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27) (27/124)

#   26 - 3765118

#

교전 발발4

*

“끈질기군.”

제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알프레드 스터스 슬라인 백작의 저항이 거셌다.

적의 골렘은 모두 쓰러졌고, 붉은 여우 아이레스는 죽었다.

대열을 갖추고 저항하던 병사들도 차례차례로 패주하는 상황이었는데, 알프레드가 버티자 장교들을 주축으로 병사들이 후방에서 재집결을 하고 있었다.

“상처 입어도 사자는 사자라는 거군.”

교전지는 후위의 호숫가 근처였다.

블라르는 호수의 상공을 날면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마나가 급격하게 빠지는 이유가 있었다.

‘궁지에 몰렸구나.’

자크와 아이언 골렘은 알프레드를 중심으로 한 구 기사단의 공격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그들이 수적 우위를 살려서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던 까닭이다.

‘효율적이군. 사람이 상대였더라면 얼마 버티지 못했겠지.’

제아무리 빼어난 실력자라고 해도 대열을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공세를 받다 보면 진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알프레드가 상대하는 건 인간이 아니라 골렘이었다.

‘어려운 상황인 것 같군, 자크 경.’

[으음. 변명은 하지 않겠소. 강하군. 아주 강하오.]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나.’

[버티려고 작정하면 꽤 길게 버틸 수 있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문제는 주군 아니오?]

그 말대로다. 이렇게 격렬한 싸움이 계속 이어지면 제드가 먼저 진이 빠진다. 그렇잖아도 이른 개전으로 장거리 조종으로 이미 꽤 많은 마나를 소모한 제드였다.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으니까 최대한 버티도록 해. 아우로렐 쪽은 정리가 끝났다. 그곳으로 지원을 가고 있어.’

[알겠소.]

대화가 끝난 이후에도 블라르를 통해 교전 상황을 지켜보는 제드였다.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공방이 이어지고 있었다. 불똥이 튀고 푸른빛 잔상이 어지럽게 얽힌다.

‘틀림없군. 흑사자의 발톱이라고 불리는 검은 척탄병(擲彈兵)들이다. 이때도 이미 이 정도의 실력이었던가.’

아직 이 시대에는 척탄병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마석의 공급이 원활해지면 정제가 불안정하게 끝난 마석은 전부 소형폭탄으로 분류되어 지급된다. 그때부터 그들은 척탄병 혹은 강습병이라는 특수병과로 분류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알프레드의 전투 능력과 예하 엘리트 병단의 전투력이 빼어나면 아이언 골렘만으로는 힘들 것 같았어.’

그래서 제드의 작전은 아이레스를 척결하는 걸 최우선으로 했던 것이다. 알프레드의 발목을 잡아서 결국엔 둘 모두 잡을 수 있도록 말이다.

쿠웅. 쿵. 쿵.

멀리서부터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드 골렘이 다가오고 있었다.

*

“여단장님! 저, 적 골렘 다수가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군 골렘은 안 보이나?”

“보이지 않습니다.”

알프레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믿을 수가 없군. 설마, 본국의 골렘이 전부 다 파괴됐단 말인가······. 그렇다면 아이레스 공마저 당했단 말인가?’

이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스톤 골렘. 내부적으로는 검은 바위라고 불렸던 그 골렘들은 공화국이 주도하는 자유질서를 만들어갈 핵심병기였다.

‘대체 누가 배후에 있는가.’

알프레드는 낮게 신음하며 복부를 꾹 누르고 있던 손을 뗐다. 흥건한 피에 손바닥이 다 젖어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친 그 날카로운 검은 아이러니하게도 경험한 기억이 있는 검술이었다. 이건 공화국의 검술이었다.

‘공화국의 검술에 당할 줄은.’

“여단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후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곁에서 보좌관이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러자면 얼마나 많은 병사가 죽어야 할까.

“크악!”

별안간 들려온 비명에 알프레드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교전.

불과 여덟 명의 적을 수십 명이 몰아붙이고 있는 광경이다.

그가 불의의 기습을 허용하긴 했지만, 생각했던 대로 흘러갔더라면 적들은 진작 쓰러져야만 했다.

그러나 적들은 좀처럼 지치질 않았다.

알프레드의 예상은 빗나갔고, 아군은 패퇴하였으며 적의 골렘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곧 알프레드의 눈빛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루퍼스 대위, 재집결한 병력을 데리고 공화국으로 돌아가게. 최대한 많은 공화국 병사들이 돌아가야만 한다.”

