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24) (24/124)

#   23 - 3759036

#

교전 발발1

푸른 하늘.

광활한 녹색의 대지가 저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그 위를 나는 한 마리의 새가 있다. 녹색의 눈동자가 아니라면 조금도 특이한 점을 찾아볼 수 없는 새였다.

블라르.

제드가 두 번째로 만든 골렘.

바로 얼마 전에 마법에 휩쓸려 날개 한쪽이 파손되기는 했지만, 정령의 가호와 마나가 보급된다면 자가회복이 가능하였다.

블라르는 창공을 날면서 녹색의 숲지대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녹색의 안광 너머로 존재하는 골렘의 주인 역시 그 상황을 전부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과연, 흑사자 부대로군.’

군대의 움직임이 아주 조직적이었다.

본대는 철저하게 거리를 벌려놓고 중대 단위로 흩트려놓은 상황에서 수색대만 기동하면서 적의 움직임 및 마법사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수색대 인원이 많다. 그렇다면 이게 본격적인 충돌 전에 마지막 정찰이란 얘기겠군.’

알프레드는 치밀하다. 그는 냉정하게 상황 파악과 적의 전력과 위험 요소를 배제하고 적을 천천히 죄고 부쉈다. 그런 그의 전술성은 이미 이때에도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리라.

‘골렘이 보이지 않는군. 마법으로 숨겼나.’

골렘처럼 거대한 존재를 마법으로 완전히 숨기는 건 아무리 빼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단 얘기는 일정 각도의 시야의 빛만을 굴절시켜 왜곡을 발생시킨 것이리라.

고공을 날던 블라르가 천천히 하강하여 숲 일대를 크게 돌며 정찰했다. 또다시 아이레스에게 걸렸다가는 그때는 빠져나가기 어려웠으므로, 이번엔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거리를 조절했다.

그리고.

‘찾았다.’

저 높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커다란 스톤 골렘들의 모습이 한둘씩 보였다. 둘씩 나뉘어서 광산 방향으로 대기 중이었다. 그 주변에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지시하는 아이레스의 모습도 말이다.

바로 그때였다. 아이레스가 후드를 뒤로 젖히며 고개를 홱 돌렸다. 붉은 머리칼이 나부끼는 가운데, 그녀가 뻗은 손가락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마탄이었다.

들킨 것이다.

블라르가 곧장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슈아아악!

시야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가운데, 옆을 스치는 새하얀 섬광이 서너 발. 거리가 제법 있었으므로 현란하게 움직이는 블라르를 맞춘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300미터가 넘는 거리를 감지했을 리는 없고. 숲 일대에 감시망을 펼쳤다는 거군. 또다시 내가 블라르를 이용해서 정찰할 거란 걸 짐작한 거야.’

높이 날아올랐다가 천천히 돌아서 광산 근처의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블라르. 숲 사이를 빠르게 돌아다니는 수색대의 모습이 보였다.

사방이 적이다. 아우로렐을 비롯한 일곱 우드 골렘은 포위된 상태나 다름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미 상황 파악은 끝났으니까.

블라르가 고개를 들었다.

해는 머리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정찰로 제드는 많은 것을 파악했다.

‘공화국은 골렘의 존재가 알려지는 걸 피하고 싶어한다. 그만큼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테지. 거기다 그 흑사자 알프레드라면 분명히 해가 지고서 움직일 터. 그럼 아직 한나절이 남아 있다는 얘기군.’

*

“이걸 놓치다니······.”

아이레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전 밤에는 워낙 다급하게 손을 쓴 까닭에 명중률이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충분히 기다렸고, 정확히 위치를 포착했다.

그런데도 놓쳤다.

“끙. 감시망에서 더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그딴 것쯤은 나도 알고 있어요.”

아이레스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하늘을 나는 골렘.

처음 목도했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그 기동성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어.’

지금 그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만약 그 정도의 마도공학 기술력이 지금 광산 앞에 잠들어 있는 골렘에 존재할 때의 일이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냉정하게 말해서 승산은 없어.’

아이레스는 곧장 발걸음을 돌렸다. 멀지 않은 곳, 장교들 사이에 서서 지시를 내리는 알프레드의 모습이 보였다.

알프레드는 곧장 다가오는 아이레스를 보더니 주변을 뒤로 물리고 그녀를 맞이했다.

“아무래도 계획했던 일이 잘 안 풀린 모양이군요.”

“네, 근데 이번에는 알프레드 경도 알다시피 준비를 많이 했어요. 감시망을 펼쳐두었고 그 정체불명의 골렘을 포착할 수 있었죠.”

