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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앙3
*
번쩍.
눈을 뜬 제드의 눈빛이 무섭게 빛났다.
‘공화국이 왔구나.’
슬슬 그 시기가 목전에 왔음은 알았다. 그래서 수일 안으로 블라르에게 지시를 내려 국경 일대를 둘러보게 할 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블라르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마치, 제드의 뜻을 헤아리듯이 말이다.
‘상위 정령은 자발적으로 계약자의 뜻을 이해한다는 건가?’
흥미로운 일이었다.
블라르와 자크.
이 둘은 수십 년을 골렘 마법의 연구에만 매진해왔던 제드에게조차도 특별한 케이스였다.
‘연구가 필요한데, 도무지 그럴 시간이 없군.’
블라르의 시야를 통해 본 골렘들은 모두 공화국의 초기 형태 골렘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수는 10기가 넘는다.
‘하지만 출력은 형편없을 거다.’
초기에 나온 골렘들의 출력은 평균적으로 80마력(魔力)을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반면, 지금 아우로렐의 출력은 200마력을 가볍게 넘어서는 상태. 일곱 기의 우드 골렘도 각각 150마력씩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골렘을 통제하는 마법사의 역량조차도 막대한 차이가 난다. 이는 기존의 마법사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인 써클의 수와는 무관했다.
마법, 전투, 조종, 전략 등. 골렘의 전투수행능력에는 다양한 분야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라도 패배할 일은 없다. 승리는 이미 정해진 사실. 중요한 건 어떻게 이기느냐다.’
10기가 넘는 골렘을 동원했다는 사실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공화국은 그레지안 산맥에서 산출되는 마석을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동원된 병력과 마법사도 공화국 최정예일 테지.’
제드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어쩌면 이번 사태는 막 날아오르기 시작한 공화국의 날개 한쪽을 제대로 꺾어놓을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이튿날부터 제드는 오전부터 블라르와 동기화했다.
정찰 및 탐색.
블라르는 하늘을 높이 날면서 콜렉 남작령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정보를 더 알아낼 수 있었다.
‘골렘의 수는 총 12기. 수년 후에 발생했어야 할 해방전쟁 때 공화국에서 동원한 골렘의 수가 총 16기였음을 생각해볼 때, 이 정도라면 거의 모든 전력이라고 봐야겠지.’
군대의 규모 역시 적지 않다.
약 1,000명 이상의 여단급 병력이 일정 제대 규모로 나뉘어 광산과 얼마간 떨어진 숲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반드시 해가 떨어진 후에만 움직였다.
‘철저하군. 노출 자체를 최대한 자제하고 있어. 정찰은 반드시 해가 진 후에만 하고 있고.’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철저하게 해가 진 후에만 광산 일대를 수색하는 병사들. 그들은 곧 광산 입구 근처에 가만히 멈춰 서 있는 여덟 기의 우드 골렘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터.’
골렘은 반드시 조종하는 마법사가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에 먼저 마법사의 존재부터 파악하려고 들 터였다.
그러니 적어도 며칠 정도는 시간이 남아 있으리라.
제드는 조금 더 그들의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들이 정찰과 탐색을 하듯, 제드 역시 그들의 전력을 차분히 파악하는 것이다.
*
어둠 속을 유영하듯 거침없이 움직이는 그림자.
그들은 총 다섯이었다.
검은 외투에 후드까지 깊게 눌러쓴 그들은 단출한 복장으로 수풀을 뛰어넘어 가볍게 착지했다.
곧 두 손을 천천히 올리는 이들.
그 순간, 수풀 속에서 서슬 시퍼런 날붙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누군가가 툭 물었다.
그러자 다섯 명은 일제히 답했다.
“자유.”
그러자 칼을 겨누고 있던 이들이 천천히 내렸다.
곧 다섯 명도 후드를 벗어 자신들의 얼굴을 드러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론 중위.”
경례를 올리는 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인 흑발의 남성, 아론은 수풀 사이를 지나서 안쪽으로 걸어갔다. 곧 호수가 나왔을 때, 그곳에 커다란 임시 막사가 보였다.
