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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31) (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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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불꽃4

*

쾅!

“죽고 싶어 환장했군.”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시장 리발트의 얼굴에 드리운 살집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자비를 베풀어주었다.

그런데 놈은 그 자비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스스로 무덤을 판다면 어쩔 수 없겠지, 러셀 경!”

“예, 시장님.”

“저 어리석은 총독 각하께 현실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어야겠는데, 할 수 있겠지.”

“맡겨만 주십시오.”

“동이 트면 본때를 보여주도록! 아, 그리고 할 수 있으면 그 건방진 놈을 내 앞으로 데려올 수 있겠나? 그놈의 얼굴을 내 눈으로 봐야겠으니.”

“알겠습니다.”

러셀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며 도시로 나왔다.

“이럇!”

말을 타고 거침없이 달려 도시 밖으로 나온 러셀은 주둔지에 다다라 말에서 내렸고 지휘부 막사로 향했다.

막사의 내부엔 이십여 명의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각 용병단의 단장들이었다.

러셀은 당당하게 그들 사이를 지나 상석에 섰다. 그리고 좌중을 훑으며 말했다.

“동이 트면 놈들을 친다.”

밤이 깊어갔다.

대규모 막사가 세워진 토바스의 주둔지 진영과 달리 레지앙의 군대는 그냥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할 따름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군요, 빌.”

“전투가 코앞이라는 생각에 조금 긴장해서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군요.”

“예, 그럴 겁니다. 본래 사냥만 하던 이들과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이들이 태반이라 그렇습니다.”

빌의 시선은 저 멀리 토바스의 적 진영에 꽂혀 있었다. 아마 실감이 잘 나지 않을 거다. 제드도 그랬다. 첫 전투는 말이다.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습니다만, 아주 일방적인 전투가 될 겁니다. 전투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말입니다.”

“······저는 패배를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총독 각하. 저는 한 번의 선택으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 두렵습니다.”

“하하하.”

제드가 이 예상하지 못한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가 했더니.

“빌, 이건 누구도 강요한 결과가 아닙니다. 사람은 매 순간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뿐이죠. 선택엔 책임이 뒤따르는 겁니다. 자비심은 좋은 덕목이지만, 전쟁에 그것은 사치일 뿐입니다.”

선택과 책임. 그리고 결과.

빌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저들은 제대로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만약 그들이 제드를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런 선택을 했을 리가 없었다.

‘······해가 뜨기 전까지 도망쳐라. 살고 싶다면.’

빌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적들에게 닿지 않겠지만 말이다.

밤은 점점 더 깊어가고 있었다.

*

제드는 눈을 감고서 앉아 있었다.

‘밤이 다 지나가도록 공격할 생각이 없군.’

블라르를 통해 확인한 적 진영의 모습은 여유롭다.

수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분주히 움직이는 듯하더니, 밤이 깊은 뒤로는 모두 저마다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재미있군. 동이 트는 때에 맞춰서 공격해오겠다는 건가?’

제드는 피식 웃었다. 좋다. 그에 응해주리라.

그렇게 새벽의 적막 속에서 시간은 서서히 흘렀다.

폭풍전야의 고요가 이러할 것인가.

양쪽 진영은 그렇게 새벽을 보냈고, 서서히 동쪽 언저리부터 하늘이 파르스름하게 물들어갔다.

제드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바스의 주둔지 막사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게 블라르를 통해 목격됐다. 이제 전투의 시간이 되었다는 얘기다.

곧 동쪽 하늘의 지평선에서부터 밝은 빛이 드리웠다.

“총독 각하.”

빌이 제드를 불렀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거다.

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물건을 가져오세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경비대 병사들 몇 명이 곧장 움직였다. 곧 푸르륵 말들이 투레질하는 소리와 함께 레지앙에서부터 가져온 어떤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바퀴를 굴리며 가져온 물건은 가려져 있었다. 곧 병사들이 가렸던 덮개를 치운 순간, 3문의 화포(火砲)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한때 마법사의 화력을 대신하기 위해서 쓰였던 전쟁병기였다.