“여, 여단장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놈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나였다. 내가 도망치면 더 많은 병력이 죽어야만 해. 그럴 수는 없다. 흑사자 여단은 공화국의 최정예다. 내가 목표라면 나는 기꺼이 목숨을 던져, 공화국의 훗날을 도모할 것이다.”

“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이것은 명령이다!”

알프레드의 안광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보좌관은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죽음을 각오한 인간이 내뿜는 강렬한 기백. 하물며, 그것이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초인의 것이라면 그와 같은 범인은 견뎌낼 재간이 없다.

“재고를······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재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크윽.”

알프레드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냉정한 계산 후의 결론이었다.

기습해온 적들은 처음부터 알프레드를 노렸다.

즉, 처음부터 알프레드와 아이레스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적은 우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알프레드의 결론이었다.

“서둘러 움직여라. 최대한 많은 병력을 온존하여 공화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금부터 그대의 임무다.”

“여단장님······!”

“어서 가라고 했을 터!”

“······크으윽!”

보좌관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경례했다.

알프레드는 그 경례를 받았다. 곧 그는 달려나갔고, 머잖아 재집결하며 전의를 다지던 여단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동쪽 숲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적 골렘들이 바로 지척에 다가왔다는 얘기였다.

‘역시 방향은 꺾지 않는군. 내가 목적이라는 건 확실하군.’

“알바스 경!”

“부르셨습니까, 여단장님!”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나 다가오는 거친 수염의 사내. 이 남자가 흑사자 여단의 최강의 기사단을 이끄는 인물이었다.

“지금부터 그대가 할 일이 있다.”

알프레드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짧고 명확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이 거친 사내의 얼굴이 씰룩였다.

“그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군.”

“정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3개 소대를 보내겠습니다. 대신에 제가 이끄는 본부소대는 끝까지 남아 여단장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아니, 허락하지 않겠다. 알바스 경, 경은 흑사자 기사단의 핵심이다. 내가 없어져도 정예병력인 기사단은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 돼. 그대들은 본국의 칼이자 방패야.”

알프레드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부탁하지. 내 마지막 부탁이자 명령을 이행해주게. 공화국은 싸워야만 해. 우리가 무엇을 이루어냈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사명을 안고 칼을 들었는지 경은 알고 있을 거야. 안 그런가?”

“······.”

“이행해주게.”

“······알겠습니다.”

결국, 알바스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명령에 따라 본부, 1, 2소대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끝까지 한 개의 소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수가 줄어서 약 십여 명에 불과한 수였으나, 소대장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알프레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알바스는 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선에서 빠르게 물러나고 있었다.

“뭘 하고 있나, 루드 경! 알바스 경의 뒤로 따라붙어!”

“아뇨,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후위대입니다. 적들을 끝까지 붙잡고 늘어질 것입니다! 3소대, 모두 이곳에서 죽을 각오는 되어 있겠지!”

“발목을 잡던 녀석들이 가서 이제야 제대로 싸워볼 수 있겠군요.”

“크하하. 아무렴 이제야 제대로 해볼만해졌습니다.”

“이 괴물 같은 것들을 다 베면 그때 집에 가죠!”

용맹하게 소리치는 기사들.

알프레드는 착잡한 얼굴을 하다가 이내 칼을 높이 들었다. 배에서 흘러내리는 출혈을 마나로 틀어막았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마지막까지 싸워서 적들을 쓰러뜨리는 것.

“여기 알프레드가 있노라!”

알프레드의 신형이 어둠을 갈랐다.

*

“크악!”

나직한 비명과 함께 널브러지는 기사.

핏발이 선 눈으로 일어서려고 했지만, 이내 눈알을 뒤집으면서 널브러졌으니 곧 몸이 쩍 쪼개지며 나뉘었다.

“허억. 헉!”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은색 갑주의 기사는 홀로 남은 적을 눈에 담았다.

피투성이가 된 적은 처음의 깔끔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서릿발과 같은 기세는 여전하였다. 흑사자 알프레드.

“후욱. 후우. 너는 무엇이냐. 귀신이더냐······.”

그가 처음으로 물어왔다.

수많은 시신이 바닥에 깔려 핏물에 호수가 젖어드는 가운데, 이런 질문이라니. 그럼에도 자크는 대답했다.

[그런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오직 칼로서 자신을 증명하는 지금 이 순간에.]

알프레드의 미간이 꿈틀했다.

육성은 아니었으나,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이 무미건조한 음성이 상대에게 지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젠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래, 그 말이 옳다. 그런 것들은 더는 중요한 일이 아니지.”

알프레드가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다잡았다. 끝까지 그와 함께 한 3소대도 전멸했고, 여덟 명에 달했던 적도 이제 하나뿐이었다.

