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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32) (3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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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불꽃5

*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이게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 광경을 목도한 시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토바스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언덕을 낀 도시였고, 시장이 있는 관청은 그 언덕 가장 위에 있었다. 그래서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

싸움이 개시될 시간에 맞춰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 와인잔을 들고 나왔다. 운치를 즐길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무색하게 그는 잔을 떨어드렸다. 도시 밖에서 전투가 일어났는데, 도심 전체에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작열하는 화염, 치솟는 불꽃······.

‘이건 뭔가가 잘못됐다.’

그가 그렇게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적의 진영에서 화염이 솟구쳐 아군의 진영을 강타한 것이다. 그 포격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한 번 아군 대열을 휩쓸 때마다 대열이 흔들렸고 패주하는 이들이 발생했다.

“저, 저게 뭐냐. 도대체 뭐란 말이냐!”

비명처럼 울려 퍼지는 시장의 외침은 공허했다.

기세 좋게 달려간 기사단은 돌아오질 않았고, 연이은 포격의 불꽃에 비싼 돈을 들여 모은 용병들은 줄줄이 후퇴하고 있었다. 양측의 거리는 1킬로미터. 겨우 500미터 남짓을 나아가고서 일어난 일이었다.

“시, 시장님! 아, 아군이 패퇴하고 있습니다!”

“······.”

“저, 적들이 곧 도시로 들어올 것입니다.”

다급한 보고가 들려왔다. 시장은 한동안 얼어붙은 채로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사, 사람을 보내겠다. 저, 적진에 사람을 보내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시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군대는 지금 모두 무너졌고, 반대로 적은 이제 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방에 모인 귀족들의 얼굴들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저, 적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입니까?”

“우리의 기사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지요?”

그들이 저마다 떠들자 장내는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그만, 그만!”

시장이 사납게 소리치며 좌중의 입을 다물게 했다.

“지, 지금 우리는 중대한 위기 상황에 봉착해있습니다. 당장 이 싸움을 멈춰야 합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우리는······ 졌습니다.”

“아니, 지금 항복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저런 근본도 없는 자들에게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고작 용병들이 패퇴하여 나자빠진 것뿐입니다. 각 가문의 정예인 기사들이 나서기만 한다면 잠깐의 분위기를 뒤집는 것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

항복이라는 말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귀족들.

시장은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하였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기사단도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말도 안 돼. 기사들마저 당했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레지앙의 놈들은 하나같이 비루한 천것들이 아닙니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좌중이 웅성거렸다. 충격과 불안. 그리고 불신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견은 좀처럼 하나로 모이지가 않았다.

시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사이, 새로운 소식이 당도했다.

“아, 아군의 군대가 완전히 패퇴하였다고 합니다. 적이 도시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말이 귀족들에게 현실을 깨우쳐주었다.

일순 적막이 흘렀고, 시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모두 이제 알겠습니까! 여러분이 믿고 싶지 않아도 이게 현실입니다. 나, 나는 여기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후일, 후일을 도모할 것입니다.”

시장의 그런 다급한 모습에 이제 장내의 귀족들도 더는 고집을 부리고 있을 수가 없게 됐다. 패배는 바로 코앞까지 드리워 있었고,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일이었다.

토바스는 숨이 막힐 것처럼 조용했다.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를 찾아볼 수 없었다.

도심의 외곽부터 들어오는 제드와 그 뒤를 따르는 은색 갑주의 기사들. 대열을 갖추고 묵묵히 따라오는 백여 명의 병사들까지.

도시는 숨을 죽였다. 몹시도 짧았던 전투였으나,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 그 많던 용병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심 곳곳에 숨었다. 도시 한복판을 나아가는 레지앙의 군대를 막을 자들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바로 그때, 저 언덕길을 따라 다급히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자크가 막 앞으로 나설 찰나, 제드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백기다.”

달려오는 말의 기수가 하얀 깃발을 걸고 있었다.

제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드리웠다.

*

관청의 문이 열렸다.

제드는 복도를 걸었다.

건물의 외관과 크기부터가 그랬지만, 이 정도면 웬만한 영주 관저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복도는 넓었고 깔끔했다.

그들을 안쪽의 회의실로 안내하는 기사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 기사도 조금 전 도시 밖에서 발생한 전투를 멀리서나마 보았기 때문이다.

“이곳입니다.”

회의실의 문 앞.

제드는 그 앞에 섰다. 그를 안내한 기사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으니, 곧 그곳에 무수한 귀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바스의 귀족들이었다.

제드는 좌중을 훑었다.

그들은 투항의사를 밝혔고, 제드는 그 의사를 받아주는 대신에 조건을 걸었다. 바로 이번 일에 가담한 귀족 전원이 한곳에서 제드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이곳에 모인 귀족이 전부인가?”

“······그, 그렇습니다. 총독 각하.”

제드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 배불뚝이 귀족이 있었다. 현재 토바스의 시장인 리발트가 바로 그였다.

“담소나 나눌 사이는 아닌 것 같으니, 바로 짚고 넘어가지. 그대들이 이번에 여왕 폐하께 보인 행동이 어떤 것인지는 그대 자신들이 가장 잘 알 테지.”