“다른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문제라면 문제겠네요. 골렘의 기동성이 제가 예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더 빼어났어요. 만약 그 골렘의 마도공학 기술력이 광산의 앞에 잠든 저 골렘에게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고 한다면 승산이 없을 거에요.”

알프레드는 표정을 알기 어려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생각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아이레스 공이 염려하는 바는 알겠습니다만,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수준은 아닐 겁니다. 루안 경의 조사서에 따르자면 말입니다. 아마도 그 새의 형상을 한 골렘이 특별한 것이겠지요.”

“저도 부디 그러길 바라고 있어요. 만약 제가 생각한 대로라면 우리 공화국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요.”

알프레드는 턱수염을 매만졌다. 깊은 고민에 잠길 때, 그의 버릇이다. 세밀한 작전의 구상은 이미 끝마쳤다. 하지만 아이레스의 제언은 그냥 무시할 게 아니었다. 그녀는 빼어난 마법사였고, 지금 이 현장의 마법병기인 골렘을 다루는 총책임자였다.

“아이레스 공, 적의 정찰은 쫓아낸 게 확실합니까?”

“예,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 그래요. 하지만 새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 혹은 전혀 다른 형태의 마나 패턴이라면 저도 읽을 수 없을 거에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신이 아닌 이상에야 전장에서 돌아가는 모든 상황을 다 알 수는 없는 법이지요.”

알프레드의 눈빛이 변했다.

“긴급 작전회의를 열어야겠습니다. 아이레스 공과 골렘 마법사도 전원 참석해주십시오.”

*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블라르는 광산 입구 근처의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굳은 듯 멈춰 있었다. 골렘의 기동에는 마나가 소모된다. 싸움을 앞두고 쓸데없이 마나를 소비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본격적인 싸움은 해가 진 이후가 될 테니까.

그동안 제드는 차분하게 머릿속으로 작전을 구상하는 중이었다. 적의 취약점은 명확하였고, 제드의 전략적 목적도 역시 명확했다.

‘흑사자와 붉은 여우. 그 둘은 반드시 이 전장에서 해치워야 한다. 적들의 스톤 골렘을 노획하는 일도 그렇지만, 그 둘을 해치우는 게 더 이득이야.’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전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것인가.

그렇게 여러 생각을 할 때였다.

‘음?’

블라르의 시야로 그냥 넘길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쥐죽은 듯 가만히 있었던 적 수색대의 배치가 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대 병력과 함께 움직이는 마법사 여럿이 함께 포착됐다.

‘병력을 움직이려고 하는구나.’

마법사를 앞세웠다는 사실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진격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우드 골렘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기 전에 무력화하겠다는 심산인 듯했다.

이 상황은 제드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다. 그 알프레드가 한 템포 더 빠르게 교전 결정을 내렸다.

‘뜻밖이군. 아직 조금 젊기 때문인가? 어쨌든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다.’

광산의 입구.

우두커니 서 있는 우드 골렘들의 모습은 골렘이라기보다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기이한 형상의 나무처럼 보였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언제 기동해도 이상하지 않아.”

리카르도 대위는 단단히 이르며, 눈에 힘을 주었다. 중대원들도 긴장한 모습으로 장창을 높이 들었다. 하지만 저 골렘들의 앞에서 그런 병기들은 너무 초라하게만 보였다.

곧 중대 마도사들 사이에서 마법사 다섯 명이 조심스럽게 나와서 우드 골렘을 향해 다가갔다. 그 행동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광산 입구 근처에 단단히 포진한 수색대부터 방진중대까지 곁에 있었으나, 그들이 그들의 목숨을 보장해주진 않기 때문이었다.

“후우.”

마법사 중 한 명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손을 뻗어 우드 골렘에 얹었다.

장내에 팽팽한 긴장감이 드리우는 가운데, 마법사는 눈을 감고 마나를 흘려 넣었다. 골렘을 이루는 마법술식에 접촉하려고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웩!”

술식을 역으로 읽어나가던 마법사가 별안간 피를 왈칵 토했다. 주변 마법사들이 기겁하며 그를 부축했다.

“중대 전원 물러난다!”

리카르도 대위의 다급한 외침.

곧 소대장들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면서 팽팽한 적막이 흐르던 장내의 분위기가 변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시선은 눈앞의 골렘에 꽂혀 있었다.

“헉!”

얼굴이 있는 곳에 뚫려 있는 두 개의 옹이구멍. 그 속에서 녹색의 안광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우우우.

