제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도 때를 기다리는 것인가.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참이지.’

제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골렘을 일으켜 세웠다.

스톤 골렘은 우드 골렘과 비교해서 만드는 것도 그렇고 재료도 그렇고 여러모로 효율성이 좋은 골렘이었다.

제드가 만드는 개량형 스톤 골렘의 출력은 약 120마력. 마석을 하나밖에 사용하지 않은 까닭에 출력 자체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시대의 공화국의 스톤 골렘과 맞붙는다면 너무나도 쉽게 우위를 점할 것이다.

‘공화국의 양산형 골렘을 애용할 줄은 몰랐군.’

전생에 주력기로서 운용되었던 각국의 골렘들의 설계도와 구조 정보에 대한 건 모두 제드의 머릿속에 있었다.

그중에서 최고는 누가 뭐라고 해도 단언컨대 제드와 여러 골렘 마법사가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던 토르가 제국의 골렘이었다. 하지만 그걸 지금 제드가 운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의 골렘은 양산형이라고 해도 막대한 금액이 들었던 까닭이다.

‘반면 공화국의 골렘은 저렴하다. 제국의 표준형 골렘을 1기 만들 정도면 최소 못해도 10기는 만들 수 있을 테지. 아니, 외부 장갑까지 고려한다면 15대는 족히 나올 것이다.’

물론, 전생에서는 계속된 전쟁 때문에 스톤 골렘의 베이스인 석재의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가격이 점차 폭등하였지만, 그건 전생의 이야기였다. 지금 이 시대의 석재 값은 아주 저렴했다.

드드드.

또다시 땅이 진동하고 골렘이 깨어났다.

7기 째다.

‘10기까지 채워야겠군. 마지막 하나는 마석을 두 개 더 넣어서 등급을 올려야겠어. 대장기로 삼아서 지휘권을 귀속시키면 베른이 지휘하기 더 편하겠지.’

그렇게 8번째 골렘의 형태를 만들려고 할 때였다.

‘드디어 움직였군.’

불어오는 바람에 정령의 잔향이 짙게 묻어났다.

제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채석장 외곽, 수북하게 쌓인 모래의 산. 그 위에 한 사람이 검은 로브를 걸친 채, 우두커니 서서 제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봐, 파이크! 저거 누구야. 총독 각하께서 일을 보시는 동안, 이 안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그러지 않았나!”

차례로 골렘이 일어나는 걸 넋을 놓고 지켜보던 리아드가 제드의 시선을 좇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인부들을 인솔하는 책임자를 닦달했다.

파이크라는 이름의 험상궂은 인상의 책임자도 그 사람을 발견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저기를 어떻게 들어갔지? 크흠.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우리 쪽 인부는 아니오. 저기 몸이 비실비실한 걸 보시오. 저런 몸으로 무슨 일이나 제대로나 하겠소?”

“그건 아무래도 좋아. 어서 저자나 끌어내도록 하게! 돈을 받았으면 그만큼의 일을 해야지 말이야.”

리아드가 투덜대자, 파이크라고 불린 사내도 기분이 나쁜 듯 칵 퉤 가래를 뱉으며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왔다. 단단히 혼을 내줄 참이었다.

바로 그때 제드가 그를 제지했다.

“그만. 지금부터 이곳의 일은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리아드. 그 인부들과 함께 다 채석장 밖으로 나가 있도록.”

“아닙니다. 어찌 이런 일까지 총독 각하께서 나서신단 말입니까? 응당 이 리아드가 수족이 되어······.”

“리아드,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움찔.

리아드가 깜짝 놀란 얼굴로 헛기침하였다.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깃든 단호함을 눈치챈 그는 걸어가던 파이크를 바로 불렀다.

“자자, 다들 나가세나. 총독 각하께서 친히 하신다고 하는데, 아랫것들이 거치적댈 수는 없는 법이지.”

주변이 그제야 좀 조용해졌다.

제드의 시선은 모래사장의 경사를 따라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인물에게 꽂힌 채였다.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군. 도시에서 채석장까지 쫓아올 정도라니 말이야.”

검은 로브로 자신의 정체를 감춘 인물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러자 얼굴을 다 가린 후드 아래로 은색 눈동자가 보였다. 인간 중에 은색의 눈을 가진 존재는 없다.

‘역시 요정이었나.’

제드가 그렇게 확신할 때였다.

상대의 눈동자에 분노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적의였다.

“너희 종족, 정령, 함께할 자격, 없다.”

그 말투는 몹시 부자연스러웠지만, 흡사 노래를 하는 듯 감미롭게 울려 퍼졌다. 요정의 목울대는 인간의 그것과 달랐기에 직접 들으면 몹시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그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군. 정령이 그대들의 소유물도 아닐 텐데 말이야. 정령 역시 자연의 일부. 세상이 바뀌면 응당 정령도 여러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법이지.”

