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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36) (3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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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볼3

*

“베스퍼, 당신이 토바스의 시장이 되어줘야겠습니다.”

토바스에 시내에 직후에 제드가 꺼낸 말이었다.

베스퍼는 깜짝 놀란 얼굴로 두 눈을 끔뻑였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 그러다 이내 정신이 번쩍 든 모습이었다.

“어, 어떻게 제가 그런 자리에 맡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있습니까?”

“그, 그야 저는 귀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한다는 것이 폐하의 칙령입니다. 그레즈의 공문을 보지 못했습니까?”

“그, 그건······.”

여전히 당혹감을 지우지 못하는 베스퍼.

그 역시 공문을 보았다. 하지만 시장이 어떤 자리인가. 영주에 버금갈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는 자리였다.

“총독 각하, 저는 정치를 아예 모릅니다.”

“누구나 처음은 그렇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배우면 되는 거죠. 이미 마이스터를 수소문해두었습니다. 만약 베스퍼가 눈앞에 없었더라면 저는 상인이나 마이스터 중 한 명에게 이 일을 맡겼을 겁니다.”

“······.”

제드의 얼굴엔 표정이 없다. 진심이라는 얘기다.

“제가 그런 중책을 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베스퍼의 의지에 따른 겁니다. 위치는 스스로 만들어 간다. 전에도 그렇게 말했었죠. 나는 베스퍼가 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맡기려는 겁니다.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는 순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

제드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으니, 이런 제안을 한 것이다.

언제 베스퍼가 이런 신뢰를 받아보았을까.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잘 생각했습니다.”

“대신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부탁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세요.”

“저에게 하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꽤 뜬금없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스퍼는 진지했고, 제드 역시 이를 그냥 듣지 않았다. 이건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있는 요구였다.

“좋다,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총독 각하.”

그것은 일종의 의식이라고 해도 좋다. 마탑의 마법사가 아니라, 제드의 사람으로서 거듭났음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 그러고 보면 베스퍼는 이제 제드를 총독 각하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제드는 그에게 정리한 서류를 넘겨주었다. 원래는 상인 길드의 마스터 중 한 명에게 시장을 맡기고 이걸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제드는 마이스터를 조언자로 두고 상인 길드를 끌어들여 정치기구를 만들라는 것까지 넌지시 지시해주었다.

베스퍼는 양피지의 내용을 훑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맡지 않았으면 모를까, 한 번 맡은 일은 제대로 책임을 지고 하는 게 그의 성격이었다.

바로 그렇기에 베스퍼에게 일을 맡긴 것이었다.

“계속 엿듣고 있을 참은 아니겠지요.”

제드가 불쑥 말하자, 안쪽의 다른 방과 이어지는 문이 열리면서 베른이 나타났다.

“허허. 혹시나 했는데, 역시 들켰군.”

“아무리 느리게 움직인다고 해도 마나의 패턴은 느껴지죠. 그게 이 공간에 한정된 흐름이라고 한다면 모를 수가 없을 겁니다.”

“끙. 자넨 무서운 사람이야.”

예전에도 그랬지만, 베른은 더욱 궁금해졌다. 대체 제드의 마법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그나저나 아주 파격적인 인사로군. 시장이라면 거의 영주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질 수도 있는 자리일 텐데 말이야.”

“제게 권력은 그저 유용한 수단 같은 겁니다. 필요하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버릴 뿐이죠.”

“허허. 대단한 소리를 들었군. 그럼 이거 하나만 물어봄세. 제드, 자네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아니, 무엇을 바라는가?”

수도를 떠나면서 로톤에게도 들었던 비슷한 질문이었다.

로톤에겐 적당히 대답했다. 하지만 베른에겐 조금 더 확실하게 말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베른은 이 시대를 어떻게 보십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군. 이 시대라. 음, 평화로운 시대가 아니던가? 많은 문제가 산재해있지만 말일세.”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습니까?”

“글쎄. 정제법이라는 게 나타났으니 세상이 크게 혼란스러워지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과도기라 할 수 있겠군.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네만.”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할 겁니다. 마도공학의 발전은 각 나라에 엄청난 발전을 일으킬 테고, 머잖아 인간의 탐욕은 제국주의의 이념 아래 무섭게 불타오르겠죠. 전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겁니다.”

“으음. 잘 모르겠군. 전쟁양상이 변화하리란 건 알겠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걸 예견할 수 있겠는가? 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피해를 야기하는 법이 아니던가.”