긴 포신에 큰 바퀴를 양쪽에 달고 있는 형태의 원형의 포신. 철로 만들어진 탄환을 포구에 넣어 발사하는 그 무기는 두꺼운 성벽을 부수거나 뭉쳐 있는 방진을 휩쓰는 병기였다.

병기 자체는 몹시 혁신적이었다. 문제는 화포가 운송하기에 너무 무겁다는 사실과 한 번씩 잘못 폭발하여 아군이 휩쓸리는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포를 운용하는 것에 비해서 수준이 낮더라도 마법사를 고용하는 게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낫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결국 화포는 사장되고 말았다.

[주군, 그 물건이 큰 도움이 되겠소? 차라리 주군이 마법을 사용해서 후방에서 지원하는 게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소.]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자크의 의문에 제드는 그저 의미심장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이 시대는 아직 화포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했다.

“방열.”

제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사들이 포신을 들어 올렸다.  주둔지 방향으로 포구를 맞춘다. 적 주둔지와 이곳의 거리는 약 1킬로미터가 조금 넘었다.

이 시대의 통상적인 전술교리로는 실질적 교전 거리는 약 400미터 안팎에서 이루어졌고, 마법사의 후방지원 역시 약 500미터 안팎이었다.

즉, 아직은 얼마 간의 유예가 있는 셈이었다.

“적들이 대열을 갖추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빌이 말하지 않아도 제드 역시 알고 있다. 블라르가 줄곧 하늘을 날고 있었으므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드는 떠오르는 햇빛을 등지고 대열을 갖추는 토바스의 군대를 목도했다.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방진대열이 갖춰지는 가운데, 측면에 수십의 기병대가 눈에 들어왔다.

“고전적이군.”

제드는 그렇게 평가하며 담담한 얼굴로 화포의 앞에 섰다. 그리고 각각의 포구에 품속에서 꺼낸 마석을 넣었다. 불순물을 완전히 태우지 않고 크게 한 번만 날려버린 그 마석들은 정규급 마석에 해당하는 물건들이었다.

곧 뒤에서 병사가 나와서 기다란 장전봉으로 마석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준비는 이걸로 끝났다.

제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오른손 중지의 디바이스가 은은한 빛을 토하기 시작했다. 제드의 심장에 존재하는 네 개의 고리가 거침없이 회전하며 마나를 뿜어댔다.

제드는 빠른 속도로 주문을 외웠다. 이 마법을 사용하는 건 근 40년 만이었다. 전생에서도 이 마법을 사용했던 건 젊었을 때였으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3개의 마법이 완성됐다.

화포의 통상적인 유효사거리는 500미터에서 600미터.

물론, 그건 원래 화포에 사용되는 포탄의 이야기.

제드는 조금 전에 포구에 넣은 마석을 탄으로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유효사거리는 터무니없이 길어진다. 화력과 명중률 역시 마찬가지.

일반 화포라면 그 폭발력을 견딜 수 없을 테지만, 이 화포는 강도의 보강도 끝났다. 전생에선 골렘 전술이 발달하면서 전생에선 포병전술 역시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났다.

“기회는 주었다.”

이제 저들은 선택의 책임을 질 때였다.

딱.

제드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꽈아앙!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그 일대를 휘감았다.

삐이이이.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마나가 한순간에 팽창하며 일어나는 열기가 뺨을 스치는 가운데, 빌은 움츠렸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화포는 어느새 뒤로 2미터 가량 물러나 있었고, 흙먼지와 포구에서 흘러나오는 새하얀 연기가 혼재됐다.

그리고 빌과 경비대는 보았다.

시뻘건 불꽃 덩어리 3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자그마치 1킬로미터 밖에 있는 적을 향해서 말이다.

*

대열의 중심에서 밀집하여 방진대형을 갖춘 이들은 구르카 용병단이었다. 그들은 가장 큰 방진대열을 갖추고 있었기에 이번 전투에서 중앙에 섰다.

‘흐흐흐. 명성을 높일 기회다.’

구르카 용병단의 단장인 구르카는 밝은 미래를 꿈꾸었다. 이번 일이 잘만 풀린다면 몸값이 크게 뛸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투까지 치르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얄팍한 꿈은 그리 길지 않았으니.

“헉! 피, 피해!”

당당하게 나아가던 용병들은 기겁하였다. 하늘에서 불꽃이 떨어지고 있었던 까닭이다.

