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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21) (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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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앙2

*

우거진 숲을 얼마나 나아갔을까.

머잖아 달빛이 드리우는 공터가 나타났다.

‘이곳에 이런 공터가 있었던가?’

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으므로 사냥을 나설 때면 한번씩은 지나쳤을 텐데, 빌은 이런 공터는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장소는 아우로렐이 일어나면서 생겨난 곳이었기 때문이다. 굵고 깊은 뿌리가 일어선 자리엔 고랑이 패인 것처럼 땅이 쩍쩍 파여 있었고, 중심부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있었다.

제드는 그 구덩이 앞에 섰다.

“딱 좋군.”

주머니에서 작은 알갱이 같은 마석을 꺼내 드는 제드.

지난 수일간의 결실이었다.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빌이 더 강해지려면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는 불가능해요. 마나가 필요하죠.”

“압니다. 하지만 마나는 선천적인 재능의 영역이 아닙니까. 뭔가를 한다고 해서 얻는 게 아닌 줄 압니다.”

“그렇죠. 대개 그렇게들 알고 있을 겁니다.”

설명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게 빠르다. 제드는 마석 세 개를 구덩이 안에 넣었다.

“그건 수호신을 깨울 때 쓰는 귀한 마석이 아닙니까?”

“이건 어느 하나에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쿠웅.

빌은 깜짝 놀라서 몸을 낮추었다. 별안간 땅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앉으세요, 빌. 지금부터 이 땅 깊숙한 곳에서부터 마나가 흘러나와 당신의 몸을 가득 채울 겁니다. 뭔가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감각을 자연히 느끼게 될 테니까요.”

“······.”

빌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지만, 제드의 말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요. 천천히.”

제드의 목소리를 따라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 사이, 제드는 허공에 손을 펼쳤다.

곧 제드의 눈동자에서 싯푸른 광망이 일렁였다. 중지의 디바이스로 증폭된 마나가 뿜어져 나와 얇은 실이 되어 얽히고설키며 아우로렐의 뿌리가 일어난 곳을 따라 깊숙한 곳 안쪽으로 내려갔다.

두근.

선명하게 맥동하는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곳은 원래부터 마나가 모이는 못과 같은 곳이었다. 아우로렐이 그토록 긴 시간을 살아오며 영물에 가까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까닭이다.

그런 아우로렐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곳엔 거대한 틈이 생겼고, 그동안 마나가 차곡차곡 쌓였다.

제드는 그곳에 마석을 넣어 잠들어있던 마나의 흐름을 일깨운 것이다.

‘자, 오너라.’

남은 건 그 요동치는 마나가 흘러갈 길을 하나 더 만드는 것. 그 길목에 바로 빌이 있었다.

곧 바닥에서부터 푸른빛이 점멸하며 흘러나왔다.

빌은 그 푸른 불빛 속에 휘감겼고, 제드는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것으로 늦어도 반나절, 그 안에 빌은 마나를 깨우칠 것이다.

빌이 눈을 번쩍 떴다.

숨을 몰아쉬는 그의 동공이 커졌다가 작아지길 반복했다.

이마엔 식은땀이 흥건하였고, 온몸은 가늘게 떨렸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벼락이 친 듯한 감각.

꿀꺽.

‘이 느낌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군요.”

빌이 자신의 두 손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감각이 몸 안에서 물처럼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 이게······ 마나란 말입니까?”

“맞아요. 그게 마나입니다. 그걸 느껴야만 그때부터 마나를 사용할 수 있죠.”

“······.”

빌은 한참 넋이 나간 듯 서 있다가 이내 땅에 쿵 머리를 박았다.

“감사합니다. 이,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시다니.”

“세상의 모든 일엔 대가가 있는 법이죠. 빌, 당신이 말했던 걸 지키세요. 나는 당신이 레지앙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길 바랍니다.”

“예,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제 검은 레지앙과 당신을 위해서 쓰일 것입니다.”

빌의 우렁찬 외침을 들으면서 제드는 힐긋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어둠 저편에 있던 자크가 절그럭대며 다가왔다.

“검술은 자크 경이 봐줄 겁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체계적으로 경비대를 만들어주세요. 앞으로 레지앙은 더 커질 테고, 더욱 혼란스러워지겠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흘 동안은 이 땅의 마나가 활성화되어 있을 겁니다. 밤에 최대 두 시간씩 마나를 받아들이도록 하세요. 그 후에는 쓸데없이 힘을 빼면서 허공에 칼을 휘두를 게 아니라, 자크 경에게 배우도록 하고요.”

*

며칠이 흘렀다.

레지앙은 여전히 바쁘고 어수선했지만, 기존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디아고를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졌고, 농경지 재산의 분배로 자산이라는 의식이 생겨났다.

한편, 경비대의 대장으로서 마을의 치안을 책임지는 빌의 실력 역시 일취월장하였다.

“그래서 빌은 잘 따라오는 편인가?”

[썩 나쁘지는 않소. 마나를 느낀 뒤로 이제 조금씩이지만, 사용할 수 있게 됐소. 나이가 적지 않은데도 이 정도면 놀라운 수준이라고 할만하오.]

“경이 잘 이끌어 봐. 죽음 이후에 얻은 깨달음을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그걸 이야기하기엔 먼 이야기이오. 거기다 이 육체는 그걸 펼치기엔 많이 부족하오.]

“음, 그랬었지. 할 일이 끊이질 않는군. 하루가 너무 짧아.”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제드는 하루를 너무 바쁘게 보냈다.

