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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발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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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구치는 대지의 파편과 자욱하게 몰아치는 먼지바람. 천둥이 연이어 터지는 듯한 굉음.
수색대 1소대장 아론 중위는 지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대가 변했다. 그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실감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껏 역사의 전면에 골렘전이라는 개념은 없었기 때문이다.
골렘 자체가 없었던 게 아니다. 먼 옛 시대로부터 마법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 형태로서 골렘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골렘의 능력은 일정한 크기 이상이 되면 극도로 느리고 힘도 약해졌다.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기엔 터무니없이 약했고, 소형화하자니 다른 수단이 많았다.
그런 효율성 나쁜 마법을 사용할 마법사는 없었다. 그래서 골렘이라는 존재는 한 번도 역사의 전면에 나타났던 적이 없었다. 바로 오늘날까지는 말이다.
‘이것이 골렘전이란 말인가?’
콰아앙!
엉겨 붙었다가 자기 힘을 못 이긴 공화국의 검은색 골렘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광산 전체가 무너질 듯 진동하였다.
‘······왜 본국에서 이토록 마석 확보에 열을 올리는지 알겠군. 저런 말도 안 되는 병기가 세상에 나온다면 모든 게 바뀔 거야. 모든 게.’
지금까지의 전술과 전략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저 골렘이라는 존재가 전장에 나타나면 그 어떤 것도 통용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론이 밀려드는 허무감을 느낄 때였다.
“소대장님, 움직이셔야 합니다!”
소대 병사의 외침에 아론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적 마법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숨어 있을 터. 최소 여덟 이상이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라.”
아론의 1소대는 산맥을 따라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광산 입구에서 벌어지는 전례 없는 이 골렘전의 양상은 몹시 치열했다.
12기 대 8기.
단순히 숫자로만 보자면 렌시아 공화국의 검은색 스톤 골렘의 수가 더 많았다. 하지만 광산의 입구는 그 많은 골렘이 동시에 전투를 벌이기에는 너무 협소하였다.
양측의 골렘 열 기가 동시에 움직이면 광산 입구는 더는 기동할 공간도 없을 지경이다. 그 덕분에 공화국의 골렘은 수적 우위를 제대로 살리기가 어려웠다.
“에잇! 왜 하나도 쓰러뜨리질 못하나!”
공화국 마법사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적의 취약점은 분명하다. 바로 장갑이다. 그 점을 수적 우위로 풀어낸다면 금방 유리한 고지를 잡을 것 같았다. 이곳은 좁았으므로 기동성이 좋은 건 강점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싸움에 들어가니 그게 생각처럼 안 됐다.
각개 기동훈련은 수없이 해온 공화국 마법사들이다. 하지만 이런 집단전 상황에 대한 경험은 거의 없었으므로 훈련 때처럼 골렘을 움직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렇잖아도 덩치가 큰 스톤 골렘이 수적 우위를 살리려고 할 때마다 서로 밀치면서 방해가 됐다.
반면, 적 골렘들의 움직임은 유기적이다. 서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것처럼 공격과 방어를 나눠서 대응하고 있었다. 골렘끼리 부딪치거나 하는 등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들 말하진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이건 골렘의 성능, 그 이전의 문제라는 것을.
바로 그때였다.
“조종권을 넘겨요, 타렉.”
별안간 뒤에서 들려온 고혹적인 목소리.
호명된 마법사가 뒤를 돌아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아이레스였다.
그녀는 서슬 시퍼런 표정으로 전장을 두 눈에 담았다.
“졸전이 따로 없군요.”
“······.”
“지금부터 나를 중심으로 진형을 다시 짜겠습니다. 내 움직임에 맞추란 얘깁니다. 알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그녀의 카리스마에 마법사들이 꼼짝도 못하는 가운데, 곧 뒤쪽에서 대기하던 골렘 한 기가 고개를 푹 꺾고 멈췄다. 외눈의 붉은 안광이 서서히 옅어질 찰나, 아이레스의 목걸이가 우우웅 빛을 토했다.
그녀의 로브가 펄럭대는 가운데, 곧 그녀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주문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고개를 꺾고 기동을 정지했던 골렘의 외눈에 붉은 안광이 다시 일렁였다.
그그긍.
고개를 들어 올리고, 몸을 틀며 움직이는 스톤 골렘.
쿠웅.
아이레스가 조종하는 스톤 골렘이 앞으로 나선 순간, 앞에 서 있던 다른 골렘들이 한둘씩 옆으로 물러났다. 이제 선두에는 아이레스의 골렘이 서게 됐다.
“혹시라도 내 발목을 잡는 이가 있다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리겠어요.”
아이레스가 도발적으로 입술을 날름대더니 얇고 긴 손가락을 허공에 펼쳤다. 그 모습이 흡사 악단의 지휘자를 연상케 했다.
잠깐 대치하듯 이어졌던 싸움은 재개됐다.
*
수색대 2소대의 밀즈 중사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엔 없군. 거리가 너무 멀어. 전장과 거의 500미터. 이렇게 거리가 멀어져서는 골렘을 제대로 조종할 수 없다. 이 방향은 아니란 얘기야.’
수색대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1소대는 동북 방향으로, 그들 2소대는 북서 방향으로.
그 결과, 전장에서 꽤 떨어지게 됐다.
“소대장님, 여긴 없는 듯합니다. 이미 전장과 500미터 이상 멀어졌습니다.”
“좋아, 복귀한다. 다른 소대가 성과가 있기를 바라야겠어.”
“혹 1소대와 3소대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상황이 아주 골치 아프게 돌아가는 거지.”
