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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26) (2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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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발발3

*

“욱!”

“아, 아이레스 님!”

“괘, 괜찮으십니까!”

입가에서 피를 주륵 흘리며 휘청하는 아이레스. 곁에 있던 마법사들이 식겁하며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뭐냐. 조금 전의 그건······.’

조금 전 적 골렘의 움직임과 파괴력은 그녀의 상식을 아득하게 웃도는 것이었다.

흡사 포효하는 듯한 울음과 함께 땅을 쾅 짓밟으며 거리를 좁힌 적 골렘은 칼과 같은 형태를 한 오른팔을 휘두르며 그녀가 조종하던 골렘을 부쉈다. 그 파괴의 여파는 조종자인 그녀에게까지 미쳤다.

‘저놈, 다른 골렘과는 달라.’

오싹.

등줄기로 소름이 내달렸다. 하늘로 날아오르던 그 새의 형상을 한 골렘이 떠올랐다. 그 골렘의 기동성과 역동적인 반응성. 저 골렘에게서 그 골렘의 그림자가 보였다.

“밀란, 골렘 조종권 넘겨요. 어서!”

“예, 옙!”

아이레스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조종권을 인계받은 아이레스. 곧 뒤에 있던 골렘 한 기가 다시금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모두 골렘 뒤로 물리면서 거리를 재도록 하세요. 저 골렘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놈이니까.”

“알겠습니다.”

마법사들은 긴장했다. 조금 전까지 승기를 굳혀가던 게 거짓말 같았다. 단 한 순간에 상황이 이렇게 바뀌다니.

쿠웅.

땅이 진동하자, 마법사들은 상념에서 헤어나왔다.

적 골렘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우로렐은 다른 우드 골렘과는 달랐다.

체격부터가 그렇다. 공화국의 스톤 골렘보다는 여전히 작았지만, 지금까지 싸웠던 다른 우드 골렘보다는 확연히 더 컸다. 머리와 어깨에 자라난 가지도 더 많았고 두 개의 옹이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안광의 빛이 더욱 선명했다. 무엇보다도 속도와 파괴력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앞으로 다가오는 아우로렐의 움직임에 맞춰 스톤 골렘들은 뒤로 물러나면서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해나갔다. 섣불리 덤볐다가는 또 한 기의 골렘만 잃을 뿐이었다.

우우우.

아우로렐이 낮게 울며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 이번엔 거리가 꽤 벌어져 있었고 공화국의 골렘들은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좋아, 조금 더 들어오너라. 조금만 더.’

아이레스는 숨을 죽였다.

곧 아우로렐은 긴 칼을 휘두르며 치고 들어왔다.

“지금이야!”

아이레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 순간, 좌우의 스톤 골렘이 좌우의 언덕을 뛰어넘더니 단숨에 아우로렐의 측면을 잡았다.

그러나 아우로렐은 홀로 뛰어든 게 아니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아우로렐의 측면을 잡았던 스톤 골렘 두 기가 묵직한 나뭇가지에 밀려나며 나자빠졌다. 그것은 꼭 기병대의 랜스 차징을 연상하게 했다.

아우로렐의 뒤쪽. 좌우를 호위하듯 뒤따르는 우드 골렘 두 기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은 쐐기 형태의 대형이다.

“진형을 갖췄다고?”

아이레스가 깜짝 놀랐다.

골렘이 진형을 갖추고 기동하다니.

미처 보지 못했다. 광산 입구가 워낙 협소하고 이쪽이 저지대였던 까닭이다. 그런 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가 저물며 시야까지 제한됐다.

꽝!

“컥!”

마법사 한 명이 피를 왈칵 토하며 주저앉았다.

아우로렐의 칼이 쓰러진 스톤 골렘의 가슴팍을 꿰뚫은 까닭이다. 골렘의 심장부인 코어를 노린 것이다.

“······골렘, 전부 다 뒤로 빼.”

“아, 아이레스 님.”

“어서 골렘들 전부 뒤로 물리란 말이야!”

아이레스가 사색이 된 얼굴로 뾰족한 고함을 내질렀다.

*

“이미 늦었어.”

어둠 속, 제드는 그렇게 말했다.

완전히 기울어진 전황을 지켜보면서도 제드는 담담하다.

충분히 예상했던 싸움의 양상.

