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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35) (3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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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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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 바일.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 경계할 필요 없네. 나는 마탑의 의견이나 대변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닐세.”

“그런 것치곤 지금의 상황이 묘하군요.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 친구를 가만히 지켜보니 알겠더군. 마법사치곤 거짓말에 능숙한 인물은 아니지 않은가.”

“크흠. 죄송하게 됐습니다.”

베스퍼가 죄인이라도 된 얼굴로 고개를 숙여왔다.

“마탑과는 무관하다면 개인으로서 찾아왔다는 얘기군요. 굳이 베스퍼를 통해서 말이죠.”

“허허. 그렇게 말을 하니, 꼭 내가 어떤 꿍꿍이가 있는 사람 같군. 나는 그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이 길이 자네와 만날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눈치챘을 뿐이라네.”

“그래서 절 찾아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전하군. 그래, 거두절미하지. 내 들은 바로는 자네는 지금 마법사가 필요한 것 같던데.”

“예, 맞습니다. 마탑이 엉뚱한 생각을 하는 바람에 막 차질이 생기긴 했습니다만.”

“잘 됐군. 마법사가 필요한 참이라면 나는 어떤가. 개인적으로 자네와 함께하고 싶은데.”

“꽤 갑작스러운 이야기로군요.”

“허허. 그렇지도 않은 얘기야. 그간 시간이 제법 흐르지 않았나. 그동안 많은 게 바뀌었지. 이 나라도, 그대의 신분도 말이야.”

“저야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입니다만, 마탑에 투신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 귀하 같은 마법사를 마탑이 절대로 천대할 리가 없을 텐데요.”

4써클의 마법사는 그리 흔한 게 아니었다.

마탑에 대마법사로 분류되는 6써클의 마법사가 한 명 있을까 말까 하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원로급 마법사도 5써클 마법사가 태반이다. 그래서 마탑에서도 4써클 마법사인 베른을 아주 좋은 조건으로 마탑에 초빙했던 것이고.

베른이 흘흘 웃으며 턱을 매만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없는 곳이더군, 마탑은.”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그리고 제드는 그걸 굳이 묻지 않았다.

그건 그의 과거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신분과 얽힌 복잡한 이야기였다. 라이곤 왕국의 운명이 바뀌면서 베른 바일의 운명도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는 얘기이리라.

“좋습니다. 다만, 이거 하나는 알아두셔야 할 겁니다. 앞으로 저와 함께한다는 것은 마탑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 겁니다.”

“라이곤 왕국의 운명과 더 연관이 깊겠지. 안 그런가?”

“이해하고 있다면 다행이군요.”

“궁금해서 묻네만, 이 모든 것들은 왕가를 위함인가? 그게 아니면 이 나라를 위함인가?”

“글쎄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할까요.”

그 대답에 베른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제드는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베스퍼, 귀하는 어떻습니까. 아까의 질문에 대한 답변. 아직 듣지 못한 것 같군요. 왜 굳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러 찾아왔습니까?”

“······제드 공께서는 처음 만났을 때, 위치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라고 말씀하셨었지요. 저는 마탑의 무수한 마법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베스퍼가 담담한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밝혀왔다.

소심했지만, 그의 눈빛은 강렬했다.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긴 하군.’

토바스에서 그와 처음 만났을 때였다.

딱히 그라서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제드의 신념에 가깝다. 다만, 그 말이 그에게 꽤 깊은 울림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좋군.’

하나의 길이 닫히면 다른 길이 열린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고맙군요. 베스퍼는 앞으로 해나갈 일들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 그렇게 말씀해주니 감사합니다.”

“그럼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라르곤 마탑과는 무관하게 움직이겠다는 겁니까?”

“그런 셈일세. 나도 그렇고, 이 친구도 그렇고 우린 마탑의 비전과 한참 떨어져 있었으니, 강제적으로 얽매일 일도 없지. 안 그런가?”

“예, 그건······ 그렇죠. 저는 사실 마탑에서도 재정부에 속하기도 했고요······.”

베스퍼가 자신감 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그게 부끄러운 일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적성이고 특징이다.