“아론 빅트릭스 중위입니다.”
“들어오도록.”
막사로 들어가자, 안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대상에게서 변화는.”
“없습니다.”
“음,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란 말이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사내는 미간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그가 이번 작전 ‘벌목’의 총책임자인 알프레드였다.
“어제도, 그제도 계속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무슨 생각이지. 적은 골렘을 거의 내버려두고 있어. 함정이라기엔 너무 대범하군. 아이레스 공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그게 골렘인지 어떤지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거든요.”
아이레스라고 불린 삼십 대의 여성은 깊은 눈동자를 하고서 턱을 가만히 매만졌다.
“왜 나무일까요? 약점이 명확해지는 나무를 베이스로 삼아서 골렘을 만들 이유가 없는데 말이에요. 골렘끼리 교전이 발생하면 다수의 접전 때에는 중량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나무라니. 그건 너무 가벼워요. 재질도 너무 약할 테고요. 다만, 한 가지는 알겠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광산의 그것들에 관심이 있는 만큼, 그 존재 역시 우리에게 아주 관심이 많다는 거죠.”
“그게 무슨 뜻인지요?”
알프레드의 물음에 아이레스가 붉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힐긋 고개를 돌렸다.
“저희가 이곳에 도착한 뒤로 사흘. 그동안 지속적으로 이 주변을 살피는 존재가 있어요. 어제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는데, 이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순간, 막사 내의 분위기가 변했다.
“적의 정찰이란 말입니까?”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아주 특별한 방법이네요. 정말로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죠.”
아이레스가 붉은 로브를 펄럭이며 막사 밖으로 나와 나직이 주문을 외웠다.
쓰스스스.
곧 그녀의 목걸이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고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빛이 흘러나와 길쭉한 형태로 변하였다. 그것은 창이었다. 마법의 창.
그때였다.
푸드득.
호수의 반대편. 나뭇가지를 벗어나 다급히 날아오르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안 놓친다.”
아이레스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드리운 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창이 솟구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았다.
쐐애액!
피할 도리가 없어 보이는 마법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파란 새는 허공에서 곡예비행을 펼치며 창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아니?”
그 광경을 목도한 다른 이들이 깜짝 놀라는 가운데, 마법을 날린 아이레스 역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는 더욱 짙게 변했다.
그녀가 허공을 향해 손을 뻗더니 이내 잡아끌 듯이 손을 휘저은 순간.
꽈앙!
새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친 마법의 창이 산산이 흩어지며 폭발해버렸다. 푸른빛이 점멸하는 가운데, 새 역시 그 폭발에 휘말려 저 아래로 추락하였다.
“잡으세요. 저 새를 놓쳐선 안 됩니다!”
“아론 중위!”
“옛, 알겠습니다.”
알프레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땅을 박차고 어둠을 향해 달려나가는 아론.
“아이레스 공, 조금 전에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이러는 것입니까?”
“골렘인 것 같습니다.”
“예? 조금 전의 그 새가 말입니까?”
“예,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믿기 어렵군요. 골렘이 저런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움직임도 흡사 살아 있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습니까.”
“네, 적어도 공화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반드시 저 새를 가져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저 광산에 있는 골렘이 무엇인지, 누가 어떤 의도로 어떻게 만든 것인지를 전부 알 수 있을 겁니다.”
아이레스의 눈동자가 광기로 일렁였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온 아론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 못 찾았나요?”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새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이런 것만······.”
아이레스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아론이 가져온 것을 보았다.
푸른 깃털과 나뭇가지. 그리고 순수하고 강렬한 마나의 흔적. 언제 얼굴을 일그러뜨렸느냐는 듯 그녀의 눈에 강렬한 호기심이 드리웠다.
“역시! 이건 골렘이에요. 놀랍군요. 정말로 놀라워요. 이 일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배후의 존재는 공화국의 골렘 마법 기술력을 아득하게 앞서고 있어요.”
알프레드의 미간에 골이 더 깊이 파이는 가운데, 아이레스는 갈증이 나는지 입맛을 다셨다.