렌시아 공화국 골렘을 기준으로 조종거리는 최대 500미터.
그러나 최대거리에서의 조종은 겨우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으므로, 실상 골렘의 조종은 300미터 안에서 이루어졌다. 마나의 효율까지 고려하자면 200미터 안팎이 권장됐다.
현재 전투가 벌어지는 광산 입구 인근 500미터 일대를 수색대 3개의 소대가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얘긴 둘 중 하나다.
‘적 골렘의 조종거리는 공화국의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거나······ 그게 아니면 적 골렘들은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겠지.’
마일로 중위가 고개를 저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힐긋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하늘이 붉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만 돌아간다. 다른 소대에서 성과가 있길 바라자고.”
막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별안간 어떤 소리가 먼 북쪽에서부터 희미하게 들렸다. 그걸 놓칠 그들이 아니다.
“소대장님, 이 소리는······.”
“쉿. 몸을 낮추고 매복한다.”
마일로 중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매복을 지시하며 칼을 뽑아들었다.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렸다. 지금 이곳으로 다가오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매우 높은 확률로 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희미했던 소리는 점차 커졌다. 거리는 점차 가까워졌고, 열 명으로 이루어진 소대 병력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지금이다!’
그들은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그리고.
써걱.
“······!”
오른쪽에 포진했던 밀즈 중사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눈을 부릅뜬 마일로 중위.
튀어나오자마자 베였다.
‘적이 이미 우리의 매복을 알고 있었구나!’
“큭!”
마일로 중위가 다급히 눈앞의 적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공격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막혔다.
카가가각!
칼과 칼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마일로의 이마에 힘줄이 툭툭 불거졌다.
‘무, 무슨 힘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든 그는 보았다. 180센티미터나 되는 신장의 자신을 내려다보는 은색 투구의 안쪽, 그곳에서 일렁이는 녹색의 안광을 말이다.
푸확!
그게 끝이었다. 조금 전의 힘겨루기가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곧장 그의 칼을 짓누르며 파고든 대검이 그의 목을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후두둑.
핏물이 땅을 적셨고, 싸움은 금방 끝났다. 수색대 2소대가 전멸한 것이다. 그들의 주검은 처참한 몰골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때, 그들의 뒤쪽에 있던 은색 갑주의 기사의 상체 갑옷이 쩍 열렸다. 그 안에서 마른 체구의 사내 한 명이 비틀대며 나왔다.
“후우. 아직도 흔들리는 것 같군.”
[그나마도 최대한 주군을 배려한 것이오. 더 빨리 뛸 수도 있었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자크 경, 경을 위해서도 옳았던 거야. 만약 그랬다가는 경의 몸 안에 토악질했을 테니까.”
[음, 그럴 것 같았소.]
자크의 대답을 들으면서 마른 체구의 청년은 허리를 펴고 서서히 차가워져 가는 산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받아들였다.
제드 크레인.
레지앙에서 출발했던 그가 바야흐로 남쪽의 광산 지대에 다다른 것이다.
차분한 얼굴로 돌아온 제드가 울창하고 험한 산악을 슥 훑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하늘 위로 푸른색 새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블라르다.
“자크 경, 준비는 됐나?”
[준비는 항상 되어 있소. 그저 조금 전과 같은 피라미가 오늘의 상대가 아니길 바랄 뿐이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거야. 상대가 썩 만만찮은 인물이니.”
하늘은 핏빛 석양에 물들어 있다.
딱 좋다.
“사냥의 시간이다.”
*
자크를 필두로 한 아이언 골렘은 산개하여 또 다른 적의 수색대와 조우했다.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던 3소대였다. 별다른 건 없었다. 그들 역시 2소대처럼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 땅을 나뒹굴 따름이었다.
제드는 광산 입구의 풍경이 잘 보이는 지대에 섰다.
골렘들이 뒤얽힌 광경.
공화국의 골렘들은 초반의 졸전은 온데간데없이 제법 체계가 갖춰진 모양새였다.
차근차근 우드 골렘을 압박하고 있었고, 그 피해는 누적된 상태. 우드 골렘 한 기는 이제 거의 대파되어 뒤로 빠져 있었고 나머지 우드 골렘들이 대응하고 있다.
누가봐도 우드 골렘이 수세에 몰려 있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제드는 차분하였다. 그 얼굴은 불리한 상황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공화국의 스톤 골렘. 그리고 그걸 조종하는 마법사까지.
“한심한 수준이로군.”
붉은 여우 아이레스.
그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볼썽사납구나, 아이레스 리들린.”
그런데 저 싸움은 무엇인가.
제드가 기억하는 아이레스는 작전의 노림수를 단번에 파악해 도리어 허를 찔러왔으며, 탁월한 골렘 조종술로 제국 골렘을 수도 없이 쓰러뜨렸다.
그런데 지금 저곳의 아이레스는 너무 평범하다.
······아니, 평범하다는 말조차도 아깝다.
수적 우위를 전혀 살리지 못할뿐더러 본인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저 전장을 자신의 독무대처럼 쓰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모두가 혀를 내둘렀던 그녀의 탁월했던 천재성조차도 세월 속에 벼려진 칼이었다는 얘기다.
곧 제드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감상은 여기까지였다.
“아우로렐.”
제드는 지금껏 때를 기다렸던 골렘의 이름을 불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수비를 고집하던 일곱 기의 우드 골렘 사이에서 지금껏 한 번도 전투에 나서지 않았던 우드 골렘 한 기가 나섰다.
우우우우.
낮은 울음과 함께 아우로렐의 녹색 안광이 불꽃처럼 타올랐고.
콰아앙!
아이레스가 조종하던 골렘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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