마석을 정제하는 데에 하루의 태반을 보냈고, 나머지 시간에는 꼬박꼬박 양질의 식사와 운동을 병행했다. 몸이 성장하는 시기였다. 앞으로 전장에 나설 것까지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건 건강과 체력이었다.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마을의 일들을 확인하고 지침을 디아고에게 전달하는 등의 일까지도 놓치지 않는 제드였다.

‘정제된 마석의 수도 200개가 넘었다. 공정이 안정화가 되었으니, 안정화된 수량을 뽑아낼 수 있을 테지.’

본래라면 이 공정이 만들어지는 건 최소 30년 이후, 공장화가 한참 이루어진 뒤의 일이었으나, 그 공정의 핵심을 아는 제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내 마나와 이곳의 지리적인 특성까지 다 동원하자면 하루에 15개 안팎을 정제할 수 있다.’

세상이 알게 된다면 발칵 뒤집힐 일이었다.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한 최상급 마석이었다. 비록, 그 크기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제드는 낙관하지 않았다.

‘콜렉 남작령의 광산 개발이 이토록 빨리 진행됐다는 걸로 미루어 볼 때, 비토 라그만의 마석 정제법은 발표된 것보다 훨씬 더 이전에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던 게 틀림없어.’

그러니 더 준비가 필요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제드는 밖으로 나왔다.

머리의 열을 식히기 위함이다.

서늘한 산바람이 시원했다.

그때, 저편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낯이 익은 여성이었다.

“마리아?”

“이제 쉬러 가시나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또래의 여성.

그녀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제드에게 친절했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래, 이제 쉬려고. 근데 밤이 늦었는데, 어딜 가는 거지?”

“아, 그게······ 마법사님을 혹시 뵐 수 있을까 싶어서······.”

“나를? 혹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 아니요.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새삼스럽군.”

그렇게 말하는 제드였지만, 눈매는 한결 부드러웠다.

그가 변한 뒤로, 마을 사람들도 변했다. 대부분 경외감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조심스러워하긴 해도 두려워하거나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의 레지앙은 어수선한데, 따로 힘든 일은 없나?”

“없어요. 모든 게 좋아요. 그리고······ 저 요즘에 디아고 할아버지께 글을 배우고 있어요. 이제 글도 읽고 쓸 수 있어요.”

“그래? 빠르군. 잘하고 있어. 앞으로 레지앙은 계속 변할 거야. 모여드는 인파 속에서 휩쓸리지 않으려면 변해나가야 해. 배우거나 가지거나. 어떤 것이든 손에 쥐고 있어야지.”

그러자 잠깐 머뭇대는 마리아.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하다.

“말할 게 있으면 하도록 해.”

“혹시 제가 마법사님을 도울 일이 있을까요?”

마리아의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제드가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이야. 하지만 당장은 배우는 걸 우선하도록 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쓸 수 없으니까.”

“그럼 저 열심히 배울게요. 마법사님이 변했던 것처럼 저 역시 변하고 싶어요.”

마리아는 결심한 듯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갔다.

그녀의 순수한 호의와 결의가 느껴졌다. 지금껏 필요에 의한 인간관계만을 만들어왔던 제드였기에 그런 그녀와의 관계는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그토록 갑자기 변할 수가 있던가.

제드는 특별했다. 그는 변한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굳이 상기할 필요는 없다.

인재가 필요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인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준다면 제드는 작은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큰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이르기까지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방으로 돌아온 제드는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기가 무섭게 잠이 쏟아질 찰나.

꺄르르.

제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웃음 소리. 틀림없다. 두 번째 골렘 블라르를 만들었을 때에 들었던 그 바람의 정령이 내던 소리였다.

블라르가 제드를 부르고 있었다.

저 남쪽의 땅에서 뭔가가 포착되었다는 것이다.

제드는 자리에 누워 블라르와의 동기화에 들어갔다.

곧 그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고, 다시 의식이 부유했을 때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새까만 하늘 아래로 산자락이 펼쳐져 있었다.

구름이 달빛을 가린 세상.

아래로는 숲이 가득했다.

이곳은 절벽이었다. 절벽 사이에서 자라난 나뭇가지의 위, 그곳엔 푸른 새 한 마리가 있었다. 제드가 만든 두 번째 골렘 블라르였다.

푸드득.

별안간 하늘 위로 치솟은 블라르는 바람을 가르며 산자락을 벗어났다. 그리고 강줄기가 흐르는 길을 따라서 저 멀리 초원평야를 따라 드리운 길목을 굽어살피며 비행했다.

저 남쪽 너머는 렌시아 공화국이었다.

블라르는 크게 선회하며 비행하였을 때였다.

저 옆의 우거진 숲 속에서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풍경이 들어왔다. 블라르는 그 숲을 향해 하강했다. 그리고 우아하게 나뭇가지 위에 앉았다.

바로 그 순간.

쿠웅.

땅이 진동했다. 그리고 그 진동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쿵. 쿠웅.

연이어 지축이 흔들렸고, 머잖아 으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 꺾여서 쓰러지기까지 했다.

블라르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풀을 헤치며 사람들이 나타났다. 경장갑에 병장기를 든 군인들. 그리고 그 너머로 4미터의 새까만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까만 돌덩어리를 붙여서 만든 듯한 골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서 하나의 붉은 눈동자가 일렁이며 빛을 내뿜고 있었다.

쿠웅. 쿵.

다수의 골렘이 땅을 짓밟고 나무를 무너뜨리며 천천히 북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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