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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34) (3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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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볼1

왕궁의 회의실.

지금 이 자리엔 12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마이스터라고 불리는 이들로서, 마법사들과는 달리 인류사의 발전과 철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들이었다.

지금 그들 12명의 얼굴엔 긴장이 드리워 있었다.

이 왕궁의 주인 때문이다.

여왕 라니아.

최근 이 라이곤을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놓은 장본인.

케미트로스 공작을 정쟁으로 하룻밤 사이에 암살한 것도 모자라서 행정지구개혁으로 반발하는 귀족들을 숙청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피의 군주.

대외적으로 알려진 여왕은 아주 무서운 존재였다. 마이스터들이 겁먹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대체 여왕이 우리를 왜 불렀을까.’

꿀꺽.

마이스터는 권력이나 힘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학문을 연구하는 이들. 여왕에게 반기를 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에 불려온 것이 이해가 안 됐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긴장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시간이 되었을까. 회의실의 문이 열렸고 여왕이 또각또각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폐하를 뵙나이다.”

마이스터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며 예의를 갖추었다. 감히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는 와중에 여왕은 상석에 앉았다.

“모두 고개 들고 자리에 앉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폐하.”

그제야 자리에 앉은 그들은 여왕의 얼굴을 보았다.

앳된 얼굴. 아직 소녀다. 고작 스물이나 되었을까. 피비린내나는 명성은 안 어울리게만 보였다.

“오늘 내가 그대들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가 궁금하겠죠.”

라니아는 불쑥 본론을 꺼냈다.

예전 사교 모임을 전전할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의표를 찌르는 듯한 그 행동과 말투는 제드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마이스터들이 여왕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그대들 12명을 왕의 조언자로서 발탁하겠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일해주세요.”

여왕의 말에 마이스터들은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마이스터를 왕정에 끌어들이라는 건 제드의 지시다.

그들은 학문에 대한 지식은 많았으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귀족과 얽혀있지 않으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그들은 당대 왕정의 문제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을 터였다.

‘귀족정치가 대두하기 이전엔 마이스터가 왕의 조언가가 되는 경우가 잦았다. 시간이 지나 그들에게 권력이 생기면서 귀족화가 진행되었지만.’

이건 아주 먼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례였다.

시간이 지난다면 12인의 마이스터가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되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으나, 그건 당장 어찌할 문제가 아니다.

거기다 앞으로 각 국가의 힘이 강력해지고 규모가 달라짐에 따라서 각 정치의 분야는 조금 더 전문화될 필요가 있었다.

라니아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이라는 새로운 방침을 마이스터들에게 전했고, 그들은 눈에 띄게 흥분한 태도로 그 말에 찬동하였다.

그리하여 불과 나흘 만에 수도 곳곳엔 공문이 붙었다. 신분에 상관없이 시험을 치러 인재를 뽑을 것임을 알리는 것이다. 이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기만 하면 당장의 구멍이 숭숭 뚫린 국정운영의 문제도 금방 해결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평민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크다.’

지금까지 라이곤의 왕정의 방식은 유력 귀족 가문의 인재에게 무턱대고 일을 맡기는 식이었다. 검증은 없었다. 오직 인맥과 혈연에 의지해왔던 것이다.

공문이 붙은 뒤로 수도는 술렁거렸다. 이건 그동안 귀족의 아래에서 실력을 발휘해왔던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커다란 변혁은 의식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평민들은 자신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준 왕정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성벽이 되어줄 것이다.

‘이걸로 어느 정도 흐름은 잡힌 셈이군.’

며칠 전까지만 해도 토바스의 사태를 두고 어수선했던 수도의 분위기는 공문으로 또 다른 활기에 휩싸여갔다.

한편, 제드는 라니아가 부정축재로 회수한 막대한 재정의 태반을 갑옷과 병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수도의 대장장이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지경이었고, 그렇게 준비가 된 갑옷들은 곧장 레지앙으로 옮겨갔다. 그것들은 훗날 모두 아이언 골렘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왕궁의 집무실.

“제드 경, 왔군요.”