‘지금 나에겐 필요한 인재다.’

“그나저나 자네가 왜 마법사가 필요한지는 모르겠네만, 마법사를 모으는 일은 좀 어렵겠군. 마탑의 지원은 요원해졌으니.”

“그에 관해서는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흐음, 그러면 다른 마탑과 손을 잡겠단 얘기인가?”

“아뇨. 마탑은 장기적으로 볼 때 안 될 것 같습니다. 필요한 때에 손발이 따로 움직여서야 곤란한 일이니까요.”

“그럼 어쩔 참인가?”

“떠돌이나 용병 마법사를 모을 예정입니다.”

“그걸로 괜찮겠나?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네만, 떠돌이 마법사들과 마탑 출신의 마법사 사이에는 하늘과 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상관없습니다. 제가 필요한 건 마법사로서의 역량 같은 게 아닙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마법사로서의 역량이 아니라, 어떤 골렘을 어떻게 조종할 수 있느냐로 갈리는 시대입니다.”

“골렘, 골렘이란 말이지.”

베른이 그 말을 곱씹었다.

그는 아직 골렘을 말해도 확 와 닿는 부분이 없을 터였다.

그러니 보여줘야겠지.

곧 뒤편에 앉아있던 2미터가 넘는 체구의 인물이 절그럭대는 소리를 대며 그들의 옆에 섰다.

베른과 베스퍼가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다가 이내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후드 아래에 감춰진 일렁이는 녹색의 안광 때문이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 이건······.”

“골렘입니다.”

“골렘이라고.”

베른이 경이롭다는 얼굴로 일어나 손을 천천히 뻗었을 때였다. 자크가 그의 손을 잡아채더니 꺾었다.

“엇! 어구구. 자, 잠깐만······ 이, 이보게. 노인네의 뼈는 부러지면 잘 붙지도 않아. 조, 좀 놔주게나.”

“자크 경.”

제드의 만류에 자크는 그제야 꺾었던 손목을 놓아주었다.

베른은 꺾였던 손을 주무르면서 헛기침하였다.

“크흠! 고, 골렘에게 성격 같은 게 있을 리는 없고······ 자네의 지시인가? 좀 험하군그래.”

“그는 골렘 중에서도 좀 특별합니다.”

“특별하다니. 정말로 성격이라도 있단 말인가?”

베른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었으나, 이미 한번 혼쭐이 났기 때문에 감히 손을 뻗지는 못했다.

[마법사란 족속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예의가 없는 것 같소.]

자크가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며 제드가 피식 웃었다.

“이제 일어나죠. 저는 지금부터 토바스로 갈 겁니다.”

“이렇게 갑자기 말인가?”

“원래 조금 전에 출발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출발 직전에 베스퍼가 절 찾아온 겁니다.”

“허. 이 친구가 아주 시기를 아주 잘 맞췄군. 잘했네. 자네 말마따나 곧장 움직이질 잘했군.”

“그, 그냥 운이 좋았던 겁니다.”

베른의 칭찬에 베스퍼는 얼굴이 벌게져서 머리를 긁적일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나? 나도 함께 가지.”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급히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허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게나. 이왕이면 같이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는가.”

밤이 깊어갔다.

제드는 어둠 속에서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베른과 베스퍼 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제드는 지금 생각이 많았다.

‘오스터 형제가 벌써 제국에 투신하다니. 내가 알던 역사보다 최소 20년 이상은 빠르다. 어쩌면 제국 선포도 훨씬 더 빠를지 모르겠어. 그 형제의 천재성은 골치 아프니까.’

오스터의 쌍둥이 마법사.

그들은 전생의 토르가 제국을 대표하는 나이트골렘 중 하나인 ‘해머락의 괴물’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역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 자체만으로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제드는 이미 자신의 운명과 대륙의 역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렸다.

역사의 흐름은 진즉 바뀐 것이다.

다만, 그 흐름이 급격하고 종잡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토르가가 이미 골렘 연구를 시작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해보자면 이미 초기형 골렘이 나왔을 수도 있다.’

