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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28) (2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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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불꽃1

해가 밝고 드러난 광산 입구의 풍경은 적나라했다.

골렘이 얽히며 짓뭉갠 땅은 푹 꺼지고 무너졌다.

그건 단순히 입구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입구도 반쯤은 무너졌고, 길목의 완만한 언덕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전투라기보다는 재앙에 더 가까웠다.

그런 이 현장의 중심에 제드는 서 있었다.

무너져내린 검은색 바위 더미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모습.

그것들은 바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움직였던 공화국의 골렘들이었다.

‘아예 못쓸 정도는 아니겠어.’

애초에 잘못 만들어진 코어는 폐기용도였으니 상관없다. 하지만 신체의 각 부위로 작동하게 될 부위들의 회로는 조금만 고치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이득이다.

‘우드 골렘은 셋이 파괴됐나.’

우우우.

별안간 구슬프게 우는 아우로렐이었다.

“널 책망하는 게 아니다, 아우로렐. 완전히 파괴된 게 아닌 만큼 네 동료들은 금방 회복할 수 있어.”

음울하게 일렁이던 옹이구멍의 안광이 다시 밝게 타올랐다.

싸움이 다소 일찍 열린 만큼, 시간을 끌어야만 했던 우드 골렘들에게서 피해가 나오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도 아우로렐의 배치 분배로 세 기의 골렘들의 코어가 파괴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면 그들의 베이스가 되는 재료와 마나만 있으면 수복은 가능하다.

‘완전히 파괴된 건 아이언 골렘 쪽이군.’

흑사자 알프레드는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다.

그도 그럴 게 제드가 전생에서 본격적으로 제국의 마법사로서 활약하게 되는 건 지금으로부터 근 20년 후.

그때쯤엔 알프레드는 완전히 노인이 된 후였다.

그래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거다. 이 시대의 알프레드는 지휘관으로서의 역량 말고도 검사로서도 마스터의 명성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말이다.

‘자크를 제외한 아이언 골렘 전원 대파. 코어째로 파괴되어서 수복도 불가능하다. 다시 만들어야겠지. 거기다 자크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마스터급 실력자가 상대라면 너무 버거워. 이번처럼 적이 나에 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었으면 위험했을 거야.’

제드는 생각이 깊어졌다.

강습병 교리가 완전히 도입되기 전에 제대로 된 대응책이 필요할 듯했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제드는 홀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휘해야만 하는 처지이었기 때문이다.

[주군,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게 있소.]

제드가 상념에서 헤어나왔다.

“말하도록. 뭐가 궁금하지?”

[렌시아스 왕국이 주군의 적이오?]

렌시아스.

200년도 더 이전에 사라진 나라의 이름이었다.

한때 남부 왕국이라고 불렸던 곳. 그곳은 혁명의 불길 속에서 전혀 다른 나라가 되었으니, 지금은 렌시아 공화국이라고 불렸다.

“렌시아스 왕국은 오래전에 멸망했다. 지금 그 땅엔 렌시아 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있지. 공화국이 나의 적이다.”

[하긴 긴 세월이니 나라가 바뀔 법도 하군. 어쩐지 그 알프레드라는 자의 말투와 억양, 그리고 검술이 익숙했소.]

“설명이 부족하긴 했군. 내가 상대할 적중엔 공화국이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엔 안투르프라는 성씨를 쓴 자도 있을 테지.”

[왕국은 사라졌지만, 가문은 남아 있는 모양이군.]

“남아 있는 정도가 아니지. 머잖은 시대에 안투르프의 이름은 세상을 떨치게 될 거다. 나에게 있어선 아주 무서운 적인 셈이지.”

[······.]

투구 속 자크의 안광이 고요하게 일렁였다. 골렘에겐 표정이 없었기에 자크의 심리를 가늠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문의 사람과 싸우는 게 내키지 않나?”

[단단히 잘못 짚었소, 주군. 오히려 그 반대이오.]

“반대?”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소. 내 가문이 적수라면 나는 더 좋소. 긴 시간이 흘러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일이라고 해도,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겠소.]

자크의 목소리에 강한 집념이 느껴졌다.

그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듯했지만, 그런 그조차도 결국은 사람. 죽어서 사라지지 않은 존재에겐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이 하찮은 저주 따위가 아니라, 자신의 증명이라면 아마도 자크와 같은 반정령 같은 존재로 거듭나는 있는 것이겠지.

