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29) (2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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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불꽃2

*

‘이건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군.’

제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마리아 마윈.

그녀의 재능은 진짜였다.

배움의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시골 소녀에게는 아무도 몰랐던 눈부신 천재성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의 이해력이라면 마법까지도 배울 수 있겠어. 많은 일들도 도맡아서 처리할 수 있을 테지. 거기다······.’

힐긋.

제드가 마리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시선을 살짝 돌리며 고개를 숙였다. 발그스름한 얼굴과 꼼지락대는 모양새. 마리아는 제드에게 상당한 호감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다루기에 따라서 곧잘 충성심으로 변하곤 했다.

“마리아, 마법을 배워볼 생각이 있나?”

“예? 제, 제가 마법을요? 어, 어떻게 저 같은 게······.”

“네겐 재능이 있다. 나는 그대가 조금 더 유능해져서 날 보필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대를 너무 높이 평가했을까?”

그 말에 마리아가 의지를 불태웠다.

“아, 아니요! 저 해보겠습니다. 마법사님께서 절 그렇게 평가해주신다면 저는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겠어요.”

“좋아, 그래야지.”

제드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 시대의 마법사는 아주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다.

그들은 학파의 명성으로 자신의 전통성을 증명했고, 마탑이라는 소속감을 통해 지식을 보전했다.

그러나 제드는 그런 전통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였다. 그는 애초에 이 시대에는 거의 아무도 모르는 학파의 마법을 정통하였으며, 마탑의 마법사도 아니었다. 그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그저 자신을 증명하여 제드 크레인이라는 이름을 제국 위에 세운 존재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제드의 방식은 전통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실리와 필요에 의한 습득 교육방식.

제드가 마리아를 가르치는 방식을, 만약 마탑의 마법사들이 곁에서 보았더라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터였다.

마법이라는 구도의 학문에 대한 존경과 존엄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방식. 제드에게 있어서 마법은 그저 수단이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메마른 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아주 빠르게 제드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이론과 개념이 잡히면 그때부터 마석을 이용해 마나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빌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마리아는 훨씬 더 많은 실무를 도맡게 됐다. 마리아의 능력이 검증될수록 제드는 그녀에게 더 많은 실무를 알려주었고 곧바로 맡겼던 것이다.

그렇게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아주 중요한 사안을 제외하면 레지앙의 태반의 일은 이제 그녀의 선에서 전부 정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인재가 숨어 있었다니. 안목이 부족했군.’

이참에 마리아를 이 레지앙의 지도자로서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녀에게 그 일들을 계속 다 맡길 수는 없었다. 레지앙의 일은 점점 더 늘어날 테니까. 그래서 그녀를 보좌할 인재를 붙여주고 싶었지만, 천재라는 건 흔한 게 아니었다.

대부분 마을 주민들은 글을 떼는 것조차도 매우 어려워했다. 그나마도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곧잘 배웠으니, 시간이 지나면 그 아이들이 레지앙의 중추가 될 터였다.

‘역시 인재가 필요해.’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일을 시킬 인재는 정말로 많았다. 제국은 거대했고, 그 안에는 온갖 인재가 있었던 까닭이다.

‘문제는 그게 몇십 년 이후의 이야기라는 것과 저 먼 동부의 이야기라는 거군.’

제드는 이런저런 묘책을 생각해봤지만, 결론은 같았다. 지금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

“마리아가 버티는 수밖에.”

인재란 결국 사람이 모이면 낭중지추처럼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외부에서 데려오거나.

어쨌거나 제드는 그 이후로 다시 마석 정제와 정제공정의 암호화에 매진했다.

앞으로의 상황이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수도에서 곧 어떤 소식이 들려올 거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으면 제드는 정제공정을 대대적으로 돌릴 참이었다. 마법사의 수는 마석에 눈이 먼 라르곤 마탑의 마법사를 이용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즈음이었다. 짐수레 대열과 함게 리아드가 레지앙에 돌아왔다. 마석과 함께 말이다.

“잘 지내셨는지요?”

“이쪽은 늘 같지. 근데 그쪽은 아닌 것 같군.”

“헤헤헤······.”

리아드는 멋쩍게 웃었지만, 속으로 제드에게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마석. 저 빌어먹을 것들을 구하기 위해서 지난 석 달 동안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랐다.

‘크으윽. 고작 마석 따위를 얻으려고 피 같은 돈을 쓰다니. 세상이 아주 거꾸로 돌아가는 게 틀림없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굴러들어오겠다는 생각에 진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낀 리아드였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마석이 어디에서도 남아나질 않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 이후로 리아드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수중의 마석을 싹 팔아버리고 그냥 접느냐, 그게 아니면 끝까지 가서 레지앙의 제드와 손을 잡느냐.

그리고 그 기로에서 리아드는 선택을 했다.

“크흠. 보시다시피 마법사님께서 말씀하셨던 조건을 모두 충족하였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정말로 어렵게 어렵게 말입니다.”

“그런가?”

“예, 정말로 거짓말처럼 느껴지시겠지만,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석의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상승해서······.”

“설명은 필요 없어.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조건으로 붙였던 거야. 그리고 저 물건들과 함께 그대가 이곳에 있다는 것. 그건 그대도 곧 결정을 내렸다는 말이겠지.”

오싹.

리아드는 등줄기에 소름이 내달리는 걸 느꼈다. 제드는 꼭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허. 보통내기가 아닌 줄은 알았지만······.’

“내용물을 확인해봐야겠지만, 그대가 조건을 지켰으니 나도 약속을 지켜야겠지. 마리아에게 가봐. 상업지구 개발안 중에 괜찮은 것들 몇 가지가 정리되어 있을 거야. 그 일은 그대에게 맡기지. 약속했던 돈이 굴러들어오는 자리다.”