“그, 그것은 오해이십니다. 저희는 그저······.”

시장이 말을 하다가 말고 마른침을 삼켰다.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저 눈빛. 살이 엘 것 같은 싸늘한 눈빛에는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왜 말을 끝까지 하지 않나? 나는 지금 귀하가 무슨 말을 할지 아주 궁금한데 말이야.”

그 순간이었다. 시장이 무릎을 꿇었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지켜보던 귀족들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리발트가 무릎까지 꿇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까닭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제 수치심 따위를 따질 때가 아님을 알았다.

‘까딱하면 죽는다.’

그는 확신했다. 저 눈빛.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저 젊은 총독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모두 의아해하는군. 나도 그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제드가 웃으며 마찬가지로 쪼그려 앉아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일어나서 마저 말을 해보도록. 폐하께 칼을 뽑아든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야.”

“사, 살려주십시오. 눈이, 눈이 멀었습니다. 가, 감히······ 감히 해서는 안 될 짓을 하였습니다!”

“시장님! 지금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게 무슨 수치란 말입니까! 투항했으면 됐지. 이렇게 굴욕적으로 무릎까지 꿇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귀족 가문의 수장으로서 위신도 없단 말입니까!”

귀족들이 한마디씩 거들었을 때였다.

제드가 고개를 들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고.

써걱.

조금 전 언성을 높였던 두 사람의 몸이 사선으로 베이며 무너졌다.

푸확!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뭉개진 내장이 바닥에 흘러내렸다.

“허어억!”

“으, 으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 제드의 뒤에 서 있던 거구의 기사가 일말의 주저도 없이 귀족 둘을 베었다.

공포와 충격에 귀족들이 벽에 붙어 옴짝달싹도 못하는 사이, 리발트도 땅에 이마를 박은 채로 감히 일어서지 못했다. 그는 이미 짐작한 듯 그저 덜덜 떨 뿐이었다.

제드가 여전히 담담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좌우의 기사가 어느새 칼을 뽑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감히 덤벼들지는 못하는 모습.

그럴 수밖에. 조금 전 자크가 휘두른 대검에 그들은 전혀 반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칼, 집어넣어.”

제드가 명령했을 때, 기사 둘은 이내 그 말을 거스르지 못하고 따랐다.

“아직 살아 있는 기사와 사병들 전부 모아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해.”

“그, 그리하겠습니다.”

기사 둘이 다급히 나갔다.

이제 방엔 귀족뿐이었다.

“칼에는 죄가 없어. 작금의 상황은 저들의 의지가 아니었으니, 죄는 그걸 휘두른 어리석은 자들에게 있는 법이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귀족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목숨을 구걸하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초, 총독 각하! 각하를 따르겠습니다!”

“하,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폐, 폐하께 충성을 맹세할 것입니다!”

“부디, 부디 한 번만 기회를······.”

간절한 그들의 외침을 들으면서 제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제드는 그들을 단 하나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도망치면 죽이는 데에 시간이 소요되므로 투항을 받아준 거다. 모아서 한꺼번에 처치하기 위해서.

“기회를 달라? 그거 이상하군. 난 이미 그대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줬다. 지금 이건 너희가 택한 결과야.”

“······.”

제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들의 목숨은 시대의 거름이 될 거야.”

“아, 안 돼······. 제, 제발!”

제드는 미련없이 회의실을 나갔다. 자크와 빌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두 기의 아이언 골렘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쿵 닫았다. 곧 문 너머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그 비명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관청 밖으로 나왔을 때, 건물 앞에는 오십여 명의 인원이 오와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행색만 봐도 기사와 병사가 나뉘었다.

“오늘부터 그대들은 이 나라를 위한 군대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영지와 가문, 그따위 것들은 다 잊어라.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능력을 갖춘 자는 중용하겠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라.”

“옛!”

“좋아, 그럼 긴말은 필요 없겠지. 그대들은 이번 일을 작당한 귀족 가문을 전부 알고 있을 거야. 반란을 획책한 자들을 살려둘 수는 없다. 관련된 귀족 가문의 사람들을 모두 잡아서 이 앞에 데려와라.”

기사들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 명령이 무슨 뜻인지는 명백했다. 한때 그들이 충성을 바쳤던 가문의 사람들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오라는 것이다. 이토록 잔인한 명령이 어디에 있을까.

“이건 강요가 아니야. 가문에 끝까지 충성을 바치다가 반역자로서 죽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지. 어디까지나 선택은 그대들의 몫이야. 단, 책임 역시 그대들의 몫이다.”

제드의 눈동자가 서슬 시퍼렇게 빛났다.

토바스에 피바람이 불었다.

전투에서 죽은 용병의 수만 400명을 웃돌았다.

그리고 숙청된 귀족들의 수만 50명이 넘었다.

제드에게 자비는 없었다. 무시무시한 결단에 숨죽이던 작은 가문의 귀족들이 제 발로 찾아와 고개를 조아렸다.

토바스의 소식은 날개가 달린 듯 금방 왕국 전역에 알려졌으니, 이제 제드 크레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지경이었다.

이 사태에 각지의 귀족들은 분노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이런 짓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불씨는 점점 더 크게 번지고 있었다.

개혁의 불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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