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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23) (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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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앙4

*

“음.”

이를 악문 입술 사이로 옅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마나의 격류가 온몸을 헤집어 놓는 듯한 감각. 곧 제드가 바르르 떨었고, 코에서는 핏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누군가 봤다면 기겁했을 광경이다.

사실 이런 무식한 방법은 어느 마탑에서도 시행하지 않는다. 피시술자가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도 높은 마석은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밀도 높은 마나 폭풍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수십 개나 되는 최상급 마석의 힘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동안은 정제된 마석의 수량을 그토록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었고 육체가 미숙했던 까닭에 섣불리 시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슬아슬하게나마 이 과정을 버틸 수 있었다. 육체는 한계에 치달았으나, 전생에 6써클의 경지에 다다랐던 제드의 월등한 정신은 그걸 가능케 했다.

흐흐. 곧 입술 사이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마나의 샘에서 솟구치는 그 방대한 기운을 있는 대로 삼키고 소화하면서 제드의 심장에는 네 번째 고리가 무서운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한 번도 겪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이 정도나 되는 마석을 이토록 과감하게 써본 적도 없다. 제드가 최상급 마석을 만질 수 있게 되는 때에는 하나하나의 가치가 천문학적인 가격이 되어, 나라의 제1급 자원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제드는 초췌한 기색으로 천천히 눈을 떴다.

대지의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의 마나. 그 기세는 이제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아직 기세가 다하지는 않았지만, 샘에 괸 마나가 거의 다 소진됐다. 인위적으로 마나를 풀 수도 있겠지만, 아직 그럴 필요는 없겠지.’

불과 반나절의 시간 사이에 제드는 4써클을 완성했다. 그리고 5써클의 3분의 1정도 되는 고리를 만들 수 있었다.

‘대충 가늠해보건대 5써클까지 완성하자면 마석이 200개는 들어가겠어. 그 정도면 효율이 높다고는 할 수 없겠군. 거기다 몸이 못 버틴다. 마나를 압축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힘 때문에 몸이 먼저 망가질 거야.’

속성법에는 명확한 장단이 있었다. 이토록 빠른 방법이 있음에도 전생의 무수한 고위 마법사들이 속성법을 택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끙.”

제드가 일어나다가 낮게 신음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꼭 죽을 생각으로 일을 벌인 것 같았소, 주군.]

불쑥 들려온 목소리. 자크였다. 마나의 샘 외곽에 그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고작 이런 걸로 죽을까.”

[고작이라니. 그리 막대한 마나를 받아들이는 게 어떻게 고작이란 말이오. 내가 보기에 주군이 죽지 않은 건 기적에 가깝소.]

“하하하.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기적이라는 것에 그토록 손쉽게 다다를 수 있었다니 말이야.”

제드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자크의 뒤로 누군가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빌이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니 아마도 제드가 마나를 빨아들이는 그 과정을 모두 본 듯했다.

“거기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보게 됐습니다.”

“사과할 일은 아니죠. 어차피 딱히 숨긴 것도 아니었고.”

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똑바로 몸을 폈다. 조금 전까지 신음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평소와 같은 얼굴이다.

“저는 잠깐 쉬고 남쪽에 다녀올 참입니다.”

“어떤 일 때문에 가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렌시아 공화국 때문입니다. 그들의 군대가 남작령에 들어왔어요. 목적은 광산이고, 전 그걸 저지하려고 합니다. 전투가 일어날 겁니다.”

꿀꺽.

빌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에도 그랬다. 제드가 그레즈에 다녀온 이후로 모든 게 바뀌었다.

“콜렉 남작령의 일이면 레지앙과는 무관한 일 아닙니까?”

“아니요. 무관하지 않습니다. 빌은 마석의 가치를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그게 엄청난 것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레지앙에도 많지 않습니까. 굳이 그들의 일에 개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말에 제드가 피식 웃었다. 너무나도 순진한 발언이었다.