콰콰쾅!

순식간에 화염이 방진을 휩쓸었다.

놀랍도록 정밀한 타격 앞에서 수십 명이 한 번에 나가떨어졌으니 아직 살아 있는 이들 태반은 팔다리가 날아가서 숨만 껄떡대고 있었다.

“으아아아!”

“아아악!”

“사, 살려줘······.”

“끄어어.”

새까만 연기와 불꽃에 휘감긴 일대는 지옥이 되어 있었다. 쑥 꺼진 크레이터의 안쪽에는 한때 용병이었던 존재들의 사지가 제멋대로 나뒹굴었고, 비명과 고함이 한데 뒤얽혔다.

전의?

그런 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수십 명이 전투불능에 빠졌을 때, 나머지 용병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용병단장 구르카와 그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중앙부대끼리 교전이 발생하면 즉시 측면을 돌아 적의 후방을 급습하여 제드를 잡으려고 했던 기사들은 아연실색했다.

저 거리에서부터 화염이 날아든 것도 충격적인데, 그 위력이 말도 안 됐다. 한 번에 가장 큰 규모의 방진부대가 패주하고 있었다.

그 광경에 다른 용병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저 화염이 날아들지 말란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저건 대체······.”

“저게 설마, 마법이란 말인가?”

“아, 아니 무슨 마법이 저렇게 강력하단 말인가?”

측면의 기사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저토록 강력한 마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흥! 그래봐야 마법사. 토바스의 검들이여 나를 따르라!”

선두에 서 있던 러셀이 고함을 치며 말 배를 찼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기사들이 일제히 뒤따라 움직였다.

‘뭘 한 것인지는 몰라도 일단 붙기만 하면 그게 무엇이든 단번에 베어 넘길 수 있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고 할지라도!’

러셀만 그리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그를 뒤따르는 수십 명의 기사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두두두두.

측면을 크게 돌아서 들어가는 기병대.

바로 그때, 적의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대형을 갖추었다. 장창으로 사방을 겨누고 밀집한 모습은 틀림없는 방진의 형태. 대형을 갖추는 속도가 일사불란했다.

쯧.

선두의 러셀이 혀를 찼다.

그대로 파고들 참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하마가 불가피했다. 저렇게 밀집한 방진대형을 갖추고 사방에 장창을 겨누고 있어서야 뛰어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사들이 고삐를 당기며 적의 대열을 돌고 있을 때였다. 창벽진의 사이. 그곳에 이 시대에는 보기 드문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존재들이 보였다.

“같잖은. 기사 흉내라도 낼 참이냐!”

챙!

러셀이 쥐고 있던 랜스를 버리고 칼을 뽑았다. 말에서 내려 직접 저놈들을 베어 넘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창벽진 사이의 은색 갑주의 존재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오더니 단숨에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 이십 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리고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은색 갑주의 존재들은 머리 둘은 더 컸으니, 그 우월한 신장의 너머에서 은색의 대검이 공간을 가르고 쏟아졌다.

“헉!”

쉬아아악!

대검이 공간을 갈랐고 은색의 궤적은 말과 함께 통째로 러셀과 다른 기사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쿠당탕.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지는 말과 잘려나간 기사들의 몸뚱어리.

“저, 저런 괴물같은······!”

그것은 정말로 지독하게도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순식간에 10명에 가까운 기사가 죽었다.

“후, 후퇴! 후퇴하라!”

나머지 기사들은 다급히 고삐를 당기며 말머리를 돌렸지만, 자크의 골렘 부대는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모두 베어라.]

자크의 명령과 함께 달려나가는 은색 갑주의 골렘들의 움직임은 폭발적이었다. 아직 속도가 붙기 전의 말들이 대검에 썽둥 베이며 나자빠졌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일방적인 살육전이 일어나는 가운데, 제드는 그곳에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적진을 바라보면서 화포의 포구에 마석을 넣을 따름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빌은 전율하였다. 저 수백 미터의 거리를 좁히기까지 적들은 대체 얼마나 죽어나갈지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거리를 좁힐 수는 있을까?’

빌은 그렇게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제드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일방적인 전투.

그가 새벽에 했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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