이젠 공화국만이 아니라, 토르가 왕국까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동부왕국 토르가는 라이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력이 강했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된 편이었다.

‘물론, 지금쯤이면 파벌이 나뉘어 나라 전체가 긴장되어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것도 전생의 이야기. 지금은 어떤지 알 수 없다. 정보를 모아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때였다.

“아직 계셨군요. 제가 너무 늦지 않은 듯합니다.”

제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건장한 체구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베른이나 베스퍼가 아니었다.

“로톤 경이시군요.”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는데, 저를 기억하시는군요.”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지요.”

중년의 기사는 부드럽게 웃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엿보였으나, 단단하게 단련된 체구에 강인한 눈동자는 그의 단련이 얕지 않음을 증명하였다. 현 왕실 근위대의 대장인 로톤 비르툼이 바로 그였다. 이전 암살모의 때, 그는 왕녀를 지키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로톤 경께서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오늘 수도를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폐하의 곁에서 들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에 인자하게 웃는 낯이었던 로톤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기척을 숨기고 여왕의 곁에 있었음을 들켰기 때문이었다.

“왕실을 지키는 근위대라면 응당하셔야 할 일입니다. 개의치 마세요. 저는 그걸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과연. 이미 알고 계셨다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혹 그렇다면 항상 알고 계셨는지요.”

“예, 알고 있었습니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경계심이 많아서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항상 파악해두는 버릇이 있습니다.”

로톤은 신음을 삼키며 감탄하였다. 그는 제드가 왕궁에 들어왔던 첫날부터 여왕의 곁을 지켰다. 기척을 감추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제드를 신뢰할 수 없어서였다.

“근데 폐하의 곁을 항상 지키셔야 할 분이 이곳에 계시니 제가 다 불안하군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지요. 근위대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들 하나하나가 저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쎄요.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지요. 그들의 실력이 로톤 경 한 사람에 미치지 못하니, 마음을 놓지 못할 수밖에요.”

“······.”

로톤은 입을 다물었다. 그게 근위대의 수준을 나무라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전 습격 때, 눈앞의 제드가 아니었으면 이 나라에 여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의 적막이 흘렀고, 로톤은 무겁게 입술을 다시 뗐다.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백작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로톤의 눈빛이 서슬 시퍼렇다.

물음의 의미는 명확하다. 사람에겐 저마다 욕망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일반적으로는 권력을 향한 야망일 것이다.

그러나 로톤이 보기에 제드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겐 그런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여왕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고, 이 왕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에 누구보다도 가까이 있는 존재인데도 그걸 내세우지 않는다. 제드는 여왕의 권위를 끌어올리고, 자신은 그림자에 머물러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로톤은 그게 더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알 수가 없는 사람은 믿을 수도 없는 법이었으니까.

그 질문에 제드는 간단히 대답했다.

“질서. 그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질서?

로톤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눈살을 찌푸릴 때, 제드는 담담히 말을 덧붙였다.

“어긋난 것을 바로 세우고, 망가진 것을 고치는 일. 그 모든 혼란을 바로 잡는 일. 그게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시대의 질서.”

로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짐작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 제드가 자기 입으로 말한 것은 일개 나라 하나에 그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러 국가의 운명. 대륙의 운명을 쥐겠다는 말이다.

푸르륵.

말이 투레질하는 소리에 로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제드가 말 위에 올라 있었다.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그럼, 폐하를 잘 지켜주십시오. 그것이 로톤 경이 하셔야 할 일입니다.”

제드가 고삐를 당겼다. 흑마는 어둠 속을 천천히 걸어나갔고, 저 멀리에 로브를 걸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로톤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긴 고민 끝에 제드 크레인이라는 존재가 왕가와 나라에 위협이 될 인물인지 가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건만, 알게 된 것은 저 인물이 자신이 헤아리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존재라는 사실뿐이었다.

도대체 그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디에서 저런 인물이 나타났단 말인가.

그 질문은 공허하게 그의 속에서 흩어져갈 뿐이었다.

그리고 로톤은 그 답을 제드가 했던 대답에서 찾았다.

“이 시대가 그를 불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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