“빌, 사람의 탐욕이라는 건 끝이 없는 겁니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얻고 싶고, 둘을 얻으면 넷을 얻고 싶은 법이죠. 그들은 지금은 당장 손에 들어온 마석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이어질 것 같습니까?”

제드의 말투는 단호했다.

그는 보았기 때문이다. 미래를 말이다.

“머잖아 공화국은 이 산맥 전체를 통제하려고 할 겁니다. 그 가치를 알기에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거지요. 그러자면 남작령, 레지앙, 그리고 나아가서 라이곤이라는 이 나라마저 거슬릴 겁니다. 거슬리는 걸 치울 힘이 있는 그들이 뭘 하겠습니까?”

제드가 빌의 앞에 섰다.

빌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키도 체구도 그보다 훨씬 작은 제드였다.

그런데 저 무거운 시선과 목소리에 실린 기백에 절로 몸이 위축되었다.

“······그들이 전쟁을 벌이기라도 할 거란 말씀이십니까?”

“반대로 물어보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귀한 자원이, 힘이 없는 자의 손에 있는데 빼앗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힘의 논리.

그것은 개인과 집단, 나아가서 국가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냉혹한 국제정치의 판도는 오로지 힘과 실력으로 좌우되는 것이다. 그것에 선악은 없다.

“빌, 평화는 강력한 힘과 실력 없이는 한없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한 겁니다.”

제드가 빌의 곁을 지나쳐갔다.

빌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금 전의 말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제드는 반나절을 푹 쉬고 일어나서 창고로 향했다.

창고를 지키던 마을의 경비대원들은 제드에게 인사를 하고서 옆으로 비켜주었다.

커다란 창고에는 다양한 물자가 가득했다.

새롭게 만들어진 창고가 지금도 서너 개는 더 됐다. 앞으로도 물자가 한참 더 들어올 예정이었으니, 나머지도 곧 채워질 것이다.

“잘 정리해뒀군.”

제드는 지시해뒀던 대로 준비된 물자를 보고 만족한 표정을 했다. 그곳엔 풀 플레이트 아머와 흙, 그리고 무기 따위가 뒤섞여 있었는데, 각각 구분해놓은 모습이었다.

[또 만들 참이오?]

“필요해. 적들의 전력이 그만큼 강하거든.”

[흥. 이런 것들을 만들 시간에 이 느리고 못 미더운 몸뚱어리를 조금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게 낫지 않겠소? 장담하건대, 이 몸이 저것들 다섯······ 아니, 열은 능히 감당할 수 있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수가 없어. 성능을 끌어올리자면 충분한 시간과 그만한 자원이 들기 마련이야. 근데 지금은 그 정도의 여유가 없어. 그러니 별수 없이 숫자를 늘릴 수밖에.”

자크의 투구 안쪽의 빛이 음울하게 빛났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지. 오늘 내가 일으키는 골렘들은 모두 그대의 부하가 될 거야.”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소. 내 말을 듣는다는 말이오?]

“그래, 경의 직속인 셈이지.”

[점점 더 모르겠군. 그럼 그들은 나와 같은 존재가 된다는 말씀이오?]

“아니, 그렇진 않을 거야. 경은 특별하니까 말이지.”

제드의 말에 투구 속 녹색 안광이 세졌다가 약해지기를 반복했다. 표정이랄 게 없는 자크였지만, 제드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조금 전의 그 말에 꽤 기뻐했음을 말이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제드는 품속의 주머니에서 마석을 꺼냈다.

각각 두 개씩.

총 열 기의 아이언 골렘을 일으킬 것이다.

“저 빛은 뭐지?”

창고 밖에 있던 아이작은 외부로 흘러나오는 푸른빛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였다.

“마법 아니겠어? 마법사님이 들어가셨잖아.”

“음, 그건 그렇지. 근데 마법이라니. 가끔 놀랍단 말이지. 우리가 알던 제드는 그냥······.”

“아이작, 너 말조심 안 해? 마법사님이 네 친구냐?”