물론, 마지막 적을 베어도 바뀌는 건 없다. 이미 주변을 포위한 저 골렘들에게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그러나 포기할 생각은 없다.

적 셋을 베어 넘기면서 약점을 알았다.

그건 바로 몸 중앙이다. 심장부로 추정되는 중심부의 핵을 베어버리면 적은 쓰러진다.

그리고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오러를 칼에 휘감을 수 있게 된 알프레드에게 갑주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잠깐의 대치 끝에 알프레드가 먼저 움직였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캉! 카캉!

불똥이 튀었고 검격이 오갔다.

그러다가 거의 동시에 강격이 부딪쳤고.

쩡!

하면서 양쪽이 동시에 물러났다. 비등한 듯하였으나, 차이는 명확했다. 머리 하나는 족히 더 큰 자크의 몸뚱어리가 뒤로 3미터는 더 밀려난 까닭이다.

검의 속도와 기량. 모든 면에서 알프레드는 자크를 압도하고 있었다. 마스터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에는 점점 검사들은 자리를 잃어갈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었다. 거인과 거인이 맞붙는 시대. 그 시대에는 빼어난 기량의 한 사람보다 적절한 기량의 다수가 훨씬 더 제 능력을 낼 수 있는 시대다.

그렇기에 알프레드는 기꺼이 노쇠해가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 이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쓰스스스.

체내의 마나를 불태운다. 온몸의 근육이 맥동하고 칼에 맺힌 오러가 더욱 선명한 불을 내뿜었다. 시간이 없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알프레드는 필살의 각오를 칼에 담았다.

막는 게 무엇이든 베어 넘기겠다는 의지.

“타하아압!”

기저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기합과 함께 그의 신형이 튀어 나갔다. 밤을 가르고, 바람을 찢는다. 칼과 하나가 되어 불꽃이 되어 적을 덮친다.

콰가가각! 채애앵!

그 일격에 대검이 버티지 못하고 깨졌으니, 어깨부터 파고든 칼이 순식간에 갑옷을 찢어발기며 파고들었다.

끝이다. 중심부. 그 중심부만 베어버리면 끝이다!

바로 그 순간.

썽둥.

양팔을 훑고 지나가는 적의 칼.

알프레드가 눈을 부릅떴다.

간발의 차이로 끝까지 베지 못했다. 칼에 힘을 넣기 전에 팔이 베여버렸다. 두 동강이 난 저 대검에 말이다.

스걱!

“컥!”

몸을 가로지르는 궤적에 피를 토하며 바닥에 나뒹구는 알프레드. 창백해진 얼굴로 피를 줄줄 흘리는 그의 눈빛이 독하게 번득였다.

몸이 반쯤 베여버린 적.

텅 빈 몸뚱어리와 그 너머에 투구에서 일렁이는 녹색의 안광이 보였다.

[훌륭했다. 나의 패배를 인정한다.]

머릿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알프레드의 눈동자에서 빛이 서서히 사라졌고, 그의 몸은 간헐적으로 떨릴 따름이었다.

절그럭. 쿵.

자크도 바닥에 쓰러졌다. 상체를 이루는 갑주가 반으로 갈려나간 까닭에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투구 속에서 일렁이는 녹색 안광이 저편으로 향했다.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소, 주군.]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제드다.

“무모했어. 하마터면 경이 소멸할 뻔했다. 조금만 더 깊이 베였더라면 끝났을 거야.”

[각오한 바였소. 그리고 사실상 베인 거나 다름없소. 내가 살아있는 인간이었더라면 마지막 일격은 날릴 수 없었을 테니.]

그것이 자크가 패배를 인정한 까닭이었다. 몸의 절반이 베인 인간에게 칼을 휘두를 여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마지막 일격은 그가 골렘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알프레드는 강했나?”

[아주 강했소. 이 그릇이 만전의 상태라고 해도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오.]

“그래, 그렇겠지.”

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죽은 알프레드를 보았다.

그는 끝까지 두 눈을 든 채로 죽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를 두고 세상은 노쇠했다고 했다.

그러나 전생에서의 그는 앞으로 이십 년은 족히 더 활약하는 인물이었다.

살아서는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고, 잠든 후에는 공화국 군인정신이 되어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될 존재.

그랬던 그가 오늘 이곳에서 쓰러졌다.

‘푹 쉬시오. 알프레드.’

이로써 이번 전투에서 달성해야 할 전략적 목적은 모두 이루었다. 흑사자와 붉은 여우. 그리고 골렘까지.

이 전투의 결과로 공화국 역사는 크게 바뀔 것이고, 그것은 이 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이제부터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제드의 눈동자가 새벽의 어둠 속에서 빛났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