“알프레드 경, 광산의 골렘들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합니다. 만약 조금 전의 새 형상의 골렘과 광산의 골렘을 만든 이가 같다고 한다면 공화국의 골렘은 앞으로 10년······ 아니, 20년 이상의 마법적 진보를 이룰 게 틀림없어요.”
그녀의 눈빛이 뜨겁게 빛났다.
바로 그 시각.
레지앙에선 제드가 깨어나 밤 공기를 쐬고 있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시선은 남쪽 저 너머를 가늠하고 있다.
“아이레스 리들린이라.”
얼굴까지 제대로 포착하진 못했다.
그러나 제드는 그녀의 마법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날카로운 마나 패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얼마나 질긴 악연이었던가. 토르가 왕국에 투신한 뒤로 제드는 정말로 그녀와 무던히도 전장에서 만났었다. 공화국의 붉은 여우라고 불렸던 그녀는 토르가의 군인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역시 대단하군. 블라르를 이렇게 쉽게 포착하다니.’
아이레스는 무서운 상대였다.
마법력도 그랬고, 골렘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전생의 제드에게는 벽처럼 느껴졌던 상대였다.
그러나 그건 한참 시간이 지나 훗날 붉은 여우라고 불릴 때의 이야기. 전장의 경험도, 골렘에 대한 이해도 한참 떨어지는 그녀와 전생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제드. 그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의 시대에는 제드의 마법력이 훨씬 밀린다고 해도 말이다.
‘군대의 총지휘관은 알프레드 준장. 이것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다. 당대 공화국 최정예라면 정해져 있으니.’
알프레드 스터스 슬라인.
그 역시 훗날 공화국의 명장이라고 불리는 인물.
따라서 저 군대는 그 알프레드가 이끄는 흑사자 여단이라고 불리는 공화국 최정예 부대일 것이다.
‘여차하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인가.’
제드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뭐든 상관없었다.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을 테니까.
*
아직 해도 밝지 않은 새벽.
제드는 밖으로 나와 숲을 향해 나아갔다.
험한 산악의 길목을 지나서 마침내 다다른 곳은 마나의 샘이었다. 아우로렐이 일어난 자리이자, 마나가 괴는 땅.
빌이 그랬던 것처럼 제드도 이곳을 이용할 참이었다.
적 전력의 분석은 끝났다.
‘충분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준비는 더 해서 나쁠 건 없다.’
알프레드와 아이레스가 그 둘이 상대가 아니던가.
알프레드는 마스터였고, 아이레스는 6써클의 대마법사다.
반면 지금 제드는 지식을 제외하면 체내의 마나는 아직 3써클. 그야말로 압도적인 차이다.
그러나 앞으로 벌어질 싸움에서 마법사의 기량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제드는 마법사로서 그녀와 마법력을 겨룰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변수는 항상 존재한다. 혹 교전이 장기전으로 이어지면서 마나가 고갈될 가능성도 있으니, 이참에 4써클을 만들어두자.’
제드는 구덩이의 앞에 서서 주머니에서 최상급 마석 한 움큼을 꺼내서 활성화한 후에 흩뿌렸다. 구덩이 저편으로 반짝이는 마석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드드드드드.
머잖아 땅이 진동하였고, 제드는 손을 뻗었다.
오른손 중지의 디바이스가 영롱한 푸른빛을 머금은 순간, 땅 깊숙한 곳에서부터 들끓는 마나의 격류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요동치는 마나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인도한다. 그리고 지금 제드가 앉아있는 이 땅을 그 길목의 중심부로 삼는다.
빌 때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바로 마나의 양과 마나가 흐르는 길목의 폭이 훨씬 좁다는 것이다.
빌은 마나를 느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제드는 아니었다.
‘단번에 삼켜주마.’
끓어오르는 마나와 좁은 길목. 솟구치는 마나의 유속이 무시무시하다.
쿠구구구구궁!
지진이라도 난 듯이 지축이 흔들렸다.
머잖아 성난 마나의 격류가 제드의 몸으로 무섭게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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