“좋다, 그럼 다음 몸은 훨씬 더 좋은 걸 준비해주지.”

[부탁하겠소, 주군. 나는 훨씬 더 잘 싸울 수 있소.]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곳을 떠나기 전에 마무리가 남았다.

제드는 다른 쪽에 잘게 나눠둔 스톤 골렘의 잔해로 다가갔다. 지이이잉. 제드의 오른손 중지의 디바이스가 선명한 빛을 뿜었고, 바닥에 마법술식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 참상을 넘어서 광산에 접근하려는 이는 당분간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이 땅을 지킬 골렘 하나를 세울 참이었다. 제드의 허가 없이는 그 누구도 감히 광산에 들어올 수 없도록 이곳을 지키는 문지기를 말이다.

콰드드.

무너진 검은 돌덩어리의 잔해가 허공에 둥실 떠오르며 맞춰지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은 공화국의 스톤 골렘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제드의 방식으로 바꿔서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은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몸을 구성하는 바위의 내부에 술식 회로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만드는 것과 있는 것을 바꾸는 것. 그 차이는 아주 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잔해는 4미터에 육박하는 거구의 골렘으로 변해 있었고, 제드는 품에서 마석 두 개를 하나로 합쳐 코어로 삼았다.

“일어나라.”

제드가 정령을 불렀다.

드드드드.

머잖아 뭉개진 대지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맥동하였고 상처 입은 사나운 대지의 정령이 부름에 응했다.

*

“공화국은 이 일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손을 떼겠다니?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오?”

“영주님께서도 깔아놓은 눈과 귀가 있을 테니 상황을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젊은 사내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그 태도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루안 경, 적의 정체조차도 제대로 알 수가 없는 상황이 아니오. 그렇다면 손을 떼고 물러날 게 아니라, 조사를 끝마쳐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더욱 명확히 밝혀야 함이 옳은 게 아니오.”

달래는 듯한 말투. 하지만 콜렉 남작의 이런 수고에도 루안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본국의 피해는 영주님께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합니다. 반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은 너무나도 막강하다는 것이 밝혀졌지요.”

“무슨 말을 해도 기어이 백기를 들겠다는 말이오?”

“예, 그래야겠습니다. 이 일은 공화국이 감당할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공화국은 하나같이 겁쟁이밖에 없단 말이오! 적이 눈앞에서 대놓고 도적질하고 있는데, 그것을 그냥 두고 보겠다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소용없습니다. 본국의 지침은 이미 결정이 났습니다. 저는 그것을 전하는 창구일 뿐이지요. 이 일은 제 선에서는 뒤집을 수 없는 일이란 얘깁니다.”

“아니, 용납할 수 없소! 일을 이렇게 벌여놓고 홀로 발을 빼겠다니. 뻔뻔하기 짝이 없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콜렉 남작이 고함을 질러댔다.

“용납하지 않는다. 재밌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좋습니다. 그럼 뭘 어쩌겠습니까?”

“······!”

“조금 전에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용납하지 않겠다고. 그럼 영주님은 뭘 어쩌신다는 겁니까? 본국에 선전포고라도 하시겠습니까?”

“가, 감히······.”

“충고 드리는데, 말씀을 가려서 하시는 게 좋습니다. 주제 파악을 못 하면 제명에 못 죽습니다.”

루안의 서슬 시퍼런 경고에 콜렉 남작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리라.

루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와 말에 오른 그는 늘어선 도심지의 풍경 너머로 보이는 저 멀리 북쪽의 산자락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세계의 패권을 향한 공화국의 의지는 좌절됐다.

그러나 공화국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반드시 말이다.

*

제드가 레지앙에 돌아왔다.

우드 골렘들과 함께 말이다.

“허억!”

“저, 저게 뭐지?”

쿵. 쿠웅.

땅을 진동하며 그의 뒤를 따르는 거인의 존재에 근래에 레지앙으로 유입된 상인들과 용병들은 깜짝 놀랐다.

지금의 레지앙에서 우드 골렘의 존재를 아는 건 예전 원주민뿐이다. 사람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뒤로 제드는 한 번도 마을에 우드 골렘을 들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었다.

‘이제 알릴 때가 됐다.’

광산 입구에서 공화국과의 교전은 감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골렘의 존재가 그러했고, 교전이 일어났다는 사실 역시 그렇다.