“예, 맞습니다. 하지만 얻게 되는 것이 그보다 크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마석이라는 자원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압도적인 화력의 전쟁병기. 그 앞에서는 기존의 전술이 무가치한 겁니다.”

꿀꺽.

베른이 마른침을 삼키는 가운데, 제드는 말을 이어갔다.

“마석은 전쟁병기의 양산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것은 곧 침략전쟁과 이어질 겁니다. 한계점에 다다른 유지비용은 약탈로 메워지는 법이죠. 그리고 패배한 국가는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게 될 겁니다. 그것은 곧 합법적인 약탈이나 다름없으니 그 막대한 재력은 다시 군사력 증강으로 순환됩니다.”

“전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베른이 그 말의 의미를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충돌로 말미암아 강대국이 된 나라는 서로 전쟁을 피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부터는 약소국가가 먹잇감이 될 겁니다. 강대국 사이에 식민주의가 만연할 것이고, 각지에서 수탈이 끊이지 않겠죠. 그리하여 온 대륙이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 비명이 끊이질 않고, 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할 겁니다.”

“······.”

베른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제드가 말하고 있는 건 예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꼭 이미 일어난 일을 보고 말하는 듯했다.

‘이 느낌. 그와의 첫만남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었지.’

잠깐의 적막이 흘렀고, 제드는 어느새 평소와 같은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저는 그런 시대에 질서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 엄청난 시대적 혼란을 바로 잡을 질서라고 한다면 그건 절대적인 힘에 의한 압도라고 할 수 있겠군.”

“그 형태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에게 있어서는 실현할 수 있는 평화가 곧 질서입니다.”

실현할 수 있는 평화.

다른 사람이 그런 소리를 했더라면 오만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제드가 저렇게 말을 하니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궁금하군. 베스퍼가 이 도시의 시장을 맡기에 적합한 인재라면, 자네가 보기에 나는 무슨 일에 적임인가?”

베른이 물었고, 제드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건 이미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

관청의 건물, 탁 트인 전면의 입구.

지금 이곳에는 갑주를 걸친 기사들 오십여 명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베른은 탄성을 흘렸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압도되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인간이 아니구나. 전부 다 골렘이야!’

베른은 홀린 듯한 모습으로 골렘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하나같이 2미터가 넘는 거구의 키는 정확히 잰 듯 똑같았고, 투구 속에서는 녹색 안광이 일렁이고 있었다.

꿀꺽.

베른은 마른침을 삼키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그는 골렘 마법학에 많은 걸 아는 건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마법사 한 명은 마나의 소모와 정신적인 피로도 때문에 다수의 골렘을 조종할 수가 없었다.

아주 작고 단순한 개체의 골렘이라면 몇 기씩 운용할 수 있었지만, 그건 아주 단순한 움직임에 한정된다고 했다.

“이들을 저마다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베른이 물었을 때였다.

오와 열을 맞춰 서 있던 골렘들이 몸을 돌리더니, 순식간에 달려와 베른을 포위하였다. 투구 속에서 빛나는 녹색의 시선에 베른은 오금이 다 저릴 지경이었다.

“엄청나군······.”

곧 그를 포위했던 아이언 골렘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베른은 꼭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짐작은 했다. 제드가 여간내기 마법사가 아니란 것쯤은.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것들은 그런 정도로 표현할 게 아니었다.

‘이 많은 골렘을 한꺼번에 통제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홀로 군대나 다름없는 존재가 아닌가.’

시대의 질서.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바로 마법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앞으로 더 많은 골렘이 만들어질 겁니다. 베른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골렘을 이끌고 전장에 나가주셔야겠습니다.”

“크흠. 유감인 일이네만, 나는 골렘 마법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다네. 다시 말해서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단 얘기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건 배우면 되는 겁니다.”

그러자 두 눈을 크게 뜨는 베른.

“······자네의 비전을 나에게 알려주겠다는 건가?”

“예, 일부입니다만, 골렘을 조종하는 데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나야 전혀 나쁠 게 없는 얘기네만, 정말로 그래도 되겠나? 이런 엄청난 마법을 말이야.”

“안 될 이유는 뭡니까?”

“비전이 왜 비전이겠는가. 그런 마법은 남들에게 함부로 전수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쓸데없는 전통입니다.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아도 나아가야 할 길은 멀고 충분히 험난합니다.”