“인간, 항상 같아. 욕망의 노예야. 정령이 울부짖는 소리, 넌 듣지 못해. 자격 없어.”

그 순간이었다.

휘오오오.

검은 로브의 요정을 중심으로 돌풍이 일었다. 흙먼지가 요동치는 가운데, 요정은 가느다란 손을 뻗었다. 바람은 그 손끝에 모였으니, 이내 순식간에 기다란 창이 만들어졌다.

그걸 본 순간, 제드는 그 요정의 정체를 파악했다.

정령의 무구 실피드.

세계수의 가지로 만들었다고 하는 그 정령무기는 오직 요정들의 전사인 발키리만이 다룰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기의 주인은 제드가 아는 한 한 명뿐이었다.

‘발키리 에델노르.’

요정이 인간들의 세상에 깊이 들어온 것 자체가 흔하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보통의 요정이 아니란 건 알았다.

그러나 설마, 발키리 에델노르라니.

‘최후의 인도자를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제드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였다. 요정은 태어날 때부터 정령과 함께였고, 죽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폭주한 골렘을 되돌린 건 바로 그녀다.’

긴 시간 풀지 못한 해답의 실마리가 눈앞에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에델노르는 몸을 낮추더니 몸을 비틀었다.

고오오오.

바람이 울부짖는다. 저 창끝에서 요동치는 폭풍에 꿰인다면 제드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질 터였다.

“파르노레 리에른.”

노래하듯 울려 퍼지는 에델노르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신형은 폭풍이 되어 제드에게 들이닥쳤다.

콰아앙!

*

바람이 요동친다.

줄기줄기 선명한 결을 따라 매섭게 흐르는 바람은 그야말로 칼날. 이토록 강렬한 정령의 존재감은 처음이다.

‘이게 요정의 정령술인가.’

제드는 나직이 감탄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날카롭고 위협적인 무기라고 해도 닿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콰가가각.

사납게 날뛰는 바람의 창은 자크의 대검에 막혀 있었다.

“비켜. 자유, 찾아줄 테니까.”

[글쎄. 공허한 자유는 이미 질렸소만.]

카아앙!

묵직한 반격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에델노르.

그녀의 은색의 시선이 자크를 꿰뚫듯 훑었다.

“너 정령, 아니구나.”

[유감이지만, 인간이오. 이 지경이 되긴 했어도.]

“인간.”

에델노르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고오오오.

다시금 바람이 울부짖으며 그녀에게 모였다.

‘강하군. 자크 경에겐 어렵겠어.’

조금 전 단 한 번의 공방. 그걸로 제드는 에델노르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

에델노르는 조금 전 자크가 막아선 순간, 창끝에서 힘을 뺐다. 그에게 정령의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크가 막아섰던 곳의 땅이 푹 꺼졌고, 그 상태로 1미터 정도를 뒤로 물러났다.

‘제국 북부군이 애를 먹을만하구나.’

전생에도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발키리의 능력을 본 건 제드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와는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에델노르.”

갑작스러운 그 말에 에델노르가 미간을 모았다. 그녀의 은색 눈동자에 동요의 빛이 드리웠다.

“어떻게, 내 이름, 알아?”

“정령에게 들었다고 해두지. 그보다 고향을 떠나 이 인간 세상에 온 뚜렷한 목적이 있을 텐데? 감정에 사로잡혀 쓸데없는 살육전 벌이며 시간을 낭비할 셈인가.”

“······.”

에델노르의 눈동자가 더욱 심하게 떨렸다.

“거래를 제안한다, 발키리 에델노르. 그대가 원하는 것을 주지. 그 대신에 그대도 내 요구를 들어다오. 만약 계속 적대행위를 할 참이라면 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

쿠웅. 쿵.

제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옆에 서 있던 스톤 골렘들이 땅을 울리며 움직였다.

그들만으론 날렵한 에델노르를 어찌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수의 스톤 골렘이 포위하고 움직임에 제약을 걸면 자크의 검이 그녀의 몸을 베어버리는 건 썩 어려운 게 아니었다. 거기다 4써클의 마법사인 제드와 베른마저 개입한다면 에델노르의 승률은 한없이 제로에 수렴했다.

“자, 선택해라. 발키리 에델노르여.”

에델노르는 제드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불신과 분노, 그리고 꺾이지 않은 전의가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기어이 인도자를 살리는 길을 외면하겠다는 거군.”

제드가 그렇게 말하며 살기를 드러냈을 때였다.

에델노르가 조금 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이름에 이어 인도자까지?

그녀는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창을 거두었고, 정령의 무구 실피드는 바람 속에 스며들 듯이 모습을 감추었다.

“인간, 어떻게 우리의 일, 알아?”

제드는 그녀의 눈빛에 전의가 사라졌음을 알고 골렘을 물러나게 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제드는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세상이 내게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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