라니아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나타난 제드를 보더니 반색하였다. 며칠간 몇 번이고 그 모습을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일이 아주 순조로워요. 마이스터들의 열의가 대단하거든요. 제대로 된 인재를 뽑겠다면서 밤낮으로 토론을 이어가고 있어요. 칼만 안 들었지, 피가 튀는 싸움처럼 보일 지경이에요.”

라니아는 즐거운 듯 설명했다. 수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지켜보며 미래를 설계하는 게 몹시도 즐거웠다.

“근데 오늘은 유난히 조용하네요. 제가 또 어떤 걸 놓치고 있는지 평소처럼 말해주세요.”

“폐하께서는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

그 말에 라니아가 하던 일을 멈추고 제드를 가만히 보았다.

“제드 경, 수도를 떠날 생각이군요.”

“예, 제가 당장 이곳에서 할 일은 끝났습니다.”

“굳이 지금 돌아갈 필요가 있나요? 수도에는 여전히 할 일이 많아요. 그리고 저는 제드 경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하고요.”

“폐하께서는 잘하고 계십니다. 지금처럼만 하면 수도의 상황도 금방 안정될 겁니다. 그건 제 몫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 조언가를 곁에 둔 것이지요.”

“······.”

라니아는 거듭 말하는 게 의미가 없음을 알았다.

제드는 이미 결정한 것이다.

못내 아쉽다. 제드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꼈는지 몰랐다.

그러나 계속 그럴 수는 없었다. 라니아도 알았다.

“더 붙잡아도 소용없겠죠. 알겠어요. 경이 이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해주세요. 저는 여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시지요, 폐하.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지요. 항상 근위대를 곁에 두십시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바뀔 때에는 반드시 반발하는 세력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세력들은 변화의 중심에 있는 존재를 해치려고 듭니다.”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라니아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인사는 끝이었다.

저벅저벅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제드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라니아는 한동안 그저 가만히 그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그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듯했다.

푸르륵.

말이 거센 콧김을 내뱉었다.

지금 출발하여 부지런히 이동한다면 밤이 지나가기 전에 토바스에는 당도할 것이다.

‘이제 골렘을 준비할 때가 됐다.’

토바스 토벌에 골렘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던 것은 그랬다간 귀족들이 연합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드는 자신이 가진 패의 일부만 드러냈다.

‘우드 골렘은 정치적 영향력까지 강한 만큼, 다른 골렘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목적성이 다른 양산형 골렘을.’

그 골렘으로는 이미 생각해둔 게 있었다.

바로 광산 입구에 세워두었던 공화국식 스톤 골렘이다.

스톤 골렘은 우드 골렘과 비교하면 만들기가 쉽다. 구조적으로 단순하고 베이스가 되는 바위를 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거기다 토바스의 북부엔 채석장까지 있으니 딱 좋다.’

제드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말 위에 올랐을 때였다.

[주군.]

“알고 있다.”

왕궁의 밖.

그곳에서 익숙한 마나의 패턴이 느껴졌다.

‘베스퍼의 마나.’

마나를 개방만 했을 뿐, 마법으로 전개하지 않는 걸 보니 따로 적의는 없는 듯하였다.

즉, 제드를 찾아온 것이리라.

*

밤이 깊이 드리운 주점.

이전에 만났던 장소에서 두 사람음 마주 앉았다.

“갑작스럽군요. 토바스에서 만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제드가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대답이 엉뚱했다.

“혹시······ 정제법입니까?”

제드의 미간이 꿈틀했고 베스퍼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허. 정말로 맥도웰의 정제법이 기반이 되었던 거군요. 쓸모없는 하급 마석을 최상급 마석으로 바꿀 수가 있다니. 설마······ 설마, 그런 게 가능할 줄이야. 아니,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군요. 정제법은 이미 있었으니, 그게 개정되지 말란 법도 없던 것이겠지요.”

“그걸, 어디서 어떻게 알았습니까?”

제드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적잖이 놀랐다.

‘정제법을 알고 있다니. 비토 라그만의 정제법이 공표된 건가. 하지만 어째서지? 공화국이 그럴 이유가 없다.’

