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30) (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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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불꽃3

*

토바스.

라이곤의 수도 서쪽 수십 킬로미터 안팎의 이 도시는 아주 오래전부터 국왕 직할령에 속하는 곳이었다.

국왕의 땅이었으므로 자치권을 행사하는 영주 대신에 시장이 있었고, 그 시장은 토호 귀족의 지지를 받으며 행정을 하였다.

그런데 불과 수일 전, 토바스는 발칵 뒤집혔다.

난데없는 제정안의 공포 때문이었다. 행정지구개편과 총독직이 바로 그것이다.

“시장님, 이건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토바스의 귀족들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가 아닙니까?”

“국왕 직할령에 속해 있다고 해도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다니요. 더군다나 그 총독직에 발탁된 인물이 듣도 보도 못한 자가 아닙니까? 애초에 레지앙에 귀족은 없지 않습니까!”

장내의 귀족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동안 토바스는 영주가 없었던 까닭에 이 땅의 토호 귀족들끼리 권력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시장은 그런 토호 귀족들 사이에서 뽑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제정안에 따르자면 전혀 엉뚱한 인물이 덜컥 그들의 위에 나타나서 영주 이상의 지위와 권력을 누린다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인 그들은 긴 시간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그토록 호락호락하게 놓을 생각이 없었다.

“이 일이 어디 이 토바스 한 곳의 문제겠습니까? 이건 폭정이고 독재입니다!”

과격한 발언까지도 서슴없이 하는 그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거기에 딴죽을 거는 이는 없었다.

이제 귀족들의 시선은 시장에게 쏠렸다. 그들의 뜻은 충분히 얘기한 셈이었으니, 이제 시장이 그들의 의견을 취합할 때였다.

“모두의 뜻은 알았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잖아도 이미 이 갑작스러운 제정안에 각지의 영주들이 반발하고 있음을 파악하였습니다.”

시장은 그렇게 말하며 손짓을 했다. 곧 시종이 저편에서 수북한 양피지 더미를 가져왔다.

“각 지방 영주들의 성명서입니다. 이번 제정안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오오.”

장내가 술렁였다.

여왕이 아무리 공작을 처치하고 수도의 권력을 손에 쥐어 기세가 등등하다고 해도 지방영주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반발하고 나선다면야 어찌할 도리가 없는 법이었다.

“자, 이제 모두 뭘 해야 하는지는 알겠지요.”

“물론입니다.”

“여왕에게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한때의 치기로 주제를 모르고 날뛸 수도 있지요.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

“아무렴요. 시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들은 이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날을 기점으로 토바스의 귀족들은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용병을 끌어모으고 군병력을 갖추었다. 그것은 전쟁을 준비하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는 군사적 시위와 같았으니, 여왕을 압박하기 위한 강경한 외교적 수단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토바스의 귀족들 누구도 이 일이 어떤 상황을 야기할 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

레지앙의 집무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제드는 표정이 없는 얼굴로 양피지의 내용을 훑고 있었고, 그런 제드의 앞에서 잠자코 기다리는 네 사람이 있었다.

각각 디아고, 마리아, 빌, 그리고 리아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곧 제드가 서류를 놓고 고개를 들었다.

“토바스가 움직였군요. 예상보다 빠릅니다. 왕정의 권위가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지 알만한 일이죠.”

“마, 마법사님······ 아니, 이제 총독 각하······ 라고 불러야겠지요?”

“호칭 같은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편하게 부르면 됩니다, 디아고.”

“아이고. 그럴 수는 없지요. 총독 각하는 이제 백작이라는 높은 작위를 받으셨으니 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호칭을 허투루 하겠습니까······.”

그랬다. 제드는 총독직을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작위까지 받게 됐다.

즉, 렌토 백작이 된 것이다.

물론, 제드 본인은 그런 호칭은 정말로 아무래도 좋았으나, 디아고에겐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디아고가 다시 조심스럽게 말해왔다.

“총독 각하, 그러면 이제 뭐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혹시 레지앙도 전쟁에 휘말리는 것인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나서야죠. 렌토는 이제 제가 관리해야 할 땅이 됐습니다. 폐하의 신임을 저버릴 수는 없는 법이죠.”

“으음.”

디아고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전쟁을 벌이면 일이 커지기 때문이다.

난색을 보이는 건 리아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터지면 상인들도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람이 매일 같이 유입되어 커지고 있는 이 레지앙의 경우는 막 시장도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쟁이 벌어지면 타격이 막대할 터였다.

“크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지만, 총독 각하, 레지앙이 전쟁을 수행하는 건 다소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그야 당장 병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작금에 이으러 수도 일대의 용병들이란 용병들은 죄다 높은 가격으로 토바스에 고용이 된 실정입니다. 뒤늦게 용병을 모은들 승산이 희박한 쪽에 붙으려고 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과연. 승산이 희박하다.”

“크흠.”

“그렇다는군요. 빌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총독 각하의 군대에 용병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허. 이보게! 도대체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리아드가 그렇게 말을 하려다가 빌의 서슬 시퍼런 시선에 움찔하여 입을 다물었다. 예전부터 그는 빌에게는 꼼짝을 못했다. 그리고 빌의 얼굴엔 의심이 없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토바스로 출병할 겁니다. 경비대를 준비해주세요. 그동안은 산울림이 이 레지앙을 지킬 겁니다.”

“알겠습니다.”

리아드는 아직도 이게 맞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골렘이라는 것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이른 아침.

