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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5) (1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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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마법사4

대사까지 외우고 있는 인형극이었다.

스승인 라데르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 인형극의 수준은 지금 보니 썩 빼어나다고 하긴 어려웠다. 다소 어설프고 이야기의 구조가 단조롭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드는 좋았다.

‘정말로 오랜만이구나.’

저 우스꽝스러운 연기 톤의 목소리. 꺄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너무나도 그리웠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머잖아 연극이 끝나자, 아이들은 한둘씩 일어났다.

많은 아이가 연극의 무대로 다가가 인형을 보면서 재잘댔지만, 그 외의 아이들은 홀연히 광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평화로운 순간은 잠깐이다. 이 거리에도 규칙은 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조차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곧 무대 뒤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인자한 미소가 돋보이는 신사였다. 비록, 옷은 다 해지고 중절모는 구멍이 나서 우스꽝스러웠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이 거리의 아이들에게는 친근했다.

라데르 아일란.

바로 그였다.

‘스승님.’

제드는 격한 감정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그의 인생을 바꿔준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기억 속의 그 모습 그대로, 웃는 얼굴로 말이다.

“인형 할아버지, 여우가 안 움직여요!”

“곰도 안 움직여. 왜 그래요? 죽었어요?”

“행복하게 살았다고 그랬잖아요.”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는 봉제 인형을 쥐고서 묻자, 라데르는 빙긋 웃었다.

“그럼. 행복하게 살았지. 근데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여우와 곰이 정령이 되어서 찾아왔다가 슬쩍 떠난 거야.”

“그럼 여우랑 곰은 어디 있어요?”

“어디 있기는! 항상 너희와 함께하지. 정령은 어디에나 있거든.”

아이들은 신이 난 모습으로 한참 재잘재잘 떠들었다. 라데르도 몹시 즐거운 듯 아이들을 대했다. 제드는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저런 분이셨지.’

라데르는 이 시대의 통상적인 마법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했고 마법은 그런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다중연산제어술식.

마법과 정령술을 결합한 전혀 새로운 형태의 마법.

그런 놀라운 마법을 만들었으면서도 오직 인형극을 위해서만 썼던 괴짜 마법사.

“청년은 어째서 사람을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가?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제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이 광장에는 라데르와 제드뿐이었다.

라데르가 부드럽게 웃었다.

“꼭 이 비루한 신사를 보고 사랑에라도 빠진 것 같군.”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하하. 고맙군, 이런 볼품없는 늙은이를 그렇게 좋게 봐주다니 말이야. 근데 못 보던 얼굴인데, 어디에서 왔는가? 말투와 억양을 듣자면 동부 왕국에서 온 듯한데.”

“예, 어쩌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러다 연이 닿아 인형극을 보게 됐는데 감명 깊네요.”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그냥 평범한 인형극인데 말이야.”

“아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이었습니다.”

제드의 말에 라데르가 멋쩍게 웃었다.

“그런 말은 처음이군. 고맙네. 앞으로는 더 재밌고 좋은 이야기를 생각해봐야겠어. 사실 내 이야기는 몇 개 안 되거든. 질린 아이들도 많을 거야.”

하하하. 라데르는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왔다.

대부분은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신변잡기, 거리의 아이들 이야기다. 제드는 그 말에 대답하면서 라데르를 보았다.

정말로 하고 싶은, 혹은 해야 할 말들은 입안을 맴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조금 전 인형극과 라데르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부터였다.

제드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가 익힌 마법의 근간은 틀림없는 라데르의 마법.

‘······하지만 다르다.’

목적과 방식이 다른 마법.

처음은 같았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라데르와 제드의 마법은 전혀 달라졌다.

그 분기점이란 다른 게 아니다.

인생의 굴곡점과 지향점.

즉, 시간이다.

그 순간, 생각이 정리됐다.

‘나는 스승님이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끼어들길 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스승님께서는 변하지 않기를. 이 시대의 온기가 되어 언젠가 끝나게 될 이 전쟁의 끝에서 새로운 시대의 싹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건 피를 뒤집어쓴 자들이 아니다.

그 답에 이른 순간, 모든 게 명쾌해졌다.

제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는가?”

“예, 가야죠.”

“어쩐지 먼 길을 가는 사람 같군.”

“그래야죠. 그럴 생각으로 돌아왔으니까요.”

그러다가 발걸음을 멈춘 제드.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질문? 새삼 뜬금없군. 그래, 뭐든 물어보게. 내가 아는 게 없는 무식한 사람이라 자네가 만족할 답을 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만약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쟁?”

라데르는 황당한 듯 제드를 보기만 했다. 하지만 제드의 눈빛은 진지하다. 농담 따위가 아니란 얘기다.