렌시아 공화국은 지금 공들여왔던 골렘을 모두 잃었고, 그레지안 산맥의 광산에서는 완전히 철수하였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됐다. 이런 시기의 발표는 공화국에 득이 될 게 없었다.

“마법계 쪽에서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소식이 바로 조금 전에 라르곤에도 당도한 것이고요. 당연하게도 지금 마탑은 발칵 뒤집힌 상황입니다. 의견이 갈리고 있어요.”

“······.”

의견이 갈린다는 건 아마 제드와의 협조를 말하는 것이리라. 당장 상급 마석을 구할 길이 유일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여러 의견이 나올 수밖에. 이렇게 되면 포병전술을 논할 때가 아니었다.

그러나 제드의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

‘멍청한 것들.’

최상급 마석을 만드는 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비토 라그만의 정제법이 발표된 이후에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발전은 계속 이루어졌다.

더욱이 마석을 정제하자면 기본적으로 마석 자체를 대량으로 구해야 하는데, 어디에서 그걸 구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정제법 발표 이후 마석은 등급과 무관하게 희소자원이 된다. 그리고 이 라이곤 왕국에서는 이미 그렇게 됐다.

반면. 제드는 사전에 그레지안 산맥의 지배권을 손에 넣었다. 산맥의 내부에는 막대한 양의 마석이 매장되어 있었으니, 그 양은 중앙의 대륙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말인즉, 시중에 마석이 돌지 않아도 자원이 모자라진 않는다는 얘기였고 제드의 처지는 바뀐 게 없다는 말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라르곤 마탑의 처지도 말이다.

‘생각을 바꿔야겠군. 마탑의 머저리들은 귀가 얇고 생각이 짧다. 수족으로 부릴 것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 가치가 없는 법이지.’

그 순간, 제드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용병출신의 마법사, 떠돌이 마법사.

그들은 마법을 연구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되었지만, 공정을 돌리는 데 문제가 없었다.

‘거기다 그들은 사고도 유연하다. 전장에 나서는 것도 거부감이 별로 없을 테지.’

생각의 정리는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무슨 말인진 알겠습니다. 마탑과의 거래는 그만두기로 하죠. 비토 라그만의 정제법을 알았다고 한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걸 그들도 곧 알게 될 겁니다.”

“잠시만요. 비토 라그만이라니. 그건 또 누굽니까. 혹시 무슨 다른 정제법이 또 있는 겁니까?”

베스퍼의 말에 제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그 정제법, 렌시아 공화국의 비토 라그만이 마법계에 발표한 걸 말하는 게 아닙니까?”

“예? 아, 아닙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건 토르가 왕국의 오스터 형제라고 불리는 마법사가 만들어낸 정제법입니다. 설마, 공화국에서도 또 다른 정제법이 발표된 겁니까?”

베스퍼가 도리어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제드는 지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스터 형제가 만들어낸 정제법이라고?’

맥도웰의 정제법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제법의 발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제드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렌시아 공화국의 정제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제드가 알고 있던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엉뚱한 이름이 나왔다.

그 이유야 명확하다.

‘역사가 변했기 때문이구나.’

라이곤과 렌시아. 이 두 나라 사이에서 크게 변화하기 시작한 역사의 흐름은 이윽고 동부 왕국에마저 그 영향을 크게 끼쳤다는 것이다.

‘오스터 쌍둥이 형제. 그들이 정제법을 발표했단 말이지.’

재미있군.

오싹.

베스퍼는 몸을 떨었다. 제드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섬뜩한 불꽃이 엿보였던 까닭이다.

“자, 그래서 귀하가 굳이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마탑의 지시? 그게 아니면 당신의 자발적인 판단?”

꿀꺽.

베스퍼가 제드의 기백에 압도되어 마른침을 꿀꺽 삼켰을 때였다.

“이거 무섭군, 무서워.”

제드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마나 패턴.

언제 자신의 정체를 밝히나 했더니, 그게 바로 지금이었던 모양이다.

“오랜만일세, 제드.”

베른 바일. 전생에 붉은 재앙이라고 불렸던 그 마법사가 그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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