“가, 감사합니다! 이 리아드, 레지앙의 번영을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리아드가 탐욕을 드러내며 헐레벌떡 마리아를 따라가자, 디아고가 조심스럽게 제드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에게 정말로 중요한 일을 맡기실 참이신지요.”

“그래야죠. 그게 조건이었으니까요.”

“마법사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저 돼지······ 험험. 말이 헛나왔습니다. 크흠. 저자는 탐욕이 많아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서라면 온갖 부정도 기꺼이 행할 것입니다. 레지앙에 오히려 해가 되지는 않을지······.”

“디아고, 사람에겐 저마다의 그릇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그릇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위에 서는 자의 역량이죠. 일단 지켜보세요. 그가 레지앙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지켜보면 알 겁니다.”

제드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리아드는 원하는 게 명확하고 계산이 빠르다.

그러나 그만큼 속이 뻔히 보였다. 그런 자는 수중에 두고 쓰기 좋다. 그는 부를 얻을 테지만, 그 이상으로 제드와 레지앙을 위해서 일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말이다.

······그리고 통합력 1641년 9월 3일.

기다리던 소식이 수도에서 들려왔다.

라니아 왕녀가 즉위를 선포한 것이다.

*

즉위 선포 소식에 라이곤 전역이 술렁였다.

왜냐하면, 아직 왕이 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이 살아있는데 즉위를 선포했다는 것은 왕위를 자신의 의지로 승계하겠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서 국왕을 둘러싼 소문이 반쯤은 맞았다는 의미다. 거기다 여왕이라니. 여왕의 존재는 이례적이었다. 라이곤의 긴 역사를 확인해봐도 여왕의 등극은 한 번도 없었다.

이를 두고 보수적인 귀족세력들은 설왕설래하였으나, 이렇다 할 행동은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얼마 전에 그레즈에서 피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폭풍우의 밤.

수도 권력의 정점, 왕위를 코앞에 두고 있었던 케미트로스 공작이 비참하게 죽은 날이었다.

그 일파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그 뒤로 있는 듯 없는 듯했던 적통 라니아 왕녀는 갑자기 왕정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로부터 석 달 남짓이었다.

왕녀는 바뀌었다. 아예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증거는 없었으나, 라니아가 그 일을 행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라니아는 이제 명실공히 수도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라니아는 제드가 지시했던 바를 그대로 이행했다.

지금 수도에서는 그녀를 거스를 존재는 없다. 공포든 무엇이든 그녀의 힘이 수도를 꽉 잡고 있다는 건 명백하다.

그러나 지방에 이르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방 영주들은 여왕에게 충성을 바칠 생각이 없을 거다.’

왕권은 이미 약해졌다. 작금에는 그 어떤 군주가 나타나더라도 지방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건 어렵다. 하물며 여왕이라면 그들은 콧방귀를 뀔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일단은 지켜보겠지. 꼬투리를 잡거나 상황을 지켜보다가 저마다 야욕을 드러낼 것이다.’

권력이란 대개 손에 쥐고 있더라도 더 원하게 되는 법이다. 여왕이 만만하게 느껴진다면 그들은 저마다의 야욕을 드러낼 것이다. 영지전 따위가 일어날 것이고, 분쟁이 끊이지 않을 터였다.

그걸 사전에 막을 방법은 하나다.

‘여왕이 그들 모두의 적이 되는 것.’

제드는 라이곤의 기존 제도권을 완전히 부정하고 중앙집권의 기틀을 확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자면 영지의 자치권을 먼저 없애야만 했다.

그것은 봉건제도 그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었으니, 영주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연합하여 칼을 뽑을 것이다.

‘그때 한꺼번에 죽여서 모든 것을 갈아엎을 것이다.’

시간은 흘렀고 즉위식은 거행되었다.

즉위 선포 이후, 약 한 달이 조금 더 지났을 때였다.

준비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즉위식의 규모는 검소하고 짧게 진행되었다. 이례적일 정도로 말이다.

왕국의 각 지방 영주들은 가문의 사람을 축하의 사절로 보내서 예의를 갖추었다. 왕위계승을 둘러싼 문제는 잘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행정구역개혁 제정안과 새로운 관리직인 총독을 공포하였다.

그 내용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총독은 영주 이상의 행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위급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따라서 왕의 대리로서 전권을 휘두를 수 있었다.

단, 총독의 직위와 행정권은 세습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왕의 뜻에 따라 언제든 그 모든 권력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이는 영주를 격하하고 왕권의 격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방책과 다르지 않았으니, 이 제정안에 왕국은 또다시 크게 술렁였다.

레지앙.

탁 트인 완만한 입구는 이제 전과는 전혀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 언덕길로 화려한 왕가의 깃발이 나부꼈고, 수십 기의 말을 탄 기사가 늘어서 있었다.

“제드 크레인은 앞으로 나오시오.”

왕명을 이행하는 사자의 외침에 한 사람이 저벅저벅 걸어나왔다. 레지앙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는 가운데, 제드는 나부끼는 왕가의 깃발 앞에 섰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깡말라 볼품없게만 보였던 청년은 온데간데없었다. 형형한 눈빛과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어깨를 펴고 당당히 그곳에 서 있었다.

“왕명을 받으시오.”

제드가 천천히 예를 갖추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드 크레인, 그대는 현 시간부로 토바스 및 레지앙을 통합한 행정구역 렌토 지방의 총독직에 부임하여 고귀한 사명을 다할 것을 위대한 여왕, 라니아 에버몬트 그레이스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폐하의 명을 기꺼이 수행하겠나이다.”

여왕의 옥새가 찍힌 양피지를 받아들었다.

이것이 그의 행동의 명분이고 동기가 될 것이다.

‘이제 때가 됐다.’

제드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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