“음······ 그야 뭐, 도망가야겠지. 그런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면 나 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맞서 싸운다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용감한 청년이로군. 근데 나는 아니야. 싸움은 모든 것을 앗아갈 뿐이지. 맞서 싸운다고 해도 그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그 전쟁과는 무관한 아이들이 다치고 죽어간다네. 그 아이들은 맞서 싸울 수조차도 없어. 전쟁은 모두가 괴로울 뿐이야.”

“······.”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마지막 미련조차도 모두 털 수 있었다.

“내가 사정은 잘 모르지만, 아직 젊은 청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 같군. 주변 사람들에게 곁을 주고 짐을 조금 나누는 게 어떻겠나? 너무 단단하면 부러지는 법이라네.”

역시 스승님은 상냥한 사람이다.

제드는 라데르를 똑바로 보았다.

수십 년을······ 아니, 평생을 마음에 담아두고 살았던 말. 수없이 해도 모자랄 말을 이제야 전할 수 있게 됐다.

“고맙습니다.”

그 알 수 없는 기백에 라데르가 아무 말도 잇지 못하는 사이, 제드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라도 이 땅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다면 레지앙으로 오십시오. 이 거리의 아이들을 전부 데려오셔도 좋습니다. 제드 크레인. 제 이름을 걸고 반드시 당신을 돕겠습니다. 온 세상과 싸워서라도 말입니다.”

제드는 그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라데르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못 박힌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조금 전 제드의 인상이 너무나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 그리고 그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감정까지도.

‘꼭 나를 아는 듯했는데.’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아는 얼굴이 아니다.

제드 크레인.

그리고 레지앙.

라데르는 그 말을 기억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꼭 뭔가가 이 땅에 일어난다는 것을 암시하기라도 한 것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라······.”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그레즈의 라르곤 마탑을 중심으로 상인 길드연합 전체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마탑에서 특정 물자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짐 마차가 부족할 지경이 되어서야 다른 지역에서 마차를 빌려 오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 막대한 물자를 지키기 위한 용병계약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 느닷없는 상황은 수도의 귀족들과 왕정의 관계자들은 크게 긴장하며 마탑의 동향을 주시했다. 물자를 끌어모으는 게 꼭 큰일이라도 벌이려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막대한 물자의 행렬은 이윽고 도심을 벗어나 서쪽으로 향했다.

기이한 일이다. 서쪽이라니? 서쪽엔 아무것도 없었다.

근거 없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귀족들 사이에서는 흉흉한 말들이 오갔다.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암투가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라는 얘기부터 마탑과 왕정의 불화로 마탑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다는 얘기까지.

이런 폭풍과 같은 그레즈의 상황 속에서 정작 그 폭풍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장본인 제드 역시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제드는 라데르와의 만남 이후에 정보 길드에 가서 최근 그레즈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시간별로 정리했다.

‘지금쯤이겠군.’

정리가 끝난 과거의 기록을 훑던 제드는 양피지 더미를 전부 난로에 넣었다. 불꽃에 사그라지는 기록들. 그의 눈동자에 불꽃이 비치며 일렁였다.

머잖아 그레즈에서는 대형사건이 터진다.

통합력 1641년 6월 말.

통칭 라니아 왕녀 암살사건이라고 불리는 일이었다.

현 왕실의 유일한 적통이었던 그녀는 이즈음 약혼자였던 버빌리온 백작이 원인불명의 사고로 죽는 바람에 직할령 남부의 버밀리온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괴한 무리에게 습격을 당해 죽는다. 발견 당시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녀는 수차례 윤간당한 뒤 온몸이 난자당했던 것이다.

이 사건이 터진 직후 한 사람이 전면에 나선다.

바로 케미트로스 공작이다.

라니아 왕녀가 죽자마자 자신이 왕실 유일의 적통으로서 계승권이 있음을 선포한 그는 의식이 없는 왕을 대신하여 왕위에 오르게 된다.

앞뒤 상황을 보자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는 명확했다. 하지만 그렇게 얻게 된 권세는 얼마 가지 않는다. 렌시아 공화국에 의한 해방전쟁이 발발하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은 제드의 인생도 크게 바꾸었다.

수상한 인물로 몰려 감옥에도 들어갔고, 그 이후엔 징집병이 되어 해방전쟁의 전선으로 떠밀렸다. 기어이 그곳에서 왼발이 으스러졌고.

“이건 쓸만한 패가 되겠지.”

제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했던 시간이 됐다.

마탑의 거리.

그 외곽에 들어온 제드는 허름한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는 한 달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완성은 됐나?”

“물론이다. 사흘 전에 완성했다.”

“형태는.”

“반지다. 목걸이가 안정성은 가장 좋지만, 네 녀석이 원하는 그 제어력을 갖추자면 마법을 발현하는 반지의 형태가 이상적이야.”

“좋군. 보석을 이용하지 않은 건 따로 마법을 새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고.”