아니, 오히려 다소 맥이 빠질 지경이었다.

이 시기에도 아이레스는 마법사로서는 이미 완성된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승리를 장담하면서도 방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전부터 지금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공화국이 보여준 졸전은 제드의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콰앙!

우드 골렘이 휘두른 해머질에 물러나던 스톤 골렘 한 기의 어깨가 무너지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전투에서 사상자가 가장 많이 나는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아무리 단련된 군단조차도 패주하기 시작하는 순간에는 오합지졸로 전락한다.

하물며, 기동성도 골렘전의 전술도 없는 공화국의 스톤 골렘들이 제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꽝!

굉음이 또다시 터졌고, 스톤 골렘 한 기가 더 쓰러졌다.

아우로렐이 전면에 나서서 싸우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지독하게도 일방적으로 전투가 진행되었다.

광산 입구를 벗어나 추격을 시작한 우드 골렘의 기동력은 스톤 골렘과 비교할 게 아니었다.

처음엔 스톤 골렘을 최대한 파괴하지 않고 노획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교전이 시작된 이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가치가 없다.’

그게 제드의 판단이었다.

차라리 박살을 내고 부서진 골렘에서 가치가 있는 재료만 건져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저 골렘들의 수준은 형편없었다.

제드는 상념에서 헤어나왔다.

‘저쪽도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된 모양이군.’

자크와 아이언 골렘들이 적 지휘부를 타격한 듯했다. 본격적으로 마나가 쑥쑥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을 참이지?”

불쑥 제드가 허공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 순간, 제드의 뒤쪽의 숲 속에서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을 겨누는 그들은 흑사자 여단의 수색 2소대였다.

소대장 아론 중위의 눈빛이 사납게 빛났다.

‘찾았다.’

흘러나오는 강렬한 마나의 파동.

이건 마법사들이 내뿜는 특유의 마나 패턴이었다.

‘근데 왜 마법사가 혼자 있지?’

아론은 주변을 경계했다.

골렘을 조종하는 마법사의 전술적 가치는 대단히 높다. 그런 존재가 이런 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홀로 떨어져 있다는 건 여간 의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 움직이는 적 골렘은 여덟 기. 이곳에 있는 건 한 명의 마법사뿐이었다.

“마나를 거두고 투항하라. 그러면 목숨은 보장하겠다.”

“내가 그 쪽에게 할 말이군. 전투는 이미 끝났다.”

“경고는 한 번뿐이다.”

아론의 눈에 살기가 드리웠다.

제드의 말처럼 골렘전은 패배한 듯했다.

그러나 골렘을 조종하는 마법사만 잡는다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칼의 손잡이를 꽉 쥐는 아론과 소대 병사들. 아무리 빼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이 거리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말이다.

제드는 대답 대신에 손을 천천히 들었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죽여라!”

아론이 곧장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앙!

그들의 발아래에서 싯푸른 화염이 폭발했다.

연쇄적으로 터진 화염 폭풍은 그들 소대원 전원을 순식간에 집어삼켰으니, 한 차례 매서운 열풍이 휘몰아친 그 자리엔 쩍 파인 크레이터뿐이었다.

제드는 꺼져가는 불길 속에 휩쓸린 다섯을 눈에 담았다. 새까맣게 타버리거나 몸뚱어리가 절반쯤 날아간 시신들이 보였다. 둘이 아직 숨이 붙어있다.

“더 고통이 없도록, 최소한의 자비는 베풀도록 하지.”

제드는 손가락을 튕겼고, 곧 마탄이 아직 꿈틀대는 두 사람의 머리에 꽂혔다.

교전은 너무나도 싱겁게 끝이 나버렸다. 수색대가 유리했던 상황. 하지만 제드는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맞이한 전적이 있었다.

전생에 강습병 교리가 국제적으로 도입된 시기에 마법사는 후방에 기습적으로 나타나 돌파해오는 적의 엘리트 병사와 마주해야 할 상황이 잦았다.

특히나 제드는 그중에서도 푸른 늑대라고 불렸던 공화국의 파스칼 안투르프에게 몇 번이고 죽을 뻔한 위기에 빠졌던 장본인이었다.

‘폭발 마석은 경험해본 적이 없었을 테지.’