빈스가 눈을 무섭게 치켜뜨자, 아이작이 입을 꾹 다물었다.

‘······거참. 세상 일이라는 게 알 수가 없다더니 딱 그 말대로라니까. 서너 개월 전까지만 해도 모두 제드가 제 몫을 못한다고 혀를 찼는데 말이야.’

그런데 지금의 제드는 이 레지앙에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가 됐다. 모든 변화의 중심에 그가 있었고, 그의 말이면 모든 게 바뀌었다.

물론, 아이작은 그 모든 걸 감사히 여겼다. 그 역시도 마을의 일원으로서 혜택을 적잖이 보았기 때문이다. 제드 덕분에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앞으로는 뭐가 더 어떻게 변할까?’

아이작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그그긍. 창고의 문이 열렸다.

곧 제드가 걸어나왔고, 그 뒤로 2미터의 거구의 갑주를 걸친 존재가 절그럭 소리를 내며 뒤따랐다.

그런데.

“어?”

그 뒤로 다른 갑주를 걸친 자들이 일곱이나 더 뒤따랐다. 분명히 창고에 들어갈 때는 둘이었는데, 나올 때는 아홉 명이 된 것이다.

“빈스, 혹시 창고에 사람이 더 들어갔던가?”

“무슨 헛소리야. 우리가 빈틈없이 지키고 있었잖아.”

“그럼 저들은 누구지?”

“모르지. 우리가 어찌 알겠어. 그냥 그러려니 해. 마법사님이라면 뭐든 가능하시다는 거 아직도 모르겠어?”

“······.”

빈스의 말에 아이작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마을 밖으로 향하는 제드를 빌이 배웅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깊이 숙였고, 제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일 따름이었다.

제드가 전장으로 간다는 걸 아는 건 그뿐이었다.

‘그나저나 한 번에 10기는 조금 어려웠나.’

세 기는 정령이 응답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레지앙이라서 그 정도의 성공률이 나온 것이리라. 우드 골렘에 비해서 만들기가 쉬운 아이언 골렘을 적극 활용하자면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군. 나와 비슷한 존재들이 여럿 있다는 게 말이오. 거기다 꼭 내 손과 발처럼 말을 따르기까지 하니 이상하오.]

“그 느낌에 익숙해지도록 해. 그들을 얼마나 다루느냐에 따라서 할 수 있는 게 달라질 테니까 말이야.”

[노력해보겠소.]

“그건 그렇고······ 저 아래 상황이 급해졌군.”

제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약 삼십여 분 전부터 블라르의 마나 소모가 커졌다. 몸을 숨기고 파손된 육체를 수복하는 것 외에 기동에 마나가 소모된다는 것은 광산의 영역권에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얘기였다.

‘상황을 확인해야겠어.’

“자크 경, 나를 안고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겠나?”

[알겠소.]

“안전하게 부탁 좀 하지. 나는 그동안 남쪽 상황을 봐야겠으니까. 필요하다면 미리 배치해둔 우드 골렘만으로 먼저 전투를 벌여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크가 제드의 몸을 번쩍 안더니, 상체 갑옷을 열어젖혔다. 안에 가득 차 있던 흙이 좌우로 스르륵 밀려나더니 제법 널찍한 공간이 생겨났다.

“······자크 경, 꼭 그 안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동 중에 발생할 유사시의 상황에 대응하려면 주군의 안전을 위해서 이곳이 적격이라는 게 내 판단이오.]

“후.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제드는 자크의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가득 차 있는 푹신한 흙에 기댄 순간, 곧 갑옷이 닫혔다.

[그럼 달리겠소.]

쿠웅.

그 순간, 몸이 튕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내부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윽.’

제드는 속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에 바로 주문을 외웠다. 충격을 최대한 방지하는 마법을 펼친 것이다. 여전히 미친 듯이 흔들거리는 내부였지만, 그나마 조금 덜했다.

제드는 곧 정신을 집중하면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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