‘감출 수 없다면 드러내고 이용해야겠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제드는 우드 골렘들을 이용하여 본격적인 토지 공사를 개시하였다. 농경지 확보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레지앙의 원주민들은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었지만, 외지인들에겐 아니었다.

“허! 믿을 수가 없군. 땅이 이토록 비옥해지다니.”

“농경지 확보가 이제야 설명이 되는군.”

레지앙은 하루가 다르게 사람이 늘어나고 있었다.

기존 토지만으로는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토지의 확보는 필수적이었다.

대규모 공사가 거침없이 진행되었고, 땅이 비옥해지는 모든 과정마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자, 유입된 사람들은 우드 골렘에게 경외감마저 가졌다.

그도 그럴 게 누구도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지 못했고, 저마다 다르게 불렀기 때문이었다.

그것조차도 제드가 의도한 바였다.

우우우.

아우로렐은 한 번씩 낮게 울었고, 그때마다 골렘들은 그 울음에 응하여 움직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외지인들은 그것을 산울림이라고 불렀으니, 아우로렐은 산왕(山王)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제드는 이런 상황을 더욱 의도했다. 골렘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힘을 가진 존재로 보일수록 그것이 곧 정치적인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밤이 되었다.

늦은 시각, 제드는 펜을 놓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광산 입구의 전투 이후로 근 십여 일이 흐르는 동안, 제드는 제대로 쉬질 못했다.

그의 앞에 수북하게 쌓인 양피지 더미.

레지앙이 커질수록 제드의 일은 늘어만 갔다.

‘이런 식이라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겠어.’

마석의 정제. 공정술식의 암호화.

거기다 자크의 새로운 그릇에 관한 연구까지.

모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뿐이었다.

거기다가 고출력 코어의 소형화는 제드에게 있어서도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연구가 필요했다.

똑똑.

별안간 노크소리에 제드가 눈을 떴다.

“마리아입니다.”

곧 문이 열리면서 갈색 머리칼에 주근깨가 돋보이는 여성이 들어왔다. 마리아다. 며칠 사이 주기적으로 얼굴을 본 까닭에 제법 친숙한 그녀였다.

“마법사님,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또 새로운 일인 모양이지.”

“아, 네. 여기······.”

그녀가 가져온 새로운 양피지를 슥 훑는 제드. 토지가 확장되면서 외지의 사람들이 상업지구 개발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이건 그 계획안이다. 진행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토지공사를 진행하는 거였으니까.

문제는.

‘당장은 그들을 관리할 여력이 없다.’

지금 제드는 그들까지 관리할 시간이 없었다.

리아드가 돌아와서 그 탐욕을 불태우며 일을 도맡는다면 모를까. 그들의 계획안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파악하는 데에도 시간과 인력이 들었다.

‘인력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게 문제로군. 외부에서 인력을 끌어오자니 신용하기가 어렵고.’

“저기······.”

제드가 고개를 들었다.

어쩐 일인지, 아직도 마리아가 앞에 있었다.

“아직 뭐가 더 있나?”

“아, 저기······ 주제넘은 일이라는 건 아는데, 제가 몇 가지 생각한 걸 정리했는데, 괜찮으시다면 혹시 봐주시겠어요? 마법사님을 귀찮게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요.”

“네가 정리했다고?”

“네, 혹시라도 피곤하시면 그냥 보지 않으셔도······.”

“아니, 보도록 하지.”

마리아가 쭈뼛거리며 뒤에 숨기고 있던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건네왔다. 양피지는 빼곡하였고 내용과 필체는 투박하다. 내용은 썩 대단한 게 없었다. 초보적인 수준의 분석보고서.

그러나 제드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마리아는 지금 이걸 자신이 정리했다고 그랬다.

“마리아, 바로 얼마 전까지 글을 배운다고 하지 않았나?”

“네, 글은 이제 다 배웠어요. 지금은 수학이나 여러 가지들을 배우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도 많은 걸 알고 계시진 않아서요. 일단 배운 걸로만 정리해봤는데······.”

마리아가 뒷말을 흐리며 눈치를 살폈다.

‘불과 보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글을 다 떼었을 뿐만 아니라, 수학과 통계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이지.’

“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제드의 침묵을 다른 의미로 이해한 마리아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물러가려고 하자, 제드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니,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기로 하지.”

마리아가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쳐다보는 제드의 시선이 워낙 강렬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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