자크와 헤어진 직후, 제드는 곧장 품에 가지고 있던 마석 몇 개에 마법을 걸어 흩뿌려두었다. 대단한 마법은 아니었다. 마석의 내부에 작은 충격을 일으키는 격발 마법.

그러나 순도가 높아진 마석은 그 격발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위력적인 폭발을 일으킨다. 조금 전 푸른 화염의 폭풍이 바로 그 정체였다.

제드는 시선을 거두었다.

어느새 이 일대는 적막에 잠겨 있었다. 잠깐 사이에 적의 마지막 골렘까지 파괴된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퍼엉!

저 멀리 새빨간 불꽃이 터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마법의 불꽃이었다. 최후의 저항을 하는 모양이었다. 불꽃의 확산을 보니, 틀림없는 아이레스다.

“블라르.”

제드가 호명하기가 무섭게 검은 하늘을 배회하던 푸른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활공하며 남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제드의 눈앞에 블라르의 시야가 투영되듯 펼쳐졌다.

하늘 위에서 처참한 몰골로 쓰러진 스톤 골렘들과 밀집된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왕좌왕 불화살을 쏘는 이들과 고함을 지르는 장교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연신 화염 마법을 쏟아내는 마법사들까지.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잔챙이일 뿐이다.

‘아우로렐, 붉은 머리칼의 마법사를 찾아라. 아이레스 리들린. 그녀를 죽여야 한다.’

제드의 사념이 명령이 되어 전달되었다.

그 순간,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병사들을 휩쓸던 아우로렐이 우뚝 멈추더니 낮게 울었다.

우우우우.

곧 나머지 우드 골렘들이 이에 반응하며 움직였다.

“마, 막아! 마법사님들을 지키란 말이다!”

방진중대의 소대장들이 소리를 질러댔으나,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이미 12기의 골렘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불화살 따위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콰아앙!

병사들 너머로 날아든 화염이 폭발했다. 화염에 휘감겨 두어 걸음 물러난 우드 골렘은 곧장 달려와 화염을 쏟아낸 마법사를 우드 해머로 내려찍어버렸다.

쿠우우웅!

“괴, 괴물이란 말인가.”

아무리 훈련된 군대라고 할지라도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일방적인 살육에 병사들은 이내 패주하였다.

숲은 이제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우드 골렘들은 마법사들을 사냥했고, 마법사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화염이 작열하고 열풍이 휘몰아쳤다.

사방의 숲이 화염에 휩싸이는 가운데, 머잖아 아이레스 역시 표적이 되었다.

“으으······.”

말을 타고 달려나가던 그녀는 골렘이 날린 바위에 휩쓸려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져 피를 흘렸다.

“······무섭구나. 정말 무서운 병기야.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골렘의 모습이야. 세상 모든 것을 불태우고 짓밟을 위대한 힘.”

아이레스는 도망을 포기했다. 뼈가 부러진 마당에 더 도망치는 건 무의미했다. 적은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땅이 진동하는 가운데, 이글대는 화염을 지나서 아우로렐이 그녀의 앞에 섰다.

아이레스는 피에 흠뻑 젖어 끈적해진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저 하늘 위로 배회하는 푸른 새가 보였다.

“호호. 괜찮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주겠어요? 다 끝난 마당에 그 정도는 알고 가고 싶은데 말이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우로렐이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틀어쥐었다. 몸을 압박해오는 감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아이레스의 표정은 담담했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그녀는 알고 싶을 뿐이다. 눈앞의 골렘과 그 너머에 있는 존재를 말이다. 하지만 그 궁금증이 해소되는 일은 없으리라.

아이레스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숲 너머 남쪽의 땅을 눈에 담았다. 가깝고도 먼 저 땅 너머에는 그녀가 평생을 바친 나라가 있다. 만민의 자유와 이상을 꿈꾸며 혁명의 불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 국가가 말이다.

“무장하라, 공화국이여. 조국의 적과 맞서 싸울 지어다. 깃발을 들어라. 영광의 날이 다가······ 아악······.”

노래처럼 읊조리는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내 그것은 숨을 쥐어짜는 비명이 되었으니.

으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왈칵 피를 토한 아이레스의 몸은 그대로 축 늘어졌다.

죽음이었다.

우우우우.

아우로렐이 포효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쿠웅.

일렁이는 화염 속에서 우드 골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전투는 끝난 게 아니었다.

흑사자 알프레드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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