“허. 이미 알고 있는 물건이라도 본 것처럼 말하는군.”

“알다마다.”

제드는 웃으며 수수하게 보이는 은반지를 오른손 중지에 꼈다. 애초에 그의 것이었던 것처럼 꼭 맞는다. 자연스럽게 체내의 마나와 가닥가닥 연결되는 듯한 느낌.

‘비로소 잃어버렸던 걸 되찾은 느낌이로군.’

제드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역시 안톤이었다. 이건 전생에 그가 사용했던 디바이스와 판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똑같았다.

우우웅.

마나를 흘려 넣자, 반지의 표면에서 알 수 없는 문양이 드러나며 마나가 부풀며 요동쳤다.

“빌어먹을. 가게를 다 날릴 참이냐!”

“겁이 많군. 이 정도도 제어하지 못할 정도였으면 그런 요구도 하지 않았어.”

고작 3서클의 마나. 전생의 제드에게는 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마나를 운용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제어력을 잃는 일은 없다. 그의 정신세계라면 지금의 수백 배가 넘는 마나도 능히 제어하고도 남는다.

무서운 질량으로 부풀던 마나가 순식간에 우뚝 멈추었다. 조금 전까지 당장 뛰쳐나갈 기세였던 안톤도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 제드가 손가락을 서서히 움켜쥐었다.

그 순간, 부풀었던 마나가 한꺼번에 회수됐다.

“훌륭하군, 안톤. 항상 그대는 내 기대보다 더 많은 걸 보여주었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군.”

항상? 이상한 일이었지만, 안톤은 제드가 잘못 말한 것 같지가 않다고 생각했다. 근거도 논리도 없지만, 직감이 그렇게 말한다.

“어이, 어린 인간.”

“이름을 불러라, 안톤. 나는 제드 크레인이다.”

“좋아, 인간 제드. 최근에 이 도시가 시끄러운데, 그거 네가 벌인 짓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대체 뭘 하려는 거지?”

“그게 궁금하다면 레지앙으로 와라. 그곳에 오면 알기 싫어도 많은 걸 알게 될 거야. 그곳에선 안톤, 그대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지.”

제드는 몸을 돌렸다.

안톤의 성격은 훤히 꿰뚫고 있다. 그와 수십 년을 함께했다. 저 참견쟁이에 호기심 많은 난쟁이가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건 바로 괴짜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잖은 때에 찾아올 테지.’

제드는 도심의 중심을 가로질러 내려왔다.

괜찮은 말을 하나 구한 까닭에 이동속도는 빨랐다.

남부의 빈민촌 지대를 지나면 외곽에 버려진 부지가 있었다.

“워워.”

푸르륵.

제드가 고삐를 당기며 멈춘 곳은 반쯤 무너진 저택 앞이었다. 오랜 시간 관리되지 않은 듯 잡초가 무성한 이 으스스한 저택에는 준비해두었던 것들이 있다.

입구로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로비가 보였다.

그곳엔 풀 플레이트 갑옷과 칙칙한 대검. 그리고 귀금속과 산더미처럼 쌓인 흙이 있었다.

‘디바이스도 준비됐으니, 이제 준비는 끝났다.’

제드는 품속에서 마석 두 개를 꺼냈다.

마탑에 팔지 않고 남겨둔 정제 마석이었다.

역사적 사건의 개입에 앞서 일을 수행할 수족을 만들 참이었다.

‘마석 두 개로는 좀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사람의 크기에 한정하면 조금은 아쉬운 대로 써먹을 만하겠지.’

파지직.

오른손 중지의 은색 반지 표면에 푸른빛이 감돌면서 문양이 나타났다. 곧 제드의 심장에 존재하는 세 개의 써클이 회전하며 마나를 뿜었다.

마나는 중지의 디바이스에 이르러 무서운 기세로 증폭되었다. 단숨에 바닥에 선명한 마법진이 완성됐다.

제드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디바이스를 사용하기 이전과 비교했을 때, 마나의 효율이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로비 전체가 열기로 가득해졌고, 그 열기가 요동치는 마법진 내부의 흙과 귀금속이 액체처럼 녹았다.

머잖아 절그럭대며 풀 플레이트 갑옷이 움직이더니 맞춰지기 시작하였다. 그 빈 공간의 내부로 녹은 흙과 금속 액체가 스며들더니 부풀었다.

이제 형태가 만들어졌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다.

‘오너라.’

제드가 정령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정령의 감응은 없었다.

‘역시 정령의 숨결이 너무 희박한 모양이군.’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다소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아예 도시를 벗어나서 남부 평원에서 마법의식을 치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아직 시간은 좀 있으니.’

그렇게 막 마법의식을 멈추려고 할 때였다.

사아아.

등줄기를 타고 스산한 감각이 스치자, 제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부르지 않은 것이 부름에 응했다.

사람의 영혼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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