낮게 울려 퍼지는 울음과 함께 흙먼지가 흩날렸다.

그리고.

콰앙!

커다란 나뭇가지가 마법사들이 서 있던 공간을 단번에 휩쓸어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드드드드.

바로 전까지도 우두커니 서 있던 나머지 골렘들이 일제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일어나고 있었다.

“뒤로 물러난다! 소대별 기동! 후퇴하라!”

눈 깜짝할 사이에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드 골렘의 기동에 땅이 크게 진동하는 가운데, 곧 아래쪽에서도 먼지를 일으키며 검은 바위 더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욱한 먼지 속을 꿰뚫는 붉은 안광. 렌시아 공화국의 스톤 골렘이 투입된 것이다.

*

쿠웅. 쿵.

거인들이 움직일 때마다 땅이 크게 진동했다.

방진중대는 이미 뒤로 물러난 상황.

남은 건 거인과 거인의 충돌뿐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공화국의 스톤 골렘이 훨씬 유리해 보였다. 덩치도 훨씬 컸고, 수도 많았기 때문이다.

양측 골렘의 거리는 이제 불과 오십 미터 남짓.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스톤 골렘이 광산 입구의 평평한 땅에 무겁게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우우우우.

또다시 낮게 울려 퍼지는 울음과 함께 우드 골렘 세 기가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이에 질세라 스톤 골렘도 땅을 짓밟으며 걸어나왔다.

그리고.

콰앙!

스톤 골렘이 휘두른 팔과 우드 골렘이 휘두른 거대한 나뭇가지가 부딪쳤다.

돌과 나무.

그 둘이 힘껏 충돌했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와는 달랐다.

“······우리 쪽이 밀린다.”

상황을 살피던 수색대 병사 중 한 명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였다. 훨씬 더 큰 스톤 골렘이 굉음을 내며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힘 싸움에서 양쪽의 출력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러나 서로 너무나도 다른 두 골렘의 진짜 차이가 드러나는 건 이제부터였다.

우드 골렘은 기민하게 움직이며 다른 한쪽 팔을 뻗었다. 곧 팔에서부터 잔가지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그 줄기는 단숨에 스톤 골렘의 다리 하나를 꽁꽁 묶었다.

힘에서 밀리는 상황에 다리 하나의 통제를 잃은 후에 벌어질 상황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콰앙.

뒤로 쓰러지는 스톤 골렘. 흙먼지가 자욱하게 치솟았다.

구구궁!

붉은 눈의 스톤 골렘은 몸을 뒤틀며 일어나려고 했으나, 그 몸을 짓누르는 우드 골렘은 그걸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팔을 하늘 높이 올렸다가 그대로 내려친다.

투쾅!

그 일격에 스톤 골렘의 얼굴이 반쯤 뭉개졌다. 붉은 안광이 점멸하며 연기처럼 흩날렸다.

우우우우.

마운트 포지션을 잡은 우드 골렘은 낮게 울었고 재차 팔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이대로라면 스톤 골렘은 수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고 기동정지할 터였다.

“제길! 여, 여기까지다. 어서 놈을 떼어내!”

스톤 골렘을 조종하던 골렘 마법사가 벌게진 얼굴로 다급히 고함을 질렀다.

이곳에 오기 전에 본국의 마도공학부가 적 골렘과의 성능을 확인해볼 것을 거듭 촉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이건 너무 일방적이었다.

쿠쿠쿵!

뒤에 있던 스톤 골렘들이 달려들면서 지축이 흔들렸다.

꽝!

몸통 박치기에 우드 골렘이 나가떨어지며 십여 미터를 밀려났다. 이내 기민하게 일어나는 우드 골렘이었지만, 타격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왼쪽 팔의 껍질이 으깨져 있었다.

그걸 본 공화국 마법사의 눈빛이 번득였다.

“그렇지! 역시 소재가 나무라서 그런지 방어가 약하구나. 난타전으로 끌어들여라. 저 골렘이 제법 빠르고 힘이 좋은 것 같지만, 이런 좁은 곳에서 난타전을 벌이면 어쩔 수 없을 거다.”

“옛!”

곧 스톤 골렘들이 쿵쿵대며 좌우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고, 그 움직임에 대응하듯 우드 골렘들도 움직였다.

다시 대치가 이어졌지만, 이번 대치는 짧았다.

지축이 무섭게 뒤흔들렸고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양쪽 골렘이 충돌하며 뒤얽혔다. 비로소 본격적인 골렘전이 시작된 것이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