“크흠. 당사자인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베른으로서는 애초에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쇄신을 진정으로 바라는 국민이면서, 동시에 마법사였다. 눈앞에 이와 같은 놀라운 신비가 펼쳐져 있음에야 그것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제드는 벌써 베른을 언제 어떻게 배치할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바로 전장에 투입해서 경험을 쌓게 해야겠지. 붉은 재앙이라고 불렸던 그 마법사도 하루아침에 탄생한 게 아니니까 말이야.’

제드의 골렘 마법에는 여러 단계가 있었고, 골렘을 조종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간단한 일이었다.

그게 제드의 마법의 특별한 점이었다. 그의 골렘 마법은 기본적으로 골렘에 깃든 정령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술식이니 바로 알려드리죠.”

“지금 당장 들으면 익힐 수 있을 정도란 말인가?”

“예,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겁니다.”

“허. 아니······ 그래도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그래도 되겠나?”

“상관없습니다. 제가 허가하지 않으면 이 제어술식을 듣고 익힌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 그게 제드가 이 마법을 손쉽게 알려주는 이유였다.

기실 이 제어술식으로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었다.

위임받은 명령권을 사용하는 것과 골렘을 움직이는 데에 소모되는 마나를 부담하는 것.

그게 지금 제드가 알려주고자 하는 마법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 마법의 공유는 제드에게 더 많은 골렘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더 많은 마법사가 제어술식을 익히면 익힐수록 제드가 제어할 수 있는 골렘의 수는 늘어나지만, 동시에 마나의 소모량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생의 제국 마법사들은 이 방법을 통해서 엄청난 수의 골렘을 이끌고 전장에 나설 수 있었다.

“크흠.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베른의 귀걸이가 빛을 뿜었고, 곧 그가 마법을 사용했다.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도록 차단막을 펼친 것이다.

제드는 피식 웃으며 마법술식을 알려주었다. 술식은 정말로 간단했고, 베른은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이것만으로 골렘을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직접 확인해보시죠.”

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저 옆에 서 있던 아이언 골렘의 명령권을 베른에게 공유해주었다.

그러자 베른이 몸을 움찔 떨었다. 활성화된 마법술식에 무엇인가가 체결되는 게 느껴졌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의 베른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서 있는 아이언 골렘 한 기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허.”

베른이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알겠다. 제드가 어째서 간단하다고 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 앞으로 와라.’

베른은 술식의 체결을 통해 연결된 골렘에게 그 의사를 전달하였고, 골렘은 이내 절그럭대며 그의 앞에 다가왔다.

“저, 정말로 대단하군. 세상에 이런 마법이 있다니.”

마법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술식은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 마법은 그렇지가 않다.

술식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너무나도 쉬웠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조차도 자연스럽게 알 정도로 말이다.

문제는.

‘이게 어떤 식으로 이런 기능을 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전혀 알 수가 없다니.’

마법은 이해 없이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 술식의 구조 자체를 인지해야 마법이 마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근데 이 마법에는 그런 대전제가 통용되지 않았다.

베른이 그렇게 연신 감탄할 때였다.

절그럭.

별안간 저 뒤쪽에 서 있던 아이언 골렘 두 기가 몸을 들썩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들썩대는 모양새가 급격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뭔가가 이상하다.’

베른이 제드를 보자, 제드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자크 경!”

제드가 소리친 순간, 그의 오른쪽에 서 있던 은색 갑주의 기사가 거의 반사적으로 달려나갔다. 돌풍이 일었고 은빛의 궤적이 공간을 갈랐다.

콰앙!

땅이 진동하였고, 먼지가 치솟았다.

베른이 깜짝 놀라 방어막을 전개했을 때였다.

불똥과 함께 검격이 몇 차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먼지를 꿰뚫고 한 기의 골렘이 무서운 속도로 도심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자크가 그 뒤를 쫓는 가운데, 나머지 아이언 골렘들도 일제히 움직였다.

영문을 알 수가 없는 상황.

“아니,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일인가?”

“······.”

그 물음에 제드는 답하지 않고 안뜰의 중심부, 먼지가 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토막이 나서 기동을 정지한 골렘을 살피는 그의 안색이 굳어 있었다.

‘틀림없는 폭주 현상. 하지만 이건 너무 빠르다. 어째서?’

그렇게 코어에 손을 뻗었을 때였다.

제드가 눈을 부릅뜨며 손을 뗐다.

코어에 접촉한 순간, 눈앞에 어떤 광경이 스쳤기 때문이다.

‘설마, 이건 정령의 기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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