막사의 연병장에는 150명이 조금 넘는 이들이 대열을 갖추고 서 있었다. 그동안 꾸준하게 수가 늘어서 어느새 100명을 바라보는 경비대 병력. 그리고 약 50명으로 이루어진 은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한 아이언 골렘까지.

수개월 전, 광산 전투에서 7기가 전부 파괴된 이후에 제드는 아이언 골렘을 계속 만들어왔다. 이것이 그 결과였다.

제드는 그들의 앞에 섰다.

아주 먼 오래전, 전생의 기억들이 눈앞을 스쳤다. 제드가 이렇게 병사들의 앞에 선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장은 제드가 자신을 증명해왔던 장소였다.

“총독 각하, 준비가 끝났습니다.”

“갑시다.”

제드는 말 위에 올랐고, 마을의 입구로 나아갔다.

어느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당연한 일이다. 전쟁은 늘 많은 것을 앗아가는 법이니까. 승패에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다를 것이다. 이 전쟁에서 그들이 잃는 건 아무것도 없으리라.

긴 대열을 이루며 나아가는 그들의 머리 위로 푸른 새 한 마리가 뒤따랐다. 블라르였다.

*

레지앙과 토바스의 거리는 불과 한나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다 상인들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눈과 귀가 있었으니, 그들은 레지앙에서 병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곧장 토바스에 전하였다.

“허. 진정 미치기라도 한 모양이군.”

토바스의 시장 리발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었다.

제드 크레인.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자가 여왕의 총애를 받고 백작위에 총독직에 앉더니 이제는 여왕의 군대 노릇마저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러셀 경.”

“저도 잘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얼마 전에 수도에서 들여온 대량의 전쟁 물자를 과신하는 듯합니다.”

“황당하군. 만약 경의 말처럼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너무나도 어리석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군. 싸움이란 결국 병력의 질과 양, 그리고 빼어난 실력을 갖춘 기사가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갈리는 법이거늘.”

“그 말씀대로입니다만, 승산이 없는 싸움을 걸어올 때에는 반드시 뭔가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혹 마탑과의 어떤 거래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음, 과연 그도 그렇군. 애초에 마탑에서 그 물자를 보내주었으니 말이야. 혹 마법사가 동원된 건 아닐까 싶군. 도시의 마법사들의 위치는 파악했나?”

“예, 그렇잖아도 레지앙에서 군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탑 출신 마법사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습니다. 각 가문의 정예병과 기사들이 지켜보고 있는 만큼 섣부른 행동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과연, 러셀 경이로군. 잘해주었어. 경은 우리 틸라 가문의 보배일세. 일이 잘 풀려서 이 렌토의 영주에 오를 수 있게 된다면 경도 이름을 드높일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레지앙이 군사적 행동을 보인 것은 예상외의 일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잘 되었어. 이번 사태로 정세가 크게 변할 것이다. 이참에 토바스 귀족들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테고.’

토바스의 귀족들은 전쟁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단순하게 계산해봐도 절대로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토바스에서 끌어모은 용병들의 수는 이미 수백 명을 가뿐히 넘겨 근 1,000명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지앙의 병력은 불과 200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 하나하나 전부 기사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레지앙 같은 촌구석에 기사급의 실력자가 있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레지앙의 군대가 토바스 서부 평야지대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해가 떨어졌을 무렵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토바스의 용병 군대는 도시 밖에 주둔지를 세운 상태였고, 레지앙에서 군대가 당도한다는 말에 대열을 갖추어 대기까지 하고 있었다.

말 위에서 저 멀리 보이는 막사 주둔지를 훑는 제드의 눈동자가 싯푸르게 빛났다. 블라르와 공유된 시야를 통해 막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라르곤 마탑이 개입은 안 했군. 당연한 일이겠지만.’

제드는 라르곤 마탑과의 중개역인 토바스의 베스퍼에게 사전에 연락을 해두었다. 혹시라도 이번 일에 마탑이 끼어들어 방해한다면 앞으로 마석 거래는 없다는 통보였다.

사실 라르곤 마탑으로서는 쌍수를 들어 반길 이야기였다. 그들은 제드가 이 전투에 참전하라는 요청을 해오면 거절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립을 지키며 끼어들지 말라니, 이건 마탑으로서는 오히려 고마운 이야기였다.

바로 그때였다. 적 주둔지 진영에서 말을 탄 기사 다섯이 대지를 주파하여 이곳으로 달려왔다. 하얀 깃발과 토바스의 각 가문의 문양을 나부끼면서.

푸르륵.

“워워. 본인은 틸라 가문의 기사, 아셀로 피커스라 하오. 시장님과 귀족연합의 친서를 가져왔소.”

“제드 크레인. 렌토의 총독이다.”

제드가 직접 흑마를 이끌고 가서 친서를 전해 받았다.

기사들은 제드가 밝힌 총독이라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드는 친서의 내용을 훑었다.

고풍스러운 필체로 구구절절 적어놓았으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당장 항복하라는 이야기였다.

“헛소리를 길게도 늘어놓았군.”

“감히······.”

기사가 칼자루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이었다.

움찔.

기사는 차마 칼을 뽑지 못했다. 마주한 제드의 차가운 눈빛이 경고하고 있었다.

그걸 뽑으면 너는 죽는다고.

꿀꺽.

기사는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제드는 이내 친서를 북 찢어버렸다.

“돌아가서 네 주인에게 똑똑히 전해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일에 가담한 모든 귀족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이야. 유예